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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친일마녀사냥 74 - 太極星 상표

운영자 2019.07.22 16:09:58
조회 77 추천 0 댓글 0
친일마녀사냥


74


太極星 상표


김연수는 효율이 떨어져도 조선인만을 고용했다. 조선인 기술자와 직공만을 고집했기 때문에 회사 창립 후 생산된 제품이 처음으로 나오기까지는 4년 가까이 걸렸다. 조선인 직공이 기계조작 및 품질관리 기술을 습득하는 데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일본인 회사의 경우 일본인 기술자가 바로 생산에 들어갔지만 경성방직의 경우는 조선인 기술자가 훈련을 받고 이들이 다시 조선인 직공을 훈련시키는 시스템이었다. 김연수는 옹고집이었다. 그의 공장경영은 직공양성이기도 했다. 그는 드디어 조선 기술자에 의한 순수한 신제품을 만들어 냈다. 일본제품에 뒤지지 않는 품질이었다. 조선의 일반대중을 상대로 일본기업과 경쟁을 할 만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임원회의를 열고 신제품의 이름을 뭘로 할 것이냐에 대해 의논했다. 

“경성방직은 조선인들이 주식회사 운동을 벌여 만든 조선인의 회사입니다. 이제 일본의 본토제품과 경쟁해도 뒤떨어지지 않을 좋은 제품이라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번 제품의 이름은 조선의 자존심을 상징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김연수의 의견이었다. 임원 중 한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우리 박영효(朴泳孝) 사장님이 처음으로 일본을 가실 때 청국의 청룡기가 아니라 태극기를 가지고 가셨습니다. 조선을 상징하는 거였죠. 우리가 그 없어진 태극을 상표로 하면 어떻겠습니까? 지난 3·1운동 때도 우리 독립의 상징으로 모두 태극기를 들고 나오지 않았습니까? 속으로는 태극마크를 보면 가슴들이 두근거릴 텐데요.”

“겨레와 조국을 상징하는 태극, 그거 좋습니다. 민족기업 이미지를 나타낼 수 있는 상표입니다.”

모두들 찬성이었다. 

“그렇지만 태극기를 그대로 쓸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또 상표를 태극으로 하면 총독부에서 등록해 줄까요?”

김연수가 말했다.

“조금은 변형을 해야죠.”

이강현이 의견을 제시했다.

“어떻게?”

김연수가 물었다. 

“제가 일본에서 공업학교를 다니면서 각 기업체의 상호나 상표들을 많이 봤습니다. 이미지는 그대로 하되 태극 주위의 팔괘(八卦)를 상징하는 여덟 개의 별을 단다거나 영어로 된 이니셜을 추가하는 방법입니다. 세부적인 디자인은 미술학교 출신한테 부탁하면 될 겁니다.”

듣고 있던 다른 임원이 이렇게 말했다.

“태극성(太極星)이란 상호는 소비자들에게 망국의 한을 알려주면서 재기의 결의를 다지게 하는 메시지가 들어 있는 상징물입니다. 태극성을 이용하면 애국애족이고, 그렇지 않으면 친일이라는 관념을 소비자의 마음속에 심어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일본 경찰입니다. 태극상표의 사용을 허용할 리가 없습니다. 경찰당국은 태극이란 말만 입에 올려도 사상이 불온한 것으로 간주하고 태극마크는 인쇄할 수도 없습니다.”

“지금의 상표법은 어떻습니까? 꼭 조선총독부 식산국(殖産局)에 가서 신고해야 합니까?”

김연수 전무가 일본에서 법과를 나온 임원에게 물었다.

“그렇지 않습니다. 현행 상법은 일본과 조선지역에 공통되게 적용되고 있습니다. 등록을 동경의 상공성에 가서 해도 괜찮도록 되어 있습니다.”

“일본 본토의 상공성에서는 태극상표를 어떻게 생각할까요?”

“거기서는 우리의 실정을 모릅니다. 3·1운동도 모르고 태극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을 겁니다. 신경질적인 반응을 일으키는 건 조선의 경무국뿐입니다.”

“그러면 일본의 동경 상무성에 상표를 등록하도록 합시다.”

김연수가 결론을 지었다. 그 얼마 후 신제품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제품의 매필마다 그 첫머리에 태극상표가 선명하게 인쇄되어 있었다. 태극마크는 빨거나 표백을 해도 지워지지 않게 만들었다. 대리점에게 팔아달라고 위탁하지 않았다. 경성방직 특유의 ‘장돌뱅이 기법’을 활용하기로 했다. 이미 별표고무신을 팔면서 익숙한 방법이었다. 매일 새벽 4시가 되면 직원으로 구성된 보부상 부대가 등짐을 지고 회사에 모였다. 각자 태극성 마크가 붙은 광목 샘플들을 등짐으로 지고 있었다. 김연수의 일장 훈시가 있었다. 

“여러분에게 회사의 운명이 걸려 있고, 조선민족의 경제독립이 달려 있습니다. 우리 회사가 망해 일본사람 밑으로 가면 그들에게 삶은 물론이고 영혼까지 빼앗기는 셈이 됩니다. 우리 조선인끼리 똘똘 뭉쳐 우리의 땀으로 돈을 벌어 식구들과 먹고 마시고 즐길 수 있도록 합시다.” 

경성방직의 사원들은 회사의 일을 ‘민족의 사업’이며 ‘독립운동의 일환’으로 자부했다. 김연수는 자랑스러운 듯 경성방직의 보부상 부대를 한번 훑어봤다. 맨 끝줄에 아직 소년티가 가시지 않은 남자가 수줍은 듯 서 있었다.

“저 맨 끝줄에 있는 사람은 입사한 지 얼마 안 됐죠?”

김연수 전무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 쪽을 바라보았다.

맨 뒷줄에서 그가 긴장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예, 경성공업학교를 졸업하고 입사한 유홍이라고 합니다.”

“회사에 들어와 일해 보니까 어때요?”

김연수가 부드러운 어조로 물었다.

“저 나름대로 판로 확장을 위해 조선 각지와 만주의 봉천까지 다녀왔습니다. 많은 분들이 제가 하는 일이 우리 민족을 위하는 길이요, 완전독립 전에 먼저 경제적 독립의 길이라고 격려해 주실 때 큰 긍지를 가지게 됐습니다.”

“어떤 때 가장 기분이 좋았어요?”

김연수가 물었다. 

“태극이 찍힌 부분을 포목상들이 별도로 잘라 모아 차일을 만듭니다. 그 광목 짜투리로 만든 차일은 장바닥에 내려쬐는 뜨거운 햇빛을 막는 데 안성맞춤입니다. 태극성으로 이뤄진 차일이 바람에 나부끼면 무수한 태극기가 휘날리는 것 같은데 우리의 3·1운동을 다시 보는 것 같아 자랑스럽습니다.”

“좋은 지적입니다.”

김연수가 기분 좋은 듯 미소를 지었다. 그 차일을 본 경찰이 포목상들을 연행해 가기도 했다. 삼일운동 이래 태극은 한국인에게 애국심을 일으키고 일본경찰에게 그것은 두고두고 골칫거리였기 때문이었다. 그런 일로 경찰서 고등계에서 경성방직 상무인 이강현을 소환한 적이 있었다.

“경성방직의 태극상표는 어떻게 만들게 된 거요?”

담당형사가 물었다.

“그거 특별한 게 아닙니다. 방직을 영어로 스피닝이라고 하죠, 그 스피닝의 첫 스펠링인 에스를 원 속에 넣어 보기 좋게 장식했을 뿐입니다.”

이강현이 적당히 얼버무렸다.

“조선인의 민족의식을 상징하는 거 아니오?”

형사가 다그쳤다.

“일본 중앙당국이 사용을 허락한 상표입니다. 그리고 우리 경성방직은 순수하게 면포를 생산하는 기업일 뿐입니다. 일본제품에도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일본의 수많은 문장(紋章)들이 인용되기도 하지 않습니까?”

이강현의 강변에 경찰은 속을 짐작하면서도 더 어떻게 하기는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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