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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를 훔쳐간 할아버지

운영자 2010.02.04 14:03:43
조회 409 추천 1 댓글 0

    발바리 강아지 새끼 한 마리를 가져간 할아버지가 구속되어 남부법원에서 징역 일년 유월을 선고받았다. 항소심 법원에서 그에 대한 국선변호를 해 달라는 결정문이 사무실로 송달된 것이다. 추운 겨울 을씨년스런 영등포구치소에서 만난 그는 이미 어둠이 짙게 밀려들어오는 늦은 황혼의 인상이었다. 짧게 깍은 머리는 온통 흰 파뿌리같이 색이 바래 있고 거북이 등껍질처럼 주름이 가득한 힘없는 얼굴은 영양부족으로 푸석푸석했다. 손만 대면 금방 껍질들이 가루가 되어 떨어져 내릴 것 같았다. 구치소보다는 차라리 어느 변두리의 조그만 양로원 한 켠에서 인색하게 내리쬐는 겨울 해를 맞으며 꾸벅꾸벅 졸고 있는 노인의 모습이 차라리 알맞을 것이라는 인상이 들었다.


    “이거 손자 손녀 보고 편히 사실 나이의 분 같은데 어떻게 강아지 한 마리로 이 추운 겨울에 여기 들어와 계십니까? 또 자식들도 한 사람 없습니까? 나라에서 나 같은 사람보고 공짜 변호를 하라고 하게요..”

    나는 그의 마음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안됐다는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인정에 굶주린 사람은 별것 아닌 말 한마디에도 쉽게 자기 마음을 열어 버린다. 그는 자기를 변호해 주기 위해 온 나에게 금세 살아온 인생을 쏟아놓기 시작했다. 그 줄거리는 이랬다. 일제시대 한참 징용으로 우리 남자들이 일본의 탄광이나 남태평양으로 끌려갈 무렵, 그는 태어나자마자 아버지를 볼 수도 없었다. 먹을 것이 없어 생존 자체가 넘어야 할 커다란 고개였던 시절에 태어난 그는 어머니마저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그는 길바닥에 내동댕이 쳐진 채 험난한 시절을 수챗가의 독한 잡초처럼 살아온 것이다.

     그는 정확한 자기의 나이도 고향도 모르는 떠돌이가 되었다. 해방 후 미군이 진주할 무렵 깡통을 들고 거지 노릇을 하던 그는 손에 검댕이를 묻히고 지나가는 여자들에게 겁을 주고 따라 붙어 동전 한 닢을 받기도 했다. 그의 삶은 그렇게 시작된 것이었다. 이십대 무렵의 그는 공사장에서 막 일을 해주고 살아나갔다. 어느 날이었다. 전선을 만지던 그는 갑자기 고압의 전류에 감전되어 기절했다. 며칠 병원에 입원해 있던 그에게 떨어진 의사의 선고는 생식불능이라는 것이었다. 그는 남자로서의 능력을 박탈당했고 그것은 평생 가족을 가질 수 없다는 고독이라는 형벌이기도 했다. 그는 그래도 힘이 있을 동안은 노동판의 합숙소를 전전했다. 점차 나이가 들고 쇠약해지자 그는 서울 변두리의 시장 안을 돌아다니며 고무장갑이나 수세미를 팔았다. 잠은 행상이나 품팔이를 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무허가 합숙소에서 하루 사천원을 내고 잤다. 철저한 고독이라는 굴레 속에서의 인생유전이었다.


    “변호사님, 제가 일생을 가족 없이 지내다 보니까 강아지가 그렇게 좋아지데요. 그래서 시장에 가서 발바리 새끼 한 마리를 사다가 키웠어요. 시장에서 하루 일이만원 버는데 세끼 밥값으로 육천원 쓰고 잠자는데 사천원 내면 다 씁니다. 그런데도 어떤 때는 남는 돈으로 내 강아지에게 우유나 뼈다귀를 사먹이고 잘 때는 옆에 데리고 자면 그렇게 마음이 흐뭇해집디다. 그런데 일 나갈때는 데리고 갈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합숙소 밥 파는 아줌마한테 내가 없을 동안은 내 강아지를 봐달라고 부탁했어요. 그 강아지가 나한테는 식구라요. 그런데 그 미친 여편네가 내 강아지가 동네 나가서 없어지게 만들었어요. 내가 뭐라고 하니까 그 여편네가 밥주걱을 가지고 나한테 삿대질을 하면서 ‘그까짓 개새끼 한 마리 가지고 뭐 그러느냐’고 막 욕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사고를 냈습니다.”


    그는 궁상맞은 태도로 사건의 동기를 말하면서 마지막을 얼버무렸다. 나는 그에 대한 공소장을 보면서 속으로 웃었다. 왜냐하면 공소장에는 그가 얼마 후 밥집 아줌마의 손가락을 깨물고 그 집의 다른 개를 데리고 나갔기 때문이었다. 동네 파출소로 달려간 그 여자의 신고로 경찰관이 작성한 죄명은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과 야간주거침입 절도였다.


    “차라리 강아지 한 마리를 새로 사서 기르지 창피하게 밥집 여자 손가락을 깨물고 그 집 개를 데리고 나옵니까? 그래서 되겠습니까?”

    나는 그에게 핀잔을 주는 것 같이 한마디 했다. 그것은 속으로 그의 죄가 별게 아니라고 그를 위로하는 뜻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었다.


    “변호사님이 모르셔서 그렇지 내가 우유를 먹이고 이불을 덮어 잠을 재운 강아지는 내 새끼나 마찬가지라요. 그 여자도 자기 개를 잃어버려서 가슴 속이 나같이 아파야 되는 기라요. 그리고 내가 그 여자 손가락을 깨문건요. 밥집 여자가 어찌나 덩치도 좋고 힘이 센지 저같이 늙은 놈은 당해 낼 재주가 없어요. 거기다 저 같은 길거리 장사꾼에게는 나이도 봐주지 않고 그저 화만 나면 이 놈 저 놈 할 정도로 입이 겁니다. 그래서 내깐에는 화를 참지 못하고 손가락을 물어뜯은 기라요.”


    그는 감옥에 있는 지금까지도 자기의 강아지를 잊지 못하면서 밥집 여편에에게 분개하고 있었다. 그 얼마 후 재판이 열렸다. 나는 내가 본 상황과 느낌을 압축해서 변론을 했다. 죄명에 비해서는 너무나 어처구니 없이 경미한 사건이었다. 또 그에 비해서는 너무 중한 형이 선고되었던 것이다. 잡초처럼 살아온 그에게 덧 씌어진 그 동안의 여러 번의 전과 때문인 듯 했다. 그 몇 번의 전과의 대부분은 격정에 못 이겨 싸운 것들이었다. 마지막에 잠시 생각에 잠겼던 재판장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고등학교 몇 년 선배되는 그는 겉으로는 두꺼비같이 생겨서 피의자들에게 무뚝뚝하게 보이지만 마음은 비단결 같다는 평이 나있는 독실한 크리스천 이었다.


    “피고인은 연세가 꽤 되신 것 같은데 여기 기록을 보니까 이름도 정확하지 않네요. 그리고 주민등록번호도 미상으로 되어 있고 주거도 없네요. 본적이라는 것도 경사도 포항의 번지불상이고 직업도 행상으로 명확치 않고요.”


    재판장의 말대로 그는 이 사회에 아무런 적을 두지 못한 사람이었다. 사회의 밑바닥을 살아가면서 그는 법적으로 아무런 등록도 되어 있지 않은 것이었다. 갑자기 그가 설움이 북받치는지 끽끽거리는 건조한 울음소리를 냈다. 오랜 험난한 세월에 눈물마저 말려버린 것 같았다.


    “재판장님, 저는 부모도 모릅니다. 그리고 내 정확한 나이도 몰라요. 젊어서 떠돌이 품팔이를 하고 살다보니 주민등록이나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나쁜 놈 아닙니다.. 흑..”


    마지막에 그는 목이 메이는지 쉰소리로 꺽꺽 울면서 고개를 내려뜨리고 말았다. 그를 보면서 정말 혼돈이 왔다. 근거가 없어 양로원에조차 들어갈 수 없는 그에게 그래도 비를 피할 수 있는 지붕이 있고 세끼 밥이 있는 교도소가 나은 것인지 아니면 칼바람이 이는 거리의 하수구로 다시 내동댕이쳐지는 궁상맞은 노인이 되는 게 옳은지..


    “삼주 후에 선고하겠습니다. 돌아가세요.”

    재판장의 마지막 말이었다. 겉으로 황소 같은 그러나 속은 비단결 같이 예민한 그 재판장은 아마도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끝없이 고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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