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희석식 소주 정도가 아닌 이상 술이 배치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 것은 당연함.
※배치(Batch)란? : 무언가를 한 번 만들때 나오는 결과물(1회분)을 배치라고 한다. 예를 들어 내가 오늘 친구들이 놀러와 라면을 끓여줬는데 냄비가 부족해 두 번에 나눠 끓였다면, 총 두 개의 배치의 라면을 생산한 것이다.
특히 이런 개념의 선배격인 위스키와 와인의 경우에는 이 때문에 구형/신형 바틀을 구분하거나, 좋은 빈티지와 나쁜 빈티지를 구별하기도 하는데
맥주의 경우 그보다 훨씬 빨리 만들어지고, 공산품이라는 이미지에 더욱 부합해서인지
'맥주도 배치마다 맛이 다른가요?' 와 같은 질문들을 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음.
아무래도 우리가 평소에 마시는 대중적인 맥주들의 경우 마실 때 마다 맛이 거의 일정하기에 그런거같은데
오늘은 맥주도 배치마다 맛이 달라지는지, 만약 그렇다면 왜 그런지에 대해 알아보자!
단도직입적으로 얘기해서
맥주도 배치마다 맛이 바뀌나요? 라는 질문에 대답은 YES! 임.
그러면 왜 맥주는 배치마다 맛이 변하는거고, 왜 평소에 우리는 그걸 느낄 수 없었던 것일까?
1.홉
맥주의 기본 4재료 중 하나인 홉.
기본적으로 작물이라서 어떻게 자랐는지를 굉장히 많이 타는 편이고
특히 와인의 포도, 커피의 커피콩처럼 자랄 때 품종 / 떼루아 빨도 심해서
매 년 똑같은 품종의 홉을 쓰더라도, 이 홉이 어떻게 어디에서 자랐냐에 따라 크게 맛이 달라질 수 있다..
또한 홉은 시간이 지날수록 향과 맛이 열화된다는 것도 큰 문제점인데
모 양조장은 이 때문에 홉을 처음 샀을 때 맥주에 10만큼 넣으면, 홉을 다 써갈때는 12~13 가까이 쓴다고 함.
(향이 떨어지니 그만큼 더 쓰는 것)
모든 양조장이 이 정도로 섬세하지는 않고, 사실 이렇다고 또 맛이 완벽히 따라가지는 못하기에
우선 재료부터 어쩔 수 없이 퀄리티가 차이가 나게 됨.
2.효모
양조사들이 열심히 노력해서 빚어내는건 결국 맥즙(Wort)이라고 하는, 보리달달물임.
이걸 맥주로 만들어주는 역할을 담당하는건 바로 효모인데
양조사 입장에서 해줄 수 있는건 효모를 맥즙에 털어넣고 기도하는거 밖에 없고
그 다음 일어날 일은 순전히 효모에게만 달렸다.
당연히 이런 효모를 최대한 내가 원하는대로 일할 수 있게 제어하는 방법들이 있기는 함.
대표적으로는 적절한 온도를 맞춰준다던가,
적절한 양의 효모를 넣어준다던가, 산소와 영양소를 추가적으로 넣어준다던가 등등...
다만 그럼에도 효모가 까다로운 것은 바로 효모를 재사용할 때가 있기 때문인데,
효모를 재사용하면 돈을 아주 크게 아낄 수 있기 때문에, 또 몇몇 장점들이 있기에
발효가 끝난 맥주에서 효모를 수확해서 다시 새로운 맥즙에 집어넣고 하는데
이 때 효모가 너무 스트레스 받아서 많이 죽어있을 수도 있고
양을 제대로 재지 못해서 효모를 부족하게 넣을 수도 있꼬
돌연변이가 일어나 다른 특성을 가질 수도 있고
등등.... 이런 부분들은 (셀카운팅을 할 수야 있겠지만) 눈에 드러나는 부분은 아니기에
역시 매번 맛을 똑같이 유지하기가 어려워진다.
3.맥주가 나에게 올 때 까지의 과정
이건 사실 맥주의 맛은 동일한데 내가 먹는 맥주의 맛이 다른 경우임.
아무리 맥주를 공장에서 똑같은 맛으로 만들어내봤자
당일 바로 브루펍에서 마시는거랑
한 반년동안 햇빛 아래에서 보관되었다가 팔리는 맥주의 맛은 분명 다르다.
위는 극단적인 예시를 든거지만
정말 사소한 차이에서도 맛의 변화가 생길 수 있는게 맥주이기에
이는 더욱 더 매번 마시는 맛을 다르게 만드는 요소고
맛을 중요시하는 곳들은 최대한 맥주를 본 상태 그대로 가져오기 위해서
냉장 창고를 통해 맥주를 이송하고, 샵에 들어오자마자 냉장고에 계속 보관하는 식으로 신경쓰기도 함.
또 개개인이 맥주를 사와서 집에 그냥 밖에 두는거랑
냉장고, 혹은 와인 셀러에 두는 것 역시 차이가 크기에 이런 부분에서도 맛이 달라질 수 있음.
4.진짜 그냥 다르게 만든다
규모가 작은 크래프트 맥주 양조장은 일부러 똑같은 이름의 맥주를 만들더라도 레서피를 변경하기도 함.
조금 더 단점을 보완하는 식으로 레서피를 수정하거나, 혹은 새로운 도전을 해보거나 하는 의미에서.
그렇기 때문에 '맥주 맛이 변했는데?' 싶은데 기분 탓이 아니고 진짜 그냥 다른 맥주를 만든 경우도 꽤 있음.
심지어 이건 대기업 맥주에서도 일어나기도 하는데
카스의 경우 2000년대 초에는 독일 맥주 붐 때문에 IBU가 20가까운 수준이었다고 함.
다만 2010년대에 들어서 다시 크게 낮아졌다고 한다.
5.그 외에 차이점들
양조 당일날 생기는 미묘한 차이점(모터의 속도 등)에 의해서도 미세한 차이가 날 수 있고
과일을 넣는 맥주라면 그 날 쓴 과일의 맛에 따라 차이가 날 수도 있음.
심지어 비가 많이 오는 날에는 물 맛에서도 차이가 날 수도 있음.
(커피 내려먹는 사람들은 알지도)
여튼 초단위 레벨로 변수가 존재하는게 맥주 만드는 과정이기에
사실 오히려 똑같은 맛을 유지하는게 더 신기한 수준이라고 생각함.
그러면 대기업들, 그리고 규모가 큰 크래프트 맥주 양조장들은 어떻게 배치마다 맛을 유지하는걸까?
돈, 더욱 더 많은 돈
<- 이게 큰 해답 중 하나라고 봄.
효모가 문제야? 응 그러면 우리 랩실 만들어서 매번 똑같은 상태로 배양해내면 돼~~~
홉이 문제야? 응 그러면 홉 농장에 컨택한다음 매번 수확시기마다 우리가 직접가서 향 맡고 가져오면 돼~~~
물이 문제야? 응 그러면 역삼투압 필터로 걍 물 초기화시키고 매번 똑같이 미네랄질하면 돼~~~
변수가 생길 수 있는 양조 과정은 전부 존나 비싼 자동화된 독일 장비를 사서 커버.
그 외에도 다양한 방법들이 있을 수 있는데
대기업 맥주 같은경우는 애초에 원료의 맛이 크게 드러나지 않는 맥주들이라 그런거에서 어느 정도 자유롭고
(쓰는 홉 종류가 딱 정해졌지 않는다고 함. 암거나 대충 쓴다고)
대신 나머지 부분들을 통제하는데에는 존나 엄격하다고 함.
QC팀이 아예 따로 있어서 여기서 철저히 관리를 한다고.
홉의 경우에도 예전 한 양조장의 인터뷰에서 들은 얘기인데
양조장에서 홉 구매력이 늘면, 새로운 퀘스트 열리듯 홉 브로커한테 연락이 온다고 함.
'야, 너네 최근에 우리 홉 많이 쓰더라? 보상으로 우리 홉 농장으로 초대할게!'
그래서 가면 요렇게 긴 테이블에 홉을 잔뜩 두는데
이게 랏(Lot) 별로 구별해놓은 홉들이라고 함. 쉽게 얘기하면 똑같은 시트라라고 해도 농장별로 구별해놓음.
그러면 많이 구매한 순으로 와서 이거를 하나씩 향을 맡아보고는 골라가는거임.
인터뷰어는 당연히 제일 좋은 향 나는걸 찾으려고 노력했는데
벨즈(Bell's)에서 온 양조사는 오히려 조금 떨어지는 향이 나는 홉을 가져갔다고 함.
그래서 왜 그런 홉을 가져갔냐고 물으니, 하는 얘기가
'우리가 찾는것은 더욱 더 풍부한 향이 나는 홉이 아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더욱 더 'xx홉' 같은 향이 나는 홉이다'
라고 했다고 함.
그러니까 이런 부분에서도 규모가 큰 곳은 최대한 차이를 줄이려고 한다는거지.
머 등등 다양한 이유가 존재하지만
여튼 맥주를 똑같은 맛으로 만들긴 참 어렵고
오히려 매번 달라지는 점을 어느 정도 고려를 해야한다.
그게 난 또 맥주의 매력이라고 봄.
2010년대 이후로는 맥주에도 빈티지/배치 개념을 도입해서
오히려 그런 달라지는 부분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양조장들도 많이 늘어났고.
하지만 달라지는게 퀄리티라는 축은 유지되고, 방향성의 차이점에서 달라지면 좋지만
퀄리티가 들쑥날쑥하게되면 거기선 문제가 생기는건데
머... 더 열심히 해야하는게 아닐까.
잘 몰겟음 난 맥주 안만드니.
여담으로 내가 양조사를 만날 때 마다 'Last batch was better'에 대해 어케 생각하냐고 물어보는데
적어도 내가 만난 양조사들은 대부분 야랄하지 말라고 한다.
이것도 나중에 좀 더 정보를 모아서 글으 쓰면 재미있지 않을까 싶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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