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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의 삐에로

운영자 2021.05.24 10: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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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의 ‘삐에로’




이천삼년 노무현 정권이 들어서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오랫동안 노무현 변호사의 사무장을 하던 사람이 대통령의 측근 비서가 되어 집사를 하면서 뇌물을 먹은 사실이 언론에 터져 나오고 있었다. 전직 대통령의 아들이나 비서들 한테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권력을 잡으니까 돈이 블랙홀처럼 주변으로 빨려들어오더라는 것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오른팔 왼팔 노릇을 하던 안희정과 이광재의 정치자금 문제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 있었다. 국회에서 현직 대통령 주변의 권력형 비리를 조사하는 특별검사법안이 통과됐다. 군 장교시절 선배 한 사람이 나를 보자고 하면서 사무실로 오라고 했다. 평소에 자주 보던 친한 사람은 아니었다.

“비밀장소에 특별수사본부를 마련했어. 검사와 수사관 팔십명 가량이 임명될 예정인데 자네가 그 전체를 지휘해 줄 생각이 없나? 그럴 뜻이 있다면 추천할 예정이네.”

그는 내가 결심만 하면 임명이 거의 확실하다는 표정이었다.

“신중하게 생각을 해 보겠습니다.”

“왜?”

선배가 되물었다. 최고권력과 싸우고 언론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을 수 있는 자리인데 다른 무슨 생각이 필요하냐고 묻는 듯한 얼굴이었다.

“지금 변호를 맡고 있는 사건이 있는데 그것 때문에 그렇습니다.”

“변호하는 사건이야 다른 변호사한테 넘기면 되지 뭘 그러나? 이런 사건은 권력도 되고 명예도 되고 수사한 사건들이 대법원에서 확정될 때까지 몇 년간 수입도 보장이 되는 거야.”

“아닙니다. 지금 살인사건을 맡아 무죄 투쟁을 하고 있는데 재판이 너무 깊이 들어가 있어서 그 내막을 세세히 아는 내가 아니면 안 되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곤란할 것 같아 그렇습니다.”

내가 변호를 맡은 사건의 개인의 운명이 결코 정권 차원의 비리사건보다 가벼울 수 없었다. 개인적 명예욕 때문에 내가 진행하는 사건을 뿌리치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날 저녁 집으로 돌아와서 생각해 보았다. 고졸 출신의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기득권층의 분노가 끓어오르고 있는 것 같았다. 학력이 없고 엘리트 사회의 네트 워크에 끼지 못하면 무시하는 세상이었다. 명문대를 나오고 엘리트집단에 있으면 이번에는 질시와 미움을 받는 사회이기도 했다. 기존의 엘리트 그룹은 고졸 출신 노무현의 대통령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했다. 그들이 집단적으로 능욕이라도 당한 것처럼 수치심을 느끼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나는 생각이 달랐다. 누구나 대통령이 될 수는 없지만 누구라도 대통령이 될 수 있는 길이 뚫려 있어야 민주주의 사회일 것 같았다. 엘리트라고 인정되는 기성 법조인들을 보면 분노할 줄 모르는 마네킹 같다고 느껴왔다. 전통적인 유교 사회는 자신을 절제하고 화를 내지 않은 것을 군자의 덕으로 여겨왔다. 그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우리 들은 거푸집 같은 교육의 틀 속에서 정신적 전족을 하고 아예 화를 내지 못하는 인간이 되어 버린 면도 있었다. 그런데 노무현변호사는 다른 것 같았다. 그는 불공정한 현장을 보고 공작적인 엉터리 법률적용을 보고 분노할 줄 알았다. 그 분노를 동력으로 거리의 변호사가 되기도 했다. 대통령이 되기 위해 여당과 합친 김영삼을 따라가지 않고 혼자 남아 소외와 패배를 맛보기도 했다. 그런 사람으로 알고 있었다. 엘리트층 기득권층의 국회권력은 자존심이 상하고 그를 대통령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아 하는 것 같았다. 그가 탄 말을 쓰러뜨리려 하는 것이 특별검사법통과의 배경이고 그런 의식의 흐름이라면 탄핵이 거론될 것 같았다. 권력 기반을 마련하지 못한 그에 대해 거대 야당의 정략과 장난이 숨어 있는 것 같았다. 그 수사를 맡는다면 현직 살아있는 권력인 대통령을 조사하고 진술을 받아낼 수 있어야 했다. 자신도 없고 하고 싶지도 않았다. 기도를 하면서 내면에 있는 성령에게 물어보았다. 성령은 내게 권력의 ‘삐에로’가 되지 말라고 가르쳐 주었다. 뒷골목 작은 법률사무소의 개인 변호사로 시작했으면 그걸로 끝을 맺는 게 맞는다는 생각이었다. 강가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을 자유의 땅으로 건네주는 뱃사공이 나의 천직이었다. 어느새 노무현 대통령도 또 그를 조사하자고 나를 추천했던 선배도 다 하늘나라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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