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스파르타쿠스의 반란......(햏력이 깊으신 분은 소햏의 의문을 풀어주시오..)

장미유 2004.09.18 21:12:41
조회 1646 추천 0 댓글 28




소햏 대학생이라오.. 교양과목으로 서양사를 듣고 있소. 그런데 다음주에 로마에 대한 주제로 발표를 하나 해야 한다오. 일단 '스파르타쿠스의 반란'을 하나 골라잡아 끄적거렸소만 스파르타쿠스 반란의 의미가 서양사에 차지하는 비중이 대체 어느정도 되는 것이오? 이런 슅! 도서관에 자료는 개뿔도 없고 역사소설 시오노나나미의 로마인이야기에도 딸랑 한페이지(것도 율리우스 시저가 이전쟁에 참여안했다는 걸 증명하려고 쓴것 같소..)나오고 어떤 책에서는 4줄 어떤 책에서는 1줄...ㅜㅠ 물에 불리듯 불려서 A4 서너장분량정도 만들긴 했는데.. 스파르타쿠스의 난이 그렇게 보잘것 없는 것이오? ----낭독문 여러분들은 보통 로마하면 무엇이 떠오르세요? (시저.. 네로황제.. 글라디에이터....??) 혹시 이중에 '스파르타쿠스의 반란'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 분 있으세요? 있으신 분.. 손 한번 들어주실래요? 음.. 저희 조는 기원전 73년 로마제국에 발생했던 '스파르타쿠스의 반란'에 대해 말해보려고 합니다. 바로 공화국 로마가 사라지고 제국 로마가 들어서기 직전의 시기.. 그 유명한 율리어스 시저가 등장하려던 시기의 일입니다. =====칠판에 지도를 그린다..-_-/ 그 시기의 로마는 3차에 걸친 포에니 전쟁으로 지중해의 전통적 강국이었던 카르타고를 멸망시키고 그 여세를 몰아서 대대적인 영토확장전쟁을 벌여 지중해를 석권해 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정복사업을 통해 로마는 강대하고 부유해졌으며 수많은 재화와 보물들이 로마로 모여들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로마의 대외발전의 이면에는 어두운 뒷모습이 있었습니다...... 우선 전쟁에서 얻은 재화들과 토지들은 모두 귀족들이 독점했습니다. 부유한 지배계급인 그들은 전쟁 포로의 형태로 만들어낸 타국민출신의 수많은 노예들을 이용해 식민지에 대농장(라티푼디움)을 경영하고 막대한 이익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로마의 영광이라는 구호아래 오랜 세월 징집되었던 평민들은 오랫동안 자신들의 땅과 재산을 돌볼수 없었습니다. 그들의 땅은 황폐해져 갔고 남아있던 그들의 가족들은 생계를 위해 재산을 팔아야 했습니다. 또한 로마에 굴복한 해외 각지에서의 대농장으로부터 값싼 곡물들이 물밀듯이 밀려왔고 자영농들의 농산물들은 이것과 도저히 경쟁이 되지 않았습니다. 이런 식으로, '위대한 로마를 위해 끊임없이 계속되는 전쟁'은 병사로 출전한 이탈리아 자영농의 생활을 파멸로 몰아넣었고 수많은 평민들이 토지를 잃고 무산계급으로 떨어져 도시로 밀려들었습니다. 물론 이러한 모순을 바로잡기 위한 움직임이 없었던 것도 아닙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예의 그라쿠스 형제의 개혁으로서 그들은 지배계층의 대토지 소유를 제한시키고 빈민에게 토지를 주어 자영농을 재생시키고자 꾀하였으나 지배계층의 방해로 인해 실패에 그치고 결국 횡사하고 말았습니다.   로마의 어두운 뒷모습은 이것만 있는 것도 또 아닙니다. 로마가 급속도로 팽창을 하는 가운데 전쟁으로 인한 노예의 대량발생이 이루어짐으로서 '노예 기반경제의 최전성기'라고 불릴 정도의 시대가 되어버린 것도, 이 시대를 유쾌하게 바라볼 수 없게 만드는 것들 중 하나입니다. 당시 로마에서 노예는 의복과 같이 필수적인 존재였다고 하며 때로는 주종간에 특별한 애정관계가 형성될 만큼 친밀해서 주인에 의한 노예 해방도 종종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집에서 일하는 가내 노예들에게나 해당되는 것이고, 농장이나 광산에서 일하는 노예들의 생활은 매우 비참한 것이었습니다. 제국으로 팽창해가는 로마는 수없이 많은 노예들을 필요로 했고, 많은 타국의 자유민들을 잡아 이들을 양산했습니다.. 학자들에 따라 다르지만 BC 43년경에 이르면 전체 인구 750만 중 노예의 수가 200만에서 400만으로 추산될 정도였다고 합니다. 노예무역 시장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곳은 지중해 동부 연안 델로스 섬이 유명하여 이곳에서는 하루 일만(10,000)명의 노예가 매매되었다고 합니다. 물론 긍정적인 면으로 보면 노예가 힘든 육체노동을 담당하는 사이에 다른 사람들은 보다 더 정신적인 활동에 종사함으로서 비약적인 문화의 발전을 이룰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명색이 같은 인간임이 분명함에도 이 시대의 노예란 흡사 소모품적인 존재로서 다루어졌습니다. 쉽게 말해, 고대의 노예제는 우리가 근대 산업 혁명의 연료로 소모한 석탄과 같은 존재라고 볼수 있습니다. 즉 고대 노예제 사회는 석탄 대신에 노예라는 인간을 불태움으로써 존재할 수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 이런 시대상황에 반기를 든 인물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스파르타쿠스입니다. (이제까지는 서론이었습니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스파르타쿠스는 당시 대부분의 노예가 그렇듯이 원래 노예는 아니었습니다. 그는 '트라키엔'출신으로 '스파르타키덴'의 귀족가문 후손이었습니다. 당시 로마인들은 로마에 복속되어있던 트라키엔 사람들을 로마 정규군의 보조군대로 활용했는데 스파르타쿠스도 보조병이 되어 전투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그의 족속과 혈연적으로 친족관계에 있는 '다르너'부족과 전투를 벌이게 되는 상황이 되었는데 그는 그것을 참을수 없어 로마 군단을 탈영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다시 사로잡혀 로마군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로마군은 그를 노예로 삼아 '검투사 훈련소'에 팔아넘겼습니다. 그는 검투사로 훈련을 받고 죽을 때까지 싸우다 죽어야 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BC.73년 그는 다른 검투사와 함께 로마의 남쪽에 있던 도시 카푸아의 검투사 훈련소에서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그는 결국 78명의 검투사들과 함께 탈출에 성공하였고 자유를 얻은 검투사들은 험한 산맥을 따라 베수비오산으로 향하였습니다. 카푸아 노예들의 탈출소식을 접한 다른 노예들이 장정에 속속 참여하기 시작했으며 곧 그들은 수천명에 이르렀습니다. (하도 노예반란이 많이 일어나) 노예반란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로마는 지방총독 가이우스 클라리우스 글라버의 지휘아래 3천여명의 병력을 곧 출동시켰으나 기습을 받아 괴멸되었습니다. 노예들은 여기서 얻은 전리품(곡식,포도주,말,가축등..)을 공평하게 나누었는데 이러한 소식은 더 많은 노예들로 하여금 반란에 가담케 하였습니다. 또한 앞서 언급한 자영농에서 몰락하여 로마를 절망하게된 다수의 무산자들도 속속 반란에 합세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약간 신경질적이 된 로마는 '푸블리우스 바리니우스'의 지휘하에 두개 군단 1만 2천여 명을 동원 남쪽으로 진군했습니다. 스파르타쿠스군은 또다시 야간기습으로 로마군에 타격을 준 후 평원에서 대회전을 벌여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런 두번의 로마군단에 대한 승리로 기세를 올리던 노예반란군은 겨울을 나는 동안 의견충돌로 인해 분열되는 양상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스파르타쿠스는 로마의 지배에서 자유로운 북쪽의 갈리아 지방으로 가려고 하였으나 크릭수스와 오이노마오스등은 승리에 도취하여 아예 이참에 로마를 공략해버리자는 주장을 폈습니다. 봄이 가까이 왔을 떈 이미 트라키아 인. 갈리아 인. 켈트 인. 게르만 인 노예들과 다수의 무산자가 합세하여 싸울수 있는 자만 5만명이고 노약자들까지 합치면 12만여명으로 증가해있는 상태에서의 일이었습니다. 논란끝에 마침내 반란군은 두패로 갈라지고 크릭수스와 오이노마오스는 로마로 향햇습니다. 이에 로마의 원로원은 다시 3만여 명의 중무장 병력을 렌투루스와 겔리우스의 지휘아래 파병, '쿠락수스와 오이노마오스의 무리'를 전멸시켰습니다. 이때 스파르타쿠스의 무리는 갈리아로 가기위해 알프스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스파르타쿠스군은 곳곳에서 방어선을 겹겹히 형성하고 협공을 해오는 로마군을 격파 마침내 알프스 바로 앞 '포 강'까지 도달하였습니다. 그러나 거기서 스파르타쿠스는 갈리아로 가는 것이 여의치 않다는 것을 알게됩니다. 갈리아도 이제 더이상 결코 로마군에 안전한 땅이 아니며, 다가오는 겨울에 수많은 노약자와 부상자들이 포함되어 있는 병력을 데리고 알프스를 넘는다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에 스파르타쿠스는 일단 갈리아출신의 갈수있는 노예들이라도 귀향시키려고 하였으나 그들은 응하지 않았고 마침내 방침을 바꾸어 시칠리아섬으로 가려고 발길을 돌렸습니다. 시칠리아는 전에 3차에 걸친 노예반란이 발생할 만큼 로마제국에 대한 저항이 격렬한 곳이고 바다로 둘러싸여 로마군을 방비하기 좋은 곳이었습니다. 스파르타쿠스는 이곳에 근거지를 만들어 로마에 대항하려 합니다. 스파르타쿠스는 로마제국에 반항하여 당시 지중해에 극성을 부리던 해적들과 협상하여 시칠리아로 건너가려 했습니다. 그러나 약속된 날 배는 한척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이제 더이상의 도리가 없었습니다. 로마로부터는 집정관 크라수스가 지휘하는 8개군단이 진을 치고 스파르타쿠스군을 기다리기 시작하였습니다. BC.71년 남 이탈리아의 루카니아에서 스파르타쿠스는 적진을 향해 돌파를 시도하였고 1만 2천여 명의 사상자를 내고 결국 돌파에 성공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런 스파르타쿠스군을 기다리는 것은 뒤이어 도착한 로마군의 후속군단이었습니다. 결국 6만여 명의 스파르타쿠스군이 '실라루스 접전'에서 목숨을 잃게 되고 스파르타쿠스도 전사하게 됩니다. 그리고 겨우 목숨을 건져 도망간 5000여명도 북쪽에서 오던 폼페이우스 군단에게 몰살당하고 포로가 된 6000여명은 크라수스의 명에 의해 처음 반란을 일으킨 카푸아에서 로마에 이르는 길목까지 모두 십자가에 매달아 처형시킴으로서 스파르타쿠스의 반란은 끝이 났습니다. 스파르타쿠스의 사후에도 비슷한 이유에서의 크고 작은 반란은 일어났지만 영리한 로마의 지배계급들은 하층계급에게 여러 혜택들을 주는 등 많은 부분에서 양보하는 정책을 펼쳤기 때문에 반란은 모두 초기에 진압되어 대규모 반란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로마인들은 예방적 차원에서의 작은 양보가 자신들에게 보다 이득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겁니다. 검투사 경기는 후에 기독교화 된 로마의 황제에 의해 잔혹하다 하여 폐지되었지만 노예제도는 양심적인 기독교도들도 별다른 고민 없이 수용했고 점점 축소되어는 갔어도 거의 근 2000년동안 인류사에 존속되었습니다.

추천 비추천

0

고정닉 0

0

댓글 영역

전체 리플 0
등록순정렬 기준선택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이슈 [디시人터뷰] 버스터즈 채연, 언제나 밝고 명랑하게 운영자 19.08.19 - -
55 이곳말고 활발한 활동을 하는 역사포털은? [2] 하늘소() 04.10.10 248 0
53 두꺼비 총각이라는 이야기에 관해서.. [2] 하백() 04.10.09 232 0
52 실증주의에 대해서 함 토론해봅시다 [7] 박민석() 04.10.09 285 0
51 역사에 관심많은 햏입니다. [5] 성철쿤() 04.10.08 183 0
47 역사책 추천좀 해주세요 [2] () 04.10.05 226 0
45 역사적으로 biozio() 04.10.02 165 0
44 지난 뉴스이지만.. 설공찬전 () 04.10.01 279 0
43 디씨 예전 모습.. [2] () 04.10.01 362 0
42 (펌)발해 뗏목 탐사대 방의천 대장님의 인터뷰-중국역사가 한국역사 에 편입되어야... dddd() 04.09.30 323 0
41 (펌)발해 뗏목 탐사대 방의천 대장님의 인터뷰-중국역사가 한국역사에 편입되어야... [9] ddd() 04.09.30 496 0
40 대륙삼국설은 진실인가? [21] 이상해() 04.10.01 922 0
39 중국과, 홍콩 그리고 대만과의 관계가 궁금합니다. [6] 쫘웅뚱뛰쨔용() 04.09.29 427 0
38 저기 연도에 관해 질문이 있습니다. [1] 89724() 04.09.28 142 0
37 임진왜란에 참전한 장수들을 알고 싶습니다(明과倭위주로) [2] 미사키사랑해() 04.09.28 442 0
36 햏력이 높으신 분은 '조선의 자랑' 편전의 발사원리에 대해 알려주시오!!! [6] 장미유() 04.09.25 1790 0
34 재야 사학과 강단 사학의 차이점좀 알려주세요. [5] 야우() 04.09.23 399 0
33 <img src=http://www.dcinside.com/ad/banner/pcsafe_145205.gif>%%c zzz() 04.09.22 194 0
32 외국인에게 한국사를 가르치려 하는데.... [6] 백산() 04.09.22 413 0
31 전생을 통한 역사탐구. [1] 해해해&#54671;() 04.09.22 225 0
30 과거 역사를 통해 미래를 예지할 수 있을까요? [3] 홍스() 04.09.21 282 0
29 당나라 소정방이 13만 군대로 배를 타고 백제로 넘어왔다고 하는데 [16] 질문() 04.09.21 1093 0
28 전방후원분 [8] 버드() 04.09.21 385 0
27 '東夷'에 관한 질문 [5] j&#39;accuse() 04.09.20 450 0
26 근현대사 [2] 몰라두돼() 04.09.20 202 0
25 우리나라 고고학학자중 누가 영향력 큰가요.. [8] 음음() 04.09.19 654 0
24 역사란 무엇? (제목수정) [107] 무명씨() 04.09.17 1162 0
23 또 중국어 질문 [1] ㄹㄹㄹ() 04.09.17 237 0
22 백인우월주의는 언제부터 시작되었나... [13] 고구려() 04.09.18 814 1
21 삼국사기에 나오는 백제는 어디에 있었을까요? [27] 양파() 04.09.18 997 0
20 다모라국에 대하여 알려주세요 [4] 비번1() 04.09.19 507 0
19 어떻게 제주도가 한국땅으로 존속될 수 있었을까? [3] 킹콩() 04.09.18 702 0
18 역사란 무엇입니까? [16] 나가리() 04.09.18 479 0
17 孤藍居士햏 농은천부경이 위조란 근거가 뭐요? [67] 생생() 04.09.18 1440 0
16 이것이 어느나라 사람인것 같습니까? [14] ..() 04.09.18 892 0
15 콜롬부스는 상상외의 위대한 공헌자? [12] 올드보이() 04.09.18 616 0
스파르타쿠스의 반란......(햏력이 깊으신 분은 소햏의 의문을 풀어주시오..) [28] 장미유() 04.09.18 1646 0
12 누구 음운학 전문가 없소? [9] 한국인() 04.09.18 564 0
11 제주도가 원래 한국땅이 아니였다고 하던데...? [8] 서울우유() 04.09.18 1026 0
10 태권도 말이오....지류가 무엇이오? [15] 돝섬() 04.09.19 706 0
9 댓글보다가 질문 [3] () 04.09.19 390 0
8 이것 아직도 논쟁중 ? [5] () 04.09.19 710 0
7 국강상 광개토경 평안 호태왕 - 관미성의 위치는????? [4] 블레이드() 04.09.20 1138 0
6 경제학 공부하신 분들께 질문이오 [14] 궁금() 04.09.20 667 0
5 우리나라 역사책은 어떤게있오? [10] 뭘까?() 04.09.19 582 0
4 국사교과서 정말 믿어도 되겠오? [9] 뭘까?() 04.09.19 744 0
3 근데 현재까지 가장 뛰어난 두뇌를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 누구일까... [34] 잇힝~() 04.09.19 1138 0
2 치우천왕? 치우천황? [18] 무간지옥() 04.09.19 1043 0
1 간도에 대한 질문 [12] 1() 04.09.19 733 0
갤러리 내부 검색
전체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개념글 []

/

    이슈줌NEW

    1/6

    뉴스NEW

    1/3

    힛(HIT)NEW

    그때 그 힛

    1/3

    초개념