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흥행비자(E6)를 받고 입국, 윤락과 폭행에 시달리던 러시아 여성 25명이 러시아로 돌려보내달라고 간청하는 진정서를 러시아 대사관에 제출한 사실이 11일 밝혀졌다. 본지가 입수한 진정서에는 술병으로 얻어맞고 성폭행까지 당한 러시아 여성들의 절규가 생생하게 담겨 있다.

서울지검 형사7부(부장 박태석·朴泰錫)는 이들의 진정서를 바탕으로 외국인 여성의 불법 입국과 취업을 알선한 업체들에 대한 수사에 착수, 6개 공연기획사를 적발해 기획사 대표 4명을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외국인근로자 파견사업을 하는 전국 200여개 공연기획사를 통해 공연만 한다는 조건으로 입국했지만 윤락까지 강요받기 일쑤였다. 법무부에 따르면 92년 430명이던 예술흥행비자 발급은 2002년엔 5760명으로 13배 증가했다.

진정서에 따르면, 작년 6월 29일 입국한 유레브나(21)양은 부산의 K클럽에서 무용수로 일했다. 작년 8월 27일 자정 무렵, 웨이터가 춤추던 그녀를 손님이 혼자 있는 룸으로 불렀다. 그 손님은 유레브나의 무릎과 가슴을 만지며 자신을 “바람둥이”라고 말했다(그녀는 한국말을 조금 알아듣는다). 시간이 흐르자 손님은 웨이터에게 ‘2차’가 가능하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단호하게 거절했지만 웨이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손님은 그녀에게 뭔가를 마실 것을 강요했다. 그녀가 거절하며 룸을 나가려고 하자 손님은 유레브나를 마구 때리며 강제로 음료수를 먹였다.

한참 뒤 그녀는 깨어난 곳은 숙소인 모텔 옥탑방으로 올라가는 계단이었다. 룸에서 성폭행을 당한 뒤 누군가에 의해 이곳으로 옮겨진 것이었다. 그녀의 손·다리·스타킹은 온통 피투성이였다. 그녀는 자살까지 생각했으나 친구 레나의 만류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녀는 업소에 산부인과 의사를 불러달라고 부탁했지만 그마저 거절당했다.

무용수 아다모브나(22)양은 월 400달러에 숙식을 제공받는 조건으로 작년 10월 한국에 왔다. 그러나 그녀가 일한 경기도 송탄의 J나이트클럽은 이런 계약 조건을 모두 무시했다. 늘 술에 취해 있는 미스터 임(아가씨 관리인)은 러시아여성들을 사무실에 가둬 놓고 술병이나 의자로 때렸다.
러시아 여성들은 화장실갈 때만 문 밖으로 나갔으며 심한 경우는 사무실에서 일주일 동안 갇히기도 했다. 미스터 임은 춤만 추는 것은 재미가 없다며 윤락을 강요했다. 그리고 일주일 동안 식료품비로 1만원만 줬다. 그녀는 동두천·군산 등지의 클럽을 돌며 윤락을 강요당했다. 업주는 그녀가 도망갈까봐 여권까지 빼앗았다. 4개월 동안 그녀가 받은 돈은 36만원. 그 순간 그녀의 마음 속에 있던 모든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었다.

작년 12월 입국한 블라지미로브나(21)양은 윤락을 거절했다가 일주일 동안 차에 갇혀 물도 제대로 마시지 못했다. 춤만 추기로 계약했다고 항의하자 업주는 술병으로 머리를 툭툭 때리며 “그럼 모두 벗고 춤을 추라”고 했다. 그녀는 “한국인에게 당한 모욕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라고 진정서에 썼다.

검찰 관계자는 “진정서를 제출했던 러시아 여성들은 대부분 고향으로 돌아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