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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십에도 우리는 아직 현역이잖아

운영자 2021.05.31 10:3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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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십에도 우리는 아직 현역이잖아




가정법원 법정 앞 복도 벽 아래의 긴 의자에는 젊은 변호사들이 전선줄에 앉은 참새처럼 줄지어 앉아 스마트 폰을 보고 있었다.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이제 나같이 칠십고개를 눈앞에 두고 있는 백발의 변호사는 없었다. 나는 법정문 앞에 정물같이 앉아 있었다. 얼핏 이십여년 전의 한 광경이 슬라이드 영상같이 내 눈 앞에 나타났다. 법정 앞에서 변호사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그때 작달막한 덩치에 유난히 머리가 커 보이는 장기욱 변호사가 나타났다. 나보다 열 살이 많은 그는 환갑 무렵인데도 나의 눈에는 퍽이나 늙어보였다. 머리가 빠져 헐거운 숲같이 보였고 꼬깃꼬깃한 면바지가 추레한 느낌이 들었다. 변호사들로 들어찬 공간에서 그는 머뭇거리고 있었다. 내가 일어나 그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텔레비전 뉴스화면에 나타나던 그의 화려한 의회 활동이 생각났다. 대통령후보 단일화를 위해 흥분해 있는 그의 표정이 나의 뇌리에 생생했다. 그는 천재였다. 전국의 중학생들이 보는 시험에서 일등을 했다. 고등학교 일학년때 대입 검정고시를 수석을 하고 서울법대에 육등으로 합격하여 언론의 화제 인물이 되기도 했다. 그때가 우리나이로 열 다섯 살이었다. 그는 열 아홉살에 서울법대를 수석으로 졸업하면서 고등고시 사법과 행정과에 최연소로 합격했다. 그리고 스무살에 판사가 된 사람이었다. 나의 눈에는 일생이 반짝거리는 운명을 타고 난 사람이었다. 대통령도 시험을 쳤다면 벌써 합격했을 인물이었다. 그런 사람이 늙고 초라한 모습으로 나와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것이 그때는 납득이 되지 않았었다. 그는 십 년을 더 살고 일흔살에 저 세상으로 건너갔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런데 칠십 고개를 눈앞에 둔 내가 젊은 변호사들 사이에 끼어 법정 앞에 쭈그려 앉아 있는 것이다. 물론 뒷골목 개인법률사무소에서 이름 없이 조용히 늙어왔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띌 존재는 아니었다. 그러나 내게도 늙어서 외로워지는 그런 시간이 다가왔구나 하는 자각이 들었다. 그때였다. 내 앞에 마스크를 쓰고 가는 어딘가 낯이 익은 얼굴의 변호사가 보였다. 나이 먹은 의뢰인과 뭔가 속삭이는 모습이었다. 삼십오년전쯤 사법연수원에서 같이 공부하고 같은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하던 고교 일년 선배였다. 서울법대를 다니면서 농촌활동그룹에 속해 있던 그는 일찍 정치의식이 깨인 사람 같았다. 병아리 변호사시절 그는 독특한 꿈을 꾸었다. 법률사무소를 구로공단에 차리고 노동자를 위해 일을 하다가 정계로 나가겠다고 했다. 그 몇 년후 그는 꿈을 이루었다. 그가 국회의원이 되어 위원회에서 질문을 하는 걸 뉴스화면을 통해 보았었다. 그리고 기나긴 세월의 강물을 타고 흘러 노년에 가정법원 법정 앞에서 다시 만난 것이다. 재판이 끝난 후 그와 법원 근처의 커피점에서 얘기를 나누었다.

“정치를 해보니까 어땠어요?”

내가 물었다.

“아무리 노동자 속에 끼어들고 서민을 속에 들어가려고 해도 나 같은 놈은 동화될 수 없더라구. 그 사람들이 근본적으로 미워하는 계급 때문에 그런지도 몰라. 그리고 정치도 마찬가지야. 끼워주지를 않아. 초선의원이 되면 재선의원이 되고 싶은 게 인간의 욕심이야. 그런데 그렇게 하려면 한없이 비겁해지고 정치판에 나선 장기알 같이 되어야 하는 거야. 입을 닫고 침묵해야 하고 또 위에서 써주는 말도 안되는 질문사항을 앵무새처럼 위원회에서 말해야 하고 말이야.”

그는 잠시 몸을 담았던 정치판에 회의를 느끼는 것 같았다. 그가 덧붙였다.

“사실 지역에 따라 당에 따라 당선될 사람은 정해져 있어. 문제는 공천이었지. 그런데 공천을 경선을 통해 그 지역의 민심이 원하는 인물로 하면 문제가 없는데 그렇게 하면 초선의원놈들이 말을 듣지 않는다고 위에서 찍어 누르는 방식으로 한단 말이야. 그렇게 하면 제대로 된 사람들이 국회의원을 하기 힘든 거지. 나도 지역구 민심은 괜찮은데 공천이 되지 않아 정치를 그만뒀어. 그리고 지금까지 삼십오년동안 구로공단에서 계속 변호사를 했지.”

“칠십평생 인생에서 제일 즐거웠던 때가 언제였어요?”

내가 물었다.

“가족들과 유럽패키지 여행 때였어. 밤에 가족이 호텔을 나와 낮에 가이드가 안내해 준 데를 다시 가는 거야. 거기서 먹고 마시고 사진찍고 했는데 그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아.”

“늙어서 법정에 나와 대기실에 쭈구리고 앉은 우리의 현재 모습은 어떻게 봐요?”

“교수도 의사도 사업을 하던 친구도 모두 이제는 백수잖아? 그런데도 우리는 아직 현역이잖아? 이만한 행복이 어디 있겠어?”

그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가 시계를 보더니 말했다.

“나 구로공단에 있는 사무실에 들어가야 해. 만나서 반가왔어.”

백팩을 매고 그는 지하철 역쪽으로 부지런히 걸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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