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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십 평생 교과서를 읽던 노인

운영자 2021.04.05 09:5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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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십 평생 교과서를 읽던 노인




결혼을 하고 정초가 되면 인사를 하러 집으로 찾아갔던 처삼촌은 특이한 분이었다. 의과대학장이던 그 분의 집에는 내과 외과 기생충과등 분야별 의대 교수들이 세배를 하러 와서 그 앞에 두 줄로 공손히 좌정하고 있었다. 각진 턱이 고집스러워 보이고 눈이 부리부리한 처삼촌은 마치 봉건영주 같은 느낌이 들어 접근하기가 힘든 느낌이었다. 의과대학이라는 곳이 그런 독특한 곳인 것 같았다. 학문에서 병원취직까지 일생 그물망 같은 위계질서의 연줄을 벗어나지 못한다고 했다. 학위수여식장에서의 처삼촌의 붉은 무늬가 들어간 검은 가운과 사각의 모자는 법관들의 법복 이상으로 권위적이었다. 그러던 처 삼촌이 퇴직을 하고 낙향을 하면서부터 서로 마음이 열리고 대화를 하게 됐다. 평생을 의사와 학자로 살아온 그의 삶은 어떤 것일까 궁금했다. 그는 삼십년간 사용하던 살아온 집 같던 자신의 교수실을 떠날 때 받은 퇴직금과 연구하던 책들을 모두 학교에 기부했다. 그는 마석 쪽의 수동골짜기에 있는 숲 속에 작은 집을 짓고 거처를 그곳으로 옮겨서 살고 있었다. 여든 두 살의 노인이 된 그를 찾아갔었다. 그의 고향은 대구였는데 왜 청평부근의 수동골짜기 숲속에 사시느냐고 궁금해서 물어 보았다.

“내가 젊어서 약리학교수로 있을 때 부터였어. 약간의 원고료라도 생기면 이곳에 와서 땅을 한 평이라도 샀지. 천구백 육십년대 이 수동골짜기는 거저 준다고 해도 사람들이 땅을 가지지 않을 정도로 척박하고 아무것도 없는 민둥산들이었지. 주말이나 방학이 돼서 시간이 나면 나는 내가 산 땅으로 와서 전나무를 한 그루씩 심었지. 공무원을 하다가 5.16혁명이 나는 걸 보고 물러난 형님도 의성의 산속으로 들어가 토굴 같은 집을 지어놓고 양동이에 물을 담아 산으로 올라가 나무를 심으실 때 였지. 우리 형제가 같은 마음이었을 거야.”

죽은 장인이 일군 숲도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우거져 있고 처삼촌이 심었던 오만평 위의 빽빽한 전나무들도 강인한 초록빛을 뿜어내며 골짜기의 바람을 맞고 있었다. 숲을 만든다는 건 한 미약한 인간의 힘으로 자연을 만드는 신성한 일 같았다.

“노년을 어떻게 보내세요?”

내가 물었다.

“학자는 자기가 배운 걸 잊어버리지 말아야 해.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면 약리학 교수때 내가 쓴 교과서를 지금도 다시 읽어. 독일어 하고 영어도 다시 공부하고 말이야. 정년퇴직을 하고 나서부터는 일본어판 침구학 책을 구입해서 공부해 왔는데 말이야 그 침이라는 게 근육이나 인대에는 탁월한 효력이 있는 의술이더구만. 젊어서 서양의학을 공부할 때는 괜히 무시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는데 그게 아니더라구.”

“공부하는 외에는 어떻게 소일하시죠?”

나는 그의 시골 생활도 궁금했다.

“오후에는 마을에 사는 늙은이들을 만나 침도 놔주고 그 친구들한테서 술 한잔 얻어먹으면서 이 얘기 저 얘기 하면서 살지 뭘.”

나는 아버지 또래였던 처삼촌에게서 귀중한 보물 하나를 발견한 느낌이었다. 초심으로 돌아가서 죽기 전까지 젊은 시절 손때가 묻은 교과서를 끊임없이 보는 것이었다. 그것도 귀중한 의미가 있는 것 같았다. 조선의 학자 송시열은 맹자를 죽을 때까지 천 번이 넘게 읽었다고 했다. 나의 책장에는 이십대 고시공부할 때 읽던 책들이 누렇게 찌들은 채 아직도 그대로 있다. 서점에서 바로 나온 싱싱하고 하얗던 그 책을 만났을 때 너희들을 버리지 않고 평생 함께 하겠다고 마음속으로 서약을 했었다. 아무리 새로운 교과서가 나와도 기본은 그 책들을 읽고 나서 보충했다. 삼십대 말부터 나는 나름대로 글 밭을 갈기 시작했다. 나의 밭인 하얀 모니터 위에 글의 씨를 뿌리고 내면의 샘물을 길어 물을 주고 영혼의 햇빛과 바람을 쐬게 하려고 노력했다. 그 글들은 화려한 자리로 가지는 못했다. 법률 서면의 내용이 되어 몇 명의 판사의 순간의 눈길밖에 받지 못하기도 했다. 작은 신문이나 잡지에 컬럼을 하나 하나 심어왔다. 사람들의 영혼에 나의 묘목을 심어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처삼촌은 지금 그가 심은 전나무 숲속에서 안식하고 있다. 그에게서 귀중한 것을 배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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