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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끝의 가장 소중한 보물은

운영자 2021.03.22 10: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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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끝의 가장 소중한 보물은




내가 이십대 중반 군에 입대해서 훈련을 받을 때 내무반에서 같이 생활을 하던 고교선배가 있었다. 마음이 넉넉하고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도 깊은 사람이었다. 그의 서글서글한 성격에 감동해 나는 그를 형이라고 부르면서 따랐다. 군 생활을 같이 한 게 계기가 되어 제대 후에도 계속 친하게 지냈다. 능력 있고 머리가 출중했던 그는 세상에서 높이 높이 올라가고 싶어 했다. 검사로 시작해서 국회의원이 되고 대통령이 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아는 사람들의 민원이 들어오면 발 벗고 도와주는 성격이었다. 그에게 부탁하면 안 되는 일이 없을 정도였다. 그는 남자다운 얼굴에 덩치도 좋았다. 모든 걸 갖추었다고 할까. 어느 날 백화점에 갔다가 그를 보았다. 바짝 마른 모습이었다. 빡빡 깍은 머리에 중절모를 쓰고 있었다. 담도암 판정을 받았다고 했다. 수술을 받은 후에도 그는 점점 상태가 악화 되어 갔다. 어느날 그가 죽었다는 소식이 왔다. 그의 장례식장을 갔다. 영정사진 뒤쪽에서 그는 무릎을 꿇고 절을 하는 나를 내려다 보면서 슬픈 표정으로 말이 없는 여러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다. 그를 불태우는 화장장에 따라 갔었다. 정치에 꿈을 가졌던 그는 수많은 사람들을 사귀었지만 그가 마지막으로 들어갈 소각로 앞에는 나와 친구였던 담당의사 두 사람만 서 있었다. 담당 의사가 내게 마지막 상황을 이렇게 알려주었다.

“고통이 너무 심해서 나중에는 나만 보면 죽여달라고 하더라구. 참 안됐어. 그 친구.”

살아서 넘치도록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던 선배였지만 죽으니까 공허할 정도로 사람들이 쓸려 나간 것 같았다. 군 생활을 같이 했던 그 선배를 나는 한 방울의 눈물같은 진한 마음으로 전송했다. 여러 가지로 마음의 신세를 졌었다. 사랑이 많았던 고마운 사람이었다. 그 선배에게 암이 생겼던 그 부위에 나도 암이 생겼다. 의사는 일말이 동정도 없이 의학적이고 사무적인 목소리로 나의 암을 선고했다. 여섯 시간에 걸친 수술을 했다. 동맥과 정맥을 끊어내고 뱃속 깊숙이 있는 장기의 분리와 적출작업이 있었다. 수술실 밖의 벽에 달린 빨간 램프가 명멸하는 걸 보면서 늙은 어머니는 미동도 하지 않고 기도를 했다. 어머니의 눈에서 눈물이 굴러 떨어졌다. 죽음의 깊은 심연 속에 빠졌던 것 같은 나는 세상으로 다시 돌아왔다. 내게는 애간장이 타는 어머니의 피눈물이 있었다. 동양철학자 다석 류영모 선생의 책을 읽고 귀중한 가르침을 얻었다. 작은 꽃이 심긴 화분을 하나 들고 천안의 풍산공원에 있는 그의 묘지 앞에 놓고 인사를 한 적이 있다. 러시아의 공동묘지에 가서 토스토엡스키의 무덤 앞에서 인사를 한 적이 있다. 내가 소송을 맡았던 노인의 묘지에 꽃 한송이를 들고 가서 인사를 했었다. 외롭게 살다가 외롭게 죽은 노인이었다. 그의 봉분 앞에 아서 눈물 한 방울 떨어뜨려 준 사람이 없는 것 같았다. 폐암으로 죽음을 일주일 정도 앞둔 강태기 시인의 병동을 찾아가 약간의 돈을 전달한 적이 있다. 시인은 갚을 길이 없는데 어떻게 하느냐고 걱정했다. 나는 다음에 하늘나라에서 이자를 쳐서 갚으라고 했었다. 죽어가던 그는 기분이 나쁘지는 않은 것 같았다. 그는 내게 줄 선물을 심각하게 생각하다가 인생 마지막까지 옆에 놓고 볼 좋은 책은 신약성경과 논어라고 비밀을 알려주기도 했다. 병원의 썰렁한 입원실에서 죽음의 강을 건너가는 시인의 옆에는 그의 아내도 딸도 보이지 않았다. 이따금씩 그 시인을 생각하면서 내가 죽을 때는 누가 내 옆에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내가 죽기전 마지막으로 통화를 한 번 할 수 있다면 누구에게 전화를 걸까?하는 생각도 부질없이 찾아든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보물은 사람이 죽을 때 그의 옆에서 누군가 흘려주는 한 방울의 눈물이 아닐까. 호화롭고 왁자지껄한 장례식장을 가 보면 검은 캐딜락에 수많은 꽃의 행렬은 보여도 슬픈 표정이나 보석 같은 한방울의 눈물을 발견하는 경우가 드물다. 이제는 어렴풋이 알 것 같다. 마지막에 선물 받을 한 방울의 다이어먼드같은 눈물은 나의 깊은 사랑의 댓가 임을. 좀 더 열심히 남은 시간을 사랑하고 살아야겠다. 그리고 깊어져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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