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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미워 하거든

운영자 2021.03.15 10: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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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미워 하거든



나의 아파트로 이따금씩 특이한 사람이 올라온다. 지난해 뇌성마비로 몸이 불편한 오십대 말의 여성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몇 번 왔었다. 절대고독 속의 그 여성은 내게 법률문제를 상의하러 온 것이다. 오 년 전 내가 사용하던 변호사사무실은 없애버렸지만 자격증만 있으면 변호사라는 직업은 어디서든지 법률상담을 할 수 있다. 그 얼마 후 같은 아파트에 사는 여성이 구청에 고발을 했다. 내가 아파트를 영업장소로 사용한다는 것이었다. 구청직원이 나와서 아파트의 사진을 찍어갔다. 그걸 보고 있던 아내가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아파트의 여자들이 엘리베이터에서 당신에게 온 뇌성마비 장애인을 본 것 같아. 늙어서 흰머리가 난 여자가 얼굴을 찡그리고 눈을 이상하게 뜨니까 싫은 가 봐. 그런 사람이 드나들면 아파트 값이 떨어 진다고 그래.”

세상의 야박한 인심에 화가 났다. 변호사라는 자격증이 있고 그래도 아직 약간의 건강이 있을 때 남을 돕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고발을 당한 것이다. 조선 세조 때 조상이 역적으로 몰렸다. 억울하게 죽어 버려진 단종의 시신을 산에 묻어준 것이 죄인이 된 것이다. 조상은 ‘선한 일을 하다가 처벌 받는다면 달게 받겠소’라는 짧은 글을 왕에게 남기고 가족이 산속으로 들어가 이 백 년을 숨어 살았다. 그게 집안의 역사였다. 내게는 조상이 양반을 하고 영의정 벼슬을 했다는 것 보다 더 자랑스럽다. 힘든 사람을 도와주었다고 처벌이 온다면 달게 받기로 마음먹었다. 살다 보면 그런 일이 종종 있었다. 신문에 났던 한 상습절도범을 무료변호한 적이 있었다. 거지 출신으로 너무 처참하게 징역생활을 하는 걸 보고 단순한 동정심으로 변호를 하게 됐었다. 우연히 언론이 그 절도범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별 볼 일 없는 변호사가 한 번 떠보려고 유명한 죄인을 맡았다”는 소리가 공공연하게 돌았다. 나는 선의를 의심받고 속칭 ‘왕따’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 무렵 서초동의 법원 정문 앞에 걸려 있었던 플래카드가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있다. 플래카드에는 ‘직장 왕따 근절 만 명 서명운동’이라고 적혀 있었다. 재벌회사에 다니던 직원이 내부비리를 폭로한 게 그 배경이었다. 그는 직장에서 철저히 왕따가 되어 버티다가 자살을 하고 말았다. 한 맺힌 그의 부모가 법원 앞에 와서 시위를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세상을 살아오면서 옳은 것을 옳다고 하고 틀린 것을 틀리다고 하기가 정말 힘든 것 같다. 광우병 사태로 백 만명 가량이 시청 앞에서 모여 광란하고 있을 때였다. 미국산 쇠고기만 먹으면 광우병에 걸린다는 선동방송에 사람들은 미쳐 있었다. 청계천 쪽에서 한 청년이 “소고기를 먹어도 광우병에 걸리지 않습니다”라고 했다. 사람들은 진실을 말하는 그 청년을 보면서 욕을 하고 침을 뱉었다. 허위도 숫자가 많고 목소리가 높으면 진실이 되고 진실은 가짜가 되어 버린다. 소신 있는 바른 글을 썼다가 깊은 상처를 입기도 한다.

소설가 이문열씨가 그의 의견이 실린 컬럼을 썼을 때였다. 일단의 사람들이 그동안 그가 쓴 작품들을 모두 관속에 넣어 그의 집 앞으로 가서 화형식에 처했다. 또 책들을 나뭇가지에 걸기도 하고 짓밟기도 했다. 이문열씨는 그게 평생의 깊은 상처인 것 같다. 그는 내게 그 자리에 ‘불망비’를 세우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좀비 같은 존재들 사이에 있을 때는 그들 같이 행동해야 하나 보다. 그들 같이 먹고 마시고 해야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저 침묵하고 눈치 보면서 조용조용 사는 길을 택하고 있다. 세상에서의 미움은 꼭 잘못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라는 생각이다. 미운 오리 새끼처럼 남들과 다를 때 미움이 올 수 있다. 또 이세상에 속해 있지 않고 하나님께 속해 있을 때 미움이 온다. 예수는 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먼저 나를 미워했다는 걸 잘 기억하라. 너희가 만약 이 세상에 속해 있다면 세상은 너희를 사랑할 것이다.”

예수는 많은 사람들의 질병을 고쳐주고 기적을 행했다. 사람들에게 진리를 가르쳤다. 그런 그에 대한 지독한 시기와 질투 그리고 미움이 그를 사형대인 십자가에 오르게 했다.그게 세상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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