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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의 협박

운영자 2021.05.17 10: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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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의 협박




이천삼년 십이월 십사일 회색 구름이 도심의 하늘에 잔뜩 끼어 있는 오후였다. 전화벨이 무겁게 울렸다. 액정화면에 발신자 번호가 모호한 전화였다.

“누구십니까?”

내가 물었다.

“국가정보원입니다.”

어조를 가라앉힌 남자의 은근한 위압조의 음성이었다.

“무슨 일입니까?”

“우리 정보기관 직원이 조직을 상대로 하는 소송을 맡으셨죠?”

나는 국정원에 있던 고참 요원 몇 명이 자신이 있던 정보 조직을 상대로 소송을 해 달라는 사건을 맡았다. 김대중 정권이 시작되고 정보기관 내에 대규모 숙정 바람이 불었다. 그 중 몇 명이 억울하게 쫓겨났다고 하면서 위법한 면직처분에 대해 행정소송을 부탁했었다. 소송을 수행하려면 자연히 그들이 그동안 근무해온 행태나 그 안의 비밀을 얘기하는 걸 들을 수 밖에 없었다.

“소송을 진행하는 내용을 저희한테 빠짐없이 보고하고 허락을 받으세요.”

전화 저쪽의 남자가 협박조로 말했다.

“이보세요, 당신은 지금 변호사인 내가 상대해서 싸우는 조직 아닙니까? 그런데 내가 싸우는 전략이나 전술을 다 보고하고 허락을 받으라구요? 그런 전쟁도 있나요? 소송은 하나의 현대의 전쟁이고 그 때 그때의 법정은 전투현장인데”

“면직된 그 요원들은 수많은 국가기밀을 알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변호사가 자칫해서 그걸 간과하고 법정에서 기밀을 노출하면 다치실 수도 있을 건데 그렇게 되도 괜찮으시겠습니까?”

그의 협박이 한 단계 노골적이 됐다.

“그건 알아서 하시고 전화를 걸어서 협박을 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먼저 압시다. 그 조직 어느 부서에 있는 누구입니까? 내가 확인할 수 있도록 신분부터 밝혀 봐요.”

그 조직은 어느 부서에서 무슨 일을 한다는 것도 비밀이었다. 또 조직원들의 신분 노출도 금지되어 있었다. 그가 자신의 직책과 신분을 밝히면 그 자체가 비밀누설이었다.

“다른 변호사들은 다 우리 요구대로 들었는데 왜 엄변호사만 안 듣는 거요?”

상대방 남자가 목소리를 높였다.

“그건 내 맘이라니까. 지금 당신들과 싸움을 하고 있는데 어디를 어떻게 때리겠다는 걸 말하고 허락을 받으라고? 그게 말이 돼?”

“그럼 몸조심하셔야 할 텐데?”

노골적으로 그는 내게 겁을 주었다.

“납치를 하든지 감옥에 넣든지 알아서 하쇼. 나도 폭력앞에는 약하디 약한 인간이니까 패면 무릎을 꿇지. 그렇게 하라고. 이 정권의 김대중대통령도 많이 당하신 분 아닐까? 그런데 그 직속의 부하들이 또 이런 짓을 하네. 안그래?”

나는 전화를 끊어 버렸다. 김영삼 정권에서도 그런 비슷한 일이 있었다. 교도관들이 한 재소자를 밤에 때려죽이고 인근의 산에 매장한 일을 알게 됐다. 갑자기 심장발작을 일으켜 죽었다고 거짓보고서로 그 죽음을 은폐 했다. 지역의 의사는 온몸에 번진 보랏빛 멍을 보고도 외면하고 심장마비라고 간단히 의학적 사인을 기재했다. 담당 검사는 확인도 하지 않고 변사체를 매장하라고 지휘했다. 나는 그 사실을 알고 세상에 폭로했다. 그 얼마 후 검찰청에서 전화가 왔다. 그는 자신을 변검사라고 하면서 말했다.

“당신 변호사 계속 할 생각이 있는 거요?”

지저분한 협박이었다.

“당신이 변호사 자격을 줬어? 내가 법률사무소를 계속하는 걸 당신이 왜 간섭을 해?”

“그렇게 떠들고 다니는데 증거 있어?”

“억울한 죽음에 대해서는 당신 검사들이 증거를 찾아서 기소하는게 임무 아닌가? 그게 수사 아니야? 그것도 잘 몰라?”

그렇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우리 조상은 왕이 싫어하는 인물의 억울한 상황을 도왔다가 역적이 됐다. 조상이 왕에게 여덟 글자의 한자로 된 글을 올렸다.

“선한 일 했다고 벌을 준다면 달게 받을 께”

그 한 줄의 글로 역적이 됐다고 했다. 그리고 산에 들어가 이백년 동안 후손 대대로 숨어 살았다. 나는 영의정 벼슬을 한 양반보다 상놈도 못 되는 우리 조상이 더 자랑스러운 사람이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 같은 낮은 사람들을 사랑하신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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