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 폰이 울렸다. 화면에 ‘다미’라는 정겨운 문자가 떠올랐다. 초등학교 5학년인 외손녀다. 버튼을 누르고 전화를 받았다.
“할아버지 나 반장 됐쎠”
어리광이 섞인 끝이 흐트러진 발음이다.
“손녀 축하해. 앞으로 김다미가 아니라 김반장님이라고 불러드려야겠네.”
전화 저쪽에서 좋아하는 손녀의 마음이 느껴진다.
“나 아이들 앞에서 일어나서 차려 경례!도 해 봤어.”
손녀가 자랑했다. 내성적이고 항상 말이 없던 손녀였다. 뭘 물어도 “몰라”하고 대답을 하지 않았었다. 설치지 않는 손녀의 조용한 침묵이 반장으로 만들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손녀의 엄마인 내 딸의 중학교 시절 어느날이 불쑥 기억속에서 떠올랐다.
“아버지 나 성공해야겠어.”
“성공이 뭔데?”
내가 딸에게 물었었다.
“반장이 되는 거”
딸은 그렇게 알고 있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아이들에게 사회는 경기장 같을 것이다. 우리들은 눈가리개를 한 채 트랙 위에서 목숨을 걸고 달리는 경주마였다. 결승점이 명문 학교였고 남이 부러워하는 직업이었고 부자가 되는 것이고 유명인이 되는 것이었다. 한 명의 성공 뒤에는 천명의 실패가 존재했다. 영원할 것 같은 성공도 순간이었다. 대법관을 지낸 친구가 작은 커피점 구석에 앉아 허망한 눈길로 가만히 앉아있는 걸 보기도 한다. 한때 대단한 인기를 누리던 여배우를 알아보는 젊은이들이 없었다. 그런 성공들은 어린 시절 낯에 밖에 나가서 딱지치기 구슬따기 노릇을 하고 두둑한 딱지나 구슬들과 비슷한 지도 모른다. 해가 지면 집으로 돌아와 닦고 잠이 드는 아이들에게 그것들은 잠시 재미있던 장난감이다. 인생의 성공도 그 비슷한 게 아닐까. 어제저녁 늦게 가로수길에서 커피와 빵을 만들어 팔고 있는 친구의 가게에 갔었다. 소아마비로 어려서부터 몸이 불편한 그 친구는 일본에서 장인에게 ‘앙꼬’를 만드는 법을 배워왔다. 칠십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자신의 가게에서 하루종일 일하면서 빵과 커피를 마시는 젊은이들에게 공손하게 인사를 한다. 밤 열시 경이면 가게 문을 닫고 그때부터 반죽을 하고 팥을 끓인다. 순간순간이 정성과 성실이다. 맑은 물에 팥을 씻고 끓인다. 고운 체로 껍질을 모두 걸러 낸다. 도넛에 넣을 팥소의 양이 줄더라도 그렇게 해야 부드러운 식감을 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종업원들이 모두 퇴근하고 진열장의 불도 꺼져 있었다. 칠십을 바라보는 나이인데도 그는 밤 열 한시부터 새벽 한두시까지 그렇게 한다. 일본의 장인에게서 배운 태도라고 했다.
나는 1926년 7월에 발표된 한 일본인의 ‘성공의 비결’이라는 짧은 글을 읽었다. 그 일본인의 문하에서 일본수상과 정치인등 수많은 지도자들이 나왔다. 그는 이런 주장을 하고 있었다.
‘성공 본위의 미국주의의 흉내를 내지 말라. 성실 본위의 일본주의를 본받으라’
그 한마디가 가슴에 다가왔다. 어려서부터 들어왔던 소리는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얘기였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공하면 된다는 것이다. 성공하지 못한 과정의 성실은 무의미했다. 그 일본의 정신적 지도자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성공하는 비결은 별다른 게 아닙니다. 성공을 서두르지 않는 것입니다. 성공을 추구하지 않는 것입니다. 성공하려고 조바심을 치지 않는 것입니다. 성공은 하늘에 맡기고 자기 자신은 그날그날 해야 할 일을 성실히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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