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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질없는 일

운영자 2020.06.15 09:5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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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여년 전 변호사를 처음 시작할 때 희망에 부푼 꿈을 꾸었었다. 영화 ‘빠삐용’ 속의 주인공같이 불쌍한 죄수를 몇 명이라도 자유의 땅으로 옮겨주는 뱃사공 같은 역할을 하면 좋겠다는 소박한 소망이었다. 그리고 둘째 소망은 권력의 차디찬 벽에 부딪쳐 절망할 때 그것들을 세상과 미래에 한 권의 변론문학으로 남기고 싶다는 욕망이었다. 세상에서 버림받고 혼자 광야의 깊은 구덩이 속에 빠져 신음하는 사람을 살폈다. 감옥에 있으면서 찾아오는 가족도 친구도 돈도 없는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이었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찾아가 만나고 그들의 처절한 삶과 억을함을 묘사해 변론문 속에 집어넣어 법의 제단에 올렸다. 독재 시절인 칠십년 대 한승헌 변호사 같은 인권변호사들이 진실을 기록으로 남겨 세상과 미래를 향한 변론을 했었다.

선배 인권변호사들한테서 그런 방법을 배웠다. 조영래 변호사는 전태일이라는 노동자의 평전을 써서 사회에 강한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시간과 공간이 제한되어 있고 수많은 증거 법조문이나 소송규칙이라는 틀 속에 박혀있는 법정은 보통 시민들 보다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도록 귀와 눈이 막혀있는 경우가 있었다. 판사의 탐욕이나 출세욕이 은밀히 작용할 때 사건은 왜곡되기도 했다. 간단한 사건이라도 그걸 나중에 수필이나 소설화 한다는 목적을 가지면 먼저 사건을 풀어가면서 변호하는 나의 행동 자체가 진실한 문학이어야 했다. 법정에서 쓰는 단어 하나가 중요하고 권력의 잘못을 보았을 때 정확한 지적이 없이 적당히 넘어가는 일이 없어야 했다. 글로 남긴다는 것은 순간순간 나의 행위를 또 다른 내가 주시하는 그런 상황이기도 했다. 그렇게 내가 보았던 사회 밑바닥에서 절규하는 여러 사람들의 모습을 수필이나 소설 또는 칼럼으로 만들어 발표하기도 했다. 본인들의 명예가 훼손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미학적 변환과정을 거치기도 하고 배경이나 신분을 바꾸기도 했다. 본인들이 실명으로 발표해 달라고 강하게 요청하는 경우는 그렇게 하기도 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참 많은 욕을 먹고 고통을 당하는 일이었다. 삼십년 전만 해도 법원이나 검찰은 성역이었다. 법정이 배경이 된 글이 발표되면 판검사들에게 욕을 먹고 변호사업을 하기가 힘든 분위기였다. 법조 영역에서 이단으로 취급되어 따돌림을 당하기도 했다. 변호했던 사건을 수필로 썼던 한승헌 변호사는 두 번 구속을 당하기도 했었다. 문학적 변용을 거쳤어도 진실을 폭로하면 반드시 져야 할 십자가가 있었다. 부정을 하고 불의한 존재들이 승복하는 경우는 없었다. 형사고소를 당하기도 하고 거액을 요구하는 소장이 법원에서 날아오기도 했다. 협박도 있었다. 수사를 하는 형사나 검사에게 나는 그들의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한 좋은 장난감이었다. 그들의 빈정거림은 욕보다 더 맵고 맛이 썼다. 나의 글은 이따금씩 법조 윤리를 가르치는 교수의 교과서의 한 챕터를 차지하기도 했다. 법조 윤리 교수는 만약 내가 변호가 아니라 글을 쓰기 위해 죄인에게 접근했다면 그게 변호사 윤리에 맞는 것인지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변호사 작가가 많은 미국에는 그런 경우도 있었던 것 같았다. 돌이켜 보니까 내 경우 그 비슷한 경우도 있었다. 교도소에 찾아갔더니 한 죄수가 “변호사법 제1조에 변호사는 사회정의와 인권옹호를 위해 일을 한다고 하는데 그 사회정의가 뭡니까”하고 정면으로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 죄수는 한밤중에 교도관들이 때려죽이고 인근의 야산에 매장한 한 수감자의 억울한 죽음을 세상에 폭로해 달라고 절규했다. 나는 그 사실을 글로 써서 한 시사잡지에 기고하고 그 글이 근거가 되어 후에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의문사피해자로 결정이 되기도 했다. 나는 기자들이 취재할 수 없는 곳 그런 곳에서 벌어지는 불법을 변호사가 폭로하는 일을 ‘변호사 저널리즘’이라고 주장했었다. 교수실에 앉아서 하얀 손으로 법조윤리교과서를 쓰는 교수는 현실을 보지 못했다. 나는 내게 닥쳐온 욕이나 비난들을 부질없는 일이라고 치부하고 마음을 쓰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래야 여유가 생긴다. 부질없는 일에 신경을 쓴다는 것은 곧 근심을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이다. 남이 나를 욕한다면 그 입에 이상이 생긴 거지 내 마음에 생긴 이상이 아닐 것이다. 남의 말들을 들으면서 내 길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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