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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은 선을 이긴다

운영자 2021.03.29 10: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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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은 선을 이긴다




항상 온유해 보이던 그 신학대학 총장님은 요즈음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하다. 양같이 착해 보이던 사람이었다. 지금쯤은 아마 나이가 팔십이 넘었을 것이다. 얼마 전 바람결에 부근의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 전하는 소식을 들었다. 눈이 보이지 않아 사모님의 팔을 잡고 걸어가는 모습을 보았다는 것이다. 기억 저쪽의 안개 속에 가려져 있던 그의 마지막이 오늘 아침에 떠올랐다. 중학교 시절부터 믿음이 깊었던 모범생인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 바로 신학대학으로 진학했다. 거기서 우수한 학생으로 뽑혀 유럽의 역사 깊은 신학 대학원에서 공부를 했다. 그의 논문은 우수하다는 격찬을 받기도 했다. 돌아온 그는 명문 사립 대학교의 신학교수와 학장을 하면서 명예롭고 평탄한 인생을 보냈다. 그는 마지막에 다른 신학대학교의 총장으로 추대되었다. 총장에 취임한 그가 학교행정을 책임지면서 처음으로 맞딱 뜨린 것은 제단 뒤에서 일어나고 있던 부정과 비리였다. 신도들의 열정인 헌금과 장학금으로 만들어진 학교의 돈이 뒤에 뚫린 구멍으로 새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의 부정은 오랫동안 구조적이고 조직적으로 행해져 왔던 것 같았다. 그가 부정을 바로 잡으려고 건드리자 바로 강한 파도가 몰려왔다. 반대파의 선동으로 총장 거부 운동이 일어나고 총장실의 문을 용접기로 폐쇄해 버렸다. 그는 교문 안으로 들어갈 수도 없었다. 그를 반대하는 자들이 모략을 해서 그를 횡령과 배임죄로 검찰에 고소를 하기도 했다. 그를 쫓아내기 위한 것이었다. 검은 이익으로 단결된 반대파의 힘은 막강한 것 같았다. 변호사로서 조사에 입회한 나는 철의자에 앉아 있는 그의 짙은 분노와 회한을 말없이 보면서 파괴력이 강한 세상의 삼각파도를 그가 어떻게 견뎌낼 수 있을까 걱정이 됐다. 평생 학자로서 또 목사로서 학생들과 신도들의 존경을 받아온 그의 굴욕감은 한층 더 큰 것 같았다. 그는 작은 예수라고까지 불려온 사람이었다. 검사실에서 서기에게 험한 질문을 받고 시뻘건 인주를 손가락에 묻혀 조서에 수없이 찍는 그의 표정에 수모감이 가득했다. 학교 안의 이리떼가 더 표독스러운 것 같았다. 그들은 변호사인 나에게도 화살을 쐈다. 학교예산으로 지급한 변호비를 돌려달라고 통보했다. 그리고 변호사협회에 모략적인 진정서를 보내기도 했다. 악마가 세력을 잡고 있는 세상을 살아나가기 위해서는 그런 걸 견뎌야 했다. 어느 날 그가 나의 사무실을 찾아와 이렇게 말했다.

“항복하고 학교를 물러나야 하겠어요. 내가 더 버티면 나이먹은 아내와 살 작은 아파트마저 빼앗고 연금도 못 받게 하겠다네요. 이제 저도 나이 칠십이 넘었어요. 내게 남은 건 아무것도 없어요. 살아야 하는 게 저의 현실이예요.”

변호사를 하다 보면 현실의 부딪침에서 악이 선을 이기는 경우를 많이 봤다. 그래서 나는 악의 세상이라는 생각이다.

“당하신 현실을 이해합니다. 변호사로서 할 말은 아닙니다만 조금만 더 참고 십자가를 지시는 게 어떨까요?”

나는 그의 꺽임이 안타까웠다. 그가 깨끗하게 살아온 그의 영혼 전체에 얼룩이 낄 우려가 있었다.

“나는 십자가를 지지 못하겠습니다.”

그가 단호하게 말했다. 그렇게 그 사건은 정의와 선이 패배로 끝이 났다. 이따금씩 나는 성경을 보면서 불경이나 사서 삼경 같은 경전들을 보면서 생각한다. 부처님은 사십년이상 설법을 해서 그 경전들이 산같이 쌓였다. 공자나 맹자 장자의 지혜도 글로 엄청나게 만들어져 있다. 성경 속의 예수님의 말씀은 얼마 되지 않는다. 핵심만 말한 것 같다. 활동 기간도 짧다. 그러나 어느 순간 양팔을 벌리고 사형선고를 정면으로 받아들였다. 선동으로 만들어진 모략적인 죄명이었다. 고민하던 전날 광야로 도망갈 수도 있었다. 그러나 사형대인 십자가에 올라가 죽음을 맞이했다. 그 한 행위가 이천년 역사의 최대의 설교였다. 예수는 인간들에게 각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했다. 그런데 그게 정말 힘든 것 같다. 그 뒤를 확신하지 못해서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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