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눈이 부리부리한 중위

운영자 2022.04.18 12:04:38
조회 153 추천 0 댓글 0

고시에 계속 낙방을 할 때였다. 먼저 합격을 한 친구의 결혼식장에 하객으로 갔을 때였다. 앞쪽으로 예쁜 꽃들로 장식한 하얀 테이블이 보였다. 무심히 거기 앉으려고 할 때 혼주 측 사람이 와서 조용히 말했다.

“이 자리는 고시에 같이 합격한 신랑 친구들을 위한 자리입니다. 양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순간 나는 백수인 걸 깨달았다. 고시원의 좁은 방에 누워 빈둥거리며 천정의 물 떨어진 얼룩이나 한참동안 보던 세월이었다. 친구들은 대기업에 취직해 활기차게 움직이고 있었다. 매일 바이어들 접대한다느니 텔렉스온게 어떻다느니 주식시세가 어떻다느니 내가 모르는 외국어 같은 말을 하곤 했다. 사람을 만날 때마다 명함을 주었다. 명함은 들을 나타내는 계급장내지 포장지라고나 할까. 나는 그런 것들이 없었다. 초급장교로 군대에 갔다. 그런대로 푸른색 제복의 포장을 한 느낌이었다. 모두 똑같은 군복을 입고 식당에서 똑같은 밥을 먹고 피엑스에서 똑같은 물건을 사서 쓰고 똑같은 머리모양이었다. 다른 건 계급장 하나였다. 나는 계급장은 달라도 인간은 평등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한번은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나오는 데 문 앞에 양손을 허리에 얹은 채 눈을 부라리는 사람이 있었다. 그의 어깨에 대령 계급장이 붙어 있었다. 군기담당인 인사참모였다. 그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모두들 몽둥이를 본 개처럼 주눅이 들어 피해갔다. 나는 잘못한 게 없다는 생각이었다. 그 자리에 서서 그가 쏘는 눈길을 맞받았다. 그의 눈이 순간 ‘두고 보자’는 눈빛으로 바뀌면서 그가 사라졌다. 잠시후 군단사령부내 방송이 울렸다. 전 장교와 하사관들은 단독군장을 하고 연병장에 집합하라는 것이었다. 나 한 사람 때문에 전장교들이 기합을 받게 된 것이다. 나는 군대에서 말하는 속칭 꼴통인 것 같았다. 대령은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나를 포함한 몇 사람을 다시 자기 방으로 소환했다. 타켓인 나 이외의 사람들은 영문도 모르고 들러리를 선 셈이었다. 그가 일장의 연설을 한 후에 내쪽으로 시선을 돌리면서 말했다.

“엄중위 그 따위로 하면 최전방으로 인사발령을 낼 거야”

장교들에게 최고로 겁을 주는 조치인 모양이었다. 그 무렵 나는 이상하게 전방으로 가고 싶었다. 서울근처의 부대근무는 번거롭고 싫었다. 전방의 조용한 곳에 가서 책을 읽고 공부를 하고 싶었다.

“그러면 최전방으로 보내주시죠.”

나는 인사참모인 대령에게 말했다. 순간 그의 얼굴색이 변했다. 그의 눈동자가 흔들리면서 순간 당황한 표정으로 변했다. 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표정과 말투까지 고치면서 나를 달랬다.

“아닙니다. 제 말은 진심이 아니었습니다. 사령부 장교들의 군기를 잡기 위해 겁부기 위해 한 말입니다. 오해하지 마셨으면 합니다.”

그는 군기를 잡는 게 아니라 나에게 고개를 숙이고 정중한 사과를 하고 있었다. 진짜 전방으로 가고 싶은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 것 같았다. 아마도 서울을 지키는 사령부에 온 나의 배경에 큰 빽이라도 있는 것으로 착각한 것 같았다. 갑자기 약해지는 그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몇 달 후였다. 우연히 사령부의 뒷산 으슥한 나무 아래서 그와 단 둘이 마주쳤다. 갑자기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군대에서는 계급장이 그를 설명하는 모든 것이었다. 그게 싫었다. 내가 경례도 하지 않은 채 눈빛으로 강하게 그에게 물었다.

‘중위와 대령이라는 계급장 떼고 한번 맞짱 떠 볼까요?’

그는 늙었고 나는 젊었었다. 그에게 어떤 텔레파시가 간 것 같았다. 그는 내 눈길을 피하더니 아래로 도망가듯이 내려가는 모습이었다. 나는 호랑이를 무서워하지 않는 강아지였었다. 당신을 설명해주는 단어가 무엇인가요?라는 젊은 사람들의 질문에 인간포장지인 계급장을 연상하다가 떠오른 과거의 일이었다. 계급장으로 돈으로 몸에 걸치고 있는 명품으로 자기를 설명들을 하는 모습을 본다. 자기를 설명할 단어가 그것밖에 없는 것일까. 얼마 전 군에서 장군으로 전역한 군 동기생이 이런 말을 전했다.

“예전에 아는 군단장님이 내게 그 수도군단에 있던 눈이 부리부리한 중위 아직도 군에 있느냐고 묻더라고.”

그에게 나는 눈이 부리부리한 중위였던가 보다.

추천 비추천

0

고정닉 0

0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등록순정렬 기준선택
본문 보기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설문 논란보다 더 욕 많이 먹어서 억울할 것 같은 스타는? 운영자 24/09/23 - -
이슈 [디시人터뷰] '더 인플루언서' 표은지, 귀여움과 섹시함을 겸비한 모델 운영자 24/09/26 - -
2730 곰치국 운영자 22.08.22 151 1
2729 고통이 살아있는 걸 느끼게 했죠 운영자 22.08.22 152 1
2728 목적에 배신당한 삶 운영자 22.08.22 267 2
2727 걷는다는 것 운영자 22.08.22 153 1
2726 고슴도치 아버지와 아들 운영자 22.08.22 123 1
2725 조직을 위협하는 맹구(猛拘) 운영자 22.08.22 133 1
2724 죽음이 석달 남았다면 운영자 22.08.15 171 1
2723 우울증 탈출 운영자 22.08.15 164 4
2722 행복의 조건 운영자 22.08.15 144 1
2721 붉은 가난 운영자 22.08.15 145 1
2720 말 한마디 운영자 22.08.15 138 2
2719 자식의 기억에 나는 어떤 아버지일까 운영자 22.08.15 140 1
2718 신선이 된 가수 운영자 22.08.08 162 0
2717 곱게 늙어가기 운영자 22.08.08 160 1
2716 심플하고 행복하게 운영자 22.08.08 150 1
2715 진정한 사랑을 해보셨습니까 운영자 22.08.08 152 1
2714 눈물 한 방울 운영자 22.08.08 144 3
2713 전설의 답안지 운영자 22.08.08 173 0
2712 원수 앞의 잔칫상 운영자 22.08.01 172 1
2711 상처 운영자 22.08.01 152 1
2710 아름다운 황혼 운영자 22.08.01 577 2
2709 진짜 친구 운영자 22.08.01 180 2
2708 세상을 이해한다는 것 운영자 22.08.01 137 1
2707 9급 공무원 운영자 22.08.01 172 2
2706 평민 의식 운영자 22.08.01 128 1
2705 요양원 가는 할머니 운영자 22.07.25 161 2
2704 나는 영원한 평민 운영자 22.07.25 145 1
2703 고마워 사랑해 그리고 미안해 운영자 22.07.25 152 1
2702 친구가 없는 인생 운영자 22.07.25 208 0
2701 일부러 넘어진 이유 운영자 22.07.25 126 1
2700 삶을 다한 겨울나무 운영자 22.07.25 125 2
2699 책상물림의 샌님 운영자 22.07.18 574 1
2698 우리는 똑같지 않았어 운영자 22.07.18 147 1
2697 마광수의 위선사회 운영자 22.07.18 173 1
2696 내 모습이 보인다 운영자 22.07.18 137 2
2695 자유복지국가 시민의 삶 운영자 22.07.18 132 1
2694 똑똑한 대통령 운영자 22.07.18 150 2
2693 오십년 법률사무소 운영자 22.07.11 193 1
2692 맛있는 추억의 국수 운영자 22.07.11 536 1
2691 시인 운영자 22.07.11 132 0
2690 양떼구름을 보더라니까 운영자 22.07.11 130 1
2689 종이교회 마음교회 운영자 22.07.11 651 1
2688 나팔꽃과 새 운영자 22.07.11 113 0
2687 상류사회 운영자 22.07.11 145 1
2686 성경을 찢어만든 화투 운영자 22.07.04 143 3
2685 괜찮은 시골판사 운영자 22.07.04 143 1
2684 좋은 인터넷 신문 운영자 22.07.04 129 0
2683 의원님과 마약범 운영자 22.07.04 144 1
2682 변호사의 양심 운영자 22.07.04 185 1
2681 불을 만난 흙수저 운영자 22.07.04 134 2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뉴스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