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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중편] 노덜드라 관광산업 제안 -3-

LibreSoy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5.04 22:4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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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 https://gall.dcinside.com/frozen/4548633

2편: https://gall.dcinside.com/frozen/4560193



“아니, 대체 말도 안 듣고 바로 거절하는 게 어디 있어?”


“더 이상 들을 필요가 없을 정도로 뚜렷하잖아. 나야말로 내 동생이 이런 말도 안 되는 엉뚱한 제안을 무턱대고 할 줄은 꿈에도 몰랐어.”


평소라면 있을 수 없는 엘사의 과격한 독설에 안나는 그만 폭발하고야 말았다.


“엉뚱하다고?? 지금 말 다했어? 사람 말 다 듣지도 않고 먼저 끊은 주제에 뭐가 어째?”

“제발 좀, 안나. 그 관광산업이 뭘 의미하는지 생각을 해 봐. 네가 예전부터 항상 생각 이전에 행동이 먼저 나가는 아이란 건 알았지만 지금처럼 중요한 자리에서는 고쳐야 할 태도야. 누가 봐도 뻔히 이용하려는 모습인데 넌 왜 그걸 모르니?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취소하도록 해.”


서로를 이글이글 쏘아보는 눈빛, 그 주변으로는 싸늘한 공기만이 감돌았다. 4년 전처럼 얼어붙은 세계가 다시 찾아오는 건 아닐까 두 대표인을 둘러싸고 서 있던 주변인들은 혹시나 하는 사태가 벌어지지 않기를 마음속으로 간절히 빌고 있었다.


“....언니.”


“......”


엘사는 대답 없이 째려보는 시선으로 응했다.


차갑다. 너무나도 차가웠다. 줄곧 문이 닫혀졌던 13년간의 지독한 고통이 다시금 폐부를 찌르고 들어오는 듯한 매서운 추위, 전설로만 전해 내려오는 눈의 여왕이 연상될 만큼 냉혹하고 시린 눈빛이었다. 문을 수없이 두드려도,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 나와서 놀자고 부탁해도 무시당하거나 밀쳐지기만 하던 기억의 단편이 안나의 눈앞에 아른거렸다. 잠시 마음 한구석이 쓰라렸지만 이 이상 서로 감정적으로 대해봤자 모두의 시간만 낭비할 뿐이었다. 이윽고 그녀는 언니의 눈빛을 맞받아치며 입을 열었다.


“나도 알아. 이제 갓 1년도 안 된 햇병아리 여왕이라 영 믿음직스럽지 못한 것도, 늘 말보다 행동이 먼저 나가는 동생이라 언니 걱정이 한가득하단 것도 잘 안다고. 하지만 나도 국왕이란 자리가 얼마나 중요한 위치인지 정도는 매일매일 무겁게 느끼고 있어. 무엇보다도, 언니가 직접 나에게 아렌델을 맡긴 이상 철없이 행동하는 일은 결코 없을 거야. 그러니, 언니도 조금만 더 날 믿어주고 내 얘기를 들어줬으면 좋겠어.”


“....알았어. 일단은 들어보도록 할게.”


안나는 마음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혹여나 엘사의 심기를 더욱 건드려서 회담이 결렬될지는 않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그녀의 언니도 감정을 나름 추스린 모양이었다.


“먼저, 상당히 오해하고 있는 거 같은데 자연을 멋대로 파헤치면서 이용하자는 말이 아니야. 그저 우리에게 주어진 자연을 많은 사람들이 활용하면서 동시에 서로 간의 삶도 윤택하게 하자는 거지.”


“그게 말처럼 쉬운 줄 아니? 관광지로 만드는 이상 훼손은 반드시 일어날 수밖에 없어. 사람들을 더 끌어 모으기 위해 이것저것 인위적으로 가꾸고 만들고 억지로 꽃을 다른 데에 심고 할 게 불 보듯 뻔한데?”


“설마 관광산업을 무슨 산을 깎아내리는 공사로 생각하는 거야? 관광지는 말 그대로 그 지역만의 특색과 풍경이 녹아들어 있으니까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인데 언니는 내가 굳이 그런 짓을 할 거 같아?”


“안나. 너도 알겠지만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점점 자연이 망가지고 있어. 왕국을 더 부강하게 만들기 위해서, 자기 나라 사람들을 더 잘 먹고 잘 살게 하기 위해서 자연을 함부로 망가뜨리는 건 두말할 필요도 없고 다른 나라를 침략하거나 심지어 원래 거주하고 있던 원주민들까지 내쫓고 있는 형국이야. 아마 해외 여기저기 들려오는 소식들을 접하고 있을 테니 너도 잘 알거야. 더군다나, 아까도 말했지만 노덜드라는 왜곡된 진실 때문에 34년 간 갇혀 지내야 했어.”


“그래서 또 다시 갇혀서 지내려고?”


“...뭐라구?”


뜬금없는 공격적인 어조에 엘사는 눈꼬리를 치켜세웠다.


“자연은 보호받아야 한다는 말이 언니 주장이잖아? 그런데 그거 알아? 지금 언니가 자연과 노덜드라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작년 우리가 마법의 숲으로 향할 때 노덜드라랑 별 다를 게 없어 보이는데? 주변이 위험하다면서 여전히 감추고 보이지 않으려 하잖아.”


“!! 너, 너 그 소리를 잘도-”


청천벽력과도 같은 말에 엘사는 물론 주변 사람들의 표정이 잿빛으로 변했다. 지금 아렌델의 군주가 다섯 번째 정령의 역린을, 그것도 건드리는 수준이 아니라 움켜쥔 채 쏙 뽑아내려 하고 있다. 올라프는 아예 크리스토프의 등 뒤로 숨어버렸고 이미 크리스토프는 아까부터 온 몸을 덜덜 떨면서 불안한 눈빛으로 자매를 바라보고 있었다.


“끝까지 들어봐, 언니. 언니를 욕하려는 것도, 노덜드라인들을 비난하려는 것도 아니야. 내 말은, 언제까지고 보호해야 한다며 무조건 폐쇄적으로 막는 것도 문제라 이거야. 자연과 인간은 원래 서로 조화롭게 살아야 한다는 게 기초적인 원리 아니야?”


“그러니까, 내 말은 그 조화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거야. 보통 이런 상황은 초기에는 바람직해 보인다 해도 갈수록 발전이 덜 된 쪽이 손해를 보게 될 여지가 커. 심하면 양쪽 사람들 사이에 반목을 더 키우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구.”


“언니 마음 잘 알아. 나도 솔직히 100퍼센트 아무 일 없을 거라 장담은 못 해. 하지만, 아렌델이 성문을 다시 열고 여러 나라들과 교류하는 것처럼, 이제 노덜드라도 미지의 세계로만 남기지 말고 다른 세상과 손을 맞잡자는 거야.”


엘사는 답답하다는 듯이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자꾸 말을 반복하는데, 서로 손을 맞잡으려면 상호간 존중이 먼저 필요해 안나. 네가 먼저 직설적으로 말 했으니 나도 시원하게 말 할게. 지금 네가 하려는 건 상호존중이 아니라 엄연히 아렌델을 위해서 노덜드라를 이용하는 모습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야. 관광 산업이 대체 노덜드라에는 무슨 이익이, 그리고 자연에는 어떤 해로움을 가져다 줄 지 생각 해 봤어? 아니, 처음부터 그런 생각을 품으면 안됐지.”


이제는 안나의 입에서 한숨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무래도, 그녀의 언니는 뭔가 단단히 착각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야말로 언니가 말하는 ‘존중’ 이라는 게 정확히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어. 일단 내가 해석하는 바에 의하면, 지금 언니 말은 그냥 양쪽 다 현 상태 그대로 유지하자는 입장으로 보이는데 과연 그 방법만이 존중일까? 왜 서로 상생하면서 발전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 거야? 이 자리를 빌어서 떳떳하게 선언하는데, 아렌델은 노덜드라를 무턱대고 이용해 먹으려는 것도 아니고 자연을 우리식대로 뜯어고치려는 건 더더욱 아니야.”


이따금씩 안나는 평소 보여주던 생기발랄한 모습과는 사뭇 다른 고집스러운 태도를 보일 때가 있었다. 엘사는 이미 1년 전 어둠의 바다를 홀로 건너가려고 동생과 욱신각신한 경험이 있어서인지 지금 눈앞의 상황에 나름대로 익숙하리라 여겼다. 하지만, 익숙한 건 상황뿐이었고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은 그 때와는 전혀 다른, 흔들림 없이 또렷한 광채를 발산하고 있었다.


“....그러면, 제안하는 바가 뭔지 말해볼래?”


“가장 먼저, 아렌델로 관광 온 사람들에게 노덜드라의 자연환경을 둘러보는 코스를 마련하는 거야. 관광객들은 아렌델의 시가지와 피오르드 협곡 그리고 노덜드라의 아름다운 자연을 보며 틀림없이 만족할 거야. 인간이 만든 문명과 자연 그대로의 정취가 이토록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다면서 말이야. 그러면 입소문을 타서 점점 많은 사람들이 아렌델과 노덜드라를 찾겠지.”


“하지만, 사람들이 많이 방문할수록 문제는 커질 수밖에 없어. 사람들이 조치에 따라줄 지도 의문이고. 혹시나 잘못돼서 몰래 사냥을 한다든가 멋대로 나무나 식물을 캐 간다든가 하면은?”


“물론, 무조건 자유롭게 놔두지는 않을 거야. 관광객으로 온 입장인데 폐를 끼치게 할 수는 없지. 아렌델이 관광을 제안한 만큼 치안이나 경비는 우리 쪽에서 댈게. 그밖에도, 노덜드라 사람들의 생활 및 자연 훼손을 방지하는 추가적인 규정도 만들어서 최대한 피해가 가지 않는 조치를 취할 거야. 오히려 찾아오는 사람들은 자연이 이리 아름다운 거라며, 이 귀중한 유산들을 잘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가질지도 몰라. 우리 아렌델에서도 그 점을 계속 강조하면서 안내할 거고. 그러면 노덜드라인들도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고 관광객들 역시 원주민들에 대한 편견을 점점 줄여나갈 수 있을 거야. 당장 우리만 봐도 안개가 걷히고 난 뒤부터 노덜드라 사람들이랑 아렌델 사람들 사이가 점점 좋아지고 있잖아? 그러니까, 언니. 제발...한 번만 다르게 생각 좀 해 줘.”


겉으로는 하나하나 입장을 또렷하게 밝히고 있었지만 안나는 극도의 긴장감과 두려움이 심장을 계속 움켜쥐고 있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다.


자신의 설득을 듣지 않고 끝내 언니가 싹 다 거절한다면?

혹시나, 지금의 태도 때문에 언니가 자신을 멀리한다면...?


국왕으로서의 두려움과 개인으로서의 두려움이 중첩된 마음가짐을 붙들어 매기에도 정신이 혼미해질 판이거늘 갖가지 정치적·사회적 요소들까지 머리를 굴려야 했으니 그야말로 골이 터지기 직전이었다.


‘안 돼, 안나. 넌 아렌델의 국왕이야. 고작 이거가지고 흔들리면 안 된다고!’


안나는 수십 번도 넘게 자신을 타일렀으나 끝내 두려움을 완전히 떨칠 수는 없었다. 얼마든지 거절당할 수도 있다며, 회의가 좋게 끝나지 못할 수도 있다며 미리 각오를 굳힌다 한들 그녀의 기억 속에 깃든 ‘거절’이라는 단어는 살갗을 깊숙이 파고든 가시와도 같았다. 너무도 깊었기에 가시를 뽑아내어도 길다랗게 남겨진 상흔은 이따금씩 통증을 호소하곤 했다.


엘사 또한 마음속으로 심히 고민하고 있었다. 그녀에게 ‘관광산업’이란 아렌델이 노덜드라를 착취하는 개념으로 뚜렷하게 각인되어 있었다. 하지만 안나의 말을 종합해보면 무작정 노덜드라를 멋대로 이용하려는 모습 같지는 않았다. 하기사 목숨을 걸고 댐을 무너뜨린 동생이 다짜고짜 노덜드라에 무리한 요구를 들이밀 리는 없을 테며 엄연히 아렌델의 입장을 최대한 고려해야 하는 위치였기에 고민을 거듭한 후 이러한 결론을 내렸으리라. 하지만 무턱대고 노덜드라의 유산을 아렌델의 권리 하에 놓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자신이 아토할란으로 건너가 다섯 번째 정령이 된 이상, 자신의 의무는 인간과 자연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균형을 유지한다는 게 도대체 어떤 의미일까? 갑작스레 닥친 의문은 엘사 스스로도 뚜렷한 답을 내릴 수가 없었다.


문득, 엘사는 예전에 아버지로부터 제왕학 수업을 받던 기억을 떠올렸다.





“아빠, 정말 이렇게 앉아서 책으로 공부하고 외우기만 하면 웬만한 나라의 문제들은 해결할 수 있는 건가요?


“음...그건 아니란다. 지식이 중요하다지만, 엄연히 책을 통해 얻은 지식과 직접 경험해서 얻은 지식은 범주가 달라.”


“유럽 대부분의 왕족들은 이미 제 나이대면 왕궁의 여러 업무들을 맡아본다고 하는데 이대로 가면....과연 훌륭한 왕이 될 수 있을지 무서워요.”


“너무 걱정하지 마렴, 엘사. 경험이 최고의 자산이라고는 하지만, 그 이전에 기본적인 밑바탕은 필요한 법이야. 비록 네가 마법 때문에 실무를 배우는 게 늦어지겠지만 너는 누구보다도, 심지어 나와 내 조상님들보다도 똑똑한 아이니까 잘 해낼 수 있을 거야. 물론, 주의해야 할 게 있지.”


“주의할 거요?”


“한 나라의 중책을 맡는 자들, 특히 왕가의 혈통은 모든 일을 균형 있게 바라보는 자세가 아주 중요하단다. 겉으로 보기에는 답이 분명하다고 생각되는 문제들일수록 더욱 고민해 봐야 해.”


“균형 잡힌 관점이란 정확히 어떤 걸 말하는 건가요?”


“편견이나 선입견에 갇히지 말아야 한다는 거야. 또한 극단적인 비관론이나 낙관론에 기대서도 안 되지. 잠시의 충동이나 감정 혹은 편견에 의해 결정을 내리게 된다면 영영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몰고 올 지도 모른단다.”


“어느 극단에 치우치지 말고 중립적인 입장에서 안정을 꾀하라는 말이네요.”


“꼭 그렇지만은 않아. 보통 균형은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자세이지만, 때로는 모두가 발전하는 방향을 추구할 수도 있지. 맹목적인 균형은 오히려 본래 의미를 퇴색시킬 뿐이란다.”


“너무 어려워요...상황에 따라 달라진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정확히 대처할 수 있을까요?”


“군주의 권한이 막강한 만큼 그 책임도 막대한 법이야. 그렇기에 어느 나라의 왕이건 가능한 최상의 판단을 내리기 위해 수많은 지식과 정보들을 섭렵하는 거란다. 지식뿐만이 아니야. 의회에서 의견을 종합할 때도, 외교관계를 설정할 때에도 균형은 매우 중요해. 우리 아렌델 같은 소국들이라면 더더욱 신경 써야 하지. 내 말 명심하렴, 엘사. 알겠니?”





노덜드라와 아렌델 간의 반목을 눈앞에서 직접 마주하셨기에 그랬을까? 되돌아보면, 아버지는 늘 균형 잡힌 관점과 태도를 강조하셨다.


‘균형이라...나는 무조건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하는 쪽으로만 생각했는데, 안나는 모두가 한 걸을 앞으로 나아가는 방향을 생각하고 있구나.’


현 상황을 유지하며 안정을 꾀할 것인가 아니면 위험을 무릅쓰고 함께 발전해 나가는 방법을 택할 것인가. 절망적인 과거를 염두에 두고 안정을 중시하는 엘사와 희망찬 미래를 꿈꾸며 변화해 나가려는 안나의 결정적인 차이가 드러나는 대목이었다.



어쩌면 기억 속의 아버지는 오늘과 같은 상황을 예상하셨는지도 모르겠다며 엘사는 표정을 부드럽게 풀었다.



“후...정말, 평소에는 착하고 이해심 많은 아이가 한 번 고집을 피우면 그 누구보다 말리기가 힘드니 이러다가 언니 머리털 빠지는 게 아닌가 모르겠어.”


“13년 동안 고집 피우던 언니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걸?”


“어쩜, 한 마디를 지려고 하지를 않니. 알았어. 아렌델의 관광 산업 제안을 받아들일게.”


순간 안나는 귀를 의심했다. 철옹성같이 거절하던 태도는 어디로 가고 이제는 정반대로 사그라든 모닥불마냥 납득하는 언니를 보니 도통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저...정말이지? 막 나중에 말 바꾸고 그러는 건 아니-”


“단, 조건이 있어.”


안나는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먼저 자연에 피해가 가지 않는 선에서 하겠다고 했지? 그렇다면 갑작스럽게 많은 사람들을 받아들이기는 무리야. 그러니 1주 1회에 정해진 인원만큼만 받도록 하는 거야. 일종의 예약제 비슷한 거지.”


그렇게 한다면 숲이 무턱대고 망가질 염려도 줄어들고 노덜드라인들의 생활에도 큰 지장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만큼 아렌델의 수입은 줄어든다는 말이 된다. 반박을 해야 한다 생각하면서도 안나의 머릿속에서는 뾰족한 묘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방금 자신이 노덜드라에 피해가 가지 않게끔 진행한다고 대놓고 말을 한 이상, 엘사가 제안한 사항에 성급하게 이의를 제기하는 것도 어째 모양새가 빠져보였다.


“그리고, 관광산업으로 인해 혹시라도 노덜드라인들의 유목업이 손해를 봐 서도 안 돼. 따라서 지금 소규모 민간 무역으로만 이루어지고 있는 노덜드라의 모피 및 수공업을 아렌델 측에서 공식적으로 무역망을 틀어줘야 하겠어. 도중에 산적 떼에게 습격이라도 받으면 큰일이니 아렌델에서 확실한 경비와 보조를 도맡아주고.”


“뭐, 뭐라고? 아니 잠깐만, 갑자기 왜 거기까지 범위가 넓어지는 건데??”


예상 범주를 훌쩍 뛰어넘는 요구사항에 안나는 당황한 나머지 저도 모르게 탁상을 탁 치고 벌떡 일어섰다.


“방금 분명히 네가 노덜드라인들의 생활을 존중해주고 관련 규정을 만들어준다고 했잖니? 영토의 권리를 일정 부분 얻는 이상 이 정도 조치는 당연하다고 보는데?”


“아, 아니 그건 그거고 이건...그 뭐랄까 조금 다른 문제가 아닐까 싶은데...”


제안이 받아들여져 안도한 순간을 비집고 틈탄 일격에 안나의 머릿속이 새하얗게 타들어갔다. 방금까지 얼음여왕 같은 언니를 설득하느라 에너지를 쏟아 부었더니 이제는 더 이상 머리를 굴릴 여력이 남아나질 않았다.


“마지막으로, 노덜드라에는 예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목조 공예품이랑 전통 특산품들이 있는데 아렌델 측에서 정식으로 관광 상품으로 판매할 수 있도록 허가해 주렴. 분명 큰 보탬이 될 수 있을 거야.”


“맙소사...”


점점 덧붙여지는 추가 요구에 안나는 이제 그로기 상태 직전이었다. 관광 상품은 그녀가 수입을 늘리기 위해 고려하당 사항 중 하나였지만, 차마 언급하기도 전에 엘사가 선수를 쳐버린 꼴이 되어버렸다. 이제 와서 안 된다고 말한들 언니는 ‘아님 말고’ 식의 태도로 깨끗이 손을 털어버리면 끝날 뿐, 아쉬움이 큰 건 결국 자신일 게 뻔했다.


“자, 이정도면 노덜드라 측에서는 어느 정도 요구사항이 전달된 것 같네요, 여왕 폐하. 받아들여 주신다면 저희도 아렌델의 제안을 기꺼이 승낙하도록 하겠습니다.”


말을 마친 엘사는 고개를 돌려 노덜드라 원로들을 바라보았다.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흐뭇해하는 모습이었다. 그와는 달리 건너편 아렌델 측에서는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시선만이 오가고 있었다.


“저기...그...노덜드라 입장에서는 적절하겠지만, 그래도 1주일에 1회 방문은 그래도 너무 짧은 거...아닐까...요?”


쥐구멍으로 기어들어가는 듯한 신참 국왕의 목소리에 전임 국왕은 자칫 터져 나올 뻔한 웃음을 애써 참았다. 평소에는 늘 당차고 씩씩한 여장부의 기질이 다분한 동생은 지금처럼 할 말이 없어져서 무안해질 때면 넋 빠진 다람쥐마냥 두 손을 꼼지작 거리며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고는 했다.


‘의외로 다부진 모습이긴 했지만 역시 아직은 한참 멀었어, 안나.’


승리의 미소가 엘사의 입가에 천천히 번지기 시작했다. 협상의 중요한 원칙 중 하나는 상대의 입장을 고려하는 듯한 태도를 역이용하여 최대한 이해관계를 유리한 쪽으로 이끌어 오는 것이다. 처음에는 단호하면서 다부진 기상을 보인 안나였으나 상황이 불리해졌다고 여겼는지 어느 시점부터 상대의 입장과 편의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주변 분위기를 번뜩 파악하는 타고난 성격과 함께 부모님을 여의고서부터 6년 동안 마주한 국정실무로 다져진 엘사의 정치적 외교적 능력이 고작 1년 만에 퇴화할 리는 없었다.


태어나서 한 번도 본 적 없던 언니의 사악한 미소를 마주한 안나는 일생 느껴보지 못한 공포와 한기를, 그리고 협상의 주도권을 빼앗겨 버렸음을 느꼈다.





길지도, 그렇다고 짧지도 않은 회담이 끝이 나고 곧바로 협정문이 작성되었다.


사각사각 움직이는 펜깃 소리와 함께 한쪽에서는 안도의 한숨이, 반대편에서는 이도저도 아닌 무거운 침묵만이 맴돌고 있었다.



이 날, 신참국왕 안나는 뼈저리게 통감했다.


정식적인 제왕수업과 함께 6년의 재위기간을 지낸 자와 갑작스럽게 1년을 맞이하는 자의 레벨은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그리고 천사만 같던 엘사에게서 속이 새까만 소악마의 기질이 아주 다분하다는 것을.





* * *





“자자- 좋게 생각해요, 안나. 원래 시작이 반이라잖아요? 처음부터 100퍼센트 다 이루어지는 건 정말 인생 운을 다 쏟아 부어야 할 정도여야 가능해요. 이 정도면 시작치고는 나쁘지 않다-”


“아아악!! 조용히 해요! 지금 나 못했다고 놀리는 거예요??”


“아..아니, 그게 아니라 그만큼 안나가 잘했다는-”


“흥, 됐어요! 잔말 말고 빨리 왕궁에나 가요. 오늘따라 스벤은 왜 이리 느린 거야....”


그야말로 된통 한 방 먹었다. 나름 야심차게 계획한 사안이 생각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엘사를 설득하려다 되려 설득당한 것도 모자라 이리저리 휘둘린 모습을 떠올리니 창피함과 함께 분노가 그녀의 마음속에 폭포수처럼 밀려왔다. 결국 회의가 끝나자마자 안나는 타고 왔던 왕실마차 대신 스벤이 모는 썰매를 타고 황급히 아렌델에 돌아가기로 했다. 라이더네 순록새끼를 보려 했던 크리스토프는 입맛을 다시며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크리스토프?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요?? 언니가...언니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죠? 언제는 노덜드라한테 피해가 클 거라면서 극구 반대하더니 갑자기 납득하고는 이것저것 다 뽑아간다는 게 말이 되냐 구요!!”


“그...그게...”


진정시켜야 할지 똑같이 화를 내야 할지 크리스토프는 갈피를 잡을 수가 없어서 그저 말을 흐릴 뿐이었다. 사실, 그는 회담 진행 도중 근본적인 의문점을 하나 떠올렸지만 대표자들끼리의 회담에 끼어들 수가 없어서 홀로 되새김질만 하던 참이었다.


“저기...안나?”


“.....”


안나는 씩씩거리며 산 너머를 바라볼 뿐 대답하지 않았다. 크리스토프는 그래도 듣고는 있겠지 하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런 말해도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 뭐냐...아렌델 주머니가 안 좋다는 거요. 지금 안나가 왕위에 오른 지 1년도 지나지 않았는데 어려운 상황이라면, 그 전 엘사 때부터가 문제 아닌가요?”


“어라...? 잠깐만, 그러고 보니-”


생각해보니, 엉망인 재정 상태를 복구해야겠다는 생각에만 초점을 맞췄지 왜 재정상태가 엉망인지를 제대로 조사하지는 않았었다. 왕위를 계승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국고가 탐탁치 않는다는 건 곧 그 전임 정권에 문제가 있다는 걸 의미한다. 물론 때이른 겨울 이후 최악의 재정 상태를 극복해 낸 엘사의 능력을 의심하는 바는 아니었지만 그건 그거였고 의도가 어떻든 간에 엘사가 안나에게 재정곤란을 떠넘기고 노덜드라로 떠났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가 없었다.


“세...세상에....”


이쯤이면 한 방 먹은 수준을 넘어 무려 카운터펀치를 두어 번 더 얻어맞은 격이었다. 분노가 부글부글 머리끝까지 차오른 안나는 온 몸을 부르르 떨었다. 끝내 분을 참지 못하고 썰매 의자 위로 올라서더니 있는 힘껏, 숲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엘사 비겁해!!! 영악해!!! 악마야!!! 이젠 선왕이고 왕족이고 혈통이고 뭐고 없어, 걍 평생 노덜드라에서 살으라고 해!!! 평생 아토할란에서 과거나 보면서 주름살 팍팍 난 할머니나 되어버려라아아아아아!!!”


산과 산을 넘어 쩌렁쩌렁 메아리치는 괴성은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옆에 앉은 크리스토프는 물론 썰매를 몰던 스벤까지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안나를 쳐다보았다. 지금 둘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안나가 엘사를 저주하는 일생일대의 대사건을, 그것도 실시간으로 듣고 있는 중이었다.


“뭐, 뭘 봐요!! 빨리 안 갈 거예요??”


뚫어져라 보는 시선에 창피한 나머지 안나는 고개를 홱 돌렸다. 하지만 홍당무처럼 새빨개진 한 쪽 볼은 저녁노을을 받아 더욱 붉게 물들었다.


“아, 알았어요. 조용히 입 다물고 갈게요. 스벤! 빨리 달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스벤은 다시 질주하기 시작했고 썰매는 다시금 거칠게 들썩거렸다.


‘아무래도 오늘 저녁식사는 한바탕 난리가 날 것 같군.’


곧 닥쳐올 암울한 미래에 크리스토프의 등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 * *




“저기, 엘사? 안나가 화가 많이 나 보였는데 괜찮을까?”


“올라프. 왕이란 때로는 실패했을 때의 감정을 추스르고 자신을 철저하게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하단다.”


“와...나 엘사가 이렇게 비정한 사람인 줄은 몰랐어. 노덜드라에서 오래 지내다 보니 혹시 성격도 야생처럼 거칠어 진거 아냐?”


겉으로는 꼽주는 말로 보여도 그 안에 담긴 의미는 놀라움 반 걱정 반임을 엘사는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쭈그려 앉아 올라프와 눈높이를 맞추고는 입을 열었다.


“군주란 말이지, 아주 어렵고 고달픈 자리야. 한 나라를 이끌어 가려면 결국 자신이 내린 결정과 행동에 막중한 책임을 져야 하지. 시도는 좋았다지만, 그로 인해 어떤 결과가 나타날지 늘 신중하게 검토하고 또 검토해야 해. 단 한 번의 말실수나 오판으로 나라의 운명이 달라질 수가 있거든. 그래서 한 번 세게 밀어붙여 본 거야. 물론 안나는 아직 1년도 채 되지 않아서 어려움이 많겠지만, 아마 이번 일을 계기로 더 성숙해질 거야.”


“그러니까, 장차 동생의 미래를 위해 실패를 몸소 겪게 했다, 그런 건가?”


“그것도 있지만 나로서도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야. 나도 늘 안나의 편에 서서 도와주고 싶지만 공과 사는 구분해야 하는 법이란다. 노덜드라도 엄연히 주권을 가지고 있는 만큼 그들의 입장을 대변해야 하는 게 내 일이었으니까. 올라프, 나는 안나가 처음으로 관광 사업을 제안할 때 루나드 왕의 모습이 사뭇 떠올랐어. 언뜻 듣기엔 노덜드라를 이용하겠다는 말처럼 들렸거든. 거절한 건 나름 진심이었어, 조금 화가 나기도 했고. 하지만, 안나가 날 설득하는 말을 들어보니 내가 무작정 선입견을 가지고 대했나 싶었지. 그래서 생각을 바꿔 본 거야.”


“그건 알겠는데, 생각을 바꾼 것 치고는 협정문 내용이 아렌델에 너무 불리하지 않아?”


영원히 어린 시절의 증표로만 남아 있을 눈사람 친구는 어느새 정치적인 내용까지 대강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해 나가고 있었다. 엘사는 대견하다는 듯이 올라프의 코를 고스란히 쓰다듬어 주었다.


“음....역시 조금 심했으려나? 솔직히 말하자면, 안나를 한번 골려주고 싶은 마음도 없잖아 있었어. 사실 내가 왕위 물려주기 직전인 작년 말부터 재정 상태가 다시 좀 어려워지고 있었거든."”


“거 봐. 솔직히 안나 놀리고 싶어 했던 거 맞잖아? 흐응, 나 정말로 다시 봤어. 엘사 너 생각보다 속이 시꺼멓구나? 하긴 작년 마법의 숲에서 나랑 안나를 얼음배에 강제로 태워서 보낼 때부터 그런 생각이 들긴 했어.”


“그 땐 정말로 미안했어, 올라프. 그래도 이건 안나한테는 절대로 말해선 안 돼. 알았니?”


“으으...난 안나가 화내는 모습은 정말 보기 싫다구. 이번 한 번만이야. 알았지?”


“물론이지. 자, 약속-”


그렇게 서로의 새끼손가락이 맞물리며 조물주와 피조물 사이에서는 아무도 모를 새로운 비밀이 하나 생기게 되었다.


말은 그럴듯하게 했지만, 다음번 아렌델을 찾아갈 때는 아무래도 안나가 그토록 좋아하는 노덜드라산 특제 벌꿀 한 단지라도 들고 가야하려나 내심 어떻게 화를 풀어줘야 할지 고민하는 엘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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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줄요약

1. 시작은 퀸안나

2. 결과는 안재앙

3. 알고보니 런사 트롤



뭔가 당시 시대상 적절히 녹여가면서 재미있게 써 보고 싶었는데 여력이 안 되서 결국 노잼화가...

갑자기 급마무리하는 느낌 팍 드신다면 그거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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