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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폭 두목의 하소연

운영자 2020.02.24 10:02:28
조회 235 추천 2 댓글 0
나는 소위 별 볼 일 없는 개인 변호사로 시작했다. 밥을 벌어먹기 위해서는 사건을 맡아 처리해야 하는 데 질 좋은 사건은 올 리가 없었다. 많은 돈을 받고 정략적으로 처리되는 사건은 전관예우를 받는 변호사에게 갈 수 밖에 없었다. 연쇄살인범, 조직 폭력 같은 질 나쁜 사건들을 맡는 경우가 많았다. 구치소의 접견실에서 살인마나 조폭 두목의 눈에서 흘러나오는 시퍼런 살기를 느낄 때는 등줄기에서 전율이 흐르기도 했다. 한 연쇄살인범은 발각되지 않은 시신을 묻은 장소를 알려주면서 의논하기도 했다. 그들을 대할 때마다 두려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목줄이 매여 있는 도사견의 우리 속에 함께 있는 것 같았다. 목줄만 풀리면 나는 순간적으로 죽을 것 같다는 공포가 다가오기도 했다. 항상 그들을 만날 때 먼저 마음속으로 겁먹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를 하곤 했다. 사시미칼로 여러 명을 난도질했다는 한 조폭 두목을 만나고 있을 때였다. 그 조폭두목이 이런 말을 했다.

“참 이상한 게 있어요. 잡혀 들어갔을 때 보면 검사들의 호기가 하늘을 찌를 듯 대단했어요. 그 분들이 변호사가 되면 일이 터졌을 때 가서 선임을 했어요. 보통사람들이 내는 돈의 열배 정도만 현찰을 만들어 가지고 가면 그걸 거절하는 사람이 없더라구요. 우리가 요구하는 대로 형량이 안 나오면 찾아가서 배를 한번 벽 쪽으로 밀어붙이면 얼굴이 허옇게 돼서 돈을 다 토해내더라구요. 더 보태주는 사람도 있구요. 검사실에서 권력을 등에 업고 있을 때만 강하지 권력의 옷을 벗으면 왜 그렇게 새가슴이 되고 어린 강아지처럼 약해지는지 몰라요.”

그는 별 생각 없이 자기가 겪은 일을 그대로 털어놓았다. 그의 말이 맞았다. 책상물림인 판사나 검사들은 학교시절부터 나약한 품성을 가진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나 역시 속으로는 벌벌 떨고 있었다. 갑자기 머릿속에 호기심이 섞인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앞에 있는 칼잡이 출신 조폭 두목에게 물었다.

“나도 변호사로 먹물 출신이니까 약한 게 맞아요. 몸도 둔하고 싸움도 못해요. 그렇지만 말이죠, 순간적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하나님한테 ‘조폭 두목인 저 사람과 싸우다가 같이 죽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하고 당신하고 맞짱을 뜨면 어떨까요?”

순간 그의 표정이 움찔하면서 변하는 느낌이었다.

“당신하고 나하고 아무도 없는 운동장에서 둘이만 그렇게 붙으면 어떨 것 같아요?”

내가 되물었다. 그가 잠시 신중하게 생각하는 모습이었다. 이윽고 그가 입을 열었다.

“그렇게 하면 내가 질 겁니다.”

“왜요? 어려서부터 운동도 하고 싸움에는 이골이 난 분 아닙니까? 연장질도 많이 하시고 말이죠.”

“물론 칼질은 아무나 못 합니다. 사람을 죽여본 놈이 죽일 수 있는 거지 보통사람은 칼을 들고 있어도 사람을 찌르지 못해요. 그렇지만 이 조폭 두목을 하는 건 그런 잔인성이나 주먹의 힘으로 하는 게 아니에요. 머리로 하고 나름대로 주먹 사회의 베푸는 덕과 용서로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지금 변호사님 같이 그런 각오로 덤빈다면 어떤 약한 사람도 제가 당해낼 수가 없는 거죠. 더 솔직히 말씀드릴까요? 이 교도소 안에서 걸어갈 때면 건달 출신 젊은 애들이 멀리서 나를 봐도 ‘형님’하고 허리를 굽힙니다. 내가 점잖게 인사를 받아도 속은 항상 춥고 무섭습니다. 칼질을 하던 놈이 칼을 제일 두려워하게 마련입니다. 저는 모르는 사이에 칼이 몸에 꽂힐까 봐 항상 공포 속에 있습니다.”

그는 솔직하게 자신의 마음을 다 표현했다. 그는 석방이 되어 그 세계에서 손을 씻고 자기 사업을 성공시켜 가고 있는 것 같았다. 어느 날 그가 삶은 닭 한 마리를 솥에 담아가지고 소박한 모습으로 나를 찾아왔다. 그가 이렇게 호소했다.

“나를 중상모략하고 감옥에 넣은 건 검사니까 공명심으로 그럴 수 있다고 이해합니다. 그런데 그 검사가 국회의원이 되고 도지사가 되고 대통령 후보까지 출세한 지금도 왕년에 나를 잡아넣었다고 자랑하는 소리가 전해 들려요. 사돈이 될 집에서 조폭과는 인연을 맺을 수 없다고 해서 아들이 결혼을 망쳤어요. 그래서 그분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 내 이름을 밝히면서 바꿔달라고 했어요. 그런데도 받지를 않더라구요.”

잃어버릴 게 많은 사람은 겁을 먹거나 불편하게 마련이다. 그런 경험들을 하면서 나는 깨달은 게 있다. 살자니 문제가 많지 죽자는데 무슨 문제가 있나. 죽을 마음으로 못할 일은 하나도 없다. 동시에 죽어야 살고 잃어야 얻는다는 게 세상의 법칙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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