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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친일마녀사냥 34 - 중앙학교 인수

운영자 2019.05.09 16: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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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마녀사냥


34


중앙학교 인수


경영난에 허덕이던 사립학교들이 갑부 김경중이 아들을 시켜 학교를 세운다는 소문을 들었다. 여러 사람이 그에게 학교를 인수해 줄 것을 요청했다. 당시 중앙학교를 운영하던 중앙학회에서는 재정난으로 새로운 투자자를 구하고 있었다. 김경중은 이미 호남학회를 창립하고 학회 소속으로 영신학교도 설립한 바 있었다. 김경중은 아들 김성수에게 학회와 학교의 관계나 운영방식 그리고 재정상태를 철저히 살펴보라고 지시했다. 

중앙학교는 이용직이 1908년 종로구 소격동의 육군위생원 건물을 얻어 세운 학교였다. 그 뒤 2대 교장을 맡은 박승봉이 화동 138번지의 한옥을 사들여 교사(校舍)로 썼다. 한일합방 후 운영난을 겪던 학교와 학회가 생존하기 위해 통합운동을 벌였다. 구한말 애국운동으로 일어났던 학회가 합쳐 중앙학회가 되고 여러 학교들이 중앙학교로 통합된 셈이었다. 유길준이 5대 교장이 되어 사재(私財)를 털어 계속 운영했다. 6대 교장인 권병덕이 시천교의 지원을 얻으려고 하다가 거절당했다. 7대 교장 남궁훈이 이끌어 가고 있는데 교원들에게 월급도 주지 못하는 형편이었다. 재정난도 있지만 학회의 구성이나 운영의 계통이 너무 다원적이어서 일관된 경영을 하지 못했다. 

김경중은 도대체 경성의 유명인사는 다 모였다는 중앙학회에서 학교를 자신에게 넘기려고 한다는 게 이상했다. 유명무실한 학회에서 투자를 유치해 돈만 빼먹으려는 수작으로 보이기도 했다. 아들이 중앙학교의 인수를 말하자 그는 “안 된다. 도대체 믿을 수 없구나. 없는 것으로 하자”며 거부했다. 학교를 하려는 열정이 가득찬 아들 김성수가 말했다. 

“세상에서는 아버님을 하늘이 만든 부자라고 합니다.”

“그래서?”

김경중이 반문했다.

“하늘이 이루게 한 재산이라면 하늘의 뜻에 따라 써야 하지 않을까요?”

“방자하다. 네가 하늘의 뜻을 대신한단 말이냐?”

김경중이 역정을 냈다.

“제가 대신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제가 하려고 하는 일이 하늘의 뜻에 맞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버릇없는 소리를 하지 말고 물러가라.”

“아닙니다. 아버님, 제 말을 믿기 어려우시면 중앙학회의 간부를 이 줄포로 내려오게 해서 아버님께 소상히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쪽에서 굳이 와서 설명을 하겠다면 내가 거절하지는 않겠다고 전해라.”

얼마 후 중앙학교 교장을 지낸 이환직이 줄포로 내려가 김경중을 만났다. 

“걱정하시는 것같이 이번 중앙학교의 인수문제는 협잡배의 농락도 아니고 경거망동도 아닙니다. 다시 한 번 신중히 재고해 주십시오. 중앙학교는 우국지사들의 심혈이 총망라된 학교인 걸 잘 아실 줄 압니다. 저희 학회 측은 호남갑부 김경중 공의 도움을 절실히 간청하고 있습니다.” 

“쟁쟁한 명사들도 유지하지 못하는 학교를 제가 과연 끌고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저도 학교를 해봤습니다. 돈만 들어가는 교육사업에 거액을 내놓는다는 것은 신중을 기해야 하는 일로 생각합니다.”

김경중의 대답이었다. 전직 교장 이환직이 돌아가자 아들 김성수는 자기 방에서 단식에 들어갔다. 학교사업에 아버지가 돈을 대주지 않으면 만주벌판으로 가서 차라리 독립운동을 하겠다고 했다. 단식하는 아들을 보면서 김경중은 아들의 의지를 살피고 있었다. 김경중은 아들 김성수를 불러서 물었다. 

“왜 이렇게까지 하면서 학교를 하려고 하느냐?”

“제 신념이 교육사업을 하는 겁니다. 그리고 교육사업은 저 혼자 되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인간관계를 쌓아왔던 선배나 친구들과 함께 가는 일입니다. 이 일이 좌절되면 저는 앞으로 어떤 일도 할 수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미 뜻을 같이한 선배나 친구들을 볼 면목이 없습니다.”

아들 김성수가 솔직히 털어놓았다.

“교육사업이란 명분이나 말은 좋다만 전 가산(家産)을 탕진할 수 있는 일이다. 너의 교육사업으로 인해 힘들게 세운 우리 가문이 다시 몰락해도 좋으냐?”

“많은 조선의 지주들이 투기를 하다가 몰락하기도 하고 또 자식들의 주색잡기로 집안이 망하기도 합니다. 아버님이 민족을 위해 교육사업에 투자했다가 망한다고 해도 그건 의미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선조가 되시는 하서 할아버님도 필암서원을 세우시지 않았습니까? 이 기회에 역사가 가장 깊은 중앙학교를 인수하시면 우리 집안의 영광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우리 집안이 독자적으로 학교를 이끌고 나갈 수 있게 모든 운영권한이 넘어오게 할 수 있느냐? 복잡한 사람들이 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법이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모든 운영은 나의 말을 들어야 한다.”

“알겠습니다. 아버님.”

허락이 떨어졌다. 

중앙학교 운영진 측과의 담판이 경성에서 벌어졌다.

“저는 중앙학교의 완전하고 무조건적인 인수를 원합니다.”

김성수가 요구했다.

“그건 중앙학회의 완전해산을 의미하는데 아십니까? 중앙학교는 조선팔도 유지들의 뜻을 모아 세운 학교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전통과 명분을 가지고 있는 교육기관을 한 개인에게 맡길 수 있다고 보십니까? 그렇게 하지 마시고 학회는 그냥 존속하게 하고 김경중 공은 출자자로 학회에 들어오셔서 아들을 통해 학교의 운영을 맡는 형식을 취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김윤식(金允植)과 거기에 함께 관여했던 월남 이상재(李商在)의 뜻이었다. 김성수가 그 뜻을 아버지 김경중에게 전했다.

“그렇게는 못하겠다고 해라. 중앙학교의 실패는 학교 자체보다도 말이 많은 학회 때문이다. 그런 학회를 그대로 두고 투자한다는 것은 무의미하다. 학회와 학교를 함께 살릴 방안이 없는 이상 이쪽은 물러설 수밖에 없다고 해라.”

학회 인사들의 심정 밑바닥에는 20대 초반의 김성수에 대한 불안감이 강했다. 그들 눈에 김성수는 대학을 갓 졸업한 호남의 부잣집 아들에 불과했다. 민족의 원로들은 지방의 지주와 그 아들에게 유서 깊은 학교를 넘긴다는 것에 굴욕감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이미 학교는 폐교 직전이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결국 그들은 김경중에게 무조건 항복의 백기(白旗)를 들었다.

김경중을 설립자로 한 중앙학교 인수청원서가 총독부에 제출됐다. 그러나 총독부는 허가도 하지 않고 거부도 하지 않고 마냥 시간을 끌고 있었다. 총독부는 교육정책을 공교육으로 일원화하려는 방침이었다. 보통학교와 고등보통학교를 만들어 조선인에 대한 교육체계를 확립하고 있었다. 기독교계에서 학교설립인가 신청을 한 지 몇 년이 되도 허가가 나지 않았다. 선천의 보성여자중학교는 설립인가를 신청한 지 5년 만에 인가하지 않겠다는 거부의 통지가 나왔다. 

하루는 김성수가 총독부 학무국으로 찾아가 담당 공무원을 만나 물었다. 

“왜 허가가 떨어지지 않죠?”

“조선교육령을 보면 학교를 하려면 재단법인으로 해야 합니다. 또 그 관리를 일본인이 하게 되어 있고, 3인 이상의 일본 교직원을 둬야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게 허가가 안 나오는 외형적인 이유지만 사실은 교육을 조선총독부가 독점하려는 정책이었다. 기존 사립학교의 설립자를 변경하는 것조차 허가하지 않았다. 교육령에서 요구하는 대로 다시 요건을 맞추어 서류를 냈으나 여전히 허가는 나지 않았다. 송진우, 최남선, 이광수, 김성수 등이 모여 상의했다. 정치감각이 있는 송진우가 말했다.

“우리의 교육열은 어차피 애국애족운동과 맥락을 같이하는 거니까 총독부당국이 허가하지 않을 것은 뻔한 이치 아닌가? 우리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말고 끈질기게 투쟁해야 할 거야.”

“어떻게?”

김성수가 물었다.

“일단 조선의 상소문같이 학교를 허가해 달라는 청원서를 열 번, 백 번 끈질기게 총독부에 보내는 거지. 둘째로는 학무국장을 면담하게 해달라는 신청을 끊임없이 하는 거야.”

다음날부터 청원서 쓰기 운동과 학무국장 면담을 거의 매일같이 신청했다. 어느 날 학무국장 세키야가 면담신청을 한 김성수를 불렀다.

“자네가 김성수인가?”

세키야는 김성수를 찬찬히 바라보면서 물었다. 

“그렇습니다.”

“왜 집안에서 중앙학교를 인수하려고 하지?”

“청년들을 교육하고 싶습니다.”

“왜 청년들을 교육하려고 하는 건데?”

“조선민족의 정신은 아직 깨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문화도 많이 뒤떨어져 있습니다. 그들을 깨우치고 가르치고 싶습니다.”

“그건 개인이 할 일이 아니라 이미 총독부에서 교육정책을 만들어 하는 일 아닌가?”

“그래도 저는 개인이 하고 싶습니다.”

“김 군은 조선의 재산가의 아들이라고 하는데 맞나?”

“남들이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업을 하는 쪽이 포부를 실현하는 데 더 맞는 일이 아닐까?”

“저는 우리 집안이 가진 돈이 우리 집안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사회를 위해서 일시 보관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저는 돈을 만드는 것보다 사람을 만드는 게 더 고귀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뜻은 귀하지만 아직 어린 자네 같은 사람이 직접 교육 사업을 하기는 이르다고 생각하네.”

세키야가 김성수를 달래듯 말했다.

“세상 사람들은 흔히 부잣집 아들을 바보나 멍텅구리 취급을 하면서 빈정대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남들이 벌지 못하는 큰돈을 모으는 부자들에게는 남들에게 없는 다른 재능이 있다는 생각입니다. 저는 돈 대신 교육에 탁월한 실적을 남길 수 있습니다. 나이나 돈보다 열정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의 근대교육가 후쿠자와 유키치를 존경하고 있습니다. 혼자의 열정으로 게이오대학을 만든 분입니다. 제가 다니던 와세다대학의 오쿠마도 채소밭만 있는 들판에 교사를 세워 오늘의 세계적인 대학을 만든 분입니다. 중요한 건 열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돌아가 보게.”

학무국장 세키야가 말했다. 총독부는 계속 침묵했다. 진이 빠져 스스로 포기할 때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어느 날 신문을 보다가 김성수는 와세다대학의 은사(恩師)이던 나가이 교수와 다나카 교수가 경성으로 와서 조선호텔에 묵고 있는 사실을 알았다. 나가이 교수는 일본정계에서 영향력이 있는 인물이었다. 동시에 다이쇼 데모크라시의 선봉으로 자유주의자였다. 김성수는 바로 조선호텔로 찾아갔다. 나가이 교수는 졸업한 지 얼마 안 되는 김성수를 잘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 졸업 후에 무엇을 하고 있나?”

나가이 교수가 물었다. 

“학생시절부터 저는 와세다대학의 오쿠마 총장님 같은 교육가가 되고 싶었습니다. 졸업을 하고 돌아와서 학교를 인수해 보려고 하는데 총독부 당국에서 조선사람에게는 허가해 주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래? 그런 어리석은 일이 어디 있나? 조선사람을 진정한 이웃으로 만들려면 일본사람보다 정책적으로 더 우대해 줘도 마땅치 않을 텐데 차별이라니. 그건 무관(武官)들의 국가주의고 편견에 사로잡힌 우월주의에서 나오는 거네. 무관 출신인 데라우치는 조선총독으로 있으면서 아예 자기가 조선의 왕이 되려고 한다는 일본의 반대 여론도 있네. 내가 학무국장에게 말해서 허가가 나오도록 해주겠네. 그리고 조선총독부의 학무국장 정도가 만약 거부한다면 내가 일본에 연락해서 총리대신이 직접 하명(下命)하도록 할 수 있네.”

옆에서 듣고 있던 다나카 교수도 거들었다.

“나도 힘이 되어 주겠네.”

마침내 1915년 4월27일 중앙학교 인수허가가 떨어졌다. 김경중이 설립자가 됐다. 김경중은 안재홍을 초대 학감(學監)으로 했다. 학감은 지금의 교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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