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장편소설] 친일마녀사냥 25 - 洪命憙와의 인연

운영자 2019.04.22 10:31:25
조회 120 추천 0 댓글 0
친일마녀사냥


25


洪命憙와의 인연 


나는 서울 서초동의 국립중앙도서관으로 매일같이 출근하고 있었다. 

국립중앙도서관 논문관과 서고(書庫) 등에는 해방 후 반민특위의 소송기록부터 시작해서 일제시대의 자료와 국내외 학자들의 논문들이 산더미처럼 보관되어 있었다. 일제시대 경찰들이 작성한 독립운동가에 대한 수사기록들도 보존되어 있었다. 김씨家에서 받은 자료와 동아일보에서 가져온 일제시대 발행한 신문들의 축쇄판들, 일제시대 잡지 <신동아(新東亞)>등 방대한 양이었다. 그 시절 일본에서 발행된 잡지나 신문자료들도 있었다. 위원회의 역사가들 이상으로 보아야 나는 반론을 제기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자료들은 과거를 다시 들여다 볼 수 있는 타임머신이었다. 먼저 눈에 띈 것은 임꺽정 전(傳)을 쓴 소설가 홍명희가 조선 말 10대 소년이던 김연수(金秊洙) 형제의 눈을 뜨게 하는 과정이 적힌 글이었다. 홍명희의 자서전과 김씨가의 자료들을 비교 분석하면서 나는 그 시절의 상황을 도출해 냈다. 그 내용은 이랬다. 



◆◇◆



조선 말 고창 갑부 김경중(金暻中)과 친한 홍범식(洪範植)이 금산군수로 임명받아 임지(臨地)로 가는 길에 줄포에 들렀다. 일본의 대성중학에 다니는 아들 홍명희를 데리고 가는 길이었다. 홍명희는 방학을 맞아 돌아온 길이었다. 김경중과 홍범식은 그 혼탁한 세월에도 뜻이 잘 맞는 친구였다. 홍범식은 줄포의 김경중 집에서 묵게 됐다. 소박한 주안상이 마련되어 나오고 두 사람은 마주앉아 얘기를 나누었다.

“지금 정세가 어떻게 돌아갑니까?”

김경중이 물었다.

“아들 명희가 이번 방학에 돌아오더니만 하는 소리가 일본에서는 대한제국을 명목상으로 존속시켜야 하느냐 아니면 완전히 병합해야 하느냐에 대해 정치인들의 의견이 갈리고 있답디다.”

“남의 나라를 놓고 마음대로 요리하고 있군요.”

김경중이 탄식을 했다.

“그렇습니다. 고종황제께서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밀사를 보냈지만 어느 나라도 일본의 지배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더라는 겁니다. 게다가 우리를 도울 줄 알았던 러시아도 등을 돌리구요. 그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러시아는 일본에 조선의 병합에 대해 전혀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고 보장까지 해줬다는 겁니다. 들리는 소리로는 러시아는 조선에서의 자기네 이권(利權)을 일본이 확보해 주겠다는 약속을 받은 것 같더군요.” 

“미국의 입장은 어떻습니까? 이승만(李承晩)이 루스벨트까지 만났다고 했잖습니까?”

“미국은 일본의 관심을 북쪽으로만 돌려 미국 식민지인 필리핀으로 남하하는 것만 막으려고 한다는 군요.”

“그러면 곧 일본과 한국의 병합이 이루어질지도 모르는 거 아닙니까?”

“글쎄올시다. 독립협회 일부와 동학의 일파를 합쳐 송병준(宋秉畯)이 일진회를 만들었는데 일진회는 연방제 형태의 합방을 주장한다는군요.”

“연방제요?”

김경중이 의혹의 눈길로 물었다.

“조선이 미국처럼 일본의 한 주가 되는 거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이상한 건 이토 통감은 합방보다는 청(淸)이 우리를 조공국으로 했듯이 보호국 정도로 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어요. 이토 히로부미 통감이 일진회와는 일정한 거리를 두는 걸 보면 뒤에 어떤 배경이 있는지 이해하기가 힘이 듭니다. 소문으로는 완전병합을 주장하는 일본군부가 뒤에서 일진회를 조종한다는 말도 들립니다만…”

아버지들이 사랑에서 얘기를 나눌 때 아들들의 방에서는 또 다른 열띤 얘기들이 오가고 있었다. 중학생인 홍명희는 김성수(金性洙)보다 세 살 위고 김연수보다 여덟 살 위였다. 홍명희는 한양에 가서 일본어를 공부하고 일본의 중학교로 갔다. 일본의 중학교 3학년인 홍명희는 김씨가의 형제들에게는 선망과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한양에는 활동사진이라는 게 있다.”

홍명희가 자랑스럽게 얘기했다.

“그게 뭔데?”

김연수가 물었다.

“원숭이가 물장난을 하는 것도 있고, 춤추는 여자도 있어. 동대문 전기회사 마당에 있는 재목 적치장에 앉아서 그 회사에서 틀어주는 활동사진을 봤지. 사진이 진짜 실물같이 움직이는 거야. 한성에 가면 길가에 훤하게 등불도 있어서 밤도 낮같아. 한강에 철다리도 있고 신식군악대도 있어.”

“형은 어떻게 일본에 가서 공부하게 됐지? 일본이 어디 있는 나라야?”

호기심 많은 김성수가 물었다.

“우리 집에 이마두(利瑪竇, Matteo Ricci)의 곤여전도(坤輿全圖)가 있어. 거기 보면 조그만 땅이 왜국(倭國)이고, 큰 덩이가 중원(中原)이야. 내가 그 병풍에 어려서부터 먹칠을 하면서 놀았어. 세상에는 조선 외에도 여러 나라가 있어.”

홍명희 집에는 마테오 리치의 세계지도를 붙인 병풍이 있었다. 실학을 세례 받은 학자 집안에 더러 있던 것이었다. 홍명희는 김연수 형제에게 말을 계속했다.

“괴산 우리 동리에 일본인 부부가 양잠기술을 가르치려고 와 있어. 한성에서도 일본사람 구경하려면 진고개까지 가야 하는데 우리 마을에 온 거야. 아버님께 얘기해서 그 일본인 부부를 불러서 일본어 회화를 배웠지. 몇 달 동안 함께 기거하면서 집중적으로 개인교습을 받았어. 그 일본인 부부가 일본 동경에 가면 공부하기 좋다고 하더라구. 갑갑한 괴산에 박혀 있는 것보다 일본에 가서 공부나 할까 생각했지. 그렇지만 일본 유학을 가겠다고 하면 할아버지, 아버지 층층시하에 허락받기가 힘들 것 같아서 귀국하는 그 일본인 부부를 따라서 여행을 다녀오겠다고 떠났다가 가능하면 일본에 눌러앉아 공부하기로 했지. 그런데 아버지가 흔쾌히 허락하시는 거야. 일본에 가서 법학을 공부하고 오라고 하셨어.”

김씨가 형제는 홍명희에게 빠져들고 있었다. 홍명희가 얘기를 계속했다. 

“부산으로 가서 윤선(輪船)을 탔지. 그 배로 현해탄을 건너 오사카에 도착에서 거기서 3~4일 묵다가 동경으로 갔어. 동경 신바시 역 앞 여관에서 며칠 묵다가 하숙집을 얻어서 동료 몇 명하고 밥 짓는 하녀를 두고 공동생활을 했어. 아버지가 매달 학자금으로 25원 보내주시고 방학 때 오면 50원이나 100원쯤 주셔. 그걸로 마음껏 책도 사 볼 수 있어.”

“책? 사서삼경 같은 것 말이야?”

형인 김성수가 물었다.

“아니야 일본의 고서점가에 가면 러시아 문학작품들도 있고,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바이런의 작품도 있어. 일본작가 나쓰메 소세키 작품도 있고. 무정부주의자 크로포트킨의 ‘빵의 약탈’이라는 글도 재미있었어. 아무튼 거기는 서양소설들이 아주 많아. 

나 말고도 그런 서양소설을 아주 많이 읽는 친구가 하나 있어. 이광수(李光洙)라고 하는데 다이세이 중학교 후배야. 하숙집 부근 공중목욕탕에서 우연히 만났지. 이광수는 어린 시절 고아가 되어 우여곡절 끝에 일진회 유학생으로 뽑혀 다이세이 중학교에 들어온 친구야. 내가 사서 다 읽은 책은 그 친구에게 줘서 읽게 하고 있지. 

참, 나하고 친한 최남선(崔南善)이란 친구도 있다. 1904년 황실 유학생으로 일본에 온 친구인데 <소년(少年)>이란 잡지를 발간한 그 인물이야. 서로 마음이 통해 어깨동무를 하고 같이 길을 걷기도 하고, 서실에서 배를 깔고 엎드려 서적을 같이 평론도 하고 그랬지. 내가 남의 집에 가서 잔 건 최남선 집이 처음이야. 아주 좋은 친구야. 내가 이광수를 최남선에게 소개했지. 그래서 이광수가 지금 <소년>이란 잡지에 번역문을 내기도 했어. 앞으로 우리 세 사람이 습작한 작품들을 모아 문집을 낼 계획이야.”

김경중의 아들 형제의 마음속은 일본 유학에 대한 강한 열망이 불붙기 시작했다. 

추천 비추천

0

고정닉 0

0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등록순정렬 기준선택
본문 보기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설문 연인과 헤어지고 뒤끝 작렬할 것 같은 스타는? 운영자 24/04/22 - -
2575 교주가 도망갔다 운영자 22.03.14 156 0
2574 불편한 자유 운영자 22.03.14 123 0
2573 참자유 운영자 22.03.14 129 0
2572 대통령을 왜 욕해요? 운영자 22.03.14 158 0
2571 높은 벼슬자리 운영자 22.03.14 157 4
2570 어둠에서 어둠으로 운영자 22.03.14 132 1
2569 예언서의 비밀 운영자 22.03.14 135 3
2568 진리의 희롱 운영자 22.03.07 135 2
2567 산불 속에서 [1] 운영자 22.03.07 166 1
2566 실용적 진리 운영자 22.03.07 123 1
2565 다수의 세력 운영자 22.03.07 128 0
2564 그들의 광기 운영자 22.03.07 125 1
2563 빛의 증명자 운영자 22.03.07 122 0
2562 정말이죠? 운영자 22.03.07 121 1
2561 진리의 한가지 증명방법 운영자 22.02.28 144 1
2560 쾰른 호숫가의 성자 운영자 22.02.28 121 1
2559 불치병을 고친 신비한 힘 운영자 22.02.28 166 1
2558 진리의 형태는 타원형 운영자 22.02.28 105 1
2557 기독교인은 불교도를 미워하나 운영자 22.02.28 127 1
2556 친구의 지적 운영자 22.02.28 121 0
2555 불의한 세상을 이기는 비밀 운영자 22.02.28 112 0
2554 정의란 무엇일까 운영자 22.02.21 130 1
2553 소박한 밥상 운영자 22.02.21 149 2
2552 좋은 기자들 운영자 22.02.21 97 1
2551 어느 여객기 기장의 이야기 운영자 22.02.21 135 0
2550 글을 쓸 결단 운영자 22.02.21 82 0
2549 운동권의 좋은열매 운영자 22.02.21 129 1
2548 잘못 놀린 혀 운영자 22.02.14 115 1
2547 다양한 오만 운영자 22.02.14 120 1
2546 대통령들의 은밀한 유혹 운영자 22.02.14 136 2
2545 가장 큰 욕망 운영자 22.02.14 141 1
2544 대박나는 선행펀드 운영자 22.02.14 89 0
2543 아내의 버릇 운영자 22.02.14 113 2
2542 보통사람이 성공하는법 [1] 운영자 22.02.09 223 3
2541 정의는 움직이지 않는 바위 운영자 22.02.09 98 2
2540 영원한 화폐 운영자 22.02.09 111 2
2539 善人 제작소 운영자 22.02.09 98 1
2538 정직한 바보 운영자 22.02.09 90 0
2537 큰 악인과 큰 선인 운영자 22.02.03 95 1
2536 왜 떠들고 다닙니까? 운영자 22.02.03 103 4
2535 조폭두목과 맞짱뜨기 [1] 운영자 22.02.03 174 2
2534 네, 아버지 운영자 22.02.03 114 0
2533 경쟁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운영자 22.02.03 117 1
2532 삼척의 노인의사 운영자 22.02.03 118 1
2531 은혜를 잊는 죄 운영자 22.02.03 83 1
2530 말 한마디 운영자 22.02.03 81 2
2529 좋은 세상을 만드는 비결 운영자 22.02.03 78 1
2528 맹자를 읽는 노인 운영자 22.02.03 73 1
2527 천재가 되는 방법 운영자 22.02.03 144 1
2526 흙냄새 나는 품성 운영자 22.01.24 120 1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뉴스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