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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고개 위에 지었던 옥탑방 암자

운영자 2021.03.22 10: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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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 고개 위에 지었던 옥탑방 암자




이십대 말에 나는 늙었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삼십고개를 앞에 두고 있는데 군대 문제도 직장문제도 가정문제도 제대로 해결 된 게 하나도 없이 나이만 먹었다고 생각했었다. 삼십대 말에도 늙었다고 생각했다. 사십 고개가 다가오는데 그동안 철없이 생각 없이 살아왔다고 반성을 했다. 나이 오십이 돼서는 이제 반은 은퇴해서 나만의 둥지를 만들기로 했었다. 오십이 되던 해의 나의 일기를 들추어 보았다. 그해 나는 나만의 도심 속의 암자를 만들기로 계획했었다. 서초동 법원의 잘 꾸며 놓은 넓은 정원은 주인이 없는 것 같았다. 서로 삿대질하며 법원을 드나드는 사람들에게 그 정원은 보일 리가 없었다. 잠시 낮에 근무하는 직원들이나 판사에게도 그 정원은 안정을 주는 편안한 곳은 아닐 것 같았다. 그 정원을 나의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그 얼마전 고궁인 비원의 담벼락에 붙어 있는 낡은 이층집을 본 적이 있었다. 그 이층집의 창문으로 보면 왕이 사용하던 텅 빈 넓은 궁전이 모두 보일 것 같았다. 그렇다면 그 비원은 그 낡은 목조 이층집 방에 사는 사람의 소유일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법원 정원이 내려다보이는 담벼락에 붙은 이층집을 샀다. 그리고 그 옥상에 나의 암자를 지었다. 목수를 불러다가 각목과 판넬로 조그만 방을 만들었다. 지붕에 빨간 기와를 얹었다. 법원의 넓은 정원이 시야에 들어오도록 가로로 길게 조형미 있는 액자처럼 창을 만들었다. 깊은 산 속에 들어갈 필요 없이 도심 속의 나의 암자였다. 저녁이 되고 들끓던 사람들이 썰물같이 빠져나가면 법원 부근은 적막강산이었다. 하늘에 걸려있는 둥근 하얀 달이 사람없는 빌딩들 위를 하얗게 비추고 있었다. 당시 서예로 대가를 이룬 예춘호 선생에게 옥탑방의 이름을 지어달라고 부탁했었다. 예춘호 선생은 달빛이 처마 밑으로 쏟아지는 모습을 보고 ‘소소헌’이라고 이름을 지어 주었다. 그곳에서 혼자 잠을 자고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팔년 정도 살았었다. 소소헌의 창을 보면 아침에는 새들이 물통에 와서 몸을 씻고 가기도 했다. 까치 부부가 법원 담에 줄지어 있는 은행나무 가지 위에 열심히 단칸방을 짓는 모습도 보였다. 새들도 종류마다 삶이 달랐다. 참새들은 수십마리 수 백마리가 한데 모여 서로 지지고 볶고 사는 것 같았다. 종달새 같이 혼자 하늘을 솟아 오르는 새도 있고 높은 하늘에서 선회하는 독수리 같은 존재도 있다. 썩은 나무 구멍에서 내리는 비를 보면서 가만히 있는 부엉이같은 존재도 있었다. 나는 어떤 존재일까. 외아들인 나는 어려서부터 고독에 젖어서 산 것 같다. 어려서는 오래된 일본식 목조가옥 이층 다다미 방에서 혼자 지냈다. 동화집이나 만화방에서 빌려온 소설이 나의 친구였다.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도 혼자인 적이 많았다. 눈이 오는 날이면 소복소복 함박눈이 내려 쌓이는 골목길을 걸었다. 어둠이 내리면 더러운 개천물이 흐르는 안암천 변을 걸었다. 하늘의 별들은 어두운 개천물 위에서도 변함없이 반짝 거렸었다. 내가 성장한 일본식 다다미 방에서 한국문학전집을 읽으면서 김승옥과 만나고 장용학과 만나고 손창섭과 만나기도 했었다. 데모가 심하던 대학 시절은 거의 절반가량을 깊은 산속의 절간 암자의 뒷방에서 보내기도 했었다. 나중에 나의 직업이 된 개인법률사무소도 혼자 있는 곳이었다. 사건이 없는 한적한 시간이면 나는 책을 통해 톨스토이를 만나고 여러명의 죽은 작가들의 마음과 만났다. 일기를 보면 오십 고개를 맞이하던 그 해도 쓸쓸했다. 아내는 유학보낸 아들을 돌보기 위해 미국에 가 있었다. 유학에서 돌아온 딸은 이미 자기 생활에 바빴다. 그렇게 그렇게 육십고개를 넘고 칠십 고개 앞에 섰다. 칠십 고개에 서서 일기 속에 나와있는 오십고개를 보다가 속으로 픽 웃었다. 아직 애 같은 젊은 나인데 그때 뭘 알았다고 옥탑방을 암자같이 생각하고 혼자 심각해 있었을까. 순간순간 슬픔과 시련이 내 옆에 가득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그 무렵의 일기에는 예수의 이런 말이 적혀 있다.

‘세상에서 너는 많은 시련과 슬픔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너는 나와 결합되어 마음의 평안을 얻어라. 그리고 용기를 내어라.’

그 후 육십고개를 넘으면서 어떻게 살아왔나 잘 모르겠다.

나는 아마도 참새족이나 꿀벌족은 아닌 것 같다. 부엉이족이거나 나비 쪽에 가까운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예수의 영과 함께 있어 평안했던 셈이다. 죽은 영혼이 하늘에서 자기의 지나온 삶을 보면 폭소를 터뜨린다고 한다. 인생을 너무 심각하게 살았다고 말이다. 이제는 모든 걸 받아들이고 즐겁게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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