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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의 붉은 군대 장교단은 어쩌다 병신이 되었는가?

lemiel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1.06.19 17:20:01
조회 31893 추천 129 댓글 174

붉은 군대 장교단 1부: 정치적 선발과 강제모집

붉은 군대 장교단 2부: 열악한 생활여건과 그 원인

붉은 군대 장교단 3부: 장교 교육의 파탄 과정

붉은 군대 장교단 4부: 전간기 독일군과의 비교

붉은 군대 장교단 5부: 왜 그들은 붉은 군대 장교단을 망가뜨렸는가?






​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독일군과 전투를 벌이는 소련군을 묘사하는 헐리우드 영화 "에너미 앳 더 게이트"에서는 독일군의 진지를 향해 무모하게 돌격하는 소련군 병사들, 그리고 패주하는 소련군 병사들에게 도망가지 말고 공격하라며 기관총사격을 가하는 무자비한 소련군 장교의 모습이 묘사된다.


2차대전 당시 인해전술, 형벌부대, 사람 목숨을 파리처럼 여기고 우라(Ура!)라고 외치며 돌격하는 소련군의 이미지는 우리에게 굉장히 자연스럽다. 이러한 이미지 속에서의 소련군은 막대한 병력과 물량의 우위를 통해 정예로운 독일군을 압도함으로서 승리한다.


이러한 이미지에 상당 부분 소련군에 대한 몰이해와 편견이 존재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동시에, 이러한 편견이 어떤 역사적 근거 없이 형성된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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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전쟁에서 포로가 된 소련군 병사. 붉은 군대의 졸전은 1939년에 시작되었다.


소련군에 대한 편견은 1939년 핀란드를 침공한 겨울전쟁으로부터 시작되어, 1941년 독소전이 개전되면서 바르바로사 작전에서, 1942년 2차 하르코프 공방전, 1943년 3차 하르코프 공방전, 1943년 쿠르스크 전투 이후 쿠투조프, 르미얀체프 작전에서 소련군이 보여준 무수한 졸전과 어마어마한 물적, 인적 피해가 일어나는 과정들과 무관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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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소전 과정에서 소련군의 분기별 손실율, 1943년 3분기 이후에도 분기마다 병력의 30%수준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심지어 소련군이 그들이 자랑하는 "종심작전"의 성과를 드디어 보여주게 된 1944년부터 1945년의 기간에서 조차 소련군은 작전적, 전략적 성과를 얻는 과정에서 어마어마한 인적, 물적 손실을 입었다.


2차대전 초반에서 중반에 이르기까지, 소련군이 자랑하는 기동전을 통한 종심작전은 매우 드물게 성공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1941년부터 1943년까지 소련군의 작전술과 종심작전이 추구하는 기동전의 승리는 독일군이 감당할 수 없는 공세한계 이상까지 무리한 공세를 취한 이후 역습당하는 경우에 한정하여 성공했다.

이런 여건이 제공되지 않은 상황에서 소련군의 기동집단은 공격 과정에서 독일군의 능숙한 방어에 역으로 포위섬멸 당하는 재앙을 반복적으로 맞이했다. 1942년 르제프에서, 1942년과 1943년 하르코프에서 자신감 넘치게 공격하던 소련군은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1939년부터 1943년까지 소련군이 보여준 졸전들을 해석하게 해 줄 수 있을까?


군대는 사람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 인적자원이야말로 군대의 역량을 발휘하는 기반이다. 붉은 군대가 자랑하는 군사과학이나 종심작전, 작전술 이론체계들이 꽃이라면, 붉은 군대의 장교단은 그 꽃을 피울 근본이 되는 뿌리다.

꽃은 그 뿌리가 튼튼할 때나 피어오르고 결실을 맺을 수 있다. 뿌리가 썩어 있는데 꽃이 피어있다면, 꽃은 단지 허상에 불과하다.


결국 붉은 군대가 겨울전쟁과 동부전선에서 열악한 전투역량을 보여준 결과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화려한 "군사과학"의 꽃들, 작전술 이론의 정립이나 종심작전이 아니라, 보다 근본적인 항목들, 붉은 군대의 뿌리를 형성하는 기반, 붉은 군대의 장교단이 어떻게 양성되었는가에 대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2차대전 동안 붉은 군대 장교단은 소련 자신에게서, 그리고 그 적수들에게서, 심지어 동맹으로부터도 반복적으로 그 질적 수준과 역량의 문제점을 지적받았다. 꽃의 화려함을 자랑하는 붉은 군대의 뿌리는 왜 썩어 있었을까?



붉은 군대 장교단의 낮은 질적 수준


소련 군사사 전문가 David Glantz는 그의 "American Perspectives on Eastern Front Operations in World War II"에서 소련군에 대한 미국의 평가 중 하나로 "소련군의 전략과 대규모 작전 지도력은 뛰어나지만 군단 이하 지휘관의 지도력은 떨어진다."를 소개한다.

그는 이 판단 또는 평가(Judgments)가 편견인가에 대한 판단을 유보한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이 평가는 신화(myth)와 사실(reality) 사이 어딘가에 존재한다. 현재로서 객관적인 연구를 위해서는 소련의 자료 연구가 추가로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사실 붉은 군대 장교단의 낮은 질적 수준은 다양한 이들에 의해서 지적된다.


Glantz가 1986년 작성한 "Soviet defensive tactics at Kursk, July 1943, CSI report"에서는 독소전 개전 이후 소련군이 경험이 부족한 장교들이 완편된 소총사단을 지휘통제하기 어렵다고 가정하였기에, 보다 작은 편제인 소총여단을 구성했다고 설명한다.

1941년 바르바로사 작전으로 인한 심각한 손실 이후, 소련군은 소총군단 본부를 구성할 참모장교와 지휘관의 부족으로 인해 독소전 초기에 야전군이 직접 소총사단을 통제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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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군대 야포의 직사 모습


2차대전 당시 소련 포병은 동시기 추축, 연합국 포병과 달리 포병의 직사운용을 매우 선호했다. 이는 무전기의 부족이나 포대경의 기술적 문제도 원인이었지만, 소련 포병장교의 숙련도가 낮아 가시거리 밖에서의 사격통제가 쉽지 않기 때문이기도 했다. 소련 포병이 포신의 수 면에서 독일군을 대체로 압도하는 경우에도 쉽사리 화력우세를 달성하지 못했다. 그 원인 중 하나는 독일군에 비해 포병장교의 숙련도가 부족하고 지휘통제 능력이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붉은 군대는 지상에서, 하늘에서, 해상에서 1939년부터 1943년까지, 정확히는 종전 시점까지 부대의 운용과 작전면에서 대체로 많은 문제점을 반복해서 보여주었다.

공군은 방대한 규모의 전력 대비 작전통제능력이 떨어졌으며, 공세적으로 작전할 능력이 부족했다. 때문에 독일 공군(Luftwaffe)는 수적 열세에서도 소련공군에 주도권을 넘겨주지 않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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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대전 당시 발트해에서 러시아 해군의 기뢰부설작전


해군 역시 마찬가지로 1차 대전에 비해 훨씬 더 취약한 적을 상대로 제대로 활약하지 못했다.

제정러시아 해군은 발트해에서 독일 킬 군항 앞바다까지 진출하여 기뢰를 설치할 정도로 과감하게 행동했지만 2차대전에서 소련 해군은 다수의 잠수함을 가지고서도 큰 역할을 하지 못했다.


이러한 대부분의 사례의 원인들에는 공통적으로 장교단의 역량부족이 포함된다.


붉은 군대 장교단의 질적 문제가 무엇 때문인가에 대한 견해는 다를지 몰라도, 러시아 내 연구자들은 대체로 붉은 군대가 2차대전 초중반에 장교단의 역량 부족 문제를 노출했다는 것에 대해서 인정하고 있다.


소련 해체 이후 제정러시아 장교단을 재평가하는 전통주의적 접근자들은 먼저 대숙청을 포함해 제정러시아 장교단을 꾸준히 제거해온 것을 원인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반대로, 수정주의적으로 접근하는 연구자들은 제정러시아 시기부터 이어져온 낮은 교육수준에 초점을 잡기도 한다. 소련군의 취약점은 전근대적인 제정러시아의 잘못된 유산을 상속한 결과라는 것이다.


그 외에도 총력전 하에서 대규모 병력증강이 발생하면서 자연스럽게 발생한 것이라 해석할 수도 있다. 하지만 2차대전은 참전한 대부분의 국가 입장에서 총력전이었다. 독일군 역시 대규모 동원을 통해 단기간에 장교단을 육성해야 했으므로, 소련에 비해서 딱히 유리할 부분이 있다고 하기 어렵다.


최근 전간기 붉은 군대 장교단의 선발과 양성과정에 대한 자료들을 조사해본 결과 흥미로운 내용들을 찾아볼 수 있었다. 전간기 소련은 마르크스주의에 입각해 군사 문제를 정치적으로 해석하고 다루는 정책을 실시하고 유지했다. 그 대상 중 하나는 붉은 군대 장교단이었다.


이 흥미로운 정책은, 소련 공산당이 소련의 경제에 현대 러시아 연방까지 남아있는 영구적 손상을 입힌 공산주의 경제실험과 마찬가지로, 붉은 군대 장교단에게 심각하고, 영구적인 손상을 남겼다. 이는 1937~1938년 자행된 대숙청보다도 훨씬 더 강력한 영향을 미쳤다.


전간기 붉은 군대 장교단의 선발, 육성, 생활여건을 러시아 연구자들의 논문들을 통해 확인해 봄으로서 소련 공산당이 실시한 정치적 실험이 붉은 군대 장교단의 질적 악화에 어떻게 기여했는지를 이해하고, 소련군에 대한 편견의 가장 큰 원인일 가능성을 확인해보고자 한다.



1. 붉은 군대 장교단의 정치적 선발과 강제모집


러시아 군사과학대학 교수 V.I 카를라모프는 2011년 논문 "전간기 붉은군대 장교단"에서, 붉은 군대 장교단의 선발과 교육과정을 소개하였다. 그의 논문을 통해서 전간기 소련 지도부가 붉은 군대 장교단의 선발과정에서 정치적 목적으로 어떤 오판을 저질렀는지 알 수 있다. 그의 논문 내용을 중심으로 해서 붉은 군대 장교단 선발의 문제점을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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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 소련의 초등학교인 초등 쉬꼴라의 사진, 소련이 보통교육 인프라를 강화한건 사실이지만, 니콜라이2세 시기의 제정러시아에서도 교육인프라 발전은 상당히 이루어졌다.


우리가 제정러시아와 소련 초기 낮은 교육수준 때문에 장교단의 질적 문제가 발생했다는 가설을 수립하는 것은 간단하다. 붉은 군대에 호의적인 수정주의적 관점에서는 이런 문제를 소련 자체의 문제라기 보다 전근대적인 제정러시아에 상속받은 결과로 소련은 오히려 이를 해결해나갔다고까지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선입관과 달리 20세기 초 제정러시아 장교는 사관생도로 사관학교에 입학하는 과정에서 중등교육을 수료하거나, 대학입학에 요구되는 김나지움(제정러시아의 중등교육기관) 수준의 시험에 합격해야만 했다. 즉, 제정러시아군의 사관생도가 사관학교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중등교육을 수료할 것이 요구되었다. 이는 제정러시아로부터 이어온 낮은 교육수준 때문에 소련 군 장교단의 교육수준이 낮았다는 일반적인 견해가 착각임을 보여준다.


1860년대까지 제정러시아 장교단의 1/3은 사관생도가 되어 사관학교를 수료하여 임관하였으나, 2/3은 자원병(Вольноопределя́ющийся, 병역에 자원한 이들. 대신 병역기간이 짧아진다.)이나 간단한 시험을 통과한 부사관에서 임용되었다. 후자는 제대로된 중등교육이 필요했으므로 크림전쟁 이후 생도학교(юнкерскими училищами)에서 1년간의 교육을 받아 부족한 보통교육을 받은 후 군사 관련 고급과정을 이수했다.


1911년이 되면, 모든 장교는 사관학교를 통해 장교로 임관하게 되었다. 즉 1913년 시점에는 모든 제정러시아 장교단은 중등교육을 수료하고 사관학교에 입학하여 임관하는 절차를 거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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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러시아 폴로츠크 유년생도학교 생도들, 유년생도학교는 귀족자제보다는 전현직 장교나 전사한 장교의 아들들이 많았다. 이들은 다른 민간인 생도보다 가난했지만 학비를 국가가 내주어 교육받을 수 있고 군생활에 익숙했다. 이들은 사관학교 입학에 필요한 중등교육과 함께 군사교육을 받았다.


러시아의 한국사 전문가이자, 제정러시아 장교단에 정통한 역사가인 S.V 볼코프에 의하면, 1903년 기준으로 20%에 달하는 전통있는 사관학교들의 경우 47.79%의 생도가 세습귀족의 자녀들로 구성된 반면, 80%에 달하는 나머지 사관학교의 경우 세습귀족의 자녀 비중은 26.5%에 불과했다. 1906년에는 80%에 달하는 나머지 사관학교에서 상인, 중산층, 농민의 비중은 32.24%으로 증가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제정러시아 장교단에 유입되는 생도의 귀족계급으로서의 사회적 특징들은 희석되었다. 특히 데니킨과 알렉셰예브 같은 20세기 제정러시아 장군들은 부친이 농노 출신으로 군복무 과정에서 임관하여 장교가 되고 그 자녀로서 사관생도가 되어 장교가 된 이들로서, 19세기부터 제정러시아에서 장교단이 귀족계급의 상징이라기 보다는 사회 변화와 신분상승의 장에 점차 가까워졌다는 것을 보여준다.


제정러시아 장교단은 소련의 교육인프라 발전이 이루어지기 이전에 이미 중등교육이 수료된 이들로 생도들을 구성했다. 또한 선발과정에서 계급적 제한을 철폐하여 19-20세기의 경제적, 사회적 성장을 통해 확대된 인적자원들을 제약 없이 활용하고 있었다.(유대인 제외)


그러나 1917년 10월 혁명이 발발하자, 상황이 바뀌었다. 장교단의 인적자원을 관리하는데 있어서 정치적 요인이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초기 붉은 군대 장교단의 가장 큰 특징은 후보생에게 요구되는 교육수준을 급격하게 떨어뜨렸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1918년 붉은 군대의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한 후보생들은 "유창하게 읽고, 읽은 내용의 의미를 왜곡없이 표현하고, 글을 쓸 줄 알고, 4칙연산에 대한 지식을 가질 것"만을 요구받았다. 이는 초등교육을 완전히 수료하지 않더라도 달성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낮은 보통교육 수준의 사관생도 모집은 내전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때문에 1925년부터 1930년까지 사관생도의 77~86%가 7년제 일반교육학교(중등 쉬꼴라로 중고등학교)를 졸업하지 않았으며, 이 기간동안 7년 이상의 교육을 받은 사관생도의 수는 2.6%를 넘지 못했다.


게다가 아예 교육을 받지 못한 사관생도 역시 사관학교에 계속 받아들여졌으며, 이 비중은 1927년부터 1930년까지 감소하지 않고 증가하였다. 예를 들어 보병학교에서는 아예 교육을 받지 않은 생도가 3.3%에서 15.5%로 포병학교에서는 1%에서 11.4%로, 기병학교에서는 5.2%에서 21.9%로 증가하였다.


붉은 군대 사관학교의 교육에 대한 조사보고서 중 하나에서는 "사관 학교내에서의 심각한 문맹 문제"가 강조되었다. 연대장급 이상 지휘관을 재교육하거나 참모를 양성하는 고급군사학교들의 상황은 가장 나은 편이었지만, 마찬가지로 많은 학생들이 단지 초등교육만을 받았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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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모스크바 크렘린 기관총학교 생도들, 문맹이더라도 장교가 될 수 있었다. 당신이 노동자거나 노동자의 자녀라면 말이다.


이러한 열악한 상황의 원인은 붉은 군대가 중등교육을 사관학교에 입학할 수 있는 중요한 조건으로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1917년 이래, 장교단을 선발하는데 있어서 "계급적 원칙"이 중시되었다. 예를 들어 1928/1929 학사년도에서 붉은군대의 군사훈련총국은 사관학교를 "조직화"할 것을 요구하여 프롤레탈리아 계층의 비중을 36.7%에서 50%로 늘렸다.


"프롤레탈리아 출신"이거나 전직 노동자의 자녀들은 교육의 유무에 무관하게 선발과정에서 선호되었다. 적군에 의한 사관생도 충원과정에 대한 보고서들에서 다양한 "계층"을 조합하면서 동시에 생도들이 필요한 보통교육수준을 달성하는 것이 어렵다고 지적하는 내용이 반복해서 나타나는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사관생도가 "노동자 출신"인가 여부는 얼마나 중요했을까? 만약 당신이 전간기 붉은 군대 사관생도일 때, 당신이 문맹이라는 것을 숨긴 것 때문에 처벌받는 일은 위의 내용을 볼 때 드물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당신이 "노동자 출신"이라고 거짓 작성한 경우, 당신은 처형 당할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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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극동 한인의 지도자이자 저명한 독립운동가 최재형


이병조의 "기록보존소 자료를 통해 본 소비에트 시기 최초의 한인 해군장교의 죽음과 스탈린 탄압의 비극"에 의하면 저명한 독립운동가인 최재형의 아들 최선학(최 파벨 페트로비치)은 1924년 레닌그라드의 해군사관학교에 입학한다.


사관하교 졸업 후 해군장교로 임관한 그는 군생활을 나름 잘 진행했다. 대위에 해당하는 포대장까지 진급한 최파벨은 1935년 봄 NKVD(내무인민위원회)에 의해 체포되어 2년간 심문을 받고 공산당 당원에서 제명되었다. 죄명은 사회적 출신성분을 숨긴 죄였다. 그는 장교직위에서 해임되었으며, 한인 대지주(독립운동가 최재형)의 아들이었고, 빨치산에 참여하였으므로 정치적 신뢰를 할 수 없다고 평가되었다.


최 파벨은 친구들을 통해 해군에 복직려고 노력하였다. 하지만 그를 기다린건 반역죄였다.

그는 1938년 6월 국영해운회사에서 일하던 도중 체포되었다. 죄명은 소련 형법 58조 1A항 국가반역죄였다. 그는 1938년 10월 17일 처형되었다. 장교가 10년 전에 출신성분을 속이고 입대했다고 10년 넘게 복무한 군에서 해임되어야 했고, 결국 국가반역죄로 처형 당하기까지 할 만큼 출신성분이 중요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전간기 붉은 군대의 장교단이 낮은 보통교육 수준으로 기본적인 자질이 떨어졌던 것은 제정러시아로부터 물려받은 낮은 교육수준의 문제가 아니었다. 제정러시아 시기 장교단은 심지어 1차대전시기 긴급히 양성된 준사관(Уорент-офицер)들조차도 민간에서 중등교육을 받은 이들이 주역이었다.


전간기 붉은 군대 장교단이 선발되는 인적자원들의 교육수준을 낮춘 것은 소련 정치지도부였다. 정치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계층에게서 장교를 선발하겠다는 목표 아래, 선발기준을 낮추고, 일부러 교육수준이 낮은 이들을 생도로 선발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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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백내전의 볼셰비키측 포스터, 장교, 은행가, 성직자, 부농 4집단을 인민의 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비프톨레리아트 계층은 내전 이후 시민권의 제한과 차별을 당했다. 이는 그들의 자녀와 가족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전간기에 소련 당국이 다수의 비 프톨레리아트 계층(일명 이끼, Лишенец)에서 투표권을 박탈하고 징병대상에서도 제외했다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1926년 소련 인구조사 결과 147,027,915명의 총 인구 중 투표권이 박탈된 인원은 1,040,894명으로 그들 중 43.3%가 상인과 무역업자들이었고, 15.2%의 성직자, 13.8%의 불로소득자, 9%의 구 제정러시아 장교 및 기타계급, 6.4%의 상기 해당인들의 자녀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상대적으로 자녀들이 교육받았을 가능성이 높은 계층들과 그 자녀를 장교단 선발대상에서 배제하거나 불이익을 주는 것은 자연스럽게 기대할 수 있는 소련의 보통교육수준이 높은 인적자원에서 장교단을 분리시켜 전간기 붉은 군대 장교단의 낮은 보통교육 문제를 심화시켰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장교단은 해당 사회의 엘리트 집단의 일부를 형성한다. 이들은 국가의 방위를 위해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고도의 스트레스 상황에서 의사결정할 수 있어야 하므로, 사회구성원 중 우수한 이들을 대상으로 선발되어야 한다.

그러나 소련 정치지도부는 이 원칙을 파괴하고, 장교단의 기반인 인적자원의 자질을 고의로 떨어뜨렸다.


그렇다면, 낮은 선발기준과 우대정책의 혜택을 받게 된 "프롤레탈리아 출신"의 젊은이들은 장교단의 문을 활짝 열어준 소련 공산당의 결정에 환호를 보냈을까?



붉은 군대 사관생도의 강제모집


A.A 스미르노프는 대숙청이 붉은 군대의 역량에 크게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역사가 중의 한 명이다. 하지만, 그는 다른 붉은 군대와 스탈린에 호의적인 수정주의자들과 달리, 대숙청의 영향이 과장되었다거나 오히려 긍정적이라는 이야기를 하는게 아니다. 그는 대숙청 이전에 이미 붉은 군대의 역량이 매우 낮은 수준이었던게 핵심적인 문제라고 지적한다. 그는 숙청 이전이나 이후 모두 붉은 군대의 훈련수준이 낮았다고 주장한다.


스미르노프의 2014년 논문 "1920~1930년대 붉은 군대 장교단의 강제징집과 지휘체계"에서는 위에서 설명한 정치적 의도에 의한 장교단 구성이 처참하게 더 큰 실패로 이어지는 과정들을 설명한다.


먼저 제정러시아 장교단은 어떻게 생도가 되었는지 살펴보자.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까지, 제정러시아에서 장교는 충분히 선망받는 직업은 아니었다. 러시아 민간경제의 발전과정에서 민간직업과 경쟁해야 했기 때문에 장교는 지식인층에서 매력적인 직업으로 선호되지는 않았다.

기병과 포병, 해군장교의 경우에는 비교적 직업군인으로서 장교가 되고자 하는 동기부여가 된 생도들이 사관학교에 입학했다. 때문에 기병학교나 포병학교로 입학하는 것은 경쟁률이 높았으며, 학업성적이 우수해야 입학이 가능했다.


반대로 보병장교는 의무적인 군복무를 장교로 하기 위한 경우이거나, 완전한 중등교육이나 그 이상의 민간 고등교육을 받기 어려운 이들이 선택했다. 생도학교(Юнкерские училища)는 국가에서 모든 학비를 지원했다. 중등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이들이 여기에 입학했다.


제정러시아군에서 복무한 표트르 아베리야노프 중장(1867-1937)은 1908-1910년에 직업으로서 매력을 느껴서 군복무를 택한 사람은 소수라고 회고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의 장교들은 자신이 선택하여 결정을 내렸다. 그들의 의욕은 직업장교에 비해서는 높지 않았으나, 결국 그들은 군사지식을 공부하고, 장교로서의 의무를 이행하겠다고 결심했다. 아베리야노프의 회고록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매우 소수의 사람들만이 직업으로서의 장교를 선택했고, 대부분은 의무복무를 위해서 장교가 되었다. 의무복무를 위해 장교가 된 사람들은 직업군인으로서의 장교만큼이나 군대에서 유용했다. 이런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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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군 원수 보리스 샤포슈니코프, 제정러시아군 대령까지 진급했던 그는 놀랍게도 전간기에 숙청대상이 되지 않고 살아남았다. 정치에 거리를 두었고, 출신성분이 노동자 가족이었기 때문에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사관학교를 졸업할 때 학업성취에 따라서 더 우수한 생도가 인기있는 부대에 우선하여 배치되었다. 생도들은 장교가 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열심히 공부했다. 의무복무자를 대표하는 인물로서 미래의 적군 총참모장이 될 샤포슈니코프는 어린 시절부터 군복무에 대한 열정이 없었지만, 1903년 모스크바 사관학교를 1등으로 졸업한 후 치열한 경쟁에도 불구하고 1907년 니콜라에프 참모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다.


그러나, 1920~30년대 소련에서 붉은 군대의 장교단은 군복무를 원하는 사람도 아니었고, 다른 직업을 선택했을 사람들이었다. 소련 당국은 이들이 전문 군인이 되도록 강요했다.


일반적인 국가에서 평화시에는 매우 드문 이러한 관행은 볼셰비키 정부가 당시 볼셰비키의 정책에 충성하는 군대를 갖기를 바라는 소망에서 비롯되었다. 이들은 마르크스주의 사회주의를 러시아와 그리고 전세계에서 보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되었다. 볼셰비키 정부는 사회주의에 호의적이라고 여겨지는 사회계층의 대표자, 즉 노동자들을 최우선으로 하고, 최악의 경우는 가난한 농민들에서 붉은군대의 장교단을 구성하고자 했다.


따라서 이 계급에 속하지 않는 반동분자나 기타 사람들은 그들이 사관학교에 들어가고자 하는 명확한 직업적 의욕을 가졌다 하더라도 의도적으로 입학에서 제외되었고, 노동자들은 의도적으로 사관학교에 끌려왔다.


그러나 이 노동자들은 장교가 되고 싶어하지 않았다!


노동자들이 장교가 되기 싫어한 가장 큰 이유는 1920년대 적군 장교단의 급여 부족이었다. 1927년 5월부터 1929년 6월까지 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을 위해 작성된 혁명군사위원회의 육군 및 해군의 현황 보고서에서 급여부족은 유일한 원인으로 드러났다. 젊고 숙련된 노동자는 그들의 전문성을 잃는 것을 원하지 않았으며 현재의 상대적으로 괜찮은 임금을 사관생도의 보다 적은 임금으로 바꾸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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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기계제작 공장의 소련 노동자들


이런 문제는 1930년대 초에도 지속되었다. 젊은 노동자들 가운데서의 장교 모집은 1930년대 초 적군 군사훈련총국 총감 A.I 토도르스키에 의하면 매우 불만족스러우며 성공적이지 못했다. 레닌그라드 군관구의 참모장 S.P 우리츠키는 젊은 노동자 중 가장 우수한 이들은 특히 보병학교에 가지 않는다고 언급하였다.


따라서, 이미 1920년대 중반에 붉은 군대의 위원회는 노동자들과 다른 이들(ex: 콤소몰이나 공산당에 등록된 농민들)을 "사회/정당 자료"를 기반으로 강제로 차출해야 했다. 전시에서나 사용되는 것이 자연스러웠던 이런 방법은 장교를 자신의 직업으로 삼아야 할 사람들의 질적 선별에는 전혀 적합하지 않았다.

1924년 11월 26일 소련 혁명군사위원회는 당과 콤소몰(청년공산주의자동맹)의 지휘하에 "자발적인 사관학교 입학"을 위한 위원회를 설립하기로 결정하고 "자발적 지원 원칙"에 따라 인원을 사관학교에 보낼것을 12월 1일에 요구했다. 그러나 자원자는 늘어나지 않았고, 많은 사람들이 강제로 장교가 되도록 파견되었다.


이러한 문제는 1930년대 중반이 되어서야 해소되었다.

1935~1936년이 되어서 이러한 "계급적 선별"을 하지 않고 학생들은 폭넓게 받아들이자 사관생도가 되기를 희망하는 인원이 대폭 증가했다. 1935년 말 장교계급의 제도입과 새로운 제복, 그리고 장교 임금의 증가는 이러한 경향에 큰 역할을 했다. 이는 심지어 노동자들조차도 장교가 되도록 유혹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1936년은 붉은 군대가 이후 전쟁에 대비하기에 너무 늦은 시기였다.

전간기 붉은 군대 장교단을 구성한 이들 중 비교적 교육수준이 높은 이들일수록 강제로 징집되어 자신의 의향과 무관하게 장교가 되었다. 그들은 민간분야에서 더 좋은 직장을 얻을 기회가 많았기 때문에 장교가 되고 싶지 않았다.

반대로 자발적으로 장교단에 지원한 이들은 교육수준이 낮고 자질이 떨어졌다. 민간분야에서 그들은 좋은 직장을 구할 가능성이 거의 없어서 장교에 지원했다.


강제로 동원된 생도들에게서 직업적 동기나 의욕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보다 충성스러우리라 기대되었던 젊은 노동자들은 그들에게 장교단이 될 기회를 부여한 붉은 군대에 감사하는게 아니라, 가능한한 교육과정에서 이탈할 방법을 찾거나, 무기력에 빠짐으로서 소극적으로 저항했다. 당연히 장교 교육과정은 파탄나기 일쑤였다.


단순히 교육수준이 낮은 인적자원만 문제가 있는게 아니었다. 직업적 의욕이 없는 사람들을 사관학교에 강제로 밀어넣는다고 해서, 훌륭한 장교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전간기 붉은 군대의 낮은 훈련수준과 졸렬한 전투역량의 원인에는 장교가 되고 싶지 않은데 강제로 끌려온 이들의 낮은 직업적 의욕과 의지의 결여가 있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왜 젊은 "프롤레탈리아"들은 장교가 되는 기회를 원하지 않았을까?


위에서 이미 임금 문제가 가장 큰 원인이라고 설명했지만, 이는 실상을 이해하기에 충분하지 않은 표현이다. 붉은 군대 장교단이 뿌리부터 썩어가게 만든 원인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의 열악한 생활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출처: 군사 갤러리 [원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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