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좋은 영화 찍다가 죽고 싶어

운영자 2021.06.14 09:58:11
조회 75 추천 1 댓글 0

좋은 영화 찍다가 죽고 싶어




원로 탈랜트 정한용을 만나 점심을 먹고 그의 얘기를 들었다. 배우답게 그가 겪은 얘기들을 바디 랭퀴지를 써 가면서 감칠맛 있게 잘 역어내는 재주를 가지고 있다. 세상살이의 단맛 쓴맛을 겪은 그의 말에는 이제 삶의 철학이 진하게 배어있는 것 같다.

“나는 말이야 이제 좋은 영화 하나 찍다가 죽는 게 소원이야.”

그의 내면에서 배우 인생의 아름다운 열매가 맺어져 있는 것 같았다. 자기의 직업을 천직으로 생각하고 그 자리에서 마지막을 장식하기로 마음먹었다면 그는 성공한 사람일 것이다. 그가 말을 계속했다.

“처음 탈랜트 시험에 합격했을 때는 내가 정말 배우가 되어야 하나를 가지고 마음속으로 고민했어. 그때만 해도 사람들의 인식 속에서 배우면 ‘딴따라’라고 하면서 일부러 낮춰보는 시각이 있었지. 드라마를 찍고 나서 거리를 나가면 아이들까지 나를 알아보고 반말 찌거리를 하면서 웃어대는 거야. 그게 나를 좋아해서 친근한 의식이 든 팬이라는 생각을 못하고 무시당하는 것 같아서 혼자 화가 나곤 했지. 한번은 지방에 촬영을 갔는데 꼬마들이 ‘정한용이다’라고 하면서 막 돌을 던지는 거야.”

그의 마음이 어떤지 나는 알 것 같았다. 그래도 우리는 세상에서 속칭 최고 명문이라는 학교를 다니면서 존중을 받아온 셈이다. 그가 그런 대접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을 것 같았다. 그가 말을 계속했다.

“더러 술집을 가도 시비가 걸리는 수가 많았어. 우리 탈랜트끼리 술을 마시고 있으면 꼭 와서 기분나쁘게 시비를 거는 사람이 있어. 내가 아직 철이 없을 때 그런 건달 하나를 보고 화를 못 참아 손에 술병을 들었어. 그 놈을 때릴려고 말이야. 옆에서 동료인 선배 하나가 얼른 귓속말로 ‘너 그렇게 하면 탈랜트가 사람을 때렸다고 신문에 난다’고 하는 거야. 그 말을 듣고도 화가 풀리지 않아서 이번에는 술병을 그 놈을 주려고 했어. 차라리 나를 까라고 말이야. 그랬더니 선배가 다시 귓속말로 나한테 ‘너 탈랜트 아무개가 술병에 맞았다고 신문에 난다’라고 하는거야. 생각해 보니까 그 말도 맞더라구.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마지막에는 그 놈한테 고개를 숙이고 미소를 지으면서 ‘한잔 드시죠’하고 비위를 맞췄지. 탈랜트의 입장이라는 게 그런 거야. 내가 잘못이 없는데도 피해를 입는 경우가 있어. 한번은 나와 상관없이 같이 술집에 갔던 후배들끼리 싸움을 한 적이 있어. 그런 경우도 자칫하면 신문에 탈랜트 아무개 일행의 폭행이라고 날 수 있는 거야. 얼굴이 알려진 배우로 살기가 쉽지 않았어.”

그런 게 스타들의 고통스러운 이면인 것 같았다. 세월이 흘러서인지 친구인 그는 이제는 다른 면도 오래 익은 장처럼 숙성 되어 있는 것 같았다. 그가 이런 말을 했다.

“처음 탈랜트를 했을 때 제주도로 촬영을 간 적이 있어. 그때는 탈랜트를 계속할까 말까 약간 까불거릴 때였지. 장소를 잡아 힘들게 촬영을 했는데 다른 장소를 가니까 감독이 거기가 더 배경이 좋다고 하면서 또 찍자는 거야. 출연료를 더 받는 것도 아닌데 나는 별로였어. 그러다가 또 다른 좋은 장소가 나오면 감독이 새로 다시 찍자고 하는 거야. 마지막에는 내가 화가 치밀어서 대들었지. 형 나이뻘인 노련한 감독이 그런 나를 계속 달래더라구. 좋은 사람이었어. 그런데 말이지 그 때 감독이 단역이 필요해 현장에서 다른 사람에게 연기의 기회를 주는 걸 봤어. 갑자기 배역을 맡은 사람이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다면서 진지하게 연기하는 걸 보고 반성했지. 내가 감사를 모르고 까불었다고 말이야.”

그의 말이 맞았다. 텔레비전 방송국의 재연드라마를 찍는 광경을 본 적이 있었다. 지하철역 직원으로 대사 한마디를 하게 됐다고 너무 좋아하는 단역배우를 본 적이 있다. 그 한순을 위해 그는 팔월의 뜨거운 태양으로 찜통같이 달구어진 버스 안에서 하루 종일 말 없이 자기 촬영을 기다리고 있었다. 배우들과 마찬가지로 우리 모두도 인생이라는 부대에서 자기의 역을 맡은 배우가 아닐까. 성경은 총연출을 맡은 하나님이 맡긴 역이 그 무엇이든지 충실하라고 했다. 절름발이 거지의 역할이라도 말이다. 그러면 연출을 맡은 그 분은 무대에서 그가 내려올 때 흡족해 하신다고 말이다.

추천 비추천

1

고정닉 0

0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등록순정렬 기준선택
본문 보기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설문 부모 재능 그대로 물려받아 대성할 것 같은 스타 2세는? 운영자 21/07/26 - -
2350 천석선의 표류 운영자 21.07.26 43 1
2349 프로의식 운영자 21.07.26 42 1
2348 노는 게 정말 힘들죠 운영자 21.07.19 54 2
2347 법복은 무대의상 운영자 21.07.19 60 0
2346 이천사년 일월 하노이 운영자 21.07.19 37 1
2345 가정교사를 하던 집 예쁜 딸 운영자 21.07.19 49 1
2344 살인범의 꿈속 운영자 21.07.19 30 1
2343 밤바다의 조각배 [1] 운영자 21.07.12 62 1
2342 마이너스 소득세 운영자 21.07.12 70 1
2341 나는 장사꾼일 뿐이야 운영자 21.07.12 59 2
2340 남편 얼굴만 보면 재수없다는 여자 운영자 21.07.12 57 1
2339 뇌물 대통령 운영자 21.07.12 60 3
2338 죠 블랙 운영자 21.07.12 57 1
2337 중풍환자 운영자 21.07.12 76 1
2336 남은 시간이 잘해야 십년이야 운영자 21.07.05 87 2
2335 무릎을 꿇고 빌어봐 운영자 21.07.05 45 1
2334 좋은 기억서랍을 골라야 운영자 21.07.05 65 1
2333 유치원시절 사랑하던 여인 운영자 21.07.05 58 1
2332 동춘써커스단의 추억 운영자 21.07.05 46 0
2331 아버지의 바람 운영자 21.07.05 65 1
2330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이 싫었다. 운영자 21.07.05 56 0
2329 그가 만든 정원 운영자 21.06.28 126 3
2328 천재 모범생의 공허 [1] 운영자 21.06.28 117 2
2327 금수저 선배의 기적 운영자 21.06.28 110 1
2326 잘 안되는 법조인의 자식들 운영자 21.06.28 162 2
2325 이상한 시인 선배 운영자 21.06.28 70 1
2324 삼국지의 '사마의' 같았던 상관 운영자 21.06.28 86 1
2323 우리 아이들은 다르잖우? 운영자 21.06.28 65 0
2322 뒷골목의 삼십년 국수가게 운영자 21.06.21 86 1
2321 만원버스에 같이 좀 탑시다 운영자 21.06.21 92 1
2320 다른 세계로 건너왔어 운영자 21.06.21 78 1
2319 죄책감에 운동권이 됐어요 운영자 21.06.21 79 1
2318 이화여자대학교 채플시간 [1] 운영자 21.06.21 90 1
2317 아들과의 전쟁 [1] 운영자 21.06.21 218 2
2316 깡통을 든 거지 운영자 21.06.21 56 1
2315 한 성자의 재봉틀 운영자 21.06.14 74 1
좋은 영화 찍다가 죽고 싶어 운영자 21.06.14 75 1
2313 '사람의 아들'의 실제주인공 운영자 21.06.14 91 1
2312 작은묘지 하나는 마련해 놨어요 운영자 21.06.14 61 1
2311 빨간약 먹을래 파란약 먹을래 운영자 21.06.14 73 1
2310 나가에 도쥬 운영자 21.06.07 89 2
2309 좋은 배역을 맡고 싶어서 운영자 21.06.07 82 1
2308 나이들면 오는 병에 걸렸어 [1] 운영자 21.06.07 109 2
2307 혁명보다 무서운 세금 운영자 21.06.07 85 1
2306 풀뿌리 민주주의의 독초 운영자 21.06.07 76 2
2305 못 갚을 사람에게 돈 꿔주는 친구 운영자 21.06.07 101 1
2304 칠십에도 우리는 아직 현역이잖아 운영자 21.05.31 105 1
2303 아름다운 친구 운영자 21.05.31 95 1
2302 목사 죽이기 [1] 운영자 21.05.31 85 1
2301 내가 당한 진정과 고발이 오백건이야 운영자 21.05.31 106 1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힛(HIT)NEW

그때 그 힛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