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중단편소설] 국정원장의 항변 28

운영자 2019.03.06 12:03:03
조회 117 추천 0 댓글 0
국정원장의 항변


28


국정원장 이병호


이병호 국정원장은 김종필 중앙정보부장부터 시작해서 34명에 이르는 역대 정보기관장들과는 성격이 다른 비정치적 인물이었다. 그는 군에서 영어교관으로 있다가 중앙정보부로 차출된 이후 40년을 해외분야 정보전문가로 외길을 걸어왔다. 오십대 정년퇴직을 할 당시 그가 가진 재산은 집 한 채와 퇴직금이 전부였다. 그 퇴직금조차 사기를 당한 후 변호사인 나를 찾아와 사정했었다. 해외공관에서 많이 지낸 그는 미국의 CIA나 이스라엘의 모사드등 국제적인 정보기관에 대해 연구를 하고 ‘기드온의 스파이’등의 번역서를 낸 학구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그는 기형아로 태어난 대한민국 정보기관이 어떻게 변해야 하는 지 정년퇴직을 후에도 18년 동안 많은 컬럼과 글을 통해 발표해 왔다. 그는 정보기관의 정치관여를 누구보다 혐오했다. 철새처럼 권력에 따라 날아온 정보기관장들이 조직을 정치로 오염시키는 걸 오랜 세월 목격했다. 그가 대한민국의 정보기관장이 됐었다는 사실 자체가 미스테리였다. 그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이런 말을 했다.

“국정원의 정치개입은 정보기관을 망치는 길입니다. 국정원이 망가지면 국가안보가 흔들립니다.”

그가 국정원장 취임시 국정원 요원들에게 이렇게 당부했다.

“국정원은 권력기관 자리에서 내려와야 합니다. 선진국 어느 나라 정보기관도 정치와 연계된 권력기관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우리도 그래야 합니다.”

2016년 11월 29일 그는 정보위원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국정원 전 직원은 정치관여가 국정원이 할 일이 아님을 잘 알고 있고 이를 경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다짐은 국정원 혼자의 의지만으로 실현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국정원을 정치에 끌어들이려는 시도가 더 이상 없어야 할 것입니다.”

그는 2017년 1월 1일 신년사에서 직원들에게 이렇게 강조했다.

“앞으로 있을 대선정국은 과거에도 그랬듯이, 국정원을 뒤흔드는 시험대가 될 수 있습니다. 후보 진영별로 전직 직원들이 나뉘어 지고 각 진영에서 국정원 내부정보를 수집해서 정국에 이용하려는 시도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 시도에 우리는 모두 현명하게 대응해야 합니다. 국정원은 정치에 개입하지 않으며 동시에 우리를 정치에 끌어들이려는 유혹에 절대 빠지지 않겠다는 직원으로서의 강한 프로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그의 일관성 있는 진술을 종합하면 진정성이 있어 보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그에게 좌파세력을 제압해 달라고 명령했다. 그는 국정원이 싸워야 할 대상은 북한이고 간첩이 국정원에서 검거해야할 좌파라고 확신했다. 그는 대한민국에는 그동안 반독재 투쟁을 통해 성장한 민주세력의 존재를 인정하고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아이 때부터 대통령의 딸로 살고 이십대 시절 퍼스트 레이디노릇을 하면서 컸던 사람이었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이 자유민주주의라는 게 어떤 건지 그 본질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는 생각이었다. 박근혜의 대변인을 했던 전여옥씨는 박근혜 대통령은 여왕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대한민국은 아버지가 만든 나라이고 국민은 왕인 아버지의 백성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유승민의원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반발하면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고 했다. 이병호 전 국정원장과 이들의 의식은 공통된 점이 있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국정원 차장의 아들이 국정원의 정규과정 시험에 응시해서 면접할 때의 일이다. 면접관은 박근혜대통령이 어떤 인물이냐고 물었다. 국정원 차장의 아들은 ‘독재자의 딸’이라고 대답 했다. 그 보고를 이병호원장이 받았습니다. 민주화의 세례를 받은 젊은 세대는 당연히 그런 인식을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 사실이 민정수석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고가 됐다. ‘독재자의 딸’이라는 말은 박근혜 대통령이 가장 싫어하는 말이었다. 전임 국정원장 의 국회청문회에서도 역시 박정희 대통령이 독재자라는 말이 있었다. 그 한마디가 박근혜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렸다. 박근혜 대통령은 그 후 이병기 비서실장을 부르는 일이 거의 없었다고 했다. 청와대로부터 이병호 국정원장에게 국정원차장의 아들을 불합격시키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이병호 원장은 박근혜 대통령의 속 좁은 명령을 묵살했다. 국정원장의 일 거수 일 투족이 대통령에게 보고 됐다. 권력의 차원에서 보면 대통령의 심기를 거스르는 말 한마디로 국정원장의 목이 잘리기도 했다. 대통령의 사람인 정윤회를 조사한다는 소문이 들어가자 남재준 국정원장은 자기가 잘린 지도 모르고 저녁을 먹다가 나중에야 그 사실을 알기도 했다. 촛불혁명이 한참 불타오를 때였습니다. 이병호 국정원장은 박근혜 대통령을 찾아가 국회와 헌법재판소 그리고 국민의 뜻에 따를 것을 얘기했다. 하야하라는 취지를 에둘러 말한 것이다. 그로서는 쉽지 않은 결단이었다.

“하나님이 대한민국을 지켜 주실 것으로 믿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병호 국정원장에게 짧게 던진 한마디의 말이었습. 박근혜의 하나님 또 박근혜의 대한민국은 무엇인지 그 말을 들으면서 의문을 가졌다. 이병호 전 국정원장이 감옥에 들어간 후 박근혜 전 대통령은 간접적으로 그에게 사과의 메시지를 전해 왔습니다. 그 사실은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다른 국정원장은 선거캠프에서 함께 일하고 같은 정치집단인데 그와는 전혀 다른 이질적인 존재인 이병호가 그들과 함께 끌려들어 피해를 보고 있는 데 대한 사과였다. 국정원장이 된 이병호의 시선은 북쪽을 향하고 있었다. 그 무렵은 북의 핵무기 개발로 세계가 긴장하고 남북관계가 예민하게 대치된 상황이었다. 안보분야의 사령관이던 국정원장 이병호는 활동을 개시했다.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하는 미국은 이미 세계의 경찰도 아니고 한국의 안보를 도와줄 의사도 희미했다. 그런 속에서 그는 미국과의 파격적인 정보 협력체제의 구축으로 주한미군의 방위비분담액 이상을 그는 대한민국의 이익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그런 공을 발표할 수 없는 게 정보기관이었다. 그는 북의 김정은 제거공작에 관여했다. 북한의 민주화 세력을 돕는 것이 남의 정보기관장의 역할이기도 했다. 북의 통일전선부에서 남한의 종북세력에게 지시하는 것과 유사한 것이다. 북의 김정은은 조선중앙통신등 매체를 통해 이병호를 죽이겠다고 하면서 그를 북으로 넘겨달라고 요구했다. 북한에서 보낸 암살조가 그의 목숨을 끊기 위해 활동하기도 했다. 그가 첩보전쟁을 수행하던 몇 년은 북의 핵개발로 전쟁촉발의 분위기였습니다. 미국의 항공모함이 동해로 들어오고 남과 북의 정보전이 치열한 상황이었다. 그는 북한 엘리트들을 귀순시키고 김정은의 형 김정남의 암살조를 현지에서 체포하게 하기도 했다. 그는 광신도의 종교국가 성격으로 변해버린 김일성왕조의 전제정권과 대화는 성립할 수 없다는 신념이었다. 수백만명을 굶어죽게 하고 김일성교시를 외우지 못했다고 총을 쏴 죽이는 악마와의 타협은 없다고 확신하는 자유민주주의자였다. 촛불혁명이후 남과 북은 급격히 평화무드가 되었다. 북의 독재자 김정은을 환영하는 단체가 나타나고 있었다. 그는 이제 남쪽에서 중죄인이 되었다. 법률가가 아닌 이병호 전 국정원장은 “누가 그 자리에 앉았더라도 죄인이 되었을 것이다”라고 하며 “시스템의 문제를 놓고 어떻게 한 사람을 그렇게 죄인으로 만들 수 있습니까?”라고 했다. 그의 마음속에 있는 법에 대한 의문이었다. 수 십년 동안 있었던 정보기관의 관행에 대한 책임이 그 한 사람에게 씌워졌기 때문에 납득할 수 없는 것이다. 그는 사실 여당 여론조사라는 것을 의식하고 자금을 준 적도 없었다. 그는 예산을 보관하는 회계직원도 아니었고 그 돈을 횡령한 것도 또 뇌물로 대통령에게 상납한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렇게 만들어져 버렸다.

추천 비추천

0

고정닉 0

0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등록순정렬 기준선택
본문 보기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설문 연인과 헤어지고 뒤끝 작렬할 것 같은 스타는? 운영자 24/04/22 - -
3330 인권변호사의 첫걸음 운영자 24.04.22 17 0
3329 깨어있는 시민의 의무 운영자 24.04.22 16 0
3328 죄수가 전하는 사회정의 운영자 24.04.22 23 0
3327 이민자의 슬픔 운영자 24.04.22 17 1
3326 강도에게 성질을 냈었다. 운영자 24.04.22 19 0
3325 외국의 감옥 운영자 24.04.22 17 0
3324 벗꽃 잎 같이 진 친구 운영자 24.04.15 56 1
3323 조용한 기적 운영자 24.04.15 50 2
3322 감옥은 좋은 독서실 운영자 24.04.15 43 0
3321 앞이 안 보이는 사람들 운영자 24.04.15 41 0
3320 미녀 탈랜트의 숨겨진 사랑 운영자 24.04.15 49 1
3319 두 건달의 독백 운영자 24.04.15 42 1
3318 명품이 갑옷인가 운영자 24.04.15 38 1
3317 나는 될 것이라는 믿음 운영자 24.04.15 41 1
3316 오랜 꿈 운영자 24.04.08 60 2
3315 그들은 각자 소설이 됐다. 운영자 24.04.08 67 1
3314 나이 값 [1] 운영자 24.04.08 86 1
3313 검은 은혜 [1] 운영자 24.04.08 73 3
3312 실버타운은 반은 천국 반은 지옥 [1] 운영자 24.04.08 83 2
3311 늙어서 만난 친구 운영자 24.04.08 44 1
3310 그들을 이어주는 끈 [1] 운영자 24.04.01 174 2
3309 그가 노숙자가 됐다 [1] 운영자 24.04.01 111 3
3308 밥벌이를 졸업하려고 한다 [1] 운영자 24.04.01 117 2
3307 허망한 부자 [1] 운영자 24.04.01 123 2
3306 죽은 소설가가 말을 걸었다. [1] 운영자 24.04.01 113 2
3305 개인의 신비체험 [2] 운영자 24.04.01 120 2
3304 나는 책장을 정리하고 있다. [1] 운영자 24.04.01 104 2
3303 노인의 집짓기 [1] 운영자 24.04.01 103 1
3302 똑똑한 노인 [1] 운영자 24.03.25 134 2
3301 곱게 늙어간다는 것 [1] 운영자 24.03.25 140 4
3300 두 명의 교주 [1] 운영자 24.03.25 136 1
3299 영혼이 살아있는 착한 노숙자 [1] 운영자 24.03.25 125 1
3298 팥 빵 [1] 운영자 24.03.25 116 0
3297 얼굴 [1] 운영자 24.03.19 148 1
3296 이별의 기술 운영자 24.03.19 114 1
3295 노년에 맞이하는 친구들 운영자 24.03.19 108 1
3294 노년의 진짜 공부 운영자 24.03.19 101 0
3293 주는 즐거움 운영자 24.03.19 92 1
3292 장사꾼 대통령 운영자 24.03.19 117 1
3291 나는 어떻게 크리스챤이 됐을까. 운영자 24.03.19 131 1
3290 태극기부대원과 인민군상좌 운영자 24.03.19 99 2
3289 결혼관을 묻는 청년에게 [4] 운영자 24.03.11 293 0
3288 손자의 마음 밭 갈기 운영자 24.03.11 132 1
3287 어떤 여행길 운영자 24.03.11 137 2
3286 나의 돈 쓰는 방법 [5] 운영자 24.03.11 2242 12
3285 순간 순간 몰입하기 운영자 24.03.11 137 1
3284 먼지 덮인 수필집으로 남은 남자 운영자 24.03.11 126 1
3283 아버지 제사 운영자 24.03.11 127 2
3282 속을 털어놓기 운영자 24.03.04 145 1
3281 반전의 묘미 운영자 24.03.04 132 1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뉴스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