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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단계 낮췄지

운영자 2021.05.24 10: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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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단계 낮췄지




블로그에 댓글이 하나 떴다. 이런 내용이었다.

‘다음 주 변호사 시험 발표를 앞 두고 있는 청년입니다. 저의 삶에도 터널을 벗어난 순간이 오길 바라는데, 과연 그런 날이 올지 너무나 떨리고 긴장이 되네요---’

그의 마음에는 여러 가지 감정이 교차 되고 있을 게 틀림없었다. 변호사시험은 로스쿨 졸업 후 오 년간 세 번만 응시자격이 있다. 그 이후는 영원히 자격을 딸 수 없도록 되어 있는 것 같다. 로스쿨을 나오고 변호사시험에 합격이 되지 못하면 어디 가서 로스쿨을 나왔다고 하기도 힘드는 것 같다. 패배자라는 주홍글씨가 그에게 박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모두 대학에서는 ‘올에이’의 성적을 받은 우수한 학생들이다.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면 마음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평생을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합격자 발표를 앞두고 있는 그 청년이 음침한 터널을 벗어나 맞이하기를 바라는 밝은 태양이 비치는 세상은 어떤 것일까. 유능한 변호사로 있다가 판사도 되고 장관도 되고 그게 성공한 인생의 종착역일 수도 있다. 며칠 전 나를 포함한 네 명의 친구가 만나 점심을 했다. 고등학교 대학교를 같이 나오고 칠십 고개까지 우정을 나눈 친구들이었다. 행정고시에 합격한 친구는 장관까지 했고 나머지 두 친구는 부장판사를 했다. 나는 뒷골목 변호사로 평생을 지내온 셈이다. 고등학교시절 나는 그중에서 제일 성적이 뒤떨어졌다. 반장을 하던 장관 친구는 내게 수학을 가르쳐 주면서 친해졌었다. 그런데 우리들에게는 고등학교 시절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그건 우리가 희망하던 최고의 명문 법대를 가지 못하고 그 다음 레벨의 법대를 갔다는 일종의 패배의식 비슷한 감정이었다. 물론 보는 시각에 따라서는 배부른 잘난 체 하는 이해 못할 소리일지도 모르지만 우리들의 시각에서 그건 사실이었다. 인간의 고민과 좌절감이란 동심원같이 부자는 부자대로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 대로 성공한 사람은 성공한 대로 마찬가지일 수가 있다.

“너는 내가 보면 공부에는 타고난 선수고 학교 때 계속 반장을 했는데 어떻게 서울법대를 가지 못했냐?”

내가 장관을 지낸 친구에게 물었다.

“고등학교 삼학년 말에 갑자기 몸이 아팠어. 그리고 성적이 뚝 떨어지는 거야. 그래서 지망을 한 단계 낮췄지. 그랬더니 교장 선생님이 불러서 반장인데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거야. 정외과 같은 다른 과를 가더라도 서울대에 가야 한다는 거야. 그 말을 듣지 않고 내 길을 간 거지 뭐. 남 눈이 무슨 상관이야. 내가 실력이 안 되는데. 다시 분발해서 고시에 합격하면 된다고 생각했어.”

그는 대학 졸업 무렵 행정고시에 합격했다. 그가 덧붙였다.

“공무원으로 출발해도 비슷한 상황이었어. 성적이 좋고 집안배경이 좋은 친구들은 최고의 엘리트부서인 경제기획원에 모이더라구. 내가 가서 경쟁력이 있을까 의문이 들더라구. 그래서 차선책으로 인기가 그보다 못한 내무부를 선택했었지. 관료사회라는 게 또 그 나름대로 기나긴 터널이야. 그걸 인내하면서 살다 보니까 어느 날 대통령이 장관을 하라고 하더라구.”

그의 성품이 그를 그 자리까지 가게 만든 것 같았다. 집요한 출세욕이 있는 것 같지 않았다. 경쟁에서 이기려고 아등바등하지도 않았다. 윗사람에게 성실하고 주변 사람을 잘 돌보아 주는 성격이었다. 부장판사를 지낸 다른 두 친구도 대학에서 분발해서 공부를 해 법관이 되고 무난하게 공직생활을 마쳤다. 정작 인생의 터널을 다 지나온 건 우리들이었다. 이제는 장관도 법관도 아니고 변호사도 사실상 그만 둔 상황이었다. 우리는 모든 사회적 굴레에서 해방된 자연인이었다.

“너희들은 요새 뭐 하고 지내니?”

내가 친구들에게 물었다.

“오전에도 구청 복지회관에 갔다 오는 길이야. 여러 가지를 배워줘. 노인에게 밥을 주는 데도 있고 말이야. 밤에는 넷플릭스로 드라마나 영화를 보는데 그걸 보다가 잠이들어.”

인생 무대에서 내려온 말년은 다 보통사람이고 평등하다. 이따금씩 성묘를 갈 때 묘지에 줄지어 있는 비석들을 본다. 그 누구나 태어난 날과 죽은 날 만이 새겨져 있을 뿐이다. 그 시간 동안 뭘 했고 얼마나 가졌느냐 보다 어떻게 마음에 평안을 얻으면서 즐겁게 살았느냐가 중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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