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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솔레미오'를 배우고 있어

운영자 2021.04.12 10:4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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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솔레미오’를 배우고 있어




영안실의 제단 위 영정사진 속에서 칠십 늙은이가 우울한 표정으로 문상을 온 친구들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몇 명의 노인 친구들이 장례식장 접객실의 상 앞에 모여 떠난 친구를 생각하며 얘기를 나누고 있다. 그 중 한 사람이 입을 열었다.

“친구가 죽었는데도 왜 눈물이 나오지를 않지?”

“여러 명이 죽었고 이제 우리도 갈 때가 돼서 그런가 봐”

다른 친구들의 대답이었다. 늦가을 나무에 매달린 낙엽처럼 땅에 소리없이 떨어져 대지로 돌아가는 노인들이 된 것이다. 장례식에 참석했던 노인 하나가 서울 근교에 있는 요양병원에 있는 친구에게 휴대폰으로 연락을 했다. 몇 년째 처자식도 찾아가지 않는 외로운 친구였다. 휴대폰 저쪽에서 요양병원에 있는 친구의 목소리가 들린다.

“야 먹고 싶으니까 고량주하고 과자 좀 사와라.”

“알았다.”

병들고 늙어가는 칠십대 노인들의 일상적인 모습이었다. 그 중 한 노인이 이렇게 말했다.

“평생 가족들을 먹여 살리느라고 등뼈가 휘도록 일하면서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어. 한 십 년만 젊었더라도 해 볼 수 있었을 텐데 말이야.”

내가 저녁에 본 텔레비전의 한 장면이었다. 어느새 내가 그들 또래였고 그들이 나였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이 너무 늙어 있어서 나는 깜짝 놀라곤 한다. 그 친구들도 나의 늙은 꼴을 보고 놀라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제저녁 고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오십년 이상 가까이 지내왔던 친구와 순 두부 집에서 함께 저녁을 먹는 자리였다. 그가 이런 말을 했다.

“삼 년 전 쯤이야. 집사람이 더 늙기 전에 마지막으로 성악을 배우고 싶대. 이제 주저할 게 뭐 있겠어? 그래서 우리 부부가 성악가 선생을 찾아갔지. 나는 음치라 할 생각도 안했는 데 그 성악가 선생이 하는 말이 성대에 장애가 있지 않은 이상 음치라는 건 없다는 거야. 일단 일년간 발성연습을 해야 한다고 하더라구. 돼지 목 따는 소리로 아 오 우 하고 목청껏 소리지르는 거야. 아내는 골방에서 그리고 나는 화장실에서 그렇게 소리 소리 지르면서 발성 연습을 했어. 그렇게 일년을 참아내니까 이제 노래를 해도 괜찮다는 거야. 요즈음 ‘오 솔레미오’를 배우고 있어. 집사람과 둘이서 차를 타고 가면서 계속 그 연습을 하고 있지.”

그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메마른 그의 가슴에 촉촉하게 예술의 물기가 스며들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고교 시절부터 그는 철저한 모범생이었다. 법대에 진학해 행정고시를 준비했다. 그리고 일찍 좋은 성적으로 합격을 했다. 그는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는 관료의 길을 걸어갔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장관이라는 관료의 정상에 올랐다. 세상의 기준으로 그는 성공이라는 것을 거머쥔 셈이다. 친구인 그에게서 아쉬운 점이 있었다. 근본적으로 착하고 정이 깊은 친구였다. 젊었던 시절 그가 내게 문학책을 권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 후 그가 관료로 틀에 박힌 생활을 하다가 보니까 정서가 메말라 보일 때가 있었다.

“음악을 듣던 어떤 사람이 소리없이 하얀 눈물을 흘리는 걸 봤어. 어떻게 그렇게 되지?”

그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너도 곧 그렇게 될 거야. 그동안 사회생활을 하느라고 감성이 속에서 잠들어 있어서 그래. 이제 노래를 하다보면 내면에서 촉이 깨어나 너의 영혼을 흔들걸. 그러면 눈물이 나는 거지.”

내가 말해 주었다. 이제 그는 삶에 매진한 것 이상으로 음악에 열정을 기울일 것 같았다. 누군가 그랬다. 서산 넘어 지는 해는 붉다 못해 타오른다고. 이제는 칠십대 중반의 은퇴한 목사를 만났다. 미국유학을 하고 영어에 능통한 분이었다. 그는 남은 여생을 성경주석서 번역을 마무리지었으면 좋겠다고 소원을 말했다. 톨스토이는 칠십이 넘어 이탈리아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이태리 말에서 어떤 매력을 느꼈을 것이다. 칠십대의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리스어를 배우고 첼로를 배우고 싶다고 글에서 쓰고 있다. 인간은 마지막까지 배우고 일하고 싶은 본능을 가지고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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