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인정받지 못하는 동양의학

운영자 2019.11.11 15:08:37
조회 317 추천 3 댓글 1
창신동 골목에서 조그만 옷가게를 하는 여인이 있었다. 몸이 아팠던 그녀는 스스로를 고치기 위해 수지침 강습을 나갔다. 오랫동안 자신의 몸에 수지침을 놓다가 깨달은 점이 있다. 인간 전체를 핏줄이 그물망같이 감싸고 있었다. 보일러의 물이 파이프를 통해 잘 돌아야 방이 따뜻하듯이 사람도 피가 원활히 돌아야 건강해지는 것이다. 그녀는 주변에서 온몸이 쑤시고 아프다는 할머니들을 보고 마사지를 해 주기 시작했다. 별 게 아니었다. 두 엄지손가락으로 아프다는 사람의 전신의 혈관을 눌러주면 모두들 시원하다고 하면서 좋아했다. 피의 흐름이 원활하면 주변에 굳었던 근육들이 풀어지는 것 같았다. 침이나 다른 도구를 쓰지 않고 손가락으로 누르는 행위는 법에 위반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사람들에게 돈을 받는 것도 아니었다. 어느 날 손가락이 오그라든 육십대 말쯤의 여자가 소문을 듣고 그녀를 찾아왔다. 젊어서 농사를 짓다가 낫에 손가락을 베고 난 후 그렇게 손가락이 오그라들었다는 것이다. 그녀는 찾아온 노인의 오그라든 손가락을 매일 조금씩 주물렀다. 그 부위의 모세혈관에 피가 돌게 하려는 것이었다. 신기하게도 오그라든 손가락이 조금씩 펴지기 시작했다. 보름쯤 되자 손가락이 거의 정상이 됐다. 아팠던 사람의 얼굴이 환하게 변하는 걸 보면서 그녀는 보람을 느꼈다. 그렇게도 이웃의 사람들을 도울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그 얼마 후 삼십대 말쯤 되는 여자가 얼마 전 치료를 받은 노인의 딸이라고 하면서 찾아와 다짜고짜 다그쳤다. 

“아주머니 자격증 없이 한 거죠?”

그녀는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그런 거 없는데 왜 그러죠?”

“우리 어머니가 여기 와서 치료를 받았는데 손가락 뼈에 금이 갔대요. 병원에 가서 엑스레이도 찍었어요.”

“그러면 내가 어떻게 해 드려야 해요?”

겁을 잔뜩 먹은 그녀가 되물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돈으로 손해배상을 하셔야죠.”

“얼마나요?”

“오천만원 주세요.”

“그렇게나 많이요? 난 그냥 좋은 일 하려고 한 것 뿐인데”

“자격없이 하신 거니까 의료법 위반으로 걸리면 벌이 엄할걸요.”

이십년간 하던 작은 옷가게의 보증금을 다 빼도 그 돈을 주기에는 모자랐다. 그녀는 고소를 당하고 법정에 섰다.

“무슨 자격으로 사람들을 치료하셨죠?”

재판장의 질문이었다. 그녀는 할 말이 없었다. 변호사였던 나는 딱한 사정을 법정에서 변론했다. 다행히 그녀는 관대한 처분을 받는 것으로 끝이 났다. 

 

또 다른 의료법 위반 사건을 맡아 변호를 한 적이 있다. 기소가 된 사람은 백 세 살의 장병두라는 노인이었다. 그는 최고령의 한의로 화타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조선말 궁전에서 의관을 하던 사람에게 의술을 배웠다고 했다. 그가 신비한 인물로 언론에 알려지면서 수많은 환자들이 그를 찾고 있었다. 

2008년 6월 9일 휘경동의 허름한 연립주택의 온돌방에서 그를 봤다. 자그마한 덩치의 깡마른 노인이었다. 부산에서 올라왔다는 부부가 몇 시간 째 기다리다가 진료를 받고 있었다. 특이한 모습이었다. 노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환자의 등을 손으로 이리저리 만져보면서 말한다.

“병이 서른일곱 살 때부터 시작된 거여. 당 때문에 이제는 눈도 침침하지? 내가 고쳐줄 게 염려하지 마러”

백 살이 넘은 노인의 어눌한 말투가 오히려 신뢰성을 주고 있었다. 그 방에는 판사를 얼마 전에 그만 둔 황변호사가 앉아 있었다. 의료법위반 사건을 재판하다가 그만 대체의학에 매료됐다고 했다. 그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환자한테 자세히 얘기를 듣지도 않고 병을 맞추네요, 정말 이 할아버지 진단을 보면 귀신기가 있어요. 이게 동양의학의 신비성이죠. 그런데 이런 동양의학의 진수를 뭉개버려서 되겠습니까? 한국에서도 신화 같은 민중 의사들이 있어 왔어요. 그런 의사들이 조선시대부터 있다가 법 저쪽의 낭떠러지로 떨어지게 된 거죠. 의사 한의사면허가 없으면 진료도 할 수 없고 약도 줄 수 없으니까요. 그러면 서양의학의사들이 못 고치는 병이 많은데 그 병을 앓는 사람들은 어디로 가라는 말입니까”

진료가 끝나고 화타로 불리는 백 살이 넘은 노인과 얘기를 시작했다. 노인의 과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내가 어렸을 때 머슴을 살았어. 밥만 얻어먹어도 황송했지. 머슴 다음에는 삼년 동안 미꾸라지 잡는 일을 했어. 그걸 잡으면 어머니가 장에 가서 팔아 그걸 쌀로 바꿔왔지. 일본 놈들이 우리나라로 들어왔어. 그동안 가지고 있던 엽전이 똥값이 됐어. 그때 조선 사람이 일본 순사 앞잡이 가 되어 가지고 설쳤어. 일단 순사 앞잡이가 노리면 거기 걸린 사람은 모두 유치장에 들어갔어.” 

그는 살아있는 역사였다. 노인의 말이 계속됐다.

“내가 그 다음은 먹고 살려고 사람들 손금을 봐 줬어. 그걸 공부하니께 시골 사랑방에 모인 사람들이 너도나도 손금을 봐 달라고 하더래니께. 밤새 잠도 못 자고 남들 손금을 봐 줬지. 그러다가 풍수 공부를 했어. 여기저기 산을 돌아다니면서 명당을 잡아 준 거야. 그러다 육경신 수련을 하게 된 거야. 그게 뭐냐면 경신일 잠을 자지 않고 하늘과 교통을 하는 거야. 그 능력을 얻으면 환자가 와도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저절로 알게 되는 거지.” 

의료법 위반으로 재판을 받던 그 노인에게 환자들이 구름같이 밀려들고 있었다. 어느 날 법원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우리 집사람이 오래 앓고 있어요. 의료법위반으로 기소된 그 화타노인의 진료를 좀 받게 해 줘요.”

대법원의 직원이라는 사람한테서 연락이 왔다.

“제가 암을 앓고 있습니다. 그 노인이 지은 약을 먹고 싶습니다. 좀 도와주십쇼.”

법관들은 앞에서는 처벌하고 뒤에서는 사정을 하는 현실이었다. 세상은 엄격하게 자격증을 요구했다. 그러나 병이라는 것이 서구의학이나 한의과 대학병원에서 단정한 것만이 병일까?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의사나 한의사 자격을 딴 사람만 치료를 독점하게 하는 게 절대 선일까? 세상에는 과학으로 증명이 안 되는 여러 가지 병도 있고 큰 병원에서 치료방법도 대체의학의 여러 방법들이 동원되고 있다. 한의대를 졸업하고 수십 년 한의원을 한 친구들은 비싼 수업료를 내면서 무자격 침술사한테 침을 배우는 걸 보기도 했다. 무당들이 앓는 신병은 몸에 귀신이 들어와서 그런 것이라고 한다. 지금도 전 세계적으로 읽히는 성경 속에서 예수와 그의 제자들은 병을 일으키는 귀신을 쫓아내느라고 바쁘다. 정신과 의사들 중에는 그 분야를 인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자격증은 다른 면으로 보면 독점적인 밥그릇이다. 밥그릇 싸움 때문에 좋은 침술사들이 자격증을 얻지 못해 몰래 치료하다가 벌을 받기도 한다. 선한 일을 하다가 고약한 인간을 만나면 그들의 밥이 되는 것이다. 아픈 사람을 위해 선한 일을 했다면 법도 좀 더 넓게 치료행위를 인정해 줘야 하지 않을까. 여유로운 시각으로 그들을 봐 줬으면 좋겠다.

추천 비추천

3

고정닉 0

0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등록순정렬 기준선택
본문 보기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설문 운전대만 잡으면 다른 사람이 될 것 같은 스타는? 운영자 24/04/15 - -
이슈 [디시人터뷰] 집념닥터, ‘내가 사랑하는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 운영자 24/04/16 - -
3324 벗꽃 잎 같이 진 친구 운영자 24.04.15 29 1
3323 조용한 기적 운영자 24.04.15 23 1
3322 감옥은 좋은 독서실 운영자 24.04.15 23 0
3321 앞이 안 보이는 사람들 운영자 24.04.15 20 0
3320 미녀 탈랜트의 숨겨진 사랑 운영자 24.04.15 31 1
3319 두 건달의 독백 운영자 24.04.15 24 0
3318 명품이 갑옷인가 운영자 24.04.15 18 0
3317 나는 될 것이라는 믿음 운영자 24.04.15 20 0
3316 오랜 꿈 운영자 24.04.08 49 2
3315 그들은 각자 소설이 됐다. 운영자 24.04.08 51 1
3314 나이 값 [1] 운영자 24.04.08 62 1
3313 검은 은혜 [1] 운영자 24.04.08 52 3
3312 실버타운은 반은 천국 반은 지옥 [1] 운영자 24.04.08 61 2
3311 늙어서 만난 친구 운영자 24.04.08 34 1
3310 그들을 이어주는 끈 [1] 운영자 24.04.01 134 2
3309 그가 노숙자가 됐다 [1] 운영자 24.04.01 91 3
3308 밥벌이를 졸업하려고 한다 [1] 운영자 24.04.01 97 2
3307 허망한 부자 [1] 운영자 24.04.01 100 2
3306 죽은 소설가가 말을 걸었다. [1] 운영자 24.04.01 93 2
3305 개인의 신비체험 [2] 운영자 24.04.01 97 2
3304 나는 책장을 정리하고 있다. [1] 운영자 24.04.01 86 2
3303 노인의 집짓기 [1] 운영자 24.04.01 83 1
3302 똑똑한 노인 [1] 운영자 24.03.25 114 2
3301 곱게 늙어간다는 것 [1] 운영자 24.03.25 118 4
3300 두 명의 교주 [1] 운영자 24.03.25 114 1
3299 영혼이 살아있는 착한 노숙자 [1] 운영자 24.03.25 102 1
3298 팥 빵 [1] 운영자 24.03.25 97 0
3297 얼굴 [1] 운영자 24.03.19 120 1
3296 이별의 기술 운영자 24.03.19 102 1
3295 노년에 맞이하는 친구들 운영자 24.03.19 93 1
3294 노년의 진짜 공부 운영자 24.03.19 89 0
3293 주는 즐거움 운영자 24.03.19 80 1
3292 장사꾼 대통령 운영자 24.03.19 103 1
3291 나는 어떻게 크리스챤이 됐을까. 운영자 24.03.19 117 1
3290 태극기부대원과 인민군상좌 운영자 24.03.19 89 2
3289 결혼관을 묻는 청년에게 [4] 운영자 24.03.11 274 0
3288 손자의 마음 밭 갈기 운영자 24.03.11 120 1
3287 어떤 여행길 운영자 24.03.11 124 2
3286 나의 돈 쓰는 방법 [5] 운영자 24.03.11 2217 12
3285 순간 순간 몰입하기 운영자 24.03.11 128 1
3284 먼지 덮인 수필집으로 남은 남자 운영자 24.03.11 114 1
3283 아버지 제사 운영자 24.03.11 115 2
3282 속을 털어놓기 운영자 24.03.04 131 1
3281 반전의 묘미 운영자 24.03.04 122 1
3280 성공과 승리 운영자 24.03.04 139 2
3279 영정사진 속의 표정들 운영자 24.03.04 119 2
3278 세 가지 선택 [1] 운영자 24.03.04 146 2
3277 인생의 작은 맛 [1] 운영자 24.03.04 153 2
3276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두 손님 운영자 24.03.04 129 1
3275 인생 무대는 연습이 없다 운영자 24.02.26 157 2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뉴스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