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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도=낙랑군, 열수=대동강"에 대한 나의 생각

kyan 2004.10.07 00:51:58
조회 520 추천 0 댓글 31




습수(濕水)는  위 지도(우적도)를 잘 살펴보면 하북성에 있는 것을 볼수 있다. 사기 朝鮮傳 왈 "조선에는 습수(濕水) 열수(洌水) 산수(汕水)의 세 물이 있어 이것이 합쳐서 열수가 되었다" 라고 왈 한다. 즉 열수는 습수, 열수, 산수 세물이 합쳐진 것. 그렇다면 습수가 하북성에 있으니 자동으로 열수 또한 그 근방에 위치하게 된다. <古朝鮮과 衛滿朝鮮의 도읍지인 王險城과 왕험성이 위치하고 있는 冽水의 소재지><⑤冽水는 현재의 대동강이다> <④문헌자료에 대한 고증과 고고학적인 발굴성과를 검토하여 볼 때, 낙랑군 조선현이 현재의 평양지역에 위치하고 있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따라서 조선현이 설치된 고조선의 구도인 왕험성은 평양지역에 위치하고 있었다. > <--- 이로써 이 주장는 반박된다. 밑에 계속해서 반박된다. ------------------------------------------------------------------------------ 밑의 자료는 책으로도 출간되었고 인텨넷상에서 접할 수 있는 북한의 사회과학원 자료 이다. < 점제비 > 해방 전 일제어용사가의 두목이었던 이마니시는 1913년에 평안남도 온천군 성현리(해방 전의 평안남도 룡강군 해운면 운평동)에서 "점제신사비”를 발견하였다고 세상에 공개하였다. 일제어용사가들은 이것을 유력한 근거로 내세우면서 점제비 곁에 있는 성현리 토성을 락랑군에 속하여 있은 점제현의 소재지라고 주장하였다.    점제현은 기원전 108년에 한 나라가 고조선을 점령하고 그 령역 안에 설치하였던 락랑군 25현 가운데의 하나이며 점제신사비는 이 현에서 풍년들기를 기원하여 호랑이 산신에게 제사 지냈던 산신당에 세운 비이다. 비의 높이는 1.35m, 너비 1.09m, 두께 0.12m나 되는 비교적 큰 화강석재의 비이다. 비의 앞면에는 팔분에 가까운 예서체로 쓴 79자의 글자가 한자로 새겨져 있는데 비문의 글을 우리 글로 쓰면 다음과 같다.    “원화 2년(기원 85년) 4월 무오일에 점제장 □□와 위, 건, 승, 속국이 모여서 <백성들을 위하여> 점제신사를 수리할 데 대하여 토의하였다. □평산군 <산신인 호랑이>의 덕은 <높은 산인> 대산과 승산에 비길 수 있으며 위엄은 <우뢰와 같다> 점제고을을 도와 바람과 비를 잘 조절하고 땅을 기름지게 하며 백성들을 장수하게 하고 오곡이 잘 되게 하며 도적이 일어나지 않게 하고 <간사한 것이> 자취를 감추며 사람들이 드나드는 것을 길하고 리롭게 하고 모두 신광을 받게 하여달라.” 연대를 밝힌 글자들이 파손되여 정확히 판독할 수 없으나 이 비문은 후한시기 지방군현에서 산신숭배가 있었던 사실을 반영하고 있다. “후한서” 권 3장제기 원화 2년(기원 85년) 조와 같은 책 권 18제사지 제8의 기사에 의하면 이 해 1월 산천의 여러 신들을 제사지낼 데 대한 임금의 지시가 있었다. 점제비는 임금의 이 지시를 받고 그 해 4월에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비문에 “4월 무오”일이라고 씌여져 있는데 원화2년 4월에도 무오일이 있으므로 그것은 기원 85년에 후한의 령역안에 세웠던 비라는 것이 명백하다.    그런데 최근 고고학연구소 연대측정집단이 점제비에 대한 화학성분을 분석한데 의하면 그것은 온천관입체의 화강암의 생성년대와 조성성분에서 많은 차이가 있다는 것이 검증되었다. 생성년대에서는 흑운모를 시료로 하여 핵분렬흔적법으로 측정한데 의하면 점제비 화강암의 생성년대는 1억 2천 9백만 년±1천 3백만 년이고 온천 화강암의 생성년대는 1억 4백만 년±1천 2백만 년, 오석산 화강암의 생성년대는 1억 백만 년±1천 2백만 년, 마영 화강암의 생성년대는 1억 7백만 년±1천 2백만 년이다. 이처럼 점제비 화강암의 생성년대는 온천과 룡강일대의 화강암 생성년대보다 2천 8백만 년~2천 2백만 년이다 더 오래다. 이것은 점제비 화강암이 그 근방의 화강암과는 돌 나이에서 완전히 구별되는 다른 지방의 화강암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점제비의 화강암은 조성성분에서도 온천관입체의 화강암의 것과 다르다. 즉 점제비의 화강암은 온천관입체의 화강암에 비하여 연은 2배, 월프람과 연, 니켈, 석, 린은 각각 2배 더 많으며 바리움은 10분의 1정도 밖에 안 된다. 카리 분석 결과에 의하면나트리움의 함유량이 점제비에서는 2.8인데 온천관입체의 화강암은 4.1이다. 이처럼 점제비의 석재와 온천관입체의 화강암은 그 조성성분에서도 많은 차이가 있다. 이상의 사실은 점제비는 온천과 그 근방의 화강암이 아닌 다른 지방의 화강암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지금도 온천과 그 근방에는 질 좋은 화강암이 많으며 평양일대에서는 그것을 많이 리용하고 있다.    그러면 왜 자기 지방의 석재로 만들지 않은 점제비가 온천 땅에서 나타났는가? 그것은 다른 지방에서 만든 것을 온천지방에 옮겨놓았기 때문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 서울대 고고학 박사이며 문화재위원을 지내신 손보기교수의 증언과 일치한다. 점제현 신사비는 원래 하북성 갈석산에 있었는데 일본놈들이 일제시대때 정으로 찍어 파내어 배에 실고 평남 온천군에 가져다 놓고 여기가 한의 낙랑군이라 날조를 하였다. ----------------------------------------------------------------------------------- < 봉니 > 봉니라는 것은 다른 곳에 보내는 문건을 넣은 나무함을 도중에 열어보지 못하도록 노끈 같은 것으로 가로세로 매여가지고 그 매듭에 진흙덩이를 붙이고 거기에 군현 책임자의 도장을 찍은 것이다. 이런 봉니가 해방 전에 락랑 토성에서 200여개가 나왔다고 한다.    그러나 과거 봉니 가운데는 위조품이 너무나도 많아서 그것들이 다 진품인가 하는 것이다.    그것은 첫째로, 한 개 유적에서 수집된 봉니의 수자로서는 지나치게 많은 것이다. 주체 25(1936)년 4월까지 200여개의 봉니가 알려졌다고 하는데 봉니를 많이 쓴 중국에서도 그렇게 많이 나온 례가 없다. 전국의 서신이 다 집중될 수 있는 한 대의 수도 장안과 락양의 성지에서도 봉니가 알려진 것이 그렇게 많지 못하다. *“조선고고학연구”(일문), 1948년판, 363페지    우리는 해방 후 락랑 토성과 운성리 토성, 소라리 토성, 청해 토성을 비롯한 그 밖의 토성들을 발굴하였지만 단 한 개의 봉니도 나온 례를 알지 못한다. 원래 봉니 그 자체의 성질상 특성으로 하여 잘 남을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락랑 토성에서 나왔다고 전하는 것들이 실지 당시의 것인가 하는 것이다.    ※ 해방 전에 봉니를 위조하던 자들의 고백에 의하면 일제 골동상들과 봉니 위조자들이 수많은 봉니를 위조해서 팔았다고 한다.    둘째로, 봉니에 찍힌 도장의 크기가 당시의 도장의 크기와 맞지 않는 것이다. 무제 “원수 4년”(기원전 119년)에는 관인의 크기를 5품(1.5cm)으로 규정하였다. 그런데 봉니에 찍힌 도장의 크기는 대부분이 2~2.2cm이다. 그러니 봉니들을 진품으로 볼 수는 없는 것이다.    셋째로, 봉니에 찍힌 군현 명이 오직 락랑군에만 국한되여 있으며 그것도 도위부 계통의 봉니가 전혀 없는 것이다. 봉니는 다른 곳에서 보낸 문건을 받아본 곳에서 나온 것이 정상의 것이다. 따라서 그러한 봉니 가운데는 자기 군 산하의 현들에서 온 것도 있겠지만 린접한 군에서 보내온 것도 있어야 하며 군도 위의 것도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중앙과 빈번한 련계가 있었을 것이므로 중앙에서 내려보내는 지시나 편지에 붙였던 봉니도 응당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락랑 토성에서 나왔다고 하는 봉니 가운데는 락랑군 산하의 현들의 것만 있을 뿐이고 중앙의 것은 물론 린접 군과 군도 위의 것은 단 한 개도 없다. 더구나 한 나라 중앙에서 내려보낸 것으로 볼 수 있는 봉니가 단 한 개도 없다는 사실은 락랑 토성에 거처한 집단이 한 나라의 통치를 받지 않았던 그 어떤 독자적인 세력이였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넷째로, 봉니에 찍힌 관직명 가운데는 당시의 관직제도와 맞지 않는 것이 많은 것이다. 그런 봉니로서는 우선 “락랑대윤장”이라는 봉니를 들 수 있다. 주체 24(1935)년에 "과학적 발굴”에서 드러났다는 “락랑대윤장”을 비롯하여 그런 봉니가 락랑토성에서 8개나 나왔다고 한다.    그런데 거기에 찍힌 사각도장의 크기는 한 변의 길이가 2.05cm, 2.07cm, 2.10cm로서 세 종류의 관인이 있었던 것을 보여준다. “대윤”이란 “태수”를 왕망시기에 그렇게 고친 것이다. “한서”왕망전에 의하면 왕망은 오위장 왕기로 하여금 현도, 부여, 락랑에 옛날 한왕실이 수여하였던 인수를 회수하고 새 왕조(왕망이 세운 신나라)의 인수를 수여하였다. 왕망시기에는 “태수”를 “태윤”으로 고쳤을 뿐 아니라 수 많은 군현 명까지도 고쳤다. 례컨대 “돈황군”은 “문덕군”으로 고쳤는데 이것은 실지 유물에 의해서도 확증되었다. *“고고학보” 1964년 1호, 56페지    또한 “락랑군”은 “락선군”으로 고쳤으며 락랑군의 속현들인 “증지현”은 “증토현”으로, "패수현“은 ”락선정“으로, ”해명현“은 ”해화현“으로 고쳤다고 한다. 그리고 현의 ”령장“도 "재”로 고쳤다고 한다.    따라서 “락랑대윤장”의 봉니가 믿을 만한 진품으로 되자면 거기에는 응당 “락선대윤장”이란 도장이 찍혀져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사실은 그렇지 못하니 그것을 어떻게 진품이라고 볼 수 있겠는가? 그것은 봉니 위조자들의 손에 의하여 만들어진 위조품인 것이 명백하다.    만일 “락랑대윤장”이란 봉니가 실물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일제어용사가들이 주장하듯이 락랑토성을 한의 락랑군 소재지로 볼 수 있는 근거로는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봉니는 다른 곳에서 보내온 물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락랑대윤장”이란 봉니가 실물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오히려 락랑 토성이 한의 락랑군의 소재지가 아니였다는 것을 확증해주는 근거로 될 뿐이다. 당시의 관직 제도와 맞지 않는 봉니로서는 또한 “동이장인”의 도장이 찍힌 봉니를 들 수 있다. “동이장인”은 2개 보이는데 하나는 한 변의 길이가 2cm이고 다른 하나는 한 변의 길이가 2.1cm이다.   “한서”지리지에 의하면 동이현은 “림둔군”의 소재지였다. 기원전 82년에 림둔군이 폐지되면서 동이현이 락랑군의 속현으로 되었다. 동이현은 림둔군의 소재지로 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아 락랑군에 합쳐진 다음에도 큰 현으로 되어 있었을 것이다.    당시 큰 현에는 현령을 두었고 작은 현에는 현장을 두었다. 동이현에는 현령이 있었고 현장은 없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결국 “동이장인” 봉니는 위조품으로 밖에는 생각할 수 없다. 그것이 위조품이라는 것은 또한 같은 도장을 찍었음에도 불구하고 우에서 본 것처럼 그 크기가 서로 다른 것 자체가 잘 보여준다.    “동이장인” 봉니와 같은 위조품은 그 밖에도 “장잠장인”, “장잠령인”, “수성장인”, “수성우위”, “남한장인”, “남한좌위” 등의 도장이 찍힌 것을 비롯하여 수많은 봉니들을 들 수 있다.    다만 여기서는 점제봉니에 대한 우리 학계의 검증결과를 첨부한다.    일제어용사가들은 평안남도 온천군 성현리에 위치하고 있는 어을동토성을 “점제현”의 소재지였다고 주장하면서 그 근거로 “점제신사비”와 함께 점제봉니들을 들었다. 그들이 소개한 봉니 가운데서 “점□장인”, “□제□인”, “점□승인”등의 도장이 찍힌 봉니들이 있다. 이와 거의 같은 형의 점제봉니들이 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중앙 력사박물관에도 보관되여 있다. 이 점제봉니 가운데는 글자가 모두 똑똑히 남아있는 것은 하나도 없지만 그것들을 종합하여 보면 “점제장인”이거나 “점제승인”의 도장이 찍힌 봉니라는 것을 쉽게 판명할 수 있다. 최근 고고학연구소 연대측정집단이 점제봉니에 대한 화학분석을 하였는데 그 분석결과에 의하면 그 봉니들이 모두 성현리 토성 근방의 흙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락랑 토성 근방의 흙으로 만든 것으로 확증되였다.    ※ “물성분석을 통하여 본 점제비와 봉니의 진면모”(락랑유적의 성격에 관한 학술토론회의 토론론문)    만일 “점제장인”, “점제승인”의 도장이 찍힌 봉니들이 실물이고 성현리 토성이 “점제현”의 소재지였다면 그 봉니들은 응당 성현리 토성 근방의 흙으로 만든 것이여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것들은 성현리 토성 근방의 흙이 아니라 락랑 토성 근방의 흙과 같은 것으로 만들어졌으니 어떻게 실물로 볼 수 있겠는가.    이처럼 락랑 토성과 그 근방에서 나왔다고 하는 봉니들은 실물로 볼 수 없는 것들이다.    때문에 “한 락랑군 재평양설”을 조작한 일제어용사가의 두목인 이마니시까지도 락랑 토성에서 수집한 거의 모든 봉니가 가짜라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 사기의 '소진열전'은 연나라의 위치를 가장 잘 설명하고 있다하오. 중국 전국시대(BC 5세기∼ BC 3세기) 중엽의 유세가(遊說家) 인 소진의 증언을 보면 燕東有朝鮮遼東 北有林胡樓煩(樓煩屬雁門郡 林胡國名朔嵐己北)西有雲中九原(雲中九原秦曰九原郡漢曰五原郡雲中城內楡林縣九原郡在楡林縣西界) 南有嘑沱易水(嘑沱出鹵城) 이오.. 중요내용을 보면 "東有朝鮮遼東  동쪽에는 조선 요동이 있다 " 라고 하오. 소진은 연왕에게 연나레에서 근원으로 지리적 위치를 설명하였는데 이에 "연- 조선 - 요동" 이란 공식이 성립되오. 여기서 요동의 위치가 문제가 되는데 """장성이 요수를 끈고 낙랑 수성현에 이른다 """하니 당시 요동은 현 요서이오. 당시 요서는 현 북경지역이 되는 것이오. 그렇다면 요서유역에 조선이 위치하게 되는데 그 옆에 바로 연나라가 있음을 알수가 있소. 그렇다면 연나라는 당시 태행산맥근처에 있었다고 볼 수 있소. 연진장성에 대해 이야기 해보면 당시 최소BC300까지 연나라는 태행산맥 근방에 존재하는데 BC3세기 진개의 동호침격은 즉 조선지토 천여리를 침격한 것으로 볼수 있소. 당시 연의 영역에서 진개가 칩입한 천여리는 북경근처~하북성유역이라고 볼수 있소. 또한 당시 전국시대의 연나라의 상황으로 볼때 장성을 견고하게 아주 잘 쌓고 그곳을 통치하기란 매우 버거운 일이라고 보이오. 또한 명도전은 만주에서 많이 발견되지 만리장성이남에선 거의 찾아볼수가 없다고 하오. 연나라 경제가 조나라나 제나라에게 한참 밀린것 같소,, 조선과 무역만을 한것 같으니.. 만리장성은 전국시대의 각 국의 장성들을 연결한 것인데 오늘날엔 명나라가 다시 쌓은 장성을 만리장성으로 보고 이젠 고구려 박작산성이 만리장성으로 둔갑되어 있오... 평양=낙랑군이라는 주장은 장성은 낙랑 수성현에서 끝이 나는 데 만리장성이 지금의 평안도유역까지 건설되었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이오. <이상의 간단한 고찰과 방증자료에 대한 검토를 통해서, 浿水=압록강, 연진시기의 경계=청천강임을 살펴 보았다.> 란 말에서 연진장성이 최대 청천강까지 소급될 가능성이 있음을 내포하고 있소. 장성은 대개 경계에 세운다고 하오.. <문헌자료에 대한 고증과 고고학적인 발굴성과를 검토하여 볼 때, 낙랑군 조선현이 현재의 평양지역에 위치하고 있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따라서 조선현이 설치된 고조선의 구도인 왕험성은 평양지역에 위치하고 있었다. 冽水는 현재의 대동강이다. > 이란 전제는 직간접적으로 최근 KBS일요스페셜에서 방영된 동북공정추진기구의 주장인 "낙랑군=평양" "평안도까지 만리장성이 건설되었다" 라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전제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오. 젠장 1시간이 넘게 쓴 글이 업로드제한에 걸려서 다 날아가 버렸소.. 그래서 글을 다시 쓰는데 대충대충 썼소... 많이 빠지고 넘어가고 했지만 대충 적어보았소. 결국 수천년을 흐르는 열수나 패수가 한반도내의 강이 될 수 없고, "한반도내 한사군재" 란 주장은 만리장성이 평안도까지 소급된다는 주장과 일치하며 이것은 동북공정추진기구의 논리와 일치하며 일제어용사학자들의 파렴치한 유물조작을 두둔하는 논리일 뿐이라는 것이오. 이는 내가 귀로 듣고 자료를 찾아서 알고 있는 사실 몇몇을 적어본 것이오.  또한 글을 다시 쓰는 것이기 때문에 그 점을 유의해서 읽어주길 바라오.. 부디 이 글이 "낙랑군=평양"이란 주장이 이 세상에서 하루 빨리 사라지기를 기원하며 힘들지만 이글을 마치고자하오. 원래 글보다 양이 1/3은 줄은 듯 하구려.. 마지막은 고려회가이오.. 고려회가(高麗回家) 不怕五洋圖中華 只怕高麗回家來 불파오양도중화 지파고려회가래 오대양이 중화를 도모하는 것은 두렵지 않으나 고려가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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