흔히 봉급 밀린건 다들 알고 있겠지만
그게 무려 13개월이나 밀려있었다고함...
결국 이 모든 일의 원흉이었던 민겸호 대감은....
난병이 궁전으로 올라가 민겸호를 만나 그를 잡아끌자 당황하면서 흥선대원군을 쳐다보며
“대감 나를 제발 살려주십시오.”
라고 호소하였다.
그러자 흥선대원군은 쓴웃음을 지으며
"내 어찌 대감을 살릴 수 있겠습니까"라고 말하였다.
흥선대원군의 말이 끝난 직후 민겸호는 계단으로 내동댕이쳐졌고 난병은 계단 밑에서 민겸호를 죽이고 총칼로 시체를 난도질하였다는 것이다.
- 매천야록(梅泉野錄)
문자 그대로 찢겨죽음...
이후 고종은
"미안하다 진짜 다 내 잘못이다 앞으로 안 그럴게."
라는 내용이 담긴 반성문을 쓴 후 배포하며 민심을 달래려고한다
(보면 경복궁 중건부터 시작해서 진짜 잘못한거 다 적어놨다...)
근데 잘 될리가...
- 임오군란에서 은근히 넘어가는 파트

임오군란 하면 보통
구식 군인들이 13개월 밀린 월급 받으러 갔는데 썩은 쌀에 겨랑 모래까지 섞여 있어서 폭발함
대충 여기까지만 알고 끝내는데,
사실 이 사건엔 은근히 잘 안 다뤄지는 파트가 하나 더 있음
바로 종로 시전상가 레이드였음
임오군란 당시 무장한 군인들과 하층민은 여러 패로 나뉘어 움직였고,
그중 한 무리가 포도청,의금부,민씨 세도가뿐 아니라 악덕 시전상가까지 차례로 레이드 때렸음
대충 이유는 시전상인들이 기존 강한 상권을 유지하며 생활필수품등을 독점 판매하여 물가를 올리고
하층민의 생활고를 위협했기 때문이었다고...

교과서에서는 금난전권 폐지이후 시전 상인들 좆밥된거 아님? 할텐데
예전처럼 시전이 법으로 난전을 닥치는 대로 패죽이는게 약해진거지
아직 상인으로써의 자본이나 이런건 건재했음
이러다 보니
대충 시전 상인은 하층민 입장에선
권력과 결탁한 특권상인이 우릴 착취하고 있네??
거기에 우리 같은 힘없는 난전은 쫓아내네?
근데 물가까지 올려대네?
대충 이렇게 보였을거임
이러니 군란 터졌을 때 사람들이 관청이랑 민씨만 조지자로 안 끝나고,
시전상가도 같이 때려부수자로 간거임
임오군란은 단순한 급료 체불 폭발이 아니었음
하급 군병 자체가 이미 서울 하층민과 겹쳤고,
이들은 난전,행상 같은 생계형 시장에서 먹고살았음
그런 상황에서 정부와 결탁한 상인들,
물가 부담, 군제 개편 불만이 한데 엉키면서
군란은 반민씨,반개화정책을 넘어
도시 하층민의 반특권 폭동 성격까지 띠게 된거라 보면 되겠다

임오군란은 단순한 군인 급료 분쟁이 아니라,
서울 하층민 사회에 오래 누적된 물가 불안과 권력과 손잡은 시장 상인들에 대한 분노가
구식 군인의 폭발을 계기로 한꺼번에 터진 사건으로 볼 수 있음.
구식 군인의 분노가 도화선이 된 건 맞지만,
그 불길이 커질 수 있었던 건
이미 서울 안에 물가 압박,
도시 빈민의 생활고,
특권상업과 국가 결탁에 대한 반감이 넓게 깔려 있었기 때문이라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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