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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으로 던져보게

운영자 2021.03.22 10: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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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으로 던져보게



초등학교 일학년으로 들어갔을 때 처음 대한 필기구는 연필이었다. 질이 좋지 않았다. 종이 위에 글씨가 진하게 하려고 침을 묻혀 글자를 썼다. 흑연으로 만든 연필심은 자주 부러졌다. 초등학교 사학년 무렵 처음으로 볼펜이 나왔다. 육각의 하얀 플라스틱 통 중간에 볼펜심이 있는 간단한 구조였다. 조금만 사용하면 그 안의 걸죽한 잉크가 흘러나와 온통 런닝 셔츠에 묻기도 했다. 우리는 그걸 볼펜 똥이라고 했었다. 그로부터 삼십오년쯤 지난 어느 한가한 일요일 나는 분당 쪽의 한 개천가에 지어진 교회에서 설교를 듣던 중 재미있는 예화가 귀에 들어왔다. 우리에게 필기구가 마땅치 않았을 때 한 사람이 볼펜을 연구했다. 핵심기술은 심 앞에 끼우는 아주 작은 볼이었다. 그래서 볼펜인 것이다. 앞서간 일본은 그 기술을 철저히 비밀에 붙이고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마침내 그가 볼펜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는 볼펜의 이름을 ‘모나미 153’이라고 했다. 그 153이라는 숫자는 성경에서 따왔다는 것이다. 나는 성경속의 그 부분을 찾아 읽었다. 예수가 죽은 후 어부출신인 제자들은 다시 고기를 잡으러 티베리아 호수로 나갔다. 동이 트는 새벽녘까지 고기는 잡히지 않았다. 그때 안개가 피어오르는 호숫가에 서 있던 한 남자가 그들에게 “고기가 좀 잡혔소?”라고 물었다.

“한 마리도 못 잡았어요”

그들이 대답했다.

“그러면 그 물을 배 오른쪽으로 던져 보시오. 그러면 많이 잡힐테니”

그들은 호숫가의 남자 말대로 해 보았다. 잠시후 그늘이 터질 정도로 많은 물고기들이 그 물 안에서 은빛 비늘을 번쩍이며 요동쳤다. 나중에 정확히 세어보니 그 그물 안에는 물고기 153마리가 들어있었다. 그리고 호숫가의 남자는 부활한 예수였다. 깊은 감명을 받은 이야기였다. 그 무렵은 내가 변호사를 하던 초창기였다. 사건을 낚아 보려고 여기저기 모임에 다니고 있었다. 법률시장은 아주 혼탁했었다. 몇 개의 대형 브로커 조직이 교통사고사건 시장을 독점하고 있었다. 법원의 판사나 직원들은 그들에게 뒷돈이나 술을 사 줄 수 있는 전관 출신 변호사들을 공공연하게 밀고 있었다. 나 같은 경력이 없는 병아리 변호사한테는 피라미 같은 사건 하나 제대로 걸려들지 않았다. 어느 날 나는 비행기를 타고 예수의 제자들이 고기를 잡던 티베리아 호숫가로 찾아갔다. 그들이 부활한 예수와 함께 잡은 고기를 숯불에 굽고 빵을 나누던 그 바위 위에 앉아서 물결치는 호수를 바라다 보며 생각했다. 그들은 밤새 그물을 던졌지만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볼펜을 연구하던 사업가도 실패를 거듭했다. 나 역시 그런 처지였다. 예수는 왜 그들에게 나타나 그물을 배의 오른쪽에 던져보라고 했을까. 그건 인식의 틀을 벗어난 발상의 전환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컬럼부스의 달걀 비슷한 것일 수도 있었다.

갑자기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그때까지 의뢰인과 사건은 돈이라는 인식이었다. 그물을 배의 오른쪽으로 바꾸어 던지라는 것은 단순한 의미가 아닐 것 같았다. 변호사의 직업적 자세를 바꾸어 고난에 빠진 약한 의뢰인을 위해 헌신하라는 의미로 해석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153이라는 숫자는 내게 무엇일까? 내가 고문변호사로 모실 153명의 고객이라는 마음이 떠올랐다. 길거리에서 옷깃이 스쳐 우연히 만난 사람이든 처절하게 가난한 사람이든 하나님이 나의 사무실로 보내는 153명의 고객을 떠올렸다. 그렇게 하기로 결심을 하고 티베리아 호수에서 서울로 돌아왔다. 돈을 생각하지 않으니까 갑자기 그물이 터질 정도로 물고기가 많이 잡히는 것 같았다. 사회적으로 의미가 있는 사건 같으면 주저하지 않고 맡았다. 어느 날 갑자기 함정에 빠져 헤매는 목사의 사건도 사심 없이 맡았다. 철거현장에서 운동권으로 열정을 바치다가 바닥인생들에게 성폭행을 당한 여자의 사건도 맡았다. 그들은 자신이 153마리의 물고기중 몇 번째에 해당하느냐고 묻기도 했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먹을 것 입을 것이 내게는 충분히 주어졌다. 다시 오랜 세월이 흐르고 나는 노인이 됐다. 그리고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부패한 만나를 먹기 보다는 영의 숯불에 구워진 신성한 물고기를 선택한 게 좋았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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