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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2019년 가을 대한민국 6 - 내가 본 북한

운영자 2019.12.09 12:06:52
조회 143 추천 1 댓글 0
2019년 가을 대한민국


6


내가 본 북한



6.25 전쟁을 겪은 세대들에게는 북한에 대한 공포가 대단했다. 전쟁 당시 남쪽의 좌익들에게 살해된 기억도 그대로 각인되어 있다. 중학 시절 겨울이면 우리들은 북한군이 얼어붙은 임진강 위로 넘어온다는 소리를 들으면서 겁에 질려 살았다. 이제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해 일급군사국가가 됐다. 많은 사람들에게 북한은 성경 속의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거대한 괴물같이 인식하는 것 같다. 전쟁의 공포가 황사같이 끼어있는 나라에서 나는 누구였으며 어떻게 살아왔던가. 그리고 북한을 어떻게 보아왔나. 함경도가 고향인 부모들로부터 일단 좌익들은 거짓말이 많은 사람들이라고 들었다. 이론은 번드르르 하지만 겉만 그렇다고 했다. 어머니는 외국선교사들을 무릎 꿇리고 뒤에서 총을 쏴 처형하는 장면을 직접 보았다고 했다.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법무장교로 입대해서 최전방 철책선 부대에서 근무했다. 남북의 대치현장을 직접 눈으로 보고 몸으로 체험하라는 사단장의 명령에 따라 철책선 안의 위험지역을 수시로 순찰했다. 처음 순찰을 시작할 때는 잔뜩 겁을 먹었었다. 권총에 실탄을 장전했다. 적에게 포로가 되면 자살할 생각이었다. 지뢰를 밟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발길이 떨어지지를 않았다. 점차 겁이 없어졌다. 앞의 북한군 초소에서 밥 짓는 연기가 올라오기도 했다. 한 북한군 병사를 ‘엎드려 뻗쳐’ 하고 자기네들끼리 기합을 주는 장면을 목격하기도 했다. 손나팔을 하면서 소리치니까 자기들끼리 슬며시 참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직접 보니까 점차 겁이 없어졌다. 눈 덮인 전선에서 북의 선전방송이 들렸다. 따분한 사상선전이었다. 나는 우리 쪽 GP에 가수 송창식의 노래 ‘왜 불러’를 크게 틀라고 했다. 점점 대담해졌다. 캄캄한 밤에 지프차의 헤드라이트를 활짝 켠 채 보라는 듯이 철원평야를 가로지르곤 했다. 순찰을 돌다가 참호에 밤새 웅크리고 있는 병사에게 무슨 생각을 하냐고 물었다. 일부러 없는 척 하고 적을 유인하는 중이라고 했다. 하나라도 잡고 포상휴가를 가고 싶다고 했다. 사단장은 적 쪽에서 총알 한 방이라도 날아오면 즉각 발칸포로 보복하라고 명령했다. 바람이 북쪽으로 부는 날이면 마른 풀밭에 불을 붙였다. 불이 북쪽으로 타들어 가면서 지뢰들이 터지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북쪽은 항의조차 할 수 없었다. 사단에서 참모회의가 열릴 때였다. 북한군이 쳐들어오면 우리 사단은 일단 24시간은 버텨내야 했다. 병사들의 발에 서로서로 쇠사슬을 채우기로 했다. 일정 거리의 뒤에 헌병들을 배치하기로 했다. 겁을 먹고 도망가려는 병사는 즉결처분이었다. 그리고 나서 적에게 점령을 당하면 우리는 그곳의 산으로 올라가 유격대의 임무를 수행하기로 되어 있었다. 사단장을 비롯해서 장교와 병사들까지 모두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겁은 오히려 후방의 일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제대를 하고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여러 종류의 북한 사람들을 만났다. KAL기 폭파범 김현희부터 남쪽으로 넘어 온 북한의 통전부 요원, 사회안전부요원들을 만나기도 했다. 그들은 북한사회를 몰라서 그렇지 의외로 허약해서 바로 무너질 수도 있는 사회라고 내게 말해주었다. 주체사상을 만든 황장엽 씨의 변호를 맡지 않겠느냐는 연락을 받기도 했었다. 김일성의 친구 격인 그는 북한을 떠나지 않아도 여생을 잘 살 수 있었다고 한다. 북한의 사상적 기초인 주체사상을 만든 그는 더 이상 북한에 희망이 없다고 판단한 사람이었다. 북경에서 우연히 김일성대학 교수를 보기도 했었다. 나이가 같았다. 내가 장교로 군복무시절 그는 우리 사단과 대치하고 있는 인민군 사단에서 근무했다고 말했다. 그는 아버지가 혁명투사이고 인민군 소장 출신이고 가족과 함께 평양의 넓은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고 내게 자랑하기도 했다. 그는 자신과 나를 비교해 보고 있었다. 가진 재산이 얼마나 되는지 어떤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지 세계여행은 얼마나 했는지 모두가 그의 관심 대상이었다. 어느 순간 그가 주눅이 드는 모습이었다. 그가 동남아를 여행한 특권을 자랑할 때 나는 세계일주 크루즈를 한 경험을 말해주었다. 나는 그에게 좌파이면서 왜 그렇게 마르크스 레인주의 사상이나 모택동 사상 그리고 러시아 혁명에 대해 모르냐고 물었다. 나는 자유롭게 사상 서적과 운동권의 자료들을 보곤 했었다. 그는 북한은 공산주의가 아니라고 했다. 러시아와 거리가 멀어지면 러시아 쪽의 서적이 모두 없어지고 중국과 관계가 나빠지면 중국 책들을 보지 못하게 했다고 했다. 결론적으로 자기는 사상적으로 무지하다고 고백했다. 그게 북한의 상류층의 의식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전해들은 얘기들도 있었다. 북으로 간 사람들의 대접도 천태만상인 것 같았다. 남북합작 사업을 일구어낸 사람은 순안공항에 내리자마자 벤츠로 평양까지 갔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좌파성향 매체의 한 기자는 벤츠를 타고 평양 시내를 구경했다고 한다. 북한에 많은 돈을 지원하는 목사들 중에는 칙사대접을 받는 사람들도 있었다. 소설가 황석영 씨가 북한에 있을 때 겪은 사실을 쓴 책들을 보면 평양에서 김일성 주석을 만나 함께 밥을 먹으면서 나눈 정치적 내용의 대화 내용이 들어 있었다. 미국 시민권을 가지고 북한의 나남시로 가서 살면서 오랫동안 선교 활동을 하는 선배가 있다. 그는 북한을 우리 머릿속에 세뇌된 것 같이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고 했다. 북한도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 사람들 중에도 은밀한 무역으로 부자가 생겨난다는 것이다. 해외에 나가 몇 만 불을 아무렇지도 않게 쓰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그곳 평범한 주민들의 삶도 많이 변했다고 했다. 배급이 끊어진 후 암시장이 생기면서 백 불만 있으면 노점을 차릴 수 있다고 했다. 처음에는 단속원을 무서워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단체로 저항할 정도로 바뀌었다고 했다. 의식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금강산을 구경하기 위해 북한을 간 적이 있었다. 고성에서 버스를 타고 군사분계선을 넘었다. 우선 양측 병사들의 모습이 비교됐다. 우리 쪽 병사들은 훤칠하게 키가 크고 건강이 좋아 보였다. 헬멧에 햇빛이 튕기고 있었다. 바로 북한의 병사들이 보였다. 작고 얼굴이 노랬다. 영양실조인 느낌이었다. 철모도 쓰지 않고 천으로 된 둥근 모자였다. 내가 처음 본 북한군 하사관은 이상하게 눈에 독기가 서린 것 같았다. 그는 내게 변호사가 뭐 하는 사람이냐면서 잔뜩 건방을 떨었다. 금강산을 관광하는 손님이 거의 없을 때였다. 다른 관광객들이 산으로 갈 때 나는 초대소에 머물렀다. 온천탕에서 목욕을 하고 나와 휴게실로 갔다. 그곳에 근무하는 북한군 병사 몇 명이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화면에는 남한에서 방영되던 ‘제5공화국’이라는 드라마가 나오고 있었다. 전두환의 심복 이학봉 역을 맡은 탤런트가 권총을 차고 검은 라이방을 얼굴에 쓴 채 참모총장을 연행하고 있었다. 그걸 보는 북한군 병사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초대소 주변을 산책할 때였다. 여성 안내원 한 명이 옆에 따라 붙었다. 그녀는 내가 김정일이나 김일성이 왔다 간 기념으로 세운 자그마한 비석 위에 앉을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 그럴 사람같이 보인다고 노골적으로 말했다.

“변호사가 뭐 하는 사람입니까?”

그녀가 물었다.

“소송을 하는 직업이죠. 개인뿐 아니라 관청이 법에 어긋난 행위를 했을 때 행정소송을 제기해서 바로 잡는 직업이요.”

“그러면 엄청나게 쎈 지위시구만요.”

“높은 지위가 아니라 법치주의에서는 대통령도 법에 어긋나는 짓을 하면 탄핵이 되지.”

“그 말이 나왔으니까 한 마디 해도 되갔시요?”

“하라우요”

내가 장난삼아 북한 사투리를 흉내 냈다.

“남조선은 툭하면 대통령을 욕하고 그러던데 대통령이면 아버지 같은 존재 아니야요? 어떻게 집안 어른을 그렇게 막 욕할 수 있시요?”

“옛 말에 임금님도 뒤에서는 욕을 한다고 하는데 그게 뭐가 어때서? 뒤에서도 그렇게 꼭 위대하신 임금님 하고 마음에 없는 숭배를 해야 하나? 대통령을 마음 놓고 욕할 수 있어야 자유국가지. 여성 안내원 동지는 높은 사람을 마음대로 욕할 수 있는 사회가 좋겠어? 아니면 욕할 수 없는 사회가 좋겠어?”

내가 되물었다. 그녀가 잠시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마음대로 높은 사람을 욕할 수 있는 사회가 더 좋은 것 같아요.”

그렇게 말하던 그녀가 뭔가를 보더니 찔끔하는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저기 저 사람이 따라 붙어요. 조심하시라우요.”

그녀가 눈짓으로 가리키는 쪽을 봤다. 얼굴이 넓적한 중키의 남자가 멀찌감치 떨어져 우리를 따라오고 있었다. 그녀가 덧붙였다.

“사실 우리 인민들도 다 알아요. 이 금강산 사업을 남조선 현대 그룹 정주영 회장이 했다는 걸요. 겉으로는 자본가라고 욕하지만 속으로는 정주영 회장 도움으로 우리가 먹고 사는 걸 감사하고 있어요.”

그들의 속살은 부드럽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때 길가에서 고사리가 든 비닐봉지들을 쌓아놓고 파는 소년이 있었다. 내가 그 소년에게 말했다.

“고사리 한 봉지 얼마요?”

“십 달라 주세요.”

“하나 팔면 얼마 남아?”

“남다뇨? 저녁에 판 거 다 가져다 줘야 하는데”

소년은 의아스럽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그게 내가 껍데기만을 본 대충의 북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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