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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조심하란 말이야

운영자 2021.04.12 10:4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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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조심 하란 말이야




이십대 후반쯤 서울과 경기도를 관할 하는 군사법원의 판사를 한 일이 있었다. 전국의 부대에서 탈영한 군인들이 서울지역에서 체포되면 전부 내가 근무하는 군사법원에 기소되어 재판을 받았다. 선임자는 내게 기계적인 양형기준을 알려주었다. 자수했느냐 체포했느냐 그리고 부대를 얼마간 이탈했느냐에 따라 일정한 징역형을 부과하는 것이었다. 헌병에 호송되어 한 번에 칠 팔십명 정도가 끌려와 군사법정에서 재판을 받았다. 나는 그런 형식적이고 기계적인 기준이 마땅치 않았다. 사람마다 얼굴이 다르듯이 탈영하게 된 원인도 모두 다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제 강점기 일본군 부대를 그린 영화처럼 고참병이 신참병에게 자신의 군화 바닥을 핥으라고 모욕을 주던가 참기 힘들만큼 구타를 해서 담장을 넘어 도망칠 수도 있었다. 고향에 혼자 남은 어머니가 아픈데 휴가는 주지 않고 해서 잠시 부대를 빠져나간 경우도 있었다. 사랑하던 여인의 배신으로 술을 먹고 일시 자제하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그 원인이 천태만상이었다. 탈영한 기간도 단정할 게 못된다고 생각했다. 자수하고 싶어도 겁에 질려서 질질 끌다가 시간이 가버린 심약한 경우도 있었다. 탈영병마다 인생의 색깔과 질감이 다른 것 같았다. 그에 따라 형량을 다르게 선고하려고 시도해 봤다. 어느 날 선임자가 내게 주의를 주었다.

“그렇게 들쑥날쑥 형량을 정하면 뒤로 돈을 먹고 재판을 한다고 오해를 받을 수 있어요. 수감자들도 안에서 다른 친구가 어떻게 나가고 어떻게 중형을 받나 그런 것들에 아주 민감하니까. 몸조심하란 말이야”

다칠 수 있다는 얘기였다. 재판을 한다는 것은 내게 너무나 힘든 일이었다. 내일 아침이면 형을 선고해야 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풀어줄 것인지 아니면 징역형을 선고할 것인지 정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누구와 상의할 수도 없었다. 혼자 결정 해야 하는 것이다. 세상을 알고 인간을 이해하기에 내 나이는 너무 어렸다. 그리고 사회경험도 없었다. 심리를 하고 형량을 결정해야 할 때 나는 기도를 하면서 하나님에게 물어보곤 했다. 하나님도 누구를 징역 몇 년에 처하라고 구체적으로 알려주지 않고 침묵을 지켰다. 나는 다음에 부담되는 판사는 절대 하지 않겠다고 마음 먹었었다. 군 검사 시절도 인생의 절벽아래도 떨어질 위험에 처한 때가 있었다. 헌병대에서 폭행범이 송치되어 왔다. 제대하면 사회에 나가 일할 앞길이 창창한 사병이었다. 명문대를 나온 엘리트였다. 군사법원으로 기소해 유죄판결을 받으면 인생이 망가지는 게 안타까웠다. 그 무렵 육군본부에서 근무하는 선배 법무장교가 내게 부탁전화를 하기도 했다. 그의 부모를 부대로 오라고 해서 피해자와 합의하라고 권했다. 그 부모는 군 부대 안에 있는 피해자를 접촉하기 힘드니까 합의금을 대신 전달하고 합의해 주셨으면 한다고 내게 부탁했다. 거기서 나는 큰 실수를 저질렀다. 그 돈을 받아서 합의를 주선하고 사건을 마무리한 것이다. 그 사건을 주시하던 보안 부대 요원은 내가 뇌물을 받고 범죄인을 석방한 내용으로 보고서를 써서 올렸다. 서슬이 퍼렇던 보안사령부에서 나를 수사해서 처벌하라고 육군본부 검찰부에 통보했다. 나는 갑자기 피의자가 되어 육군본부 검찰부로 소환됐다. 조사실에 갈 때였다. 내게 사건을 부탁했던 선배법무장교가 조용히 다가와 말했다.

“내가 부탁했다는 말은 절대 하지 말아줘. 나는 개입되고 싶지 않아.”

그는 겁을 먹고 있는 표정이었다. 곧 제대해서 검사로 출세할 사람이었다. 그를 보면서 씁쓸했다. 조사가 시작됐다.

조사하는 사람들 중에는 평소에 같이 밥을 먹고 떠들던 선배도 있었다. 막상 조사가 시작되니까 사실대로 말해도 내말을 믿지 않는 것 같았다. 조사를 지켜보고 있던 법무장교 선배가 싸늘한 눈길을 보내면서 말했다.

“그러지 말고 사실대로 말하는 게 어떨까? 그래야 조사도 빨리 끝낼 것 아니겠어.”

그 순간 그를 좋아하던 마음이 순식간에 증발이 됐다. 그리고 마음속에서 인연의 끈이 끊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사람마다 달랐다. 조서를 작성하던 군 검사인 다른 선배는 나를 무조건 믿어주었다. 걱정 말라고 하면서 나의 진술서까지 대신 써서 그 자료들을 가지고 장군방에 가서 결재를 받고 나를 풀어주었다. 검사 노릇이 아니라 나의 변호사가 되어준 것이다. 다른 사람이 모두 나를 버리고 미워할 때 내게 찾아와 준 단 한 사람이었다. 바로 그런 사람이 천사이고 인생의 친구인 걸 깨닫는 순간이었다. 나는 평생 그의 친구가 되어주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그가 암으로 일찍 죽어 화장장에 넣어졌을 때 그 앞에 섰던 유일한 사람이 나이기도 했다. 친구에 대한 보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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