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를 마실 때 무슨 맥주를 마시면 좋을까?
당연히 최고는 내 입맛에 가장 잘 맞는 맥주이지만
그걸 알기 위해서는 결국 다양한 맥주를 마셔봐야함.
그리고 그런 과졍에서 몇몇 맥주들은 비록 최고의 맛을 가졌더라도, 확장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있고
반대로 몇몇 맥주들은 최고의 맛은 아닐지라도, 뛰어난 확장성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있음.
말이 복잡해졌는데 위의 트리 구조 사진을 예로 들자면
막상 맥주의 맛은 4번이 최고라 하더라도
4번 맥주를 마시고 맛있다고 느껴도 해당 스타일의 나머지 맥주가 맛있기는 어렵지만
2번 맥주가 맛있다면 그 아래의 모든 맥주들이 맛있을 확률이 높음.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내가 주로 추천하는 '근본 맥주'들의 힘이 나타나는데
근본 맥주는 역사적으로, 해당 스타일의 특성을 정립하는데 아주 큰 영향력을 끼친 맥주들을 의미함.
그렇기에 뒤에 애들이 그걸 발전시켜서 더욱 잘 만들었을 수는 있지만,
그 스타일의 정수와 원형의 모습은 근본 맥주에 담겨있다는 것임.
여튼 그렇기에 근본 맥주를 마시면 나는 돈이 아까울 일이 없다고 생각함.
맛없으면 -> 아 이 스타일은 나랑 좀 안 맞구나
맛있으면 -> 오히려 좋아
여튼 그렇기에 이번 글에서는 여러 스타일의 근본 맥주를 소개하는데
단순히 해당 스타일의 완벽한 예제보다는, 역사성을 좀 더 쳐주기로 함.
예를 들어 도펠복하면 맥덕들은 대부분 아잉거 셀레브레토르를 뽑겠지만
스타일을 처음 만든 파울라너 살바토르를 소개해주는 식.
딱히 그런게 없다면 좀 더 맛적으로 대표되는 녀석을 소개하고.
여튼 고고
아메리칸 라거 : 버드 라이트
미국식 라거가 100년 정도의 시간동안 상당히 변해왔는데
그 중 가장 아이코닉한 맥주를 뽑으라고 하면 이 녀석이라 생각함.
미국 라거 시장이 요구하는 모든 것을 갖추고 있는 맥주 그 자체임.
마시기 편하고, 도수도 낮고, 맛도 무맛에 가까움.
미국식 라거, 그리고 이후 발전된 페일 / 라이트 라거 스타일의 요지는
누구나 마실 수 있기 하기 위해 만들어짐.
예를 들어 100명 중 50명이 세계 최고의 맥주라고 하고, 나머지 50명은 못 먹는 맥주 보다는
100명중 95명이 평범하게 마실 수 있는 맥주가 지향하는 방향이라는거임.
그렇기 위해 쌀을 써서 맛을 깎아내고, 홉의 사용량도 줄여 쓴맛도 거의 없고
도수도 낮추고 향과 맛도 극소화해서 어느 상황에도 부담 없게 만들어냄.
간혹 한국 맥주가 유난히 밍밍하다~ 이런 얘기를 들을 수 있는데
한국이 유별난게 아니고 애초에 대기업 맥주의 방향성 자체가 그럼.
버드 라이트는 그런 의미에서는 고급스럽다라는 느낌의 '미제 맥주' 이미지를 깨트리고
동시에 대기업 라거 맥주가 무엇을 지향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맥주라고 생각함.
필스너 : 필스너 우르켈
저번에 쓴 라거 맥주 역사 얘기에서도 한 얘기인데
우리가 오늘날 생각하는 맥주의 이미지는 전부 이 맥주에서 기인함.
진짜 맥주 씬에 혁명을 일으킨 점으로는 GOAT급 맥주.
1842년 처음 체코의 플젠이라는 도시에서 양조되어 오늘날까지 만들어지고 있는데
홉이 풍부하게 들어간 라거 맥주라서 씁쓸하고, 허브 향도 강하면서 맛이 깔금하고 탄산이 풍부해 마시기 편함.
저먼 필스너, 이탈리안 필스너 등 바리에이션이 존재하는데
일단 요 녀석을 완벽히 숙지만 해두어도 그 두 스타일이 어떻게 다른지 충분히 알 수 있음.
헬레스 : 슈파텐 헬레스
근대 독일 맥주의 역사를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레전드급 양조장 슈파텐(Spaten).
아래에서 얘기하겠지만 바이에른 쪽에서 처음으로 맥아를 밝게 굽는 기술을 들고와서
메르첸이라는, 좀 더 밝은 색의 맥주를 창시하기도 함.
여튼 그 이후 필스너가 완벽한 황금빛 맥주를 시장에 선보이고 맥주씬에는 대격변이 일어나는데
바이에른 사람들은 좀 맥주에 자부심이 있었어서
'검은 맥주만이 진짜 맥주다' 라는 마인드를 장착하고 있었음.
근데 결국 시장이 요구하는건 밝은 필스너 타입의 맥주였고
흑맥주단은 멸망하고, 슈파텐 역시 황금빛 맥주를 개발하기에 이름.
1890년대에 출시된 슈파텐 뮈닉 헬은 바이에른의 황금빛 맥주로
뮌헨의 물이 플젠만큼 연하지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홉을 좀 빼서 만든 필스너임.
그래서 보리 고소한 맛이 쥰내 올라오고 홉의 향도 약해서 아주 마시기 편함.
괜히 맥덕들이 임스랑 사워 마시다가 헬레스로 회귀하는게 아닌게
이미 이 15도짜리 꿀물보다 단 술을 쳐먹던 맥덕들에게는
필스너 조차 너무 강하다고 느껴지기 때문.
헬레스 정도의 여백의 미가 있어야 편-안 하게 마실 수 있다.
예전에는 편의점에서 존나 보였는데 (상태가 그리 좋지 않았던건 차치하고서라도)
요즘은 안 보여서 참 아쉬움.
메르첸 : 슈파텐 옥토버페스트
메르첸은 앞서 얘기했듯 슈파텐 양조장이 개발한 스타일임.
메르첸은 '3월의 맥주' 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예전 바이에른에서는 4월-9월동안 맥주 양조가 금지되었기 때문.
그래서 3월에 맥주를 만들어놓고, 10월에 다시 맥주를 만들기 전까지 빈 자리를 채워주는 맥주였는데
절묘하게 옥토버페스트가 9월 말 부터 시작하는 바람에
슈파텐은 요 메르첸 맥주를 만들어서 옥토버페스트 맥주로 판매하기 시작함.
(9월 말에 양조가 가능해져도 그 때 만든 맥주가 완성되려면 옥토버페스트 기간이 지나버리니)
기존의 옥토버페스트용 메르첸은 시꺼먼 검은색을 띤 둔켈 스타일이 대부분이었는데
이 때 슈파텐의 오-너는 최신 맥아 굽기 기술을 연마하기 위해 영국에 다녀와서
기존의 맥주보다 훨씬 더 밝은, 호박색 정도의 맥주를 만들기에 이름.
그리고 이후 슈파텐 오너의 형제가 이 레서피를 개선한 우어메르첸(리얼 메르첸)을 출시하는데
이는 오늘날까지 슈파텐의 대표 맥주 중 하나로 전해져온다....
페스트비어 : 파울라너 페스트비어
여튼 그렇게 만들어진 메르첸은 존나 오랫동안 옥토버페스트 기간에 마셔지는데
막상 맥주 씬의 유행은 황금색 라거로 옮겨가게 됨.
처음에는 특별했던 메르첸 맥주도 필스너 맥주가 유행하면서 틀딱 맥주가 되어버린거임.
그래서 1970년 파울라너 양조장은 옥토버페스트 때 메르첸이 아닌, 황금색 맥주를 마시자! 라고 하고
색이 있는 맥아를 레서피에서 제거해서, 훨씬 더 깔끔한 맛을 지닌 축제용 맥주를 만듦.
이렇게 탄생한 페스트비어(축제맥주)는 일반 라거보다 도수는 높지만, 마시기는 편한 캐릭터를 지니고 있었고
이 맥주가 기존 틀딱 맥주였던 메르첸을 밀어내고, 오늘날 옥토버페스트에서는 이 페스트비어 스타일만 볼 수 있게 되었다.
원래는 잘 안보였는데 작년 코로나 때문인지 국내 수입이 되어서 막 뿌려져있던데
올해도 만나볼 수 있기를 기대해봄.
라우흐비어 : 슐렌케를라 메르첸
계속 맥주 역사를 얘기하면서 '맥아 밝게 굽기' 기술을 언급하는데
이 이유는 이게 진짜 맥주 맛에 존나 큰 영향을 끼쳤기 때문임.
예전에는 맥아를 밝게 굽지 못하고, 그냥 불로 조져버렸고
그 때 불을 피우던 땔감에 따라 맥아의 맛이 변하게 됨.
독일에서는 주로 너도밤나무(비치우드)를 태워서 맥아를 구웠는데
이 때문에 존나 베이컨 냄새 같은 훈연내가 맥주에 배게 됨.
이후 맥아 굽는 기술이 발전하며 이런 것은 사라지지만
고집스럽게 계속 맥아를 나무로 구워내는 전-통 양조장들이 독일 밤베르크에 있었고
이 중 오늘날까지 살아남은 슐렌케를라 양조장은 여전히 맥아를 직접 나무로 훈연해서 맥주를 만든다.
진짜 마셔보면 베이컨 냄새 존나 나는데
막상 맛은 깔끔하고 부드러워서 진짜 기묘한 맥주임.
정말 새로운 경험이니 맥주에 관심있으면 무적권 마셔보는걸 추천함.
비엔나 라거 : 사무엘 아담스 보스턴 라거
비엔나 라거는 이름 그대로 오스트리아 빈에서 개발된 스타일임.
오스트리아에 슈파텐의 오너의 친구 역시 양조장을 하고 있었는데
둘이 손잡고 영국에 맥아 굽는걸 보러 다녀왔기에
바이에른의 메르첸처럼, 오스트리아 빈에서도 좀 더 밝은색의 라거가 개발됨.
근데 슬프게도 비엔나 라거는 이후 바로 유행을 시작한 황금빛 맥주의 광풍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만다.
오늘날까지도 오스트리아 빈에 가면 비엔나 라거를 보기 존나 어렵다고 함.
하지만 역사의 장난일지, 당시 오스트리아 공국의 대빵이 멕시코령을 하사받아서(역사 잘 몰라서 틀릴 수 있음)
멕시코를 통치하려고 배타고 넘어가게 되는데 이 때 맥주마려울 때를 대비해서 비엔나 라거 양조사를 한명 데려감.
이 때문에 멕시코에서는 비엔나 라거가 발전하고, 이후 필스너의 유행이 남미까지 왔을 때 멕시코는 비엔나 라거 천국이었음.
결국 비엔나 라거는 요렇게 얼추 얼추 살아남게 되는데....
막상 크래프트 맥주 씬에서 비엔나 라거가 개 뜬 이유는 미국 보스턴의 양조장 보스턴 비어 컴퍼니가 만든 사무엘 아담스 보스턴 라거 때문이라 생각함.
1985년 처음 발매된 이 맥주는 무려 하버드 졸업생인 사업가 짐 코치가 개발한 맥주인데
호박색 외관에서 오는 맥아의 고소한 맛과 특유의 쌉쌀하면서 가벼운 맛이 일품인 라거 맥주로
오늘날 수많은 비엔나 라거의 방향성에 영감을 줬다고 생각함.
여담으로 짐 코치의 맥주 사업은 초대박이 나서 맥주계에 몇 없는 억만장자(빌리어네어) 중 한명이다.
그저... 부럽다...!
도펠복 : 파울라너 살바토르
도펠(2배), 복(도수가 높은 맥주)라는 이름 답게 도수가 존나 높은 라거 맥주인 도펠복은 파울라너 양조장의 전신이었던 수도원에서 개발됨.
옛날 영국을 제외한 유럽쪽에서 많은 맥주 양조는 수도승들에 이해 이루어졌는데
하루종일 기도만 드리고 맥주만 만들던 애들이라 그런지 맥주 하나는 기깔나게 만들었다고 함.
특히 수도승들이 맥주를 잘 만들었던 이유 중 하나는 수도승들은 금식 기간이 있었는데
이 때 음식은 먹으면 안 되지만 맥주는 얼추 물 취급 받아서 가능했다는 것.
당연히 금식 기간 때 배 존나 고플텐데 유일하게 칼로리를 섭취할 수 있는 맥주를 존나 맛있게 만드는건 당연한 이치일지도?
여튼 이 때문에 파울라너 수도원에서는 사순절 기간 마실 액체 빵과 같은 맥주를 만들었는데
지들이 마시고 남은걸 주변 마을의 거지나 동네 술집에 짬 때렸는데
이게 평이 존나 좋아서 마을 사람들이 수도원의 금식 기간만 기다렸다고 한다.
이후 이 맥주는 이들의 구세주(Savior = Salvator)라는 이름이 붙어 판매되었고
이에 영감을 얻은 다른 양조장들은 살바토르 맥주를 존경하는 의미에서
도펠복 맥주들은 이름 끝이 -ator로 끝나게 됨.
바이젠 : 슈나이더 탭7
바이젠은 독일식 밀맥주로, 많은 사람들이 신성시하는 맥주순수령의 민낯을 보여주는 스타일임.
맥주 순수령(Reinheitsgebot)의 경우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독일 통합 이전에는 뮌헨-바이에른 지역에만 유효하던 법이었는데
막상 이 바이에른을 대표하는 스타일이 밀이 들어가는 밀맥주다.
이게 어떻게 가능했냐면, 바이에른의 공작이 남들은 밀맥주 못 만들게 법 만들어놓고
'꼬우면 공작하던가 ㅋㅋ' 하고 지는 밀맥주 양조장을 소유해서 밀맥주를 팔음.
이 덕에 밀맥주 장사는 바이에른 공작의 꽤나 짭짤한 돈벌이었다고 한다.
여튼 모-던한 밀맥주의 역사를 얘기하면 슈나이더가 빠질 수 없는데
탭7 이새끼가 진짜 애매한 바이젠임.
왜냐하면 슈나이더의 대표 맥주인데도 이게 황금색이 아니다.
그래서 어느 맥주 사이트에서는 둔켈 바이젠으로 분류하기도 한데
또 사실 둔켈 바이젠이라고 하기에는 밝단 말이지....
여튼 애매~한 녀석인데 바이엔슈테판이 천년 역사의 맥주! 하면서 입 터는거에 비해
막상 바이젠의 근본은 슈나이더에 가깝다는 것만 알면 된다.
바이엔은 그냥 천년동안 맥주를 만들었던거고
슈나이더는 1872년 설립되었는데 당시 도시에서 가장 오래된 밀맥주 양조장을 인수해서 시작됨.
대표 바이젠은 탭 7의 경우 그래서인지, 틀내나는 어두운 외관을 띠고 있었는데
앞서 얘기했듯 이전에는 검은 맥주들이 진짜 맥주라고 불리었고
얘도 1872년 만들어진 레서피다보니 얘가 이상한게 아니고 사실 다른 황금빛 바이젠이 이상한거다.
바이젠복 : 슈나이더 탭6 아벤티누스
많은 맥덕들은 최고의 바이젠복으로 바이엔의 비투스를 뽑지만
최초의 바이젠복 역시 슈나이더가 양조했음.
아벤티누스는 1907년 개발된 레서피로 도수가 8도로 굉장히 높으며
그 덕에 바이젠 특유의 진~하고 묵직한 맛이 한 층 강화되었다.
다만 너무 과하고 좀 세서 그런가 보통 훨씬 화사하고 부드러운 비투스를 선호하는 듯 함.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
나중에 심심하면 더 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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