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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넥타이

운영자 2010.01.22 11:52:24
조회 380 추천 2 댓글 1

     허름한 옷차림의 노인 한 분이 사무실로 들어섰다. 껑충하게 큰 키에 약간 긴 듯한 얼굴이었다. 굵은 주름이 거북이 등같이 나 있는 검은 얼굴에 볼이 움푹 패어 있는 모습이었다. 모습만 봐도 굽이굽이 험하게 살아온 사람이었다. 

     “변호사님, 저는 빌딩 경비원입니다. 죽도록 고생해서 아들 하나 대학 공부시키고 군대장교로 보냈는데, 글쎄 군무이탈로 육군교도소에 들어가 버렸습니다. 부대를 찾아가도 상관이나 동료라는 사람들이 모두 군사법원이나 가보라고 하면서 외면합니다. 이미 일심에서 징역 일년 유월을 선고 받았습니다. 어떻게 살려볼 도리가 없을까요?”


     아버지는 절규에 가까운 애원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 아버지가 들려준 얘기는 이런 것이었다. 젊은 시절 아버지는 경부고속도로를 매일 운행하는 냉동차 기사였다. 아버지는 어린 아들을 가끔 차에 태우고 다니면서 말동무를 하는 게 낙이었다. 아버지가 찬바람이 들어오는 차 안에서 아들 무릎에 담요를 덮어주면서 “춥지 않으냐”하고 물을 때마다 아들은 “내가 이제 열심히 공부해서 아버지 호강시켜 줄게” 하곤 했다. 그 한마디에 차디찬 고속도로 바닥 위를 달리는 아버지의 꽁꽁 얼어붙은 마음은 어느새 혼곤히 풀리곤 했다. 그 아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의 항공공학과에 입학했다. 아들은 대학시절 내내 아버지를 고생시키지 않기 위해 변두리 독서실의 비좁은 틈 사이에 의자를 붙여놓고 생활을 했다. 등록금을 면제받으려고 스스로 학사장교를 지원했다. 그리고 의무복무를 마치기 위해 장교로 군에 입대했던 것이다. 군에서 주는 장학금을 받은 학생은 의무적으로 오년간을 장교로 복무해야 하는 것이다.


     추적추적 비 내리는 어느 날 오후 나는 육군교도소로 그를 찾아갔다. 달걀형의 흰 얼굴에 짙은 눈썹은 깔끔한 인상을 주었다. 접견실에서 나를 보자 그는 눈물부터 주르르 흘렸다. 나의 눈치를 살피며 그는 뭔가 불안한 표정이었다. 한참이나 망설이다가 힘들게 입을 열었다.


     “변호사님, 금년 초부터 이상하게 사무실에 있으면 스피커나 텔레비전에서 나한테 하는 말소리가 들렸어요. ‘야, 이 형편없는 놈아’,  ‘실력도 없고 냄새나는 놈아’ 하는 남자 여자의 소리가 쉴 새 없이 나서 미치겠어요. 부하들이 있는 장교 입장인데 어디 하소연할 데도 없어요. 미쳐가는 게 아닌가 겁도 나고요. 그러다가 보니 주위 사람들이 날 멀리하는 것 같았어요. 저도 사귀기 싫고요. 그래서 금년 들어 부대에 여러 날 결근했어요. 그랬더니 헌병들이 와서 저를 감옥에 넣었어요. 그런데 이 어두컴컴한 감옥 안에서도 그 소리가 계속 나를 따라다니면서 괴롭히는 거예요. 정말 미쳐가는 것 같아요.”


     그는 그런 말을 하면서도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고 몇 번씩 눈물을 흘렸다. 이상했다. 정신적으로 정상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바로 그 점에서 그는 엄청난 의심을 받고 있었다. 그것은 장학금을 받은 대가로 근무해야 할 오년이 싫어서 꾸며댄다는 것이었다. 그 결과 결근 삼일에 징역 일년 유월이 선고되었다.


     결국 요점은 그의 항변을 믿을 것이냐로 압축됐다. 나는 상소심 법원에서 그의 모든 사정을 정리해서 변론했다. 그러나 믿게 할 증거가 너무 빈약했다. 군의관의 진단서도 없었다. 오히려 군 검찰관의 규탄이 신랄했다. 검찰은 그가 근무한 부대의 간부들을 증인으로 내세워 그가 정상임을 입증했다. 또한 장교인 그를 석방해서 제대케 하면 제이, 제삼의 교활한 군기피자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정책적으로도 중형으로 다스려 시범을 보이자는 것이었다. 법정의 짧고 경직된 분위기 속에서 진실을 전달하기는 참으로 어려웠다. 심지어 나 자신조차 의심을 하며 그 가족들을 추궁해 보기도 했다. 장담하건데 그와 가족들은 교활하지 않았다. 정직했다. 다만 오해받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 진실이 전달되기엔 의심의 벽이 너무 두꺼웠다. 법정에서의 말 몇 마디로는 도저히 그 벽을 뚫을 수가 없었다.


     어느 날 나는 고등군사법원장실 문을 두드렸다. 때마침 군사법원장이 있었다.


     “정말 진실 좀 전달해야겠습니다. 변호사지만 돈 벌려고 부탁하는 거 아닙니다. 피고인의 아버지는 건물 경비로 있는 사람입니다. 그만하면 사정이 뻔한 거 아닙니까? 그 초라한 아버지가 육군교도소 담장을 맴돌며 울고 있습니다. 아들 역시 정상이 아닙니다. 물론 진단서가 있는 건 아니지요. 그렇지만 내가 보기에는 분명히 비정상입니다. 정말 이 변호사의 말을 믿어 주십시오. 젊은 군 판사들이나 검찰관들과는 달리 우리는 그래도 자식을 군대 보낸 아버지의 심정을 한 번쯤은 생각할 수 있는 나이 아닙니까? 그리고 인생길을 걸어오다가 몇 번쯤은 아파 본 사람이 아닙니까? 당사자를 대신해서 간구합니다. 정말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굳이 그 부자에게 칼을 휘둘러 피가 흐르는 생채기를 내야만 합니까?”

     나는 온 정성을 다해 진실을 전달했다. 군사법원장은 말이 없었다. 당연히 징역형을 내려야 하는 정책적인 면이 강한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말씀은 잘 알겠습니다. 그러나 이건 정책적인 면이 강하기 때문에 참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한번 고민해 보겠습니다.”


     그 후 몇 번의 선고가 연기되었다. 그것만으로도 일단의 진실은 전달되었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구속된 젊은 장교의 아버지가 조심스럽게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손에는 납작하고 길다랗게 종이로 포장한 물건이 들려 있었다.


     “변호사님, 이거 늙은이가 고심해서 넥타이를 골라서 사왔는데 맞을지 모르겠구만요..”


     그 노인은 계면쩍은 듯 고개를 숙이며 포장지를 뜯는다. 노란 모직의 넥타이가 나왔다. 그 넥타이에는 아들을 살려달라는 늙은 아버지의 간곡한 애원이 담겨 있었다. 나는 그 넥타이를 무엇보다도 귀하고 감사하게 받았다. 그 후에도 군사법원은 몇 번이나 평의를 다시 열곤 했다. 오랜 시간이 지나 드디어 그를 석방한다는 선고가 힘들게 내려졌다. 두드린 문이 마침내 열린 것이다. 그날 오후 그 아버지로부터 전화가 왔다.


     “변호사님, 정말 고맙습니다. 내가 재판을 하는 입장이라도 구경을 하면서 살펴보니 의심을 받을 수도 있겠구먼요. 그런데도 정말 살려주시는 구만요.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가느다란 전화선을 통해 노인의 커다란 감사가 뭉클하게 전달되어 왔다.


     다음날 나도 군사법원에 감사의 전화를 걸었다. 군판사가 나왔다.


     “저희도 정말 고민했습니다. 그러다가 마지막에는 사회에 나가서는 낙오되지 말고 잘 살라는 입장으로 그를 석방하게 됐습니다.”

     한번 속을 각오를 하고 깨끗하게 그에게 인정을 베푼 판결이었다.


     전직 대통령의 뇌물사건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한 때. 모든 권위가 떨어지고 서민들은 오천억 뇌물 사건에 삶의 무기력증을 느끼고 있는 때, 그러나 그건 극히 일부의 그릇된 삶이 아닐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자기보다 어려운 처지의 다른 이를 돕기 위해 애를 쓰고, 가정을 더 윤택하게 만들기 위해 땀을 흘리고 있지 않은가? 어두운 면 하나를 보면 내리는 조급한 부정보다 여유 있는 긍정이 필요한 때라고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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