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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부장의 푸념

운영자 2020.09.14 10:0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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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부장의 푸념

 

면도날 같이 날카로운 강추위가 인사동의 작은 골목을 휘돌아 나가고 있던 오래전 겨울 어느 날 저녁이었다. 한산한 상점들 안에는 점원들이 무료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게 투명한 유리를 통해 들여다보였다. 나는 그 근처의 오피스텔에서 집필하고 있는 대학 후배를 불러 뒷골목의 허름한 음식점으로 갔다. 언론계에 있다가 퇴직한 지 얼마 안 되는 후배였다. 주간지 편집장을 거쳐 유명일간지의 사회부장을 지냈다. 주요일간지의 사회부장은 장관 못지않은 실질적 권력을 행사하는 것 같았다. 기자로서 그는 사회적 대접을 상당히 받은 셈이다. 조그만 한옥을 개조한 음식점의 작은 사랑방에 앉아 청주 한 병과 안주를 시키고 얘기를 시작했다.

“평생 기사만 써오던 사람을 사장이 갑자기 영업을 하는 자리로 명령을 내는 거야. 나가라는 소리죠. 그래서 두 말하지 않고 나왔어요.”

사회적 영향력을 가진 언론인도 결국은 나약한 회사원이었다.

“신문사를 나오니까 전에 항상 전화하고 서로 부탁을 주고 받던 사람들이 소식을 딱 끊는 거야. 내가 사람을 잘못 봤던 거죠. 한번은 아는 사람을 만났는데 헤어질 때 자기차를 타라는 거야. 그래서 그 차를 얻어탔지. 그런데 조금만 더 가주면 바로 우리 아파트가 나오는데 중간에서 갑자기 내리라고 하더라구요. 끈 떨어진 뒤웅박 신세가 어떤 건지를 알겠더라구.”

원래 세상은 그런 것 같다. 사고 팔았던 사람들의 사이는 거래가 끝나면 모든 것이 끝난다. 부산에서 검사를 하다가 변호사를 개업한 후배가 있었다. 그가 평소에 수사지휘를 하던 형사에게 전화를 걸어 부탁을 했다. 그랬더니 그 형사는 “야 임마 네가 지금도 검산 줄 아니?”하고 퉁박을 주더라는 것이다. 착잡한 표정으로 술잔을 털어 넣고 안주를 한 점 집어 먹고 난 후배가 말을 계속했다.

“대학에 겸임교수로 강의를 나갔어요. 이십여년 야전에서 뛴 기자 경험을 얘기하니까 학생들이 좋아 하더라구요. 그런데 학교에서 정식으로 가르치려면 학위가 있어야 한다는 거야. 생각해 보니까 내가 대학만 나왔지 박사학위는 따놓지 않았더라구.”

이 사회는 자격증으로 문턱을 높여놓고 있다. 조용필 같이 평생을 노래해도 대학에서 그 기술을 전수할 수 없다. 평생 문학을 한 이문열씨도 학위 때문에 대학강의에서 브레이크가 걸렸었다. 나는 후배의 다음 말을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나와는 다르게 산 사람들이 있어요. 시인 정호승씨는 원래 나하고 같이 월간잡지사 기자를 했었어요.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사표를 내고 나가는 거야. 생활에 여유가 있어보이지 않는 사람인데도 문학에 전념하겠다고 좋은 직장을 박차고 나가는 거예요. 교정을 보는 것 같은 잡일에 너무 시간을 빼앗기는 게 싫었던 거지. 그리고는 문학계에서 우뚝 선 시인이 됐어요. 김훈도 시사저널 기자를 하다가 소설가의 길로 들어서서 성공을 했고 말이죠.”

그의 말에는 진작 본질에 눈을 뜨지 못한 데 대한 아쉬움이 담겨 있었다. 그의 문학적 재질도 보통이 아니었다. 그가 월간지 기자를 할 때 그의 글을 평가하던 편집장으로부터 그에 대한 이런 평가를 들은 적이 있었다.

“글쓰는 재주가 아주 탁월합니다. 기자로서 어떤 사건을 마주하면 당당하게 정면으로 돌파하고 정확한 팩트를 문학적으로 풀어놓는 거예요. 앞으로 훌륭한 기자와 문학인이 될 겁니다.”

나는 그 후배가 쓴 기사들을 스크랩해서 문장을 공부하기도 했었다. 그는 퇴직을 한 후 작은 오피스텔을 집필실로 빌려 글을 쓰고 있었다. 그가 이런 말을 했다.

“내가 신문사 후배들한테 글을 보내지 않아요. 왜냐하면 내가 사회부장을 할 때 누가 글을 보내면 아무리 좋은 글이라도 읽지 않았거든. 내가 급할 때 원고청탁을 해야 그 글을 귀하게 여겼거든. 방송도 마찬가지야. 그 쪽에서 요청이 와야지 이쪽에서 먼저 기웃거리고 인위적으로 뭘 만들려고 하면 안 돼요.”

예수는 낮은 자리로 가라고 했다. 그렇게 하면 절망과 공허가 없다. 낮아지고 겸손하면서 자기의 작은 일에 성실한 것이 진짜 위대한 인물을 만드는 방법이라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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