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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친일마녀사냥 142 - 제 정신만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운영자 2019.12.02 16:07:26
조회 112 추천 0 댓글 0
친일마녀사냥


142


“제 정신만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얼어붙은 감방 마룻바닥에서 김연수(金秊洙)의 감옥생활은 계속됐다.

감옥이란 곳은 인간을 한없이 비겁하고 동물 수준으로 치사하게 만드는 곳 같았다. 박흥식의 가족이 사탕 몇 봉지를 들여보냈다. 박흥식이 게걸스럽게 그걸 먹는 걸 보면서 놀랐다. 성공한 신흥기업인으로서 신화의 주인공이던 예전 그의 모습이 아니었다. 

김연수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무릎을 꿇고 앉아 묵상을 했다. 가족들이 자주 면회도 오지 못하게 하고 들여보내는 옷가지나 침구도 사양했다. 며칠 사이에 동상에 걸려 발톱이 모두 빠져 나갔다. 

매제 김용완(金容完)이 구명(救命)운동을 위해 형님에게 가는 것 같았다. 한민당 당수인 형님은 해방정국의 국가적 지도자가 됐다. 주변에서는 형님이 이 나라의 대권(大權)을 잡기를 고대하고 있었다. 

매제인 김용완이 면회를 와서 씁쓸한 얘기를 했다. 형의 측근들이 자신과의 관계를 멀리 하려고 냉담한 태도를 보인다는 것이다. 그의 친일혐의는 대권주자로 부상하고 있는 형에게 흠이 된다는 것이다. 정치인이면 지조가 있고 독특한 노선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는 사업가였다. 일본관료나 은행장과 만났다. 그들과의 관계를 통해 조선인의 일자리를 만들고 농장을 개척했다. 사업가로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교토대학 경제학부 동창인 일본인들 중에서는 정말 좋은 친구들이 많았다. 그들은 사업적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조선총독부 관료들에게 부탁도 해주고 압력도 넣어줬다. 수천 명 직원들의 삶과 사업을 위해서라고 생각하며 한 일들이었다. 왜 정치논리가 경제인인 그에게 치밀한 잣대로 적용되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형 김성수가 대표하는 한민당의 자금줄이었다. 임정(臨政)과 좌익 한민당과 이승만(李承晩) 대통령 모든 정치세력이 남모르게 자신이 번 돈을 사용했다. 그러면서도 이제 그는 속죄양이 되어야 할 입장이었다. 

친일과 반일, 민족과 반민족이라는 흑백논리가 마땅치 않았다. 그는 이미 친일파라는 수렁에 빠져 헤어날 수 없었다. 그게 사회적 분위기였다. 중추원 참의 직에만 있었어도 당연히 친일파로 법이 간주하는데 항변할 여지도 없었다. 

그가 두 번째로 반민특위에 불려갔다. 1949년 2월7일 오후였다. 反민족행위 특별조사위원회 제2조사부 조사관 서상열은 서기 임영환을 입회시키고 신문을 계속한다고 공식적으로 말했다. 

“관선(官選) 도의원 임명 당시 소감은 어땠나?”

서상열 조사관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서기가 그의 말을 조서에 받아 적을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민족적 입장에서는 수치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이러한 직을 갖게 된 것은 정도의 차는 있지만 어떤 개인의 운명이라고 하기보다는 우리 全 민족의 운명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도의원 임명 전보를 받을 때 친구 박석기(朴錫紀)라고 하는 사람한테 전보를 읽어보라고 했었는데 그 의도가 뭔가?”

“박석기는 동대(東大) 문과 출신으로 우리는 같이 반일사상을 가지고 있는 사이였습니다. 그 전보를 받고는 너무 어이가 없어서 일본인들의 공교한 정책을 보라는 의미에서 전문(全文)을 박석기에서 보여준 겁니다.”

“그럼 도의원을 사절한다는 전문을 보낼 때 박석기도 읽어봤나?”

“읽어봤다는 것보다 저와 함께 거절 전문을 만들었습니다.”

“도의원이 회의에 한 번도 참석하지 않은 이유는 뭐지?”

“일본인들은 강제로 그 직을 내게 맡겼지만 양심이 수락치 않았습니다.”

“만주국 명예총영사 임명 당시 소감은 어땠나?”

“도의원 될 때와 다름이 없었습니다. 그런 관직명이 신문에 발표될 때마다 제 양심이 괴로웠습니다. 그렇지만 도의원이 되던 쇼와 8년(1933년)과 명예총영사가 되던 쇼와 14년(1939년)은 정세가 달랐습니다. 순전한 강제였으니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해외로 망명한다면 몰라도 실업가로 존재하는 사람이 왜정(倭政) 하에서 곤란한 입장은 이루 다 말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제 정신만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당신은 만주에 큰 사업체를 가진 사람인데 사업을 키울 야심으로 영사직을 이용하려고 했던 것 같은데 어떤가? 총영사직을 부득이 수락했다는 게 말이 될까?” 

“쇼와 10년(1935년)에 세계적인 일본 방직기업들에 맞설 의도로 시흥역 앞에 10만 평 공장부지를 마련하고 기계까지 구입했었습니다. 그러나 쇼와 12년(1937년) 일본정부가 기업정비령을 발표하는 바람에 도저히 국내에서 공장을 창설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쇼와 13년(1938년)에 만주에 제2공장을 창설하겠다고 신청했습니다. 만주에 공장을 만들어 실직자로 유랑하는 교포들을 구제하고 경영의 편리를 도모하기 위해서 그런 겁니다. 그런 상황에서 시간적으로 총영사와 만주의 공장은 거리가 멉니다.”

“만주회사를 그런 포부로 만들었다면 실제로 주민들에게 편리를 봐준 게 뭐지?”

“직공이 1200명이나 되는데 한 사람도 외국인이 없었고 전부 한국인들만 채용했고 그게 자랑이었습니다. 또 당시 순 한국인들만으로 근대적인 방직공장을 경영하는 걸 보고 중국인들이 조선인에 대해 인식을 새로 한 점도 있었습니다.”

“중추원 참의가 됐다는 보도를 보고 직접 중추원으로 들어갔었다고 했는데 왜 그랬나?”

“물론 민족적인 감정도 있었죠, 그렇지만 공직(公職)을 제가 원래 싫어하고 또 임명 전에 일언반구 상의가 없었던 게 불쾌해서 좀 싸워볼 결심으로 갔었죠.”

“그럼 끝까지 거절해야지 그렇게 하지 못했잖나?”

“조사관님, 그 자리에서 나 한 사람이라면 감옥에 갈 각오를 하고 끝까지 싸웠을 겁니다. 그건 차라리 쉬운 일이죠. 그렇지만 내 사업에 매여 있는 사람이 4000명입니다. 그 사람들의 생명이 달려 있는 걸 생각하면 감정의 지배를 받을 수만은 없습니다.”

“일억일심(一億一心)이라는 논문을 써서 매일신보에 게재했지?”

“내 자신이 원고를 만들어서 신문사에 제출한 일은 없습니다. 당시가 전쟁시기였고 일본인들의 한 지역이 함락되거나 그들에게 경사스러운 일이 있을 때 유명 인사들의 의견발표가 더러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전화로 어떤 감상을 물어올 때 알아서 적당히 쓰라고 한 적은 있습니다.”

“만주에서 개척사업을 했다는데 뭘 했나?”

“황무지를 개척해서 수전(水田)을 만들었습니다.”

“왜 그랬지?”

“노예생활을 하고 있는 우리 교포들의 편리를 도모하자는 데서 출발했습니다.”

“그 출발 취지를 달성했나?”

“빈민들에게 주택을 제공하고 농사를 짓게 했으니까 출발시의 취지를 달성했다고 봅니다.” 

서상열 조사관은 김연수를 돌려보낸 후 소환해 대기시키고 있던 김용완과 박석기 중 먼저 김용완을 불러 확인했다.

“김연수가 만주에 방적회사를 만든 동기는 뭔가?”

“경성방직의 제품인 불노초의 만주시장의 판로를 개척하고 만주의 한인 200만 명의 산업대표기관을 설립하자는 취지였습니다.”

“김연수가 남만방적회사를 설립한 일자는 어떻지?”

“1939년 9월 정식으로 허가가 나왔습니다.”

“김연수가 만주의 일본총영사로 임명된 시기는?”

“1939년 6월경일 겁니다.”

“일본 정치하에서 김연수는 많은 명예직을 가지고 각계에서 상당한 활동을 했다는데?”

“부득이한 사정으로 여기저기 이름은 걸고 있었지만 우리 민족에게 불리한 행동을 하는 분은 아닙니다.”

서상열은 이번에는 대기하고 있던 박석기(朴錫紀)를 불렀다. 50세의 박석기는 국악원 촉탁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김연수가 일제하에서 도의원에 임명된 동기를 아나?”

“농장에서 만났을 때 전보가 왔다는 소리는 들었는데 무슨 내용인지는 몰랐다가 장성역전 일본인 여관에서 그 사실을 확실히 알게 됐습니다.”

“그 직책을 사절한다는 전문(電文)을 김연수와 같이 만든 일이 있나?”

“거절을 표시하는 전문을 만든 건 사실입니다.”

“됐어, 여기 서명하지.”

조사관 서상열은 다음날 동아일보 사장인 최두선(崔斗善)을 위원회로 불러 확인했다. 

“김연수가 만주국 명예총영사로 임명된 동기를 잘 안다고 하던데?”

“쇼와 13년(1938년)부터 김연수 사업에 관계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잘 압니다. 박영철이란 인물이 만주국명예영사를 사임하게 되자 만주에 큰 사업체를 가지고 있다는 약점을 잡아 김연수를 강제로 명예영사에 임명을 시켰던 겁니다. 김연수가 삼사차 요리점에 불려 다니면서 거절했다는 건 사실입니다.” 

“그때가 정확히 몇 년도인가?”

“쇼와 14년(1939년)일 겁니다.”

“중추원 참의가 된 동기도 당신이 잘 안다던데?”

“중추원 참의가 된 건 김연수 본인도 모르고 있었죠, 회사에서 신문을 보고 김연수도 자신이 중추원 참의가 된 걸 알게 됐죠. 그후 몇 번 김연수가 거절을 하러 다닌 걸 제가 잘 압니다. 그렇지만 이미 임명이 됐는데 무슨 수로 거절을 하겠습니까? 김연수가 부득이 그대로 이름을 걸어놓고 지낼 수 밖에 없었죠.”

“김연수가 총력연맹 후생부장이 된 동기도 최두선 당신이 잘 안다던데?”

“김연수가 만주회사에 출장 중 임명이 됐다는 말을 들었죠, 김연수가 귀국해서 직접 총독부에 가서 진상을 물었습니다. 총독부에서는 김연수의 성격을 잘 알기 때문에 미리 임명을 하고 나서 미안하다는 뜻을 전하려고 했다는 겁니다. 김연수가 강제임명을 당했다고 불쾌히 생각했던 걸 제가 잘 압니다. 김연수는 그걸 피하려고 병원에 입원까지 했던 겁니다. 

병원에 입원해서 이런 계획을 세웠습니다. 명예직과 회사에 관계하고 있던 곳 등 20여 곳의 직함에 사표를 냈던 겁니다. 그 당시 그 심부름을 제가 하고 있었던 관계로 잘 압니다. 그 중에서 명예영사, 중추원 참의, 후생부장은 김연수가 직접 사표를 들고 찾아다닌 것까지도 잘 압니다. 그리고 그 외는 전부 서면으로 사표를 냈습니다. 그 결과 후생부장 직만 정식으로 사임이 됐습니다.”

“후생부장 직을 사임한 그때가 언제지?”

“쇼와 18년(1943년) 4월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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