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내 강한 위계로 부당대우 걱정…피해사실 알아도 쉬쉬 피해 사실 밝히는데 조력자 도움 큰데 신변보호 장치 미비
직장 성추행·성폭력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파이낸셜뉴스] "선뜻 나설 용기가 나지 않는다" 서울에 거주하는 회사원 A씨(30대)는 직장에서 이성을 성적으로 조롱하거나 차별하는 말을 자주 접한다. 하지만 동료를 위해 선뜻 용기를 내기 어렵다고 하소연한다. 성희롱을 하는 당사자가 주로 회사에서 중책을 맡고 있는 상사인 데다 자신이 피해자 돕기에 나설 경우 어떤 부당한 대우를 받을 지 가늠조차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A씨는 "솔직히 나 자신이 비겁하다고 생각하지만 어쩔 수 없다"며 "당장 성희롱, 성추행 피해 당사자는 법으로 어느정도 보호를 받지만 이들 피해자를 옆에서 도와주는 조력자는 사용주가 어떤 처벌을 해도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하지 않나"고 반문했다.
이처럼 각종 사업장이나 직장에서 성추행과 성희롱, 성폭행이 만연하지만 피해장면 증언 등을 통해 피해사실을 입증하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는 조력자에 대한 법적·제도적 보호장치는 미비한 실정이다. 특히 이들 피해자를 돕는 조력자의 신변 등이 거의 무방비로 노출돼있다 보니 제2차 가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직장인 4명 중 1명 성추행·성폭행 경험
26일 직장갑질119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직장인 1000명(남성 570명, 여성 43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한 후 성추행과 성폭행을 경험했는지'에 대한 질문에 여성 응답자의 25.8%, 남성 응답자 중 10.9%가 '그렇다'고 답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 성희롱 등의 피해를 경험했을 때 대응으로는 '참거나 모르는 척했다'가 63.1%로 가장 많았고, '회사를 그만뒀다'는 응답이 37.8%로 뒤를 이었다.
피해 신고를 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대응해도 상황이 나아질 것 같지 않아서'가 52.4%로 절반을 넘었고, '불이익을 당할 것 같아서'가 24.1%, '피해 사실이 알려지는 것이 싫어서'가 15.1% 순이었다.
이 같이 직장인들이 피해사실을 쉬쉬하는 건 주로 가해자가 직급이 피해자보다 높은 상급자(45.9%)나 임원(22.5%)이기 때문이다. 피해사실을 공개할 경우 피해자 본인이 회사 생활 자체가 어려운 데다 어떤 부당한 대우를 받을 지 걱정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더 큰 문제는 이들 피해자들을 옆에서 직·간접적으로 돕는 조력자를 보호해 줄 제도·법적 장치가 없다는 점이다. 피해사실을 증언하는 등 피해자를 돕는 일은 결국 가해자들의 성비위 자체를 입증하는 결정적인 증거가 되기 때문에 피해자 조력자에 대한 역할은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하지만 피해자 조력자들에 대한 법적, 제도적 신변보호 장치가 없기 때문에 직장 내에서 성추행과 성폭행 등을 쉬쉬하는 분위기가 만연할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행법 상 직장내 성희롱·성폭력 행위에 대한 증언 등으로 피해자를 돕는 조력자가 회사나 사용주로부터 부당하거나 불리한 조치를 당하더라도 법적으로 이를 제지할 방법이 없다.
피해자 조력자에 부당조치 사용주 처벌해야
이런 가운데 조력자가 사용자로부터 불이익을 받는 것을 방지해 피해자가 직장 동료들의 도움을 받고 정신적 안정감을 얻을 수 있도록 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내용의 관련 법안이 국회에 제출돼 향후 처리여부가 주목된다.
소병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조력자에 대한 회사측의 불리한 처우를 금지하는 것을 골자로 한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개정안'과 '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이 같은 조력자 보호에 대한 필요성은 이미 대법원 판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대법원은 지난 2017년 12월 모 자동차 회사의 직장 성희롱 사건에서 동료가 성희롱 피해자를 도왔다는 이유로 해당 직원에게 보복성 조치를 취한 사측의 행위가 불법에 해당한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소 의원은 "직장내 성희롱 및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직장 동료들의 증언과 심리적 지지 등의 조력은 범죄를 입증하는 데 매우 큰 도움이 된다"면서 "피해자들을 도운 조력자들에 대한 처벌을 금지해 피해자가 동료로부터 조력받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자 이번 개정안을 발의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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