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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은 남용해야 제 맛이지

운영자 2021.05.03 09:5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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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은 남용해야 제 맛이지




변호사로 법정을 나가보면 소송 진행을 하는 재판장들의 태도가 제각각이다. 어떤 사람은 벅벅 소리치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침착하고 조용한 태도다. 어떤 사람은 말이 많고 다른 재판장은 열심히 듣는다. 그 배경을 알아보면 초임 판사 시절 상관인 부장판사가 재판장으로 법정에서 한 행동을 도제식으로 배운 것이라고들 말을 했다. 공직에 있을 때 좋은 상관의 행동은 그대로 후임자들의 모범이 되는 것 같았다. 삼십대 중반 무렵 대통령 직속 기관에 있으면서 나도 좋은 상관을 만난 인연으로 많은 걸 배웠다. 그리고 그것들이 삶의 영양소가 된 것 같다. 그 시절 내가 직접 보좌했던 장관급의 상관은 매일 거의 새벽에 출근했다. 출근하면 사무실 뒤에 있는 작은 내실에 들어가 예수초상 앞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를 했다. 배의 중심을 잡는 바닥짐처럼 인생도 신앙이 있어야 흔들리지 않는 닻의 역할을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밤이 늦어도 그는 언제나 신경줄을 사무실에 연결해 놓고 있었다. 언제 대통령이 연락을 해서 의견을 물어볼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상관인 그는 제갈공명 같은 책사 노릇을 겸한 실질적인 권력자였다. 그는 틈틈이 짜투리 시간을 이용해서 책을 읽었다. 라즈니쉬나 크리슈마 무르티의 정신세계 책들을 탐독했다. 그리고 일본의 전국시대를 이끈 책사 료오마를 특히 좋아하는 것 같았다. 상관인 그를 통해 또 다른 세계를 소개받은 셈이었다. 그가 읽은 책을 따라 읽었다. 그는 권력을 가지고 있어도 절대로 무리를 하지 않았다. 곤경에 빠진 사람이나 힘들어하는 사람을 도와주었다. 권력은 잡혀간 사람을 석방시킬 때 소리 없이 사용했다. 어느날 그는 차를 타고 늦게 가다가 제과점에 들어가 빵을 사가지고 돌아와 운전기사와 같이 먹었다. 그 후에 상관은 내게 이렇게 측근을 다스리는 방법을 말해 주었다.

“단팥빵이나 곰보빵은 우리에게 독특한 정서가 깃든 빵이지. 운전기사는 친동생 같이 가족같이 유대관계를 돈독히 해 두어야 해. 보좌관도 마찬가지지. 그런 관계는 단순한 직장에서의 고용 관계가 아니야. 인간관계로 맺어두지 않으면 문제가 생길 수 있어.”

그리고 그는 이런 의미 있는 말을 내게 던졌다.

“권력이란 말이야. 사실 남용해야 제 맛이지 그렇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니야. 하루 이십 사 시간 내내 일만 하는 셈이니까.”

그는 내게 정책수립에 대해서도 이렇게 말해 주었다.

“매일 신문을 보면 어떤 사건이 보도되면 그제 정치적으로 문제가 될 것인지 아닌지 감이 오지. 나는 그때 눈사태를 떠올린다구. 처음에는 작은 눈 덩어리들이 구르기 시작하지. 그걸 보면서 그게 어디까지 진전될 것인지를 파악해야 해. 다급하게 그 앞만 대충 막으려고 하면 안 되는 경우가 많아. 이게 눈사태로 번져서 계곡 중간까지 갈 적인지 아니면 아예 골짜기 바닥까지 눈이 덮일 것인지 예측해야 한단 말이야. 그걸 생각하고 어디에 눈을 막을 정치적 둑을 설치해야 할까를 정해야 하는 거야.”

내가 모셨던 그는 지혜로운 인물이었다. 어느 날 그가 내게 이런 말을 해 주었다.

“내가 삼십대 말경 대통령이 나를 비서관으로 차출 해서 청와대로 들어갔었지. 대통령이 나를 아주 총애했어. 내가 사십대 초반에 대통령은 나를 정치로 나가라고 하면서 먼저 대도시 시장으로 임명하려고 했어. 우선 생각하면 대단한 출세인 셈이지. 그런데 그렇게 드러나게 성공하면 살아남기가 힘들겠더라구. 그래서 사양을 하고 세상에 드러나지 않는 자리를 선택했었지.”

시대의 격류가 소용돌이를 치고 대통령과 측근들이 감옥을 가는 모습이 정권마다 있었다.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이 구속이 되고 김대중 김영삼 대통령은 아들과 측근들이 징역생활을 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자살을 하고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과 측근들은 또 감옥행이었다. 내게 공직자의 삶을 가르쳤던 상관이자 선배였던 그는 소박하고 조용한 산자락의 집에서 평화롭고 안락한 노년을 즐기고 있는 것 같다. 일년 후의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후보자들이 시퍼렇게 날 선 칼을 들고 서로 피를 보려고 싸우는 모습이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보인다. 그들이 좀 더 지혜로워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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