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한 성자의 재봉틀

운영자 2021.06.14 09:58:32
조회 69 추천 1 댓글 0

한 성자의 재봉틀




아침에 성경을 읽고 글을 쓰고 있는데 내가 아는 부부가 찾아왔다. 사회에서 아주 우연한 인연으로 알게 된 분들이다. 따지고 보면 적으로 만난 셈이다. 내가 한 대형교회의 목사의 비리를 공격하는 입장이었고 그 부부는 그 교회의 기둥역할을 하는 장로로 방어하는 입장이었다. 원래 적과는 친구가 되기도 쉬운 법이다. 소송이 끝난 지 오래 됐는데도 그들 부부가 가끔씩 찾아와 주어 차를 마시며 진솔한 얘기들을 나누곤 했다. 그 부인의 아버지는 어려웠던 육십년대 남쪽의 시골을 다니면서 전도하다가 나 환자 촌에서 일찍 삶을 마친 목사였다. 지난번 만났을 때 지나가는 소리 속에서 시골 작은 교회의 목사였던 아버지 밑에서 자란 한이 말의 행간 속에 스며있는 걸 느꼈었다. 문득 그 부인의 아버지가 궁금해서 물었다.

“아버지는 어떤 분이었어요?”

“아버지는 가난한 목사였어요. 육십년대 그 시절은 목사의 월급이라는 것도 없었어요. 그냥 신도들이 더러 쌀을 조금씩 가져다주면 그게 수입이었죠. 아버지는 자식인 우리들을 할머니 댁에 부탁하고 재봉틀 하나를 등에 짊어지고 당시 바닷가 남해 벌교 순천 주변의 깡촌을 떠돌았어요. 그때 아버지가 본 시골 마을은 절반쯤은 폐병환자에다 봄이면 굶어 죽는 사람이 나오는 처참한 가난이 깔려있었죠. 아버지는 그런 마을로 들어가 먼저 사람들의 구멍한 헌 옷들을 가져다 깨끗이 빤 다음에 짊어지고 간 재봉틀로 깨끗하게 옷들을 기워줬어요. 그렇게 사람들의 마음을 샀죠.”

아 그럴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침술이나 의술을 가진 사람들은 그걸 활용해서 전도를 하기도 했다. 성경속의 사도 바울은 텐트만드는 기술을 가지고 계속 그 일을 하면서 예수를 전했었다.

“그 다음은 아버님이 어떻게 하셨어요?”

“아버지는 마을 한 구석에 천막을 치고 거기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하셨죠. 그렇게 몇 달이 지나고 일이년이 흐르면 마을 사람들이 그 자리에 교회를 지었어요. 그럴 때면 아버지는 그곳을 떠나 다른 마을로 가셨죠. 경상도가 고향인 아버지는 굳이 전라도 바닷가를 찾았어요. 아버지가 배운 성경 속에 자기 고향이 아닌 멀리 떠나가서 거기서 말씀을 전하라고 했대요. 그래서 고향인 경상도가 아닌 전라도 남쪽의 바닷가로 가신 거죠. 그러다 보니까 고통도 많으셨던 것 같아요. 당시 어촌에는 미신이 성했는데 고흥쪽의 바닷가 마을에서는 배가 뒤집어지는 사고가 나거나 고기가 잘 안 잡히면 전부 예수 귀신을 몰고 온 아버지 때문이라고 하면서 달려와서 혼을 냈다고 그래요.”

그 부인의 아버지는 역사에 숨겨진 성자 같았다. 나는 그녀의 다음 얘기를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저는 어려서 그런 아버지를 원망도 했어요. 함께 살지도 못하고 춥고 배고프고 그랬으니까요. 아버지가 꼭 그렇게 살아야 하나하고 화가 나기도 했죠. 어쩌다 시골에 있는 아버지를 찾아가면 마을 제일 위쪽 초라한 집에 방을 얻어서 묵고 있어요. 그 옆에는 나무로 얼기설기 대충 얽은 종탑이 보였구요. 마지막에 아버지는 나환자 촌에 들어가서 그 사람들을 돌봤어요. 그때는 제가 결혼을 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땐데 하루는 나환자들을 저의 집으로 데리고 온 거예요. 그분들에게 밥을 주고 잠자리를 마련해 잘 대접해 주라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남편 보기도 미안하고 기가 막혔죠. 남편 눈빛도 좋지 않았구요.”

성자도 보통사람들의 눈에는 늙고 초라한 평범한 인간으로 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마음을 이해할 것 같았다. 그 성자는 벌써 하늘나라로 떠난 지 삼십년 가량 된다고 했다. 그 부인이 말했다.

“얼마 전 남편과 함께 남해 바닷가 쪽을 여행하다가 아버지가 젊어서 고생하던 마을을 돌아봤어요. 아버지가 천막을 쳤던 곳마다 아름다운 교회들이 들어선 걸 보고 가슴이 뭉클했어요. 그 교회 마당에 아버지가 얼기설기 엮었던 어설픈 종탑을 옮겨다 놓고 기념물로 보존하고 있었어요. 그 마을에서 아버지의 설교를 들은 많은 사람들이 성직자가 됐다는 소리도 들었어요. 그걸 보면서 우리 아버지야 말로 하나님 앞에서 정말 큰 분이었구나를 깨달았죠.”

“아버지의 재봉틀을 지금도 가지고 있어요?”

내가 물었다. 그건 성자의 보물 같았다.

“예 지금도 집에 있어요. 아직도 기름 냄새가 나요.”

나는 가난한 사람들의 옷을 기워주던 그 재봉틀이 사랑이고 십자가이고 한 성자의 지팡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추천 비추천

1

고정닉 0

0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등록순정렬 기준선택
본문 보기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2348 노는 게 정말 힘들죠 운영자 21.07.19 35 2
2347 법복은 무대의상 운영자 21.07.19 42 0
2346 이천사년 일월 하노이 운영자 21.07.19 29 1
2345 가정교사를 하던 집 예쁜 딸 운영자 21.07.19 32 0
2344 살인범의 꿈속 운영자 21.07.19 24 1
2343 밤바다의 조각배 [1] 운영자 21.07.12 49 1
2342 마이너스 소득세 운영자 21.07.12 63 1
2341 나는 장사꾼일 뿐이야 운영자 21.07.12 51 2
2340 남편 얼굴만 보면 재수없다는 여자 운영자 21.07.12 46 1
2339 뇌물 대통령 운영자 21.07.12 45 2
2338 죠 블랙 운영자 21.07.12 48 1
2337 중풍환자 운영자 21.07.12 64 1
2336 남은 시간이 잘해야 십년이야 운영자 21.07.05 82 2
2335 무릎을 꿇고 빌어봐 운영자 21.07.05 38 0
2334 좋은 기억서랍을 골라야 운영자 21.07.05 58 1
2333 유치원시절 사랑하던 여인 운영자 21.07.05 51 1
2332 동춘써커스단의 추억 운영자 21.07.05 41 0
2331 아버지의 바람 운영자 21.07.05 52 1
2330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이 싫었다. 운영자 21.07.05 52 0
2329 그가 만든 정원 운영자 21.06.28 116 3
2328 천재 모범생의 공허 [1] 운영자 21.06.28 102 2
2327 금수저 선배의 기적 운영자 21.06.28 101 1
2326 잘 안되는 법조인의 자식들 운영자 21.06.28 132 1
2325 이상한 시인 선배 운영자 21.06.28 65 1
2324 삼국지의 '사마의' 같았던 상관 운영자 21.06.28 81 1
2323 우리 아이들은 다르잖우? 운영자 21.06.28 61 0
2322 뒷골목의 삼십년 국수가게 운영자 21.06.21 71 1
2321 만원버스에 같이 좀 탑시다 운영자 21.06.21 87 1
2320 다른 세계로 건너왔어 운영자 21.06.21 74 1
2319 죄책감에 운동권이 됐어요 운영자 21.06.21 74 1
2318 이화여자대학교 채플시간 [1] 운영자 21.06.21 85 1
2317 아들과의 전쟁 [1] 운영자 21.06.21 211 2
2316 깡통을 든 거지 운영자 21.06.21 53 1
한 성자의 재봉틀 운영자 21.06.14 69 1
2314 좋은 영화 찍다가 죽고 싶어 운영자 21.06.14 69 1
2313 '사람의 아들'의 실제주인공 운영자 21.06.14 88 1
2312 작은묘지 하나는 마련해 놨어요 운영자 21.06.14 58 1
2311 빨간약 먹을래 파란약 먹을래 운영자 21.06.14 64 1
2310 나가에 도쥬 운영자 21.06.07 86 2
2309 좋은 배역을 맡고 싶어서 운영자 21.06.07 80 1
2308 나이들면 오는 병에 걸렸어 [1] 운영자 21.06.07 103 2
2307 혁명보다 무서운 세금 운영자 21.06.07 79 1
2306 풀뿌리 민주주의의 독초 운영자 21.06.07 71 2
2305 못 갚을 사람에게 돈 꿔주는 친구 운영자 21.06.07 94 1
2304 칠십에도 우리는 아직 현역이잖아 운영자 21.05.31 101 1
2303 아름다운 친구 운영자 21.05.31 90 1
2302 목사 죽이기 [1] 운영자 21.05.31 82 1
2301 내가 당한 진정과 고발이 오백건이야 운영자 21.05.31 104 1
2300 비뚤어지고 뒤틀린 혁명 운영자 21.05.31 82 1
2299 강가 초막의 꿈 운영자 21.05.31 102 1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힛(HIT)NEW

그때 그 힛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