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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와 변호사 4

운영자 2010.02.09 14:43:01
조회 354 추천 0 댓글 0

   K목사의 매형으로부터 취재한 얘기를 토대로 나는 법정에서 방어전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들은 내용들을 정리해서 나는 준비서면을 작성해 갔다. 흔히 사람들은 민사법정에서 자기의 입장을 전부 말로 하는 것으로 생각을 한다. 그러나 현실에는 몇 마디의 요지를 진술할 뿐이다. 나머지는 전부 준비서면으로 대체 진술되는 것이다. 그것은 다시 말하면 법정에서 얘기할 내용을 변호사가 전부 글로 쓰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재판 일주일 전에 재판부에 제출한다.

   재판 당일 담당 판사는 미리 그것을 읽고 법정에서 ‘준비서면 진술’하고 말한다. 그러면 준비 서면이라는 원고에 씌어진 글들이 법정에서 전부 말한 것으로 된다. 하루에 수많은 사건을 처리하기 위한 방법에서 운영되는 현실적인 방법인 것이다. 이것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법정에서 말을 하려고 잔뜩 준비해 왔다가 담당판사로부터 발언의 기회를 봉쇄당한다. 글로 사전에 써내면 충분히 읽을테니 글로 써서 제출해 달라는 취지다. 여기서 상당 부분의 오해가 생기기도 한다. 말을 하려고 재판장에 갔더니 무슨 놈의 판사들이 도대체 말을 하지 못하게 하더라는 불만들인 것이다. 

   나는 일단 K목사가 ‘돈을 꿀 의사가 없었다’ 그리고 ‘실제로 돈을 받은 적도 없다’는 사실을 중심으로 논리를 펴 나갔다. 또한 조합 측에서도 대출할 때의 담보물에 대한 감정 평가나 돈을 주었다는 전표상의 영수한 서명 날인이나 관계 장부가 미비한다는 사실을 주장해 나가기 시작했다. 모든 책임을 대신해서 일하던 K목사의 매형과 그 상급자로서 전결 권한이 있던 전무가 함께 저질러 온 일들이니 결국 모든 잘못은 조합 자체에 있고 따라서 K목사는 돈을 지급할 책임이 없다는 방향이었다. 그 주장을 관철하려면 다음으로 입증이 문제였다. 증인으로는 교도소에 있는 K목사의 매형과 조합에서 있다가 그만두었다는 전무였다. 나는 K목사에게 조합에서 있던 전무와 매형을 법정에 증인으로 나오게 해 달라고 그에게 부탁을 했다. 그런데 K목사는 그 모든 것도 나에게 미루면서 당연히 해 주어야 하지 않느냐는 식으로 짜증을 내는 바람에 전화상으로 언짢은 말이 오가게 된 것이다.

   재판이 열리게 되었다. 준비서면을 읽은 담당 판사는 조합 측 대리인으로 관련 서류를 증거로 제출해 보라고 했다. 그런데 증거에서 난데없이 복병을 만나게 되었다. 조합에서 사용하려고 편법으로 대출 형식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관련 서류가 아무것도 없을 것이라는 말이 거짓이었던 것이다. 조합 측에서는 관련 전표뿐만 아니라 감정평가서, 그리고 돈을 빨리 변제해 달라는 독촉장 등을 빈틈없이 증거로 제출한 것이다.

   게다가 전표의 이면에는 K목사의 필적으로 보이는 서명까지 분명히 있었다. 결국 그것이 위조되었거나 아니면 K목사가 여러 곳에 서명을 하고도 나한테는 그 사실을 숨긴 것이 되는 것이었다. 재판이 진행될수록 내가 주장한 사항들이 상대편에 의해 거짓으로 밝혀지는 데 점점 화가 났다. 목사가 거짓말을 하다니 하는 불쾌감이 서서히 피어올랐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K목사가 나를 찾아왔다.

  “목사님, 저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목사님은 저한테 처음 말씀하시기를 매형을 따라 가서 금전소비대차약정서라는 곳에 아무것도 모르고 사인 하나 한 것밖에 없다고 하셨잖아요. 그래서 저는 그런 것으로 아고 재판에서 밀어 부쳤는데 점점 다른 서류들에서 목사님의 서명들이 나오는 바람에 궁지에 몰리고 있습니다. 왜 모든 것을 정확하고 솔직하게 말해 주지 않으십니까? 그래도 되는 겁니까? 변호사는 어차피 같은 배에 탄 목사님을 도와주는 사람입니다. 변호사에게 사실을 얘기하지 않는다고 해서 상대편이 눈을 벌겋게 뜨고 공격해 오는데 사실이 감추어 질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나는 막무가내로 퍼부었다. K목사는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글쎄요.. 저는 어떤 서류에 사인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아무튼 모든 것을 저는 주님께 맡기겠습니다.”

  말이 급하면 주님 운운하는 게 더욱 얄밉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 상황을 빠져나가기 위한 임기응변책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주님도 인간의 자기 노력을 통해서 은혜를 주는 거 아닙니까? 이스라엘 민족을 하나님이 비행기에 태우셔서 가나안으로 편하게 가게 한 건 아니잖습니까? 저는 목사님으로부터 사건을 수임받은 변호삽니다. 적어도 끝까지 소송에 대응하려는 뜻이 있다면 저는 지금부터 목사님의 인간적인 적극적인 노력을 요구합니다. 당사자와 변호사 둘이서 함께 끝까지 노력하는 게 소송에서 이기는 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함께 노력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이 소송을 포기하시겠습니까? 저는 신자로 무조건 목사님을 사제 위치에 올려놓고 일방적으로 뛰지는 않습니다. 어떻게 하실겁니까?”

  드디어 K목사의 현실적인 노력을 하겠다는 화답을 받아냈다. 나는 그가 정확히 한 일에 대해 다시 파악해 갔다.

  “목사님은 매형을 따라 조합에 가서 금전소비대차약정서 하나에만 아무 것도 모르고 사인했다고 하는데 정말입니까? 다른 서류에는 서명한 사실이 정말 없어요? 상대방은 목사님의 서명이라며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서류를 제시하던데요.  그리고 제가 목사님의 글씨와 그 서류에 나와 있는 글씨들을 보니까 적어도 육안으로는 틀림없이 동일한 글씨던데요. 목사님 글씨가 맞다고 판명되면 무슨 망신이겠습니까? 또 없는 돈에 감정료도 우리가 지불했는데..”

  K목사는 기억을 되살리려는 듯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글쎄요.. 다른 서류에도 제가 사인을 했는지 기억이 나질 않네요.”

  그 말은 이미 다른 서류에도 서명을 했다는 소리가 될 수도 있는 것이었다, 금융업을 하는 조합 같은 공적인 성격을 가진 기관에서 증거서류로 내는 서류 자체를 위조할 리는 없기 때문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그런 문서들의 진위 여부는 제가 좀 더 상황을 살펴가면서 다룰 것인지 여부를 결정하겠습니다. 그리고 교도소에 있는 매형이나 조합의 전무였던 사람을 법정에 증인으로 나오게 하도록 직접 발로 찾아다니면서 부탁하실 용의가 있습니까?”

  “변호사님이 그렇게 말씀을 하시는데 이제 제가 힘닿는 데까지는 해보겠습니다.”


  “저는 현실에 있어서 변호사의 역할을 이렇게 생각합니다. 쉽게 말하면 사건을 맡긴 당사자가 쌀을 가져다주면 변호사는 그것으로 밥을 하는 역할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당사자는 문제가 된 자기의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압니다. 그리고 증거물도 모두 자신이 가지고 있습니다. 변호사는 당사자가 가르쳐 주는 사실과 증거를 받아다가 법률 이론이라는 틀에 맞도록 재구성을 하고 그 구성을 뒷받침 할 수 있도록 각 증거를 골고루 배분합니다. 함께 보조를 맞추지 않으면 생동감 있는 적극적인 재판을 진행할 수 없습니다. 외국의 탐정소설에 나와 있는 것 같이 변호사가 전지저능하게 증인의 소재까지 알고 설득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변호사의 능력 한계 밖이라고 생각합니다. 이해해 주시겠습니까?”


  K목사는 비로소 막연히 영화나 소설 속에서 생각했던 변호사의 활약과 현실에 차이가 있음을 이해하는 것 같았다. 그는 비로소 뛸 결심이 생기는 것 같았다. 나는 파악한 사실들을 한꺼번에 법정에 준비 서면으로 써 내지는 않았다. 그것을 논리적으로 여러 개의 사실로 순차적으로 나누어 제출했다. 그것은 일단 시간을 벌기 위한 계산이었다. 증인의 주소도 찾고 하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다음으로는 이쪽의 뱃속을 너무 먼저 들어내 보이는 것은 재판에서 경솔한 것일 수도 있다. 상대편의 반응을 보면서 다음 방어 전략을 짜는 게 현명하다는 재판 기술상의 문제도 있는 것이다. 나는 몇 회 변론 기일을 거치다가 어느 날 담당 판사에게 K목사의 매형을 증인으로 신청했다.


  “보통 교도소에 있는 사람을 증인으로 채택해서 소환장을 보내도 증인 신문기일에 나오지 않습니다. 증인신문이 될 것 같습니까?”

  담당 판사는 의문을 제기하며 나에게 오히려 물었다. 삼십대 중반으로 보이는 그 판사는 선량한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으로서는 교도소에 있는 피고의 매형이 증언을 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입니다. 제가 어떻게 해서든지 법정에 나오도록 해 보겠습니다. 그러니 일단 증인으로 결정을 해 주셨으면 합니다.”

  “글쎄요.. 피고의 인척이 되는 사람이라 증언을 해도 그 말을 어디까지 믿을 수 있나 신빙성도 문제될 것 같고 또 나올지도 의문이고 말입니다. 어떻게 피고 대리인 변호사께서 조합의 책임자였던 전무를 증인으로 나오게 하실 수 없을런지요? 그 사람은 제 삼자이기 때문에 보다 그 증언의 신빙성을 인정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판사는 조합의 전무를 증인으로 신청해 보라고 권유를 했다. 재판을 하다 보면 담당 판사의 말을 잘 해독해야 한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재판장의 심증을 나타내는 요소가 있는 까닭이다. 담당 판사의 그 말 중에는 조합의 전무를 증인으로 출석시켜 준비 서면에 기재된 내용이 사실임을 증명케 하면 조합 측의 청구가 기각될 수 있다는 암시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깔려 있었다. 그 동안 제출한 준비 서면을 통해 쓴 글이 담당 판사를 상당 수준으로 설득했다는 것이었다. 서서히 대세가 역전되는 기분이었다.


  “제가 전해 듣기로는 조합의 전무였던 사람 역시 업무상 배임죄로 조합에서 고소를 하는 바람에 징역을 살고 나와 지금은 어디 있는지 종적이 묘연하다고 합니다. 당사자와 협조해서 찾아보겠습니다. 일단 교도소에 있는 피고의 매형을 증인으로 채택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증인으로 채택하고 다음 재판 기일은 3주 후 오후에 지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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