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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자와의 재회

운영자 2021.03.22 10:0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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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와의 재회




칠십 고개의 노인이 되어서인지 밤에 잠을 자지 못하고 뒤척거릴 때가 종종 있다. 전자시계의 녹색 불빛이 비치는 어둠 속에서 나는 천정을 바라보며 낡은 사진첩을 펼치듯 한 장면 한 장면 과거로 돌아간다. 그 장면 속에서 저 세상으로 건너간 어머니가 나타나고 아버지가 그리고 할아버지가 실루엣 같이 나타난다. 이 세상에 와서 내게 사랑을 주었던 세 사람 같다. 고등학교 이학년 때였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일년 전 쯤이었다. 할아버지는 기운이 빠져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그 날은 어머니한테 혼이 나고 뿌루퉁해서 누워있는 할아버지 한테 “엄마는 맨날 나만 가지고 뭐라고 그래”하고 호소 했다. 검정교복을 입은 채로 할아버지 이불 옆에 누웠다. 겨울이었다. 할아버지는 나를 보더니 아무 말 없이 이불을 들춰 나를 덮어주고는 말없이 힘없는 양팔을 뻗어 덩치가 어른이 된 손주를 꾹 안아 주었다. 그때 내 마음에 스며들어온 사랑의 온기가 내가 할아버지가 된 지금까지 그대로 가슴속 깊이 남아 나를 따뜻하게 해 주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내가 책상에 앉아 공부하고 있을 때면 자리에서 일어나 엉금엉금 기어 내 방으로 왔다. 그리고 내 뒷모습을 한없이 보고 있었다. 그걸 보고 며느리인 어머니가 “아버님 누워계시지 않고 뭐하세요?”라고 하면 할아버지는 “애가 보고 싶어서 그런다”고 대답했다. 그때는 그게 깊은 사랑인지 몰랐었다. 슬라이드의 영상이 없어지듯 할아버지의 모습이 사라지고 아버지의 모습이 나타난다. 내가 다섯 살 무렵의 추운 겨울이었다. 아버지는 나를 업고 두툼한 밤색 오버코트를 씌운 채 걸어가고 있었다. 나는 아버지의 오버코트 속에서 나던 독특한 체취를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말은 없지만 정이 많은 아버지였다.

한 밤중에 아버지가 세발자전거를 사 가지고 들어왔었다. 나는 미처 잠이 깨지도 않은 상태에서 방안에서 자전거를 타고 좋아했다. 아버지는 창경원의 빙빙 돌아가는 비행기를 태워주기도 하고 추운 겨울 단팥죽을 사주기도 했다. 아버지는 임종 전날 내게 저세상이 있는 것 같다고 알려주었다. 아주 좋은 것 같은데 의사가 전기충격을 하고 간호사가 주사를 놓는 바람에 가지 못했다고 했다. 나는 정말이냐고 재차 확인했다. 아버지는 그렇다고 중환자실 침대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졸립다고 하면서 하품을 한번 크게 하고 저 세상으로 성큼 건너 갔다. 아버지의 영상이 슬며시 사라지더니 이번에는 신설동 육교 위에서 끙끙거리는 작달막한 어머니의 모습이 나타났다. 양팔에 무거운 석유통을 들고 몇걸음 갔다가 내려놓고 쉬고 다시 몇걸음 갔다가 내려놓고 쉬는 힘든 모습이다. 내가 대학 시절 집에서 고시공부를 할 때였다. 어머니는 그 전에 쓰던 작은 무쇠 연탄난로를 치우고 석유 난로로 바꾸었다. 고시공부를 하는 아들을 따뜻하게 해 주려고 결심을 한 것 같았다. 석유통을 들고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주유소에 가서 석유를 사가지고 오느라고 그렇게 힘이 든 것이다. 기억의 영상 속에 나타난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까 가슴이 뭉클해 진다. 나는 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의 그런 뜨거운 사랑을 먹고 컸다. 그런데 그 세 사람은 이미 이 세상을 떠난지 오래 됐다. 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가 하늘 저쪽에서 집 나간 아이를 기다리듯 내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어둠 속에서 눈을 감고 생각하는 내게 천국의 집 앞 대문 앞에 서서 나를 기다리는 세분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다. 곧 가서 어린 아이 같이 환한 마음으로 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를 만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온다. 정말 그럴 수 있는 것일까. 공자님은 죽어보지 않아서 모른다고 했다. 부처님의 말씀에 따르면 할아버지나 아버지 어머니는 내 이웃의 모르는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 내가 알아볼 수도 발견할 수도 없다. 죽음을 앞두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잠시 후에 나는 떠나간다. 그러나 너희는 나를 다시 보게 될 것이다.”

예수는 말을 계속한다.

“내가 떠나가면 너희는 슬퍼하겠지만 다시 만나는 순간 기쁨으로 변할 것이다. 그리고 너희의 행복은 완전 해 질 것이다.”

주위를 보면 나와 친했던 사람들의 상당수가 저세상에 가 있다. 그곳에서 살아있는 그들을 다시 만나면 기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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