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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나무의 열매

운영자 2021.04.12 10:4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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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나무의 열매




오래전의 일이다. 고교동기가 나의 법률사무소를 찾아왔었다. 미국에 유학해서 경영학박사 학위를 딴 그는 한국에 돌아와 재벌기업에 근무하다가 그 계열기업인 투자회사의 사장으로 있다고 했다.

“요즈음 어떻게 지내나?”

내가 그의 근황을 물었다.

“투자회사의 사장이라고 하지만 실질은 도둑놈 자식들의 머슴 신세지.”

그의 냉소적인 대답이었다. 내가 묻기도 전에 그가 분노 섞인 어조로 속에 있는 걸 털어놓기 시작했다.

“박정희 정권의 공화당 시절 장관을 했던 사람의 아들이 우리 회사에 몇백억을 맡겨 놨어. 그 돈을 투자해서 많은 이익을 보게 해 줬지. 그런데 말이야 이익을 봤으면 손해를 볼 때도 있는 건데 지난번에는 약간 손해가 났어. 그러니까 그 전직 장관 아들이라는 친구가 전화를 걸어서 나보고 자기 사무실로 오라는 거야. 너무 억울해서 변호사인 자네 한테 온거야.”

“무슨 일이 있었는데?”

“그 놈 사무실에 갔지. 일단은 그놈이 갑인데 어떻게 하겠어? 내가 가서 죄송하다고 하면서 허리를 굽히고 빌었지. 그런데 거기서 끝이 나는 게 아니야. 갔더니 험상궂은 건달들을 불러서 나를 협박하면서 내가 가지고 있는 재산 전부를 자기 손해 본 것에 대한 담보로 제공하라는 거야. 그러면서 가지고 있던 나이프를 꺼내 탁자에 찍으면서 나를 겁주는 거야. 정말 이렇게 살아야 하나 하는 회의가 들어.”

“협박한 그 놈은 어떻게 그렇게 많은 돈을 가지고 있어?”

내가 물었다.

“그 놈은 자기가 한 푼도 돈을 벌어본 적이 없는 놈이야. 마리화나를 피고 계집질에 술, 골프로 살아가는 놈이지. 하는 일이라고는 그것 밖에 없어. 그 놈 애비도 보면 그 시절 관료를 하고 장관을 한 것 이외에는 다른 걸 한 적이 없어. 그렇다면 그 많은 재산의 배경이 뭐겠어? 뇌물을 받거나 개발 정보를 빼서 부동산투기를 한 게 아니겠어? 그런 돈을 자식이 상속받은 거지. 그런 놈이 욕심은 더 많아. 골프를 치다가도 증권 시세가 조금이라도 내려가면 나한테 전화를 걸어 호통을 치는 게 그 놈의 일과야.”

투자회사 사장의 눈에서 은은한 증오의 불길이 타오르고 있었다. 그가 덧붙였다.

“우리 같은 투자회사 뿐 아니라 지하경제를 이끄는 돈을 보면 이 나라가 얼마나 썩었는지 알 수 있어. 사채시장의 돈들을 보면 어떤 돈은 전직 장관이나 권력의 실세였던 장군의 돈, 어떤 돈은 대통령의 돈, 어떤 돈은 재벌의 비자금등 그렇고 그런 내막을 가지고 있어. 그렇게 사채를 놓다가 국가가 불안해지면 그 돈들이 불법적으로 빼돌려져서 미국의 빌딩이나 땅으로 옮겨져 가기도 하지.”

이 사회의 그들속에 있는 천민자본주의의 이면이었다. 육칠십년대 개발 독재 시절 국민경제가 성장했다고 하지만 부정부패가 수채가의 독초같이 번성했다. 해외에서 차관이나 융자를 받아와도 그리고 무기나 석유를 사와도 권력자나 정치인 관료들이 중간에서 엄청난 돈을 챙겼다. 그들에게 젖줄을 댄 투기꾼들이 개발 정보를 얻어 일확천금을 했다. 그런 시대가 있었다. 삼십년 전 강남의 한 빌딩에 세를 얻어 법률사무소를 차렸을 때였다. 비싼 월세를 내기 힘이 들었었다. 그 빌딩의 바로 옆에 곰탕 가게가 있는 자그마한 땅이 있었다. 부근에 법원이 들어선다는 걸 알고 법무사 한 사람이 야산 돌밭이었던 그 땅 백 평을 사 놓았다고 했다. 변호사를 하면서 몇 십년 돈을 벌어도 이미 오른 그 땅을 사기가 불가능했다. 잠을 안자고 공부를 해서 자격을 따고 수십년 땀흘려 노동을 하는 것 보다 부동산 한 조각을 사는게 더 안락을 차지할 수 있는 사회였다. 주택가격이 오를 것 같으면 한사람이 백 채의 집을 사두기도 했다.

부자는 더욱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은 더욱 가난하게 됐다. 세상이 부동산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뉘어지기도 했다. 양극화를 막는 것이 대통령의 중요한 임무로 선거 때마다 공약으로 발표됐다. 부정과 비리의 독을 뿌리에서 흡수한 나무의 열매는 ‘독나무의 열매’가 된다. 독나무의 열매는 한 집에서는 놀고도 밥이 썩어나는데 다른 집에서는 뼈가 휘도록 일하고도 배를 곯는 나라로 만들었다. 예수는 제대로 된 열매를 맺지 못한 나무를 저주해서 단번에 말려 죽여버렸다. 정권에서 강력한 세금폭탄 정책으로 부를 상속받고 무위도식하는 계층에게 경종을 일으키고 있다. 밀과 가라지를 구별하기가 양과 염소를 분류하기가 정말 힘든 세상인가 보다. 항암제가 자칫하면 정상세포를 죽이듯 땀 흘려 얻은 노동으로 선한 열매를 맺은 서민들이 엉뚱하게 피해자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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