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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친일마녀사냥 75 - 朴承稷상점

운영자 2019.07.22 16:10:15
조회 75 추천 0 댓글 0
친일마녀사냥


75


朴承稷상점


배오개 쪽에 있던 박승직상점은 신식 구조였다. 가운데 출입문을 두고 거리를 향한 양쪽 쇼윈도에는 화려한 색깔의 주단과 고운 상급의 모시 등 옷감이 걸려 있고, 그 옆에는 마네킹이 서 있었다. 소매부 여점원들도 모두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공손하고 친절하게 손님들을 맞고 있었다. 상점 안은 먼지 한 점 없을 정도로 깨끗했다. 그래서인지 시골 고객 중에는 종종 신발을 벗고 가게 안으로 들어오는 이도 있었다. 

상점 2층은 도매부였다. 경성의 주문은 전화가 이용됐고, 지방은 우편을 통해 하는 주문방식이었다. 당시 박승직상점의 전화번호는 광화문 5번이었다. 외우기 쉬워서 고객들은 이 전화번호를 상호보다 더 즐겨서 사용했다. 경기·강원·충청지방에서 하루 수십 장씩 주문서가 왔다. 주문 분량에 따라 포장부에서 포장을 하고 화물트럭으로 탁송했다. 경성은 배달부에서 직접 가져다주었다. 박승직상점은 기존의 뿌리 깊은 종로의 포목상들을 누르면서 배오개에서 급성장하고 있었다. 그는 오늘날 두산그룹의 창업자이기도 하다.

박승직은 1864년 경기도 광주의 숯가마골 가난한 집 아들로 태어났다. 부모는 세도가 민씨 가문의 열다섯 마지기 위토(位土)를 얻어 농사짓기 위해 그 마을로 들어와 살고 있었다. 박승직이 열여섯 살 무렵의 어느 날이었다. 산비탈에서 화전(火田)을 일구고 있다가 괭이에 튀긴 돌이 정강이를 때렸다. 살이 찢어지고 벌겋게 피가 배어 나왔다. 그 아픔은 설움으로 이어졌다. 

‘언제까지 이렇게 희망 없는 농사만 지으면서 살아야 하나? 한번 장사를 해보면 어떨까?’ 

그런 생각이 불쑥 들었다. 그는 송파장(場)을 오고가면서 장사꾼들의 모습을 눈여겨 보았었다. 그는 송파장을 찾아가 뱃길로 활기를 띠고 있는 장터의 상거래를 눈여겨 보아두었다. 송파는 경부선 철도가 생기기 전까지는 안성과 함께 한양으로 유입되는 물건들의 집산처였다. 

얼마 후 그는 어렵게 마련한 돈 75냥을 가지고 배오개로 갔다. 석유장사를 하기로 했다. 지게에 등잔용 석유와 됫박과 깔때기를 담고 망우리고개 근처의 집들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석유를 사려는 사람들이 골목 여기저기서 몰려나왔다. 석유가 금방 동이 나고 115냥이 수중에 들어왔다. 40냥의 이문을 남겼다. 박승직은 다시 석유를 떼오기 위해 돌아가다가 고갯마루에 주저앉아 있는 가죽장수를 보았다. 그는 낙심하고 있는 것 같았다. 붙임성 있는 박승직은 가죽장수에게 사유를 물었다.

“발뒤꿈치가 곪아서 이런 다리로는 도저히 장(場)까지 갈 수 없으니 미안하지만 내 물건 좀 사주시오, 본전에 드리리다.”

가죽장수가 사정했다.

“그게 전부 얼마요?”

박승직이 가죽을 눈짐작으로 살피면서 물었다.

“120냥이오.”

“가진 돈이 115냥뿐인데 괜찮겠소?”

“할 수 없지, 그거라도 주고 가져가시오.”

박승직은 그 가죽들을 빈 지게에 담아 배오개장으로 가져와서 팔았다. 운이 좋았다. 500냥을 받을 수 있었다. 다리가 아픈 사람에게는 짐이 됐던 가죽이 신발장수에게는 금 같은 존재였다. 장사는 사람들이 찾는 물품을 살피면서 해야 할 것 같았다. 좀더 넓은 세상 견문이 필요했다. 그는 해남군수로 내려가는 민영완의 수행원으로 따라가 남도(南道)에서 3년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는 포목장사를 해보기로 했다. 조랑말에 길마를 지워 말허리 양쪽에 포목을 싣고 장터를 돌았다. 송파를 중심으로 낙생, 분당, 경안 등 광주일대의 장터를 돌았다. 활동반경을 점차 넓혔다. 경기도 산간마을과 강원도까지 갔다. 그는 농한기에 시골처녀들이 베틀에서 짠 백목(白木) 한 필을 10전에 구입해서 서울에 가져와 20전에 팔았다. 

좋은 물건을 만나 돈이 떨어진 날은 끼니를 거르기도 하고, 한 푼이라도 더 아끼기 위해 쌀밥 대신 조밥을 먹었다. 강원도 산골을 다닐 때는 두 달 동안 감자만 먹었다. 그는 술 한 잔 입에 대지 않았다. 그는 광주 대왕면에 30석을 추수할 수 있는 전답을 사고 그곳으로 이사했다. 

박승직은 10년 동안 영암·나주·무안·강진까지 무명을 팔고 다녔다. 무명 한 필은 마흔 자였고 당오전 두 냥 두 돈이었다. 어느 날 그는 육주비전의 제도가 폐지된다는 소리를 들었다. 이제는 정착해서 포목상을 하고 싶었다. 박승직은 경성 청계천 마전다리 근처의 집 한 채를 샀다. 당시 한양의 상권은 청인(淸人)의 수중에 있었다. 서소문 일대에는 청국의 거상(巨商)과 무역상들이 포진하고 있었다. 일부는 종로까지 진출하고 있었다. 

서대문·종로·동대문·청량리를 잇는 전차로가 부설되자 박승직은 종로4정목 15번지로 집을 옮겨 ‘박승직상점’을 냈다. 종로 육의전의 특권이 폐지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그때까지 육의전 상인들은 자신들이 취급하는 상품을 독점판매하는 특권을 가지고 있었다. 박승직상점은 옥양목을 수입해서 전국 각지의 포목상을 대상으로 도매했다. 배오개는 동대문이 가까워서 지방물산의 거래가 활발할 수 있는 지점이었다. 

박승직은 객주업을 겸했다. 물품의 위탁을 받아 거래하고 어음의 인수 대금 및 화폐의 교환을 했다. 박승직상점의 위치는 지리상으로 동북방 상품의 집결처인 도봉 근처의 장시(場市)와 삼남(三南)지방의 상품집결지인 송파로부터의 유입통로의 교차지였다. 

박승직은 동대문의 포목상들을 규합해서 예지동에 광장주식회사를 창립했다. 박승직은 일본의 이토추상점과 합작투자의 형식으로 회사인 공익사를 설립했다. 면포·면사를 직접 산지인 일본에서 수입해 팔기 위해서였다. 일본어를 전혀 모르는 그는 니시하라라는 일본인을 내세워 통역을 하게 했다. 

박승직은 경성의 고위 관료층들에게 발을 넓히기 시작했다. 초대통감인 이토 히로부미는 박승직을 상계(商界)의 유망한 상인이라고 지목하고 조선은행장에게 지원해 주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그는 조선에서 중견 기업가가 되었다. 또 조선 면포상들을 조직하고 그 회장이 되었다. 

박승직상점으로 30대 초반의 남자가 들어왔다. 중절모에 코트 차림이었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입구의 점원이 물었다.

“경성방직의 전무 김연수라고 합니다.”

김연수가 공손하게 명함을 건네면서 대답했다.

“아 그 새로 세운 조선인이 하는 방직회사를 말하는군요.”

점원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점원은 그를 뒤쪽에 있는 점주 박승직의 방으로 안내했다.

“경성방직의 김연수 전무입니다.”

김연수가 공손하게 인사했다.

“지산(芝山) 선생의 자제분이시군. 일본에서 많은 공부를 했다고 들었소만. 그래 회사에 대해서는 업계에서 이런저런 소문이 들리던데 어떻게 운영할 만합니까?”

박승직이 부리부리한 눈으로 김연수의 내면을 꿰뚫어 보는 눈길로 탐색했다. 

“우리 조선의 자본으로 조선인 소녀들의 손길로 만드는 광목입니다. 이 상점의 진열장에 한 필이라도 놔주셨으면 해서 이렇게 왔습니다.” 

“그런 말씀을 하는 걸 보니 아직 상인이 되지 않으신 것 같군. 상품은 품질과 가격으로 경쟁하는 거지, 조선 자본이니 조선 소녀의 손으로 만들었다느니 하는 건 동정을 구하는 거 아니오? 그런 말은 외국제품을 능가하는 높은 품질의 제품을 만든 뒤에 해야 하는 소리요.”

김연수의 안색이 변했다. 일본 제품들은 이미 삼남지방을 석권하고 있었다. 일본의 동양방적 제품인 ‘삼에이표’ 광목은 품질 면에서도 우수했고 또 소비자들에게 널리 선전되어 있었다. 박승직이 다시 물었다.

“전문상사들과 대리점 계약을 하지 않으셨소? 그래야 물건을 각 매장에 올려놓을 수 있을 텐데요.”

일본계열의 방직회사들은 전문상사가 판매를 맡고 있었다. 일본, 조선, 만주, 중국 등 제국 전체에 유통망을 가지고 있는 전문상사가 판매와 대금회수를 기능적으로 맡고 있었다. 

“아직 제대로 된 유통망을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그러면 업계를 다시 한 번 살피고 나중에 얘기합시다. 장사란 이문을 가지고 얘기하는 거요.”

가난 속 밑바닥에서 발로 뛰어 거상(巨商)이 된 박승직과 교토제국대학을 졸업한 엘리트 김연수의 첫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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