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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판사의 참회

운영자 2020.03.02 09:58:18
조회 212 추천 2 댓글 0
한 유튜브 방송에 나온 젊은 판사가 이런 말을 하고 있었다.

“제가 판사가 되려고 열심히 공부한 건 판사가 높아 보이고 좋아 보였기 때문입니다. 판사 생활을 십 년쯤 했습니다. 다시 나를 보면 법원이라는 조직의 구성원이었습니다. 양심을 가지고 한 사건 한 사건을 처리하는 것 보다는 조직에 대한 생각이 먼저였습니다. 법관으로 다시 승진을 하고 출세를 하려면 엘리트 판사들이 모이는 법원행정처를 거쳐야 하는데 저는 그곳으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전에는 내가 보지 못하던 다른 것을 우연히 보게 됐습니다.”

그는 잠시 말을 끊었다. 나는 깜짝 놀라 핸드폰을 들고 화면에 나타난 그를 보았다. 작은 눈이 반짝이는 얼굴의 삼십대말이나 사십대 초쯤의 호리호리한 남자였다. 법관출신이 그런 고백을 하기는 쉽지 않았다. 나는 귀를 세우고 그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법원행정처의 윗분이 일을 시키는 데 이건 옳지 않은 겁니다. 법관은 오직 법률과 양심에 따라 재판해야 하는 걸로 배웠는데 그렇지 않은 현실을 알게 된 겁니다. 나는 왜 판사가 됐을까를 심각하게 생각해 봤어요. 여태까지 높은 자리를 욕심내고 어떤 신분이 되려고만 달려왔지 무언가 제대로 된 일을 하려고 한 적이 없었던 겁니다. 그래서 사표를 내고 나왔습니다.”

그 판사는 자기가 몸의 일부로 알고 있었던 특수한 마음의 렌즈를 벗은 것이다. 어떤 틀에 들어가 있던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이나 마음을 바꾸기란 정말 힘들다. 그런데 그 젊은 판사는 그걸 해 낸 것이다. 그가 또 이런 말을 했다.

“정수기 속에 작더라도 오물 하나가 들어가 있으면 물 전체가 오염됩니다. 제가 생활해 보면 판사들 중에 그런 존재가 있었어요. 그런데 그런 불순물이 세상에 알려져도 그대로 끝까지 법원에 남아 있는 거예요. 그러면 사람들이 어떻게 그 판사가 쓴 판결문을 믿고 승복하겠습니까? 대법원장은 판사징계를 해도 정직 일 년까지만 할 수 있을 뿐이예요. 나쁜 판사를 내쫓으려면 국회에서 탄핵을 해야 합니다. 국회의원들이 탄핵소추를 하고 헌법재판소에서 파면을 시켜야 하는데 어떤 국회의원도 잘못된 판사를 바로 잡자는 의견을 내는 사람을 보지 못했어요. 나중에 자신이 선거법 위반으로 재판에 걸리면 어떻게 하나하고 겁을 먹어서 그런 거죠. 법원은 선거법을 위반한 국회의원에게 백만 원 이상 형을 선고해서 자격을 박탈하잖아요? 그런데 국회의원은 판사한테 그러지를 못하는 겁니다. 뒤가 떳떳하지 못해서 그렇죠. 검찰총장 청문회 때도 보세요. 나중에 수사를 당할까봐 겉으로 질문을 하는 척만 하잖아요? 저는 판사생활을 했지만 탄핵으로 엉터리 판사들을 쫓아내야 합니다. 탄핵도 징계절차입니다. 제도가 있으면서 국회가 왜 안 하는지 모르겠어요.”

나는 그 젊은 판사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과거 독재정권 시절 정의를 외면하고 불법적인 판결을 선고한 판사들이 많았다. 십년 이십년이 지나 재심을 통해 무죄가 선고되고 그들의 결백이 입증돼도 참회하고 사과를 하는 판사들을 보지 못했다. 내가 변호사를 하던 지난날은 잔인한 고문이 참 많았다. 형사나 검사실 서기는 고문을 해서 자기들이 요구하는 대로 얼마든지 진술을 하게 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예전의 한 경찰서장은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살인범을 잡으라고 닦달을 했더니 갑자기 자백한 범인이 서너 명이나 나타나더라고. 고문으로 억지 자백을 받아낸 경우였다. 변호사인 내가 삼십년 동안 고문을 얘기하고 인권유린을 말해도 그걸 받아준 판사는 한 명도 없었다. 위를 보면서 뭔가 되려는 그들의 마음에는 특수한 렌즈가 씌워져 있었다.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했다. 내가 보는 세상을 그들은 보지 못하는 것 같았다. 판사들이 변화된 마음으로 다른 세상을 보기를 희망한다. 법대 위에 놓인 기록이 아니라 그 앞에 서 있는 인간을 보아야 한다. 죄수복을 입은 초라한 모습이 아니라 마음의 눈으로 그 속을 보아야 한다. 그들의 마음이 뭔가 높은 사람이 되려는 마음보다 무엇인가를 하려는 사람으로 변화되면 이 세상은 정의로운 세계로 변할 게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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