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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영어성경

운영자 2021.05.03 10:0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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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영어 성경




초등학교 육학년 무렵이었다. 흑백 텔레비전 화면에서 종로거리를 지나가는 상여 행렬이 보였다. 하와이로 망명했던 이승만 대통령이 고국으로 돌아와 땅속에 묻히기 위해 마지막 길을 가는 모습이었다. 내가 유치원에 가기도 전인 서너살 무렵 엄마가 “우리나라 대통령은?”하고 물으면 “이승만 대통령”하고 대답을 했었다. 초등학교 일학년 무렵 봄이었다. 내가 살던 신설동 큰길에 여러 명의 청년들이 적재함에 빽빽하게 탄 트럭이 지나가는 게 보였다. 트럭의 본넷에는 머리에 띠를 두르고 앞에 도끼를 든 남자가 무서운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어머니는 인도에서 멋모르고 구경하는 어린 나를 끌고 주위를 살피며 집으로 돌아왔다. 어른들이 혁명이 일어났다고 하고 있었다. 이기붕일가가 모두 죽었다면서 불안해 하는 모습이었다. 골목 끝 모퉁이 작은 서민 한옥에 살고 있는 중학교에 다니는 형들이 재미있다는 얼굴로 이런 말을 하고 있었다.

“학교가 끝나고 집에 돌아오려고 하는 데 길거리에 텅 빈 전차만 그냥 버려져 있는 거야. 데모가 심하니까 전차 차장이 차를 놔두고 도망을 가버린 거야. 그래서 우리가 평소에 봐둔대로 운전 손잡이를 움직이니까 전차가 스르르 가더라구. 그걸 타고 집으로 왔어. 재미있던데”

그게 어린 나의 시야에 들어왔던 4.19 혁명의 모습이었다. 사람들은 그가 독재를 했다고 했다. 독재가 뭔지 내가 알 리가 없었다. 나중에 책이나 자료를 통해 이승만이라는 인물을 알게 됐다. 고종 황제 시절 기독교 학교인 배제학당을 나온 이승만은 독립신문의 기자가 됐다. 그는 외세에 의존해 명맥을 유지하려는 왕실의 정책에 반대하는 글을 과감히 썼다. 고종황제에게 그는 눈의 가시였다. 그는 스물다섯살 때 ‘고종황제 폐위 음모사건’에 연루되어 오년 칠개월동안 감옥생활을 했다. 감옥 안에서 그는 독자적으로 영어사전을 만드는 작업을 했다. 석방된 그는 미국으로 갔다. 서른 살 무렵이었다. 그는 서른여섯 살에 프린스턴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고종황제가 일본에 나라를 넘기던 천구백십년이었다. 그는 해외에서 일생 독립운동에 몸을 던졌다. 해방이 된 후 남한 단독정부를 수립했다. 그 배경에 대해 나의 대학시절 김상협 정치학 교수는 이렇게 설명했었다.

“그 무렵은 세계가 미국과 소련으로 나뉘어 대치하는 냉전의 시대였어요. 약소국들이나 독립을 하려는 나라들은 미국이나 소련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서 줄을 서야 하는 상황일 수 밖에 없었지. 남녀의 결혼처럼 순간의 선택이 그 나라의 미래를 운명 지우는 그런 상황이기도 했어. 국제정세를 보지 못하고 정치력이 약한 순진한 김구 선생은 남북을 드나들면서 통일 조국을 만든다고 하다가 이용만 당하는 상황이었지. 상황을 재빨리 파악한 이승만은 미국 쪽에 재빨리 줄을 서고 대한민국 단독정부를 만든 거야. 냉전시대 미국은 자기 쪽에 줄을 서는 나라에는 동맹조약을 만들어 주고 원조도 해 주고 또 미국시장 안에서 물건을 팔아먹게 하는 관대함도 보였었거든. 내가 나중에 동유럽쪽에 가서 그곳 지도자를 만난 적이 있는데 한국의 이승만대통령은 정말 타이밍에 맞추어 현명한 선택을 했다고 하더라구. 동유럽은 줄을 잘못 서서 발전이 늦었다고 한탄하더라구.”

초대 대통령이었던 이승만의 삶은 검소했던 것 같다. 그는 일제강점기 조선총독이 살던 집을 경무대라고 이름을 바꾸어 거기서 대통령의 업무를 보았다. 가난한 나라에서 돈을 아낀다고 커튼도 조선 총독이 사용하던 걸 십여년 그대로 두었다. 대통령의 집무실에 비가 새도 수리를 하지 못하도록 지시했다. 그는 양말이나 속옷을 여러번 기워서 입은 검소한 대통령이었다. 그는 말년에 하와이로 쫓겨가 그곳에서 죽었다. 그에게 남은 것은 그가 평생 읽었던 영어 성경 한 권이라고 했다. 평생 그에게는 어떤 스캔들도 없었다. 그만하면 우리 역사에서 존경할 만한 인물이라는 생각이다. 고교동기가 이승만사업회의 회장이 되어 활동하고 있다. 얼마 전 그가 분노하는 모습을 보았다. 조국 통일의 걸림돌이었다고 이승만을 욕하고 역사를 왜곡하는 사람들에 대한 분노였다. 이승만 대통령은 평생 성경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하나님이 계시하는 일을 하면서 자기 십자가에 올라가 피를 흘리는 게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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