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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손

운영자 2020.03.09 10:02:56
조회 145 추천 1 댓글 0
어머니는 나의 배냇저고리를 소중히 간직했다가 입시 때 부적같이 사용하기도 했다. 내가 피를 뒤집어쓰고 벌거숭이로 세상에 나왔을 때 처음으로 얻어 입은 옷이었다. 어머니는 6.25 전쟁의 피난 생활 중 농가의 구석 흙방에서 나를 낳았다. 농가에서 지푸라기를 얻어 물을 끓이고 얻은 고구마 하나로 하루를 연명했다고 한다. 군인으로 전선에 나간 아버지는 없었다. 나의 배냇저고리는 융 한 조각을 얻어 촌에서 쓰던 녹슨 둔탁한 가위로 대충 잘라 듬성듬성 실로 꿰맨 것이다. 그게 나의 첫 번째 재산이었다. 내가 네 살 무렵쯤의 기억 한 장면이 지금도 기억에 또렷이 남아있다. 엄마는 나를 데리고 정릉으로 넘어가는 아리랑 고개의 판자촌 어떤 집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고 있었다. 판자와 박스로 얼기설기 지어 만든 단칸방의 안쪽은 누렇게 바랜 헌 신문지를 발라 바람을 막고 있었다. 이불 하나에 발들을 집어넣고 그 집 식구들이 곤하게 자고 있었다. 우리 모자는 그 한 귀퉁이에서 쪽잠을 자는 중이었다. 한밤중에 나는 배가 고파서 울었다. 잠이 깬 판잣집 주인 여자는 냉수에 만 보리밥 한 그릇과 먹던 김치를 가지고 들어와 엄마에게 주었다. 엄마는 김치를 작게 찢어 물에 씻어서 밥에 얹어 주었다. 북에 고향을 둔 어머니는 피난민이 사는 판자촌에서 아들을 데리고 며칠 밤 신세를 진 것이다. 어머니는 뜨개질 품팔이를 하면서 나를 공부하게 했다. 어머니는 길을 가다가 ‘법률사무소’간판만 보면 허리를 굽히고 합장을 하면서 우리 아들도 그렇게 되게 해달라고 빌었다고 내게 말하기도 했다. 육십 년대 당시 변호사는 지성과 재력을 다 가진 존경받는 직업이었다. 나는 변호사가 됐다.

지식노동자로 생각하고 땀을 흘리고 그 품삯을 받았다. 그래도 혜택 받은 직업이었다. 아이들 유학을 보냈고 서울 강남에 넓은 아파트도 소유하게 됐다. 행운이 오기도 했다. 조상대대로 부자인 한 재벌 회장과 인연이 됐다. 그 집안은 경주 최 부자와 쌍벽을 이루는 조선의 명문 부자였다. 그 집안의 부는 일제 강점기에도 계속됐다. 그 아버지는 조선인 최고의 사업가로 재벌 소리를 들었다. 방직회사를 운영하고 백두산과 만주에 방대한 농장을 개척한 사람이었다. 아들인 그 회장은 어려서 ‘학생지주’라는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학생 때 몇 만석을 하는 지주였어요?”

내가 그 회장에게 물었다. 자기의 땅에서 만석만 소출이 되도 ‘만석군’이라고 해서 대단한 갑부로 여겼었다.

“나는 삼십만 석을 하는 학생 지주였어. 엄 변호사 선대는 그 당시 어떻게 보내셨나?”

회장이 대답을 하면서 내게 되물었다.

“우리 할아버지와 그 선대는 유랑농민으로 만주에서 농사를 지으셨는데 소작인이었죠. 그런데 회장님 말이 나와서 말인데 나도 지주 한번 해 봅시다. 회장님 집안에 조상 때부터 내려오는 땅을 저에게 파세요. 워낙 조선에서 백년 전통을 가지는 명문부잣집이시니까 그 의미가 있을 것 같아서요.”

그 집에는 오 십년 이상 가꾸어 온 삼나무와 편백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찬 숲을 가지고 있었다.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울창한 숲이었다. 나는 그 숲을 내 자손들 삶의 주춧돌로 만들고 싶었다.

“그렇게 하시오. 우리 집안도 엄 변호사에게 신세를 졌으니까. 그런데 지주라는 것도 별로 좋지를 않아. 해방 후 나는 지주라고 해서 학교에서 몰매를 맞기도 하고 육이오 때도 반동이라고 고생을 했었지. 세상이 미워하기도 하고.”

그 회장은 내게 숲 십여 만평을 넘겼다. 나로서는 처음으로 땅을 가져보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기쁨은 잠시였다. 몇 달도 안 되어 그것은 내 생활의 일부였고 가보지도 않게 됐다. 재산은 들어올 때도 있고 나갈 때도 있는 것 같았다. 거액의 민사소송을 당해 재산이 압류되기도 했다. 모든 것을 하루아침에 다 잃고 성경속의 욥같이 잿더미 위에 허망하게 앉아 있을 것 같은 상황을 겪기도 했다. 내게 땅을 넘긴 그 재벌 회장이 저 세상으로 가는 모습을 봤다. 조상대대로 엄청난 재산의 소유자였지만 가는 길에 땅 한 평도 가지고 가지 않았다. 오히려 자기 몸도 의과대학의 해부용으로 기증했다. 평생을 검소하게 사는 부자였다. 재산에 대해서도 이제는 조금은 알 것 같다. 누구나 빈손으로 태어났다가 빈손으로 돌아가는 인생이다. 하나님은 각자의 타고난 그릇에 따라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그의 몫을 주신다. 주시는 분도 하나님이고 가져가시는 분도 하나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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