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번째 이스라엘 정치 정성글이네요
이번에 알아볼 정당은 이스라엘 노동당이다.
한번쯤은 다들 들어봤을 정당이라 생각한다. 1968년 창당됀 전통적 좌파 정당으로 오랫동안 총리를 여럿 배출했지만 지금은 사라져버린 당이다.
사회민주주의, 민주사회주의 성향의 중도좌파 내지는 좌파 정당이며 경제쪽으로 유럽 사민주의 정당보다 더 왼쪽이라 평가받는 부분도 있었다.
대외적으로는 원래 대팔레스타인 강경파였지만 최근 기준으로는 양국 방안 지지하며 강경책 반대로 노선을 틀었다.
전신인 이스라엘 영토 노동자당이라는 정당으로, 줄여서 마파이라고 한다. 노동당과 성향은 별 차이 없고 영국령 팔레스타인 식민지 시절 1930년에 창당됀 정당이다.
여기서는 마파이=노동당으로 치고 총리 내각을 설명하겠다.
37년 집권이라는 것도 마파이 집권기 포함이다.
독립 후 1948년부터 53년까지 다비드 벤구리온 총리 1기 내각이였고 이때 벤구리온은 국방장관도 겸임했다. 집권 초기 친소련빨갱이무빙으로 소련의 라브렌티 베리야에게 무기도 지원받았지만 결국 나중에 친미로 갈아타게 된다.
벤구리온 퇴임 이후 모셰 사레트라는 아저씨가 53년부터 55년까지 재임하는데, 재임 중 아랍 국가들과 마찰을 겪게 되고 국방장관 핀하스 라본이 사퇴하기까지 하면서 결국 2년도 못채우고 사퇴런한다.
벤구리온 2기 내각이 55년부터 63년까지 이어졌고, 이 시기에 2차 중동 전쟁을 치르기도 했다.
벤구리온은 이스라엘 국부로 칭송받는 인물이고, 6.25때 한국에 물자 지원을 해주기도 한 인물이다.
그러나 동시에 지금까지 문제가 되는 하레디 징병 면제의 시초이면서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인종 청소 지시 의혹이 따라다니는 좀 뒤가 구린 면이 있다.
3대 총리 레비 에슈콜은 다사다난하게 겨우 총리가 됐다. 이유는 총리하고 싶던 벤구리온이 라피라는 신당을 창당하고 정적 메나헴 베긴과 연합하면서까지 어떻게든 에슈콜이 총리되는걸 막으려 했기 때문이였다. 물론 골다 메이어 등 노동당 중진들에게 쿠사리먹고 에슈콜 본인도 뻐겨서 벤구리온계 애꾸눈 모셰 다얀이 국방장관 하는 선에서 정리했다.
에슈콜은 재무장관 출신으로, 63년부터 69년까지 총리했다. 초기에는 경제 성장을 이끌다가 66년 긴축 정책으로 12%의 실업률을 찍으며 말아먹기도 했지만, 6일 전쟁에서 대승리를 거두고 서독과 외교관계를 맺으며 미국과 관계도 돈독히 하는, 여러 업적으로 이스라엘 내에서는 벤구리온 다음가는 국부로 취급받는다. 이스라엘의 핵 모호성을 정립했기도 했다. 그러나 전쟁광이라는 비판이 일부 존재하기도 했다.
레비 에슈콜시기인 68년에 노동당으로 바뀌어 이때부터 공식적으로 노동당 집권기이다.
총리직에서 내려오게된 이유는 본인이 갑자기 심장마비로 저세상으로 가버리는 바람에 그렇다.
4대 총리는 원조 철의 여인 골다 메이어로, 69년부터 74년까지 재임했다. 강성 사회주의자였고, 주소련대사, 노동부장관, 외무장관 등을 역임했다. 의외로 총리직을 원하진 않았어서 반쯤 떠밀려 총리한것에 가깝다. 72년 뮌헨올림픽 테‘’러 이후 모사드에게 테,;러리스트 배후에 대한 보복 명령을 내렸다. 4차 중동전 당시 방비에 소홀해 큰 타격을 입었고, 이는 국민적 분노를 일으켜 의회에서 특별 청문회까지 열릴 정도였다. 다행이 이후 총선에서 용케 승리하긴 했는데 본인이 한달만에 사임했다.
74년부터 77년까지 총참모장 출신 이츠하크 라빈 1기 내각으로, 그는 이전과 달리 아랍에 유화적 제스쳐를 취하며 이집트와 시나이 잠정 협정이라는 평화협정을 맺어 이스라엘 선박의 수에즈 통행권을 얻어냈으며, 인질 구출 작전 엔테베 작전을 성공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이시기 석유 파동으로 경기가 침체되고, 하레디 정당과 불신임 문제로 충돌했는데, 이유가 골때리는게 미국산 f-15기가 이스라엘에 인도됀게 안식일이여서 공군이 안식일 율법 어겼다고 지랄지랄해댄게 이유였다.
결국 1977년 리쿠드당의 메나헴 베긴에게 정권을 내주며 29년만에 정권교체가 이루어진다. 베긴은 노동당을 권위주의적이라 비판했고, 보수우파가 똘@똘 뭉쳐서 집권하자고 했는데 여기서는 똘@똘이메타가 성공해서 집권하게 되었다.
84년부터 86년까지 다시 노동당 집권기였는데, 이때는 리쿠드와 연정해서 집권했다. 노동당 시몬 페레스가 84-86년, 리쿠드당 이츠하크 샤미르가 86-88년 이렇게 번갈아 총리하기로 합의하고 연정했다. 1988년 총선에서 리쿠드가 또 이겼지만 다시 노동당과 연정을 했는데, 다만 리쿠드의 이츠하크 샤미르가 이번에는 4년 전부 총리직을 맡았다.
92년부터 95년까지 다시 라빈어게인으로 이츠하크 라빈 2기 내각이였는데, 94년 10월 팔레스타인의 아라파트와 오슬로 협정을 맺고, 요르단 국왕과 회담하며 95년 9월 제2차 오슬로 협정에서 팔레스타인 자치지역 점진적 확대에 합의했다. 물론 오슬로 협정이 팔레스타인에 전적으로 유리한건 아니였지만, 그래도 평화가 찾아오는 듯 했다.
95년 11월 이츠하크 라빈 총리가 당시 조선일보 소속 조갑제와 인터뷰한지 딱 34시간 뒤 극우파 유대인에게 암.살당하며 라빈 2기내각은 끝나게 된다. 이는 현직 선진국 정부수반이 암,살당한 마지막 사례로 기록되었다.
범인 이갈 아미르는 정통파 유대교도였고, 94년 테..러조직으로 규정되고 해산당한 극단주의 우파 정당 카흐와 연계된 인물이였다.
그는 종신형을 선고받고 아직도 복역중이다.
이외에도 앞서 말한 극단주의 정당 카흐 계열 테::러조직인 시카리가 노동당 의원들에게 협박 편지를 보내는 등 오슬로 협정에 대한 극우파 반발은 심했다.
95년 말부터 96년 6월까지 시몬 페레스 2차내각이 출범했다. 이시기에 레바논 공습을 갈기기도 했다. 그러다 96년 리쿠드로 정권이 교체되는데 당시 47세 최연소 총리였던 그가 누구냐면
아직 파릇파릇한 시절의 네타냐후였다. 네타냐후에 대해 재밌는 사실 하나 말해보자면 그는 원래 오슬로 협정 이행을 주장하는 리쿠드당 내 소장파 의원이였고 베긴에게 매국노라고 쌍욕도 먹었다. 근데 이시기부터 대팔레스타인 강경파로 선회해버린다.
99년부터 01년까지 에후드 바라크가 노동당 역사상 마지막 총리로 집권했다. 그의 집권기에 IT호황으로 이스라엘 경제는 성장했지만 불법자금 논란, 연정 정당간 갈등, 팔레스타인과 시리아와 협상하다 결렬, 거기에 2차 팔레스타인 인티파다 관련 위원회 조사로 궁지에 몰리며 01년 총리 직선제 선거에서 아리엘 샤론에게 패배하고 물러난다.
그리고 이시기부터 노동당이 개좆박기 시작한다.
노동당이 좆박은 원인은 여러가지가 있는데, 먼저 중도 정당의 등장이다. 00년대부터 10년대에 샤론 총리의 카디마, 야이르 라피드의 예쉬 아티드 등 중도 자유주의 성향의 정당에게 지지층을 내주게 되었고, 소련 붕괴 이후 이스라엘로 개떼러쉬한 러시아계 유대인들은 리쿠드 등 보수파 정당 투표 경향이 강했으며, 세파르딤과 미즈라힘 등 아랍계 유대인들도 노동당을 별로 지지하지 않았던 것도 원인이였다. 사실 이전부터 그런 경향이 강했긴 하다. 하마스에 의해 안보가 위협당하는 상황 속 노동당의 대팔레스타인 유화책은 별로 인기를 끌지 못했고, 카리스마가 있는 당을 이끌 인물이 나타나지도 않았던 데다, 정책적 의제를 제시할 역량도 잃어버렸다. 결론적으로 국민들에게 리쿠드의 대안세력으로 여겨지지 못했다.
그렇게 서서히 좆박기 시작한다.
2015년 총선거에서 그래도 120석중 19석을 획득하며 전성기 시절 폼 보여주는가 했다.
2019년 베니 간츠 전 총참모장의 중도 성향의 당 청백동맹에게 얼마 안남은 지지층도 대부분 흡수당해 6석으로 추락해버렸다.
2020년 총선에서 노동당은 다른 정당과 연합해 단독으로 3석이라는 최악의 결과를 맞이했다. 베니 간츠의 주선을 통해 의원 2명이 별도로 리쿠드 연정에 참여했다. 이후 주요 인사 탈당, 여론조사에서 봉쇄조항 미달하는 결과 나오는 악재만 겹쳤다.
그나마 21년 총선에서 비례 6% 득표해 7석으로 회광반조 하긴 했으나 22년 총선에서 3.7%로 4석을 얻어 겨우 살아남았다.
이스라엘은 120석 전부 비례에 3.25%가 봉쇄조항인 걸 감안하면 그냥 턱걸이로 봉쇄조항을 넘긴 것이다.
메레브 미칼리 대표가 이후 사퇴했고, 24년 5월 95% 득표율로 한 남자가 노동당 대표로 선출되는데
현 민주당 대표인 야이르 골란이다. 골란은 6월 30일 또다른 진보 원외정당 메레츠와 합당을 결의했고 7월 12일 이 둘은 민주당으로 신설 합당해 노동당은 56년 만에 사라져버린다.
다행이 이 민주당은 현재 여론조사에서 거의 대부분 8-10석이 나오며 두배로 의석을 불릴 것으로 예측된다.
민주당 성향은 노동당 성향과 별 차이가 당연하게도 없다.
메레츠 이야기를 잠깐 해보면, 노동당처럼 사민주의, 진보주의 정당이고 성평등, lgbt 권리를 지지하며 팔레스타인에 유화적으로 접근해 양국 방안을 내세웠다.
92년 처음 원내입성해 노동당 연정에서 오슬로 협정 체결에 기여했고, 고정 4-6석을 얻었지만 22년 총선에서 0.09% 차이로 봉쇄조항에 미달해 진보신당 엔딩이 나버렸다.
노동당과 성향, 지지층이 많이 겹쳐 둘이 합당을 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야이르 골란 대표 이야기를 좀 더 해보면, 개준스기처럼 하버드 출신이며, 이스라엘군 민방위사령관을 역임했다. 레바논 내전 등에 참전했으며 팔레스타인 인티파다도 진압한 전적이 있다.
스스로 좌파 시온주의자로 규정하며, 가자지구에서의 철수를 주장하고,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와 협력해야함을 강조한다. 부패, 서안지구 합병, 동성애 혐오와 싸우겠다고 이야기하고, 25년 5월 크네세트에서 네타냐후 총리를 겨냥해 “정상 국가라면 대규모 인구 이동에 관여하지 않고, 아기를 취미로 죽이지 않으며, 민간인 대상으로 전쟁을 하지도 않는다“고 강력히 비판했다.
다만 헤즈볼라 조지기 위해 레바논 남부를 점령해야 한다고도 발언하며 테,,러조직 상대로는 세게 나오기도 했다.
아, 그리고 현 이스라엘 대통령 이츠하크 헤르초그도 노동당 출신이다. 노동당 대표를 역임했고, 21년 당선되어 28년까지 재임할 예정이다. 당적 변경으로 지금은 민주당 소속이다.
이아저씨는 살짝 좀 구린 면이 있는데, 가자지구의 기아는 하마스의 조작이라 말하거나, 가자지구에 무고한 민간인은 없다 말하기도 했다. 유엔독립국제조사위원회는 헤르초그가 제노사.이드를 선동했다며 지적하기도 한다.
물론 야권쪽이라 네타냐후 내각과 사이가 안좋아 초강성 극우파 이타마르 벤 그비르 국가안보장관을 겨냥해 카하네주의(이스라엘 극우파 사상)자를 정부에서 제거해야 한다고 발언하는 등 냐후쪽이랑 가끔 싸운다.
노동당은 한때 이스라엘 정계 양대 축이였지만, 지금은 없어지고 그 후예들도 거진 쩌리취급받는게 현재이다.
여러모로 인상적인 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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