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아직 학생일 때 남들이 피시방에서 겟앰프드나 카오스를 하던 시절

난 오락실에서 아케이드 게임하는 걸 낙으로 삼았고 가끔 킹오브 2002도 심심하면 했었다.

그러던 어느날 오락실 아줌마가 큰 맘 먹고 킹오브 일레븐이라는 신작을 새로 들여놨었는데

신작은 신작인지라 호기심에 휩싸여서 몇 번 만지작거렸지만

킹오브도 아니고 철권 태그도 아니고 이건 뭐 아주 모호한 야시꾸리한 게임이었던지라

킹오브 일레븐은 빠르게 내 흥밋거리 속에서 사라졌다.

어차피 적어도 안 읽을 디테일한 이유를 좀 말하자면

킹오브 일레븐은 게임 속도가 대단히 빠르며 방어하는 쪽이 매우 불리했다

심리전을 촉발하는 모든 공격 수단이 리스크에 비해 터무니없는 리턴을 갖고 있었고

가토 쿨라 오스왈드 등 사기 치는 캐릭터들을 안 고르면 손해 보는 것이 너무나 많았기에

다들 가토 쿨라 골라서 뇌를 비우고 러시만 하는 게임이 됐기 때문

뭐 애초에 이 동네에 일레븐을 하는 사람도 별로 없었지만

아무튼 그래도 신작이니까 가끔 심심하면 컴까나 하고 살았는데

어느날부터 내가 오락실에서 일레븐 하고 있으면 귀신같이 뛰어와서

나한테 대전을 거는 사람 한 명이 생겼다

그런데 이 사람이 진짜진짜진짜 나랑 수준이 너무 안 맞을 정도로 못한다

사실 내가 수준이 높은 게 맞겠지만

아무튼 한 번 오면 진짜 거짓말 안 하고 10판 20판은 기본이고

나는 그 10판 20판을 그냥 똑같은 패턴으로 내리 계속 연승한다.

격투 게임을 하면 뭔가 심리전을 주고받고 그런 맛이 있어야 한다.

근데 그 사람과 내 실력차는 너무 커서 그냥 내가 똑같은 짓 똑같이 백날 해도 백번 당하고 막 그랬다

그래서 난 그 사람과 대전하는 게 너무 재미가 없어서

그 사람이 이으면 그냥 새로운 연속기 연습하고 새로운 패턴들 실험해 보고

아무 캐릭이나 골라서 연습해 보고 그런 식으로 대전했다.

그리고 어느날

킹오브 일레븐에 텐 가불이라는 게 발견되었다.

이게 뭐냐면 캐릭터를 넘어뜨리고 특정 공격을 깔아두면

원래 공격 판정이 나오면 상대에게 가드를 유발하는 가드 판정도 발생해서

상대가 레버를 뒤로 밀면 가드 모션이 나오고 공격이 가드되어야 하는데

일레븐은 게임을 만들다 말았는지 특정 공격기들은 가드 유발 판정이 공격 판정이 채 끝나기도 전에 사라져서

그런 기술들을 넘어진 상대에게 깔아두면 상대는 일어서서 레버를 뒤로 밀어도 가드 유발 판정은 없고

공격 판정은 그대로 남아 있기에 꼼짝없이 맞아야 하는

그런 버그성 스킬이 바로 텐 가불이었다.

왜 하필 텐 가불이냐면 이 스킬이 발견된 계기가 오스왈드의 텐이라는 특수기였고

이 특수기는 생으로 맞추면 필드건 구석이건 확정 에이스 루트가 있어서

가불로 반피 가까이 날려 먹는 개사기성을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근데 킹오브 조금만 하던 새끼라면 다 알겠지만 킹오브는 가불기를 깔아둔다고 해서 꼼짝없이 맞는 게임이 아니다.

상대가 텐을 가불로 깔아두면 그냥 굴러서 피하면 장땡이고 아니면 발생 빠르고 무적시간 좋은 무적기를 질러도 그만이다.

텐 가불은 발견 당시 배페에서 개매너네 하면 안 되네 논란이 있던 스킬인데

게임 조금만 할 줄 아는 새끼라면 이게 뭐가 비매너고 뭐가 사기냐?

그냥 굴러서 피하면 공격자는 공격 타이밍을 잃고 방어자는 다운 뺏겨서 위기였던 걸 벗어나는데

걍 좆대로 써도 아무 문제없는 스킬이다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텐 가불은 발견 당시 격렬한 논쟁에 휩싸였었지만

내가 방금 말한 논리가 그대로 사람들에게 전파되어

나중에는 "그 텐 가불 맞게 되는 상황 만들어준 상대가 잘못이지"라는 논리 아래에서

텐 가불은 대회에서도 잘만 사용되게 되었다.

또 일레븐에선 캐릭터가 다운되면 라운드가 바뀌지 않고 그대로 다음 캐릭터가 나오는데

이 다음 캐릭터가 나올 때도 가드 불능기를 적절하게 깔아두면 가드가 불가능해진다.

한 발 더 나아가서 킹오브에는 이동잡기라는 게 존재하는데

시전하면 일정거리를 이동하면서 그 사이에 상대가 땅에 발을 붙이고 있으면 잡아버리는 기술이다.

상대 캐릭터를 다운시키고 다음 캐릭터가 등장할 때 이 이동잡기 기술을 적절하게 깔아두면

아까 텐 가불과는 다르게 정말로 구르든지 무적기를 지르든지 하는 대책이 전혀 안 통하는

알고도 못 막는 개사기 전법이 탄생한다.

당연히 이것도 격렬한 논쟁에 휩싸였는데

어차피 이동잡기 갖고 있는 캐릭터들은 가쿨오김테리 같은 1선 캐릭터가 아니라

블루마리 같은 좆1밥 병신 캐릭터들이고

이 캐릭터들은 그 사기 전법을 사용해도 가쿨오김한테 좆털리는 병신 캐릭이기 때문에

이 전법 또한 "블루마리 같은 좆1밥 캐릭터한테 죽어서 다음 캐릭터 나오게 만드는 새끼가 병신이지"

라는 논리 하에 개나소나 대회에서 다 쓰게 되었다

자 왜 이런 쓰잘데 없어 보이는 설명을 길게 늘어놨냐면

내가 그 10연패 20연패 하는 사람한테 이 전법들을 실험해 봤기 때문이다.

나는 텐 가불이 처음 발견됐을 때부터 위에 설명햇던 논리를 바로 다 파악했기 때문에

이게 비매너라는 건 겜알못 병신들의 개소리라는 걸 단박에 깨달았으며

오락실에서 게임하는 게 무슨 룰 정해져 있는 대회도 아니고 사용해도 아무 문제 없다는 결론을 내렸었다.

그래서 그 상대방한테 텐 가불이랑 대처불능인 이동잡기들을 실험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 나한테 만날 대전 붙는 사람이 게임을 지더니 일어나서

내 귀에다가 "너 그렇게 하면 안 돼"였던가? 아무튼 그런 말을 하고서 오락실을 나서려고 했다

나는 당황해서 그 사람을 계단에서 불러세웠다

그리고 "아 이게 가불기라서 기분이 나쁘셨나 본데요 일어나면서 구르거나 무적기 지르면 돼요"

이런 식으로 설명을 했다 근데 그 사람은 나도 그거 쓸 줄 알아 그런데 쓰면 나쁜 거야

하면서 더 이상 말을 안 하려는 듯이 뒤돌아서 나가 버렸다

나는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어차피 남남이고 뭐 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든 자유니까 그냥 놔두고 살았다

그 후로도 그 사람은 내가 일레븐 하면 나타나서 대전을 걸었고

자기도 나에게 텐 가불이나 대처불능한 이동잡기들을 사용하면서

그가 스스로 하면 안 된다는 짓들을 내게도 사용했다

아마 그는 자신이 당했던 기분 나쁜 짓을 나도 당해 보면서 깨달으라고 한 거 같은데

당연히 나는 그게 기분 나쁜 짓이 아닌 걸 알고 있었으며 어차피 내가 50번 하면 그 사람은 1번 성공할까 말까여서

별 상관이 없었다

게다가 시간이 좀 흐르고 나선 텐 가불이나 이동잡기 스킬에 흥미를 잃게 됐고

그 버그성 스킬은 나나 그 사람이나 하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그 사람과의 해프닝으로 끝나는 줄 알았는데

한참 시간이 지난 어느날 배틀페이지에서 태양의여자라는 닉네임을 쓰는 인간이

나를 오락실에서 얍삽이나 쓰는 찌질한 새끼라고 욕을 하는 것이었다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그건 야비가 아니다 엄연히 대처 가능한 공방 중 하나이며

이동가불잡기는 아주 특수한 경우에만 가능한 스킬이며 당하는 상황을 만드는 쪽이 잘못인 거다

라고 논리적으로 설명하려 했지만

논리보다 감정이 앞서는 겜알못 새끼들은 우덜식 감성론을 앞세우며

나를 몰아붙였다

그래서 나도 오프라인도 아니고 온라인인 데다 내가 잘못한 거 없으니 신나게 키배를 붙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태양의여자는 아이디 여러 개 만들어서 분신술 쓰는 인간이라 영구밴을 먹었고

나는 경고만 받고 끝났었다

그 태양의여자 아이디 쓰는 놈은 우습게도 나한테 오락실에서 몇십판이고 발리던 당사자도 아니었다

그러니까 자칭 비매너짓을 한다면서 나를 딜했는데

그 자칭 비매너짓조차 자기가 당한 게 아니라 자기 친구가 당한 거다

친구는 가만있고 태양의여자가 갑자기 발기해서 나한테 극딜을 한 것이다

대체 왜 그랬는지는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알 수가 없다

물론 학교 다니면서 날 좆같아 하는 새끼가 몇 명 있긴 했다

왜냐면 난 항상 퍼질러 잠만 자도 모의고사 성적이 존나게 잘 나와서 선생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질풍노도의 시절 잠시 방황했던 일이지만 찐따 새끼들에게 금전적 후원을 받기도 했었는데

그 찐따 새끼들 중 한 명일 수도 있겠다

아무튼 태양의여자 닉네임을 쓰는 병신 새끼는 나중에 배틀페이지에 재가입해서

자기는 친구랑 같은 아이디로 IP를 바꿔가면서 글을 올리다 분신술로 몰렸다는 둥 뻔뻔한 거짓말을 치며 회원들의 관심을 유도했으나

이미 좆도 오래전 일인 데다 그 사건을 기억하는 사람은 좆도 없었기 때문에

와... 참.. ㅠ 이런 보지들 추임새 같은 댓글 3개 정도나 받고 묻히게 되었다

정말 웃기는 점은 내가 그 태양의여자가 친구라고 하는 사람이랑 나중에 만나서 술도 먹고 화해도 했다는 점이다.

그 사람이 나중에 말하길 태양의여자란 새끼는 내가 다니던 학교의 영어 선생 아들인데

그 영어 선생이 나랑 자기 아들을 비교하면서 너는 왜 저렇게 못하냐고 갈구는 탓에 내게 앙심을 품었다고 한다

누가 누구보고 찌질하다고 해야 맞는 건지 모르겠다

길기만 하고 영양가도 없고 탄산도 없는 이 글을 누가 다 읽어 줬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인터넷에서 누굴 헐뜯으며 아갈질하는 이가 있다면

그들을 너무 혐오하지 말고 불쌍하게 바라봐 주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