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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은 잘 놀리고 있네

운영자 2021.05.03 10:0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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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은 잘 놀리고 있네



나는 법정에서 한 살인범을 변호하고 있었다. 그는 오랫동안 정신과에 다니면서 치료를 한 기록이 있었다. 재판장은 그 기록을 보고 정신감정을 명령했다. 그는 중증의 정신분열증이라는 회신이 왔다. 그는 정신 분열 상태에서 아내를 죽인 것이다. 더러 정신병자 중에서 그런 경우가 있었다. 방에 짐승이 들어오길래 칼로 찔렀더니 그게 어머니였다는 여성도 있었다. 내가 살인범 본인에게 물었다.

“아내가 죽은 그날 새벽 둘 만 있었을 때의 상황이 어땠습니까?”

“창 밖으로 어슴푸레하게 동이 터오고 있었는데 분명 그놈이 그 뒤에 숨어서 우리를 노리고 있는 것 같았어요. 그 놈은 항상 나를 따라다니면서 노렸어요. 그 놈이 소리 없이 우리 부부가 자는 침실까지 들어온 것 같았어요. 일어나 보니까 아내가 목이 졸려 죽어 있었어요.”

경찰감식반의 조사는 현장에 침입한 외부인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의 속에 있던 또 다른 존재가 아내를 죽인 것 같았다. 그때 방청석에서 지켜보던 한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변호를 하는 뚜벅뚜벅 걸어서 내 앞으로 왔다. 판사들과 검사 그리고 법정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됐다. 그가 분노한 표정을 짓고 손을 들어 올려 나를 가리키면서 소리쳤다.

“변호사 당신 말이야. 멀쩡한 놈을 정신병자로 몰아서 무죄로 만들려고 하는데 그런 식으로 몰면 못써.”

죽은 여성의 아버지였다. 충분히 그렇게 오해 할 수 있었다. 그는 당시 최고의 시청율을 자랑하던 드라마를 만든 유명한 감독이었다. 죽은 딸도 광고업계에서 대박을 터뜨렸다는 작품을 만든 커리어우먼이었다. 아버지와 딸이 다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그러다 딸이 어느 날 갑자기 공중의 계단을 걷다가 허공으로 떨어져 버린 것 같았다. 재판장의 제지로 간신히 변론을 끝내고 법정문을 통해 밖으로 나왔을 때였다. 그 드라마 감독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옆에는 스텝진으로 보이는 남자들이 적의가 가득찬 눈으로 나를 보면서 둘러쌌다. 한 남자가 나를 째리면서 소리쳤다.

“사형시켜야 할 악질 살인범을 변호하면서 입은 잘 놀리고 있네. 이런 변호사 놈을 보면 때려 죽이고 싶어.”

분위기가 험악했다. 갑자기 주먹이 날아올 것 같았다. 나는 그들의 퍼렇게 날이 선 저주와 욕설과 비난을 담담히 받아들였다. 그들의 시각에서 보면 당연할 것이다.

“이런 변호사 새끼들이 사기꾼 공갈범도 다 변호해 준단 말이야. 돈만 주면 뭐든 다 하는 나쁜 놈들이야.”

변호사 생활 내내 그런 욕을 먹으면서 살아왔다. 토스토엡스키는 그의 작품에서 변호사를 ‘고용된 양심’이라고 표현했다. 공산주의자들은 변호사를 ‘자본주의의 첨병’이라고 했다. 의뢰인들은 돈을 주고 변호사를 샀다고 표현했다. 죄는 자신들이 졌으면서도 형이 선고되면 변호사가 뭘 했느냐면서 행패를 부리기도 했다. 그렇게 변호사를 하면서 밥을 벌어먹고 아이들을 키웠다. 이따금씩 죽어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경우 이 세상에서 지은 죄를 어떻게 설명을 할 것인가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그런 때 변호를 나선 예수가 세상에서 했던 나의 아주 작은 선행 하나라도 재판장인 하나님께 말해 준다면 정말 고마울 것 같았다. 나는 예수를 나대신 욕도 먹어주고 좋은 말도 해 주는 그런 변호사로 생각했다. 긴 세월의 징역형이 선고되고 나서 그 살인범을 감옥에서 만났을 때였다. 그가 이렇게 말했다.

“어려서부터 최고의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어요. 연극영화과를 같이 나온 동기들이 대박을 치고 유명해졌어요. 나도 그렇게 되려고 발버둥을 쳤죠. 그러다 어느 날부터 척추협착증으로 집에서 꼼짝 못하고 누워있었어요. 혼자 방에만 있다가 보니까 어떤 검은 그림자가 나를 노리는 것 같았어요. 늘 피해 다녔죠. 그 놈이 제 사랑하는 아내를 죽인 거예요.”

그는 근본적으로 연약한 성품이었다. 그리고 돈도 없고 몸도 쇠약하고 정신적으로도 많이 아팠다. 그를 위해 한마디 해 준 것이 맞아죽을 만한 나쁜 일인지 다시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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