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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수저 선배의 기적

운영자 2021.06.28 09:5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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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수저 선배의 기적




툭하면 자살하는 세상이었다. 여비서에게 농밀한 메시지를 보낸 게 걸려서 서울시장이 도망가듯이 자살했다. 기무사령관이 의심을 받는다고 자살했다. 재벌 회장이 검찰서기에게 수모를 당했다고 창문을 열고 뛰어내렸다. 여차하면 죽음쪽으로 도피하는 세상이었다. 주위에서 그 선배를 아는 사람들은 그가 자살을 하지 않는 게 신기하다고 했다. 일류신문사 편집국장을 지내고 신문사 사장을 지낸 그가 하루아침에 사기범이 되어 구속이 됐었다. 그는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다. 있는 자는 더 있게 되고 없는 자는 가진 것 마저도 빼앗긴다는 게 성경의 말씀이었다. 그는 머리도 좋았다. 최고의 명문고와 명문대학을 나왔다. 대학 설립자 집안의 재능을 가진 미녀를 아내로 맞았다. 예술적 재능이 가득했던 아내는 사업능력까지 갖추고 있었다. 그들 부부는 엘리베이터를 탄 것처럼 상승하는 인생이었다. 남편은 탁월한 능력으로 언론사 사장까지 승진했고 아내는 대단한 사업적 성공을 거두었다. 제주도에 그 부부소유의 호텔과 요트와 초원의 목장에 말들을 보유했다. 그 부부는 마음도 넉넉했던 것 같다. 전세기로 사람들을 초청해 제주의 푸른 바다 위 요트에서 파티를 열기도 했다. 그걸 내려다보고 있던 사탄이 어느 날 하나님에게 그들 부부를 시험해 보겠다고 하면서 허락을 얻은 것 같았다. 천재 벤쳐 사업가 한명이 비상한 아이템을 들고 그 부인에게 접근했다. 그 아이템은 전 세계의 돈을 끌어모을 수 있는 기발한 착상이었다. 한국의 삼성 정도가 아니라 미국 최고의 기업도 압도할 아이디어와 기술이었다. 그들 부부는 다가온 그 천재벤쳐 사업가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사탄의 권능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천재 벤쳐 사업가가 뿌려두었던 뇌물이 속칭 게이트 사건이라는 거대한 사회적 소용돌이를 일으키고 관련된 수많은 사람들이 산사태처럼 무너져 내렸다. 그런 속에서 선배 부부는 그 벤쳐 사업가의 뒷배를 봐준 몸통으로 지목되어 깊은 늪 속으로 침몰했다. 성경 속의 욥처럼 그 많은 재산이 순간에 날아갔다. 신용불량자가 되고 나이 먹고 당장 먹고 잘 데가 없을 정도였다. 내가 그 선배를 만난 건 그 무렵이었다. 나는 같이 기원에 가서 바둑을 두고 국밥을 먹으면서 그 선배에게 믿음을 권했다. 그러나 갑자기 허망하게 무너진 그의 영혼에 그분의 말씀은 스며들어가지 않는 것 같았다. 속으로는 하늘에 종주먹질을 하면서 ‘내가 왜?’하고 원망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의 바닥으로 떨어졌으면서도 그는 개결한 자존심으로 빳빳하게 인생의 광야를 걸어 나갔다. 어느날 저녁 헤어질 무렵 그가 무심하게 이런 말을 했었다.

“사실 나는 신문사 일이 바빠 집에 요트나 말이 있어도 타본 적이 없어. 우리 부부 소유의 호텔에서 자 본 일도 없고 말이야. 그런데 아내 때문에 난 하루아침에 거지가 된 거야. 내가 아내 사업에 전혀 신경을 써 본 적이 없거든. 그냥 아내가 여기저기 내 이름을 걸어놓은 탓에 내가 하루아침에 신용불량자 세금체납자가 된 거야. 그런데도 나한테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가 없어.”

그 선배의 마음속에는 아내에 대한 원망이 조금은 있는 것 같았다. 코로나가 돌면서 그 선배를 오랫동안 보지 못했다. 어느 날 그가 병원에 입원해 큰 수술을 받는다는 소리가 바람결에 들려왔다. 인생의 한이 서렸던 그가 나이 여든을 넘겼으니 이제 저 세상으로 가시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날부터 내가 카톡으로 매일 보내던 글을 그가 읽지 않았다. 그의 죽음을 암시하는 것 같았다. 마음이 침울했다. 그 며칠 후 황혼이 질 무렵 잠실의 한 호숫가에서 산책을 할 때였다. 갑자기 그 선배 생각이 나서 스마트 폰의 버튼을 눌렀다. 종종 죽은 사람의 번호를 눌러 그를 찾는게 나의 버릇이기도 했다.

“아? 엄변호사 나야.”

그 선배의 밝은 목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어? 살아계셨네?”

“그래 다시 살아났어. 부활한 거지 뭐. 집에서 갑자기 심장이 정지돼서 앰블런스로 응급실로 갔어. 급하게 심장수술을 할 상황이 벌어진 거야. 심장판막이 고장이 나서 대동맥으로 피가 제대로 흐르지 않는다는 거야.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수술비가 몇 천만원인 거야. 나는 꼼짝없이 죽을 수 밖에 없었던 거야. 나이도 팔십이 넘었는데 누가 더 나한테 애착을 가지겠어? 죽을 때가 돼서 죽는다고 생각하겠지. 그런데 집사람이 기적같이 그 수술비를 구해왔어. 그래서 내가 살아난 거야. 몇 시간 수술을 할 때 심장이 멈춰있었으니까 난 죽었다 살아난 게 맞아. 우리 집사람이 날 살려줬어. 너무 고마워.”

그 말을 들으면서 나는 선배의 마음속에 있는 매듭이 풀어졌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선배가 덧붙였다.

“엄 변호사가 예전에 삶에 힘이 들면 성경의 시편 23장을 공책에 천 번을 써 보라고 했잖아? 그러면 기적이 일어난다고 말이야. 그렇게 세상사업에만 관심이 있던 우리 집사람이 공책에 그걸 거의 다 썼어.”

“그러니까 기적이 일어난 거죠. 이제 직접 경험을 하셨죠?”

“맞아. 내가 산 것도 수술비를 구한 것도 기적이었어.”

하나님은 부자였던 선배의 심장뿐 아니라 영혼도 새로 바꾸어 주신 것 같았다. 부자보다 더 좋은 건 새로운 영혼이 된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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