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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뚤어지고 뒤틀린 혁명

운영자 2021.05.31 10:3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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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뚤어지고 뒤틀린 혁명




이천삼년이 저무는 십이월 말이었다. 시내에서 친구들을 보고 밤늦게 택시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차 안의 라디오에서 엊그제 있었던 노무현 대통령의 연설이 정치평론가에 의해 도마위에 올려져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그의 적극적인 지지자들 앞에서 ‘시민혁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한 말이 문제가 된 것이다. 평론가들은 국민전체를 대표해야 할 대통령이 특정그룹만 대표하면서 적대적인 어떤 대상을 상징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무렵 나는 아이들을 엄마를 딸려서 유학을 보내고 기러기 아빠로 분당의 야탑역 부근 상가주택에서 혼자 지내고 있었다. 택시가 도심의 한적한 외곽을 달리고 있었다. 간간히 늘어선 수은등의 차가운 불빛이 거리를 비추고 있었다. 택시가 거의 집에 다다랐을 무렵이었다. 시계가 밤 한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핸들을 잡고 묵묵히 가던 택시기사가 갑자기 내게 말했다.

“이 세상이 한번 뒤 집어지는 세월이 오기는 올까요?”

단순한 말이 아닌 것 같았다. 수십 년 쌓여온 그의 마음속의 화석같은 앙금인 것 같았다. 그의 말을 들으면서 노무현 대통령의 시민혁명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생각했다. 혁명을 바라는 사람들이 곳곳에 존재했다. 사북탄광에서 일했던 광부의 아들이라는 한 변호사는 내게 거리 곳곳에 붉은 깃발이 휘날리는 걸 보고 싶다고 했다. 상품 세일즈를 하던 그는 아무런 잘못도 없이 부자 도매상 사장 앞에서 무릎을 꿇고 빌던 한을 얘기했었다. 그 이후 공부를 해서 변호사가 됐다고 했다. 사람들의 한과 증오가 쌓여서 폭발 직전에 있는 것 같았다. 우리에게는 그런 피가 유전자 같이 흘러내려온 것 같았다. 동학 혁명때 죽창을 든 사람들이 들고 일어나 갑부와 관리집을 쳐 들어가 찔러 죽였다. 그 시절을 살았던 강증산이라는 인물은 전주성을 점령하러 가는 동학군을 따라가면서 반대했었다. 당신네들이 하고자 하는 것은 혁명이 아니라 부자를 죽이고 그 자리를 빼앗아서 잘 먹고 잘 살고 싶은 욕망일 뿐이라고. 강증산은 정신의 개벽을 사람들에게 주장했다. 어떤 면에서 로마가 기독교에 의해 점령된 것이나 러시아혁명의 승리는 민중의 증오에서 나온 것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이 시대를 사는 가난한 사람들의 마음이 비뚤어지고 뒤틀린 걸 발견하곤 한다. 한 번은 막노동을 하면서 아이들을 키우고 사는 삼십대 말의 여성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삶이 너무 힘들어요”

그녀의 말이었다. 그래도 그녀는 따뜻한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아이들도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그녀는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지 못하고 수영과 스키를 가르쳐 줄 수 없는 걸 힘들어 하고 있었다. 나는 그녀가 힘들다고 하는 게 가슴에 와 닿지를 않았다. 나는 오육십년대의 전설 같은 가난을 살아왔다. 고등학교시절까지 깡통을 든 거지들이 우글거렸다. 판자를 얼기설기 엮고 상자를 뜯어 붙인 집들이 다닥다닥 붙은 산 아래 동네에서 살았다.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르는 한 장면이 뇌리에 남아있다. 한 거지가 연탄재가 포개진 위에 버려진 쉰 김치 줄거리를 무릎을 꿇고 허겁지겁 주워 먹는 장면이었다. 실업자가 포장마차에서 오원짜리 수제비 한 그릇을 사 먹고 사직공원 벤치에서 하루를 보냈다는 시를 읽고 자라기도 했다. 모두가 가난한 속에서 가난은 가난이 아니기도 했다. 그래서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나는 막노동을 한다는 그녀에게 그래도 따뜻한 아파트가 있지 않느냐고 했다. 작아도 그런 아파트에 살아보는 게 내 젊은 날의 꿈이었다. 그래도 밥 굶을 걱정은 하지 않고 살지 않느냐고 물었다. 학원을 안가도 수영을 배우지 않아도 스키를 아이들에게 가르치지 않아도 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변호사님 세대하고 자신의 세대는 다르다고 머리를 흔들었다. 머리가 굳었는지 나는 납득이 가지 않았다. 비참하고 굶어 죽어도 되는 세대가 있고 그렇지 않아야 하는 세대가 따로 있는 것인가. 나는 이 세대는 정신적 영양실조의 시대라는 걸 어렴풋이 느낀다. 배가 고픈게 아니라 배가 아픈 게 혁명이라는 그럴듯한 포장으로 나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성경의 말씀처럼 비뚤어지고 뒤틀린 시대에서 오염된 먼지를 마시지 말고 하늘의 별처럼 멀리 떨어져 빛나게 살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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